• 권영길, DJ ‘모시고’ 평양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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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9월 16일 09:5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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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둘러싸고 온 나라가 ‘자주 대 동맹’의 구도로 나뉘어 여전히 시끄럽다. 부시 대통령까지 나서서 “이 문제가 정치 쟁점화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점잖게 훈수를 두지만 보수파들의 공세가 수그러들지는 의문이다.

    안보장사를 할 수 있는 배경

    그들이 나름대로의 충심에 의해서든 아니면 소위 안보장사를 위해서든 그 목소리를 좀체 수그리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한마디로 한반도가 불안하다, 그리고 그 불안의 억지요소인 한미동맹이 위기에 처해 있다는 인식 때문일 것이다.

    후자의 동맹위기론은 동맹의 성격변환에 따른 부적응, 혹은 그 배경에 대한 무지에서 연유하는 것이든, 줄 것 다 주고도 상대로부터 불만을 듣는 이 정권의 행태에 따른 것이든 실체보다는 이미지에 따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보수파가 노무현 정권의 ‘자주장사’에 못지않게 ‘안보장사’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은 그것이 나름대로 해볼 만한 객관적 근거가 있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즉 그들이 제기하는 한반도의 불안이라고 하는 것이 단지 유령이 아니라 실재하는 현상이고, 여기에 상당수의 국민들 역시 불안감과 함께 기존의 포용정책에 대해 회의를 표명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진정한 자주는 평화체제 창출이다

    필자는 친미와 자주를 병행하려한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말은 적어도 반은 허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노무현 정권이 현재 추진하고 있는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와 병행한 동맹재편은 부시대통령이나 미국의 군부도 동의하듯 철저히 친미적인 것이다. 미국은 오래 전부터 그 지역의 위협에 대한 해당 동맹국의 적극적인 역할을 촉구해왔다.

    노무현 정부는 일본보다도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확실히 인정해주는 친미적인 정책과 함께, 대북 억지 임무를 전적으로 떠맡고 그를 위한 대대적인 군비증강을 하기로 천명했다.

    전시작전통제권의 환수는 동맹 내에서의 지위의 상대적 수평화일 수 있다. 하지만 위기가 심화된다면 환수가 전쟁 자체를 방지하는 데는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없다.

    한국이 할 수 있는 자주, 그리고 최대의 자주는 현재의 대결체제에 파열구를 내고 평화체제로 나아갈 수 있는 기반을 확실히 하는 것이다. 즉 북한이 현재의 대결정책을 끝내고 국제사회로 진출하고, 내부적 개혁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핵심적인 매개고리로 해 동아시아에서 대립의 체제가 아닌 평화체제의 토대를 갖추는 것이다.

    만만찮은 현실과 열려있는 기회

       
    ▲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美대통령이 15일 새벽(한국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워싱턴=연합뉴스)
     

    부시 행정부가 북한 핵이나 미사일 등의 문제를 보다 적극적이고 전향적으로 풀 생각이 별로 없어 보이는 것은 분명하다. 일본의 우경화나 중국의 국가주의화도 가속화되는 듯하다. 중국을 자신의 패권에 도전할 잠재적 세력으로 보고 일본 등과의 동맹을 가속화하려는 미국의 움직임도 현재진행형이다.

    하지만 아직 기회의 창이 닫힌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국제체제가 과거의 냉전체제처럼 약소국의 운신을 강하게 결박하는 체제로 아직은 전환되지 않았다. 중국에 대해 상당히 적대적인 듯했던 부시 행정부도 갈등 속에서 협조를 계속 모색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여전히 미국 시장과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국제 시장의 질서에 의존적일 수밖에 없는 중국이 그렇게 도전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 미국 역시 중국과 경제적으로 협조적이고 의존적인 상황이기 때문이다.

    즉, 소련에 대해 주로 봉쇄로 일관했던 냉전 시절의 미국의 정책, 혹은 그런 대결 체제와는 상당한 차별성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북한 문제가 비록 금융이나 인권 등을 포함한 북한 체제 전체의 문제로 되고 있기는 하지만, 이런 대립의 상황이 장기 지속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현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해서는 미국 내에서도 현상 유지는커녕 북한의 핵 능력만 키웠다는 비판적인 시각이 강하다. 현재의 상황이 10년, 20년 이상 지속될 수는 없는 것이다. 테러와 대량살상무기의 결합의 방지를 자국의 사활적인 이익으로 간주하는 미국의 레드라인을 넘지 않는 한, 파국적 국면으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보다 높다.

    페리 프로세스 대 2006년의 교착

    약소국의 운명이 전적으로 강대국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양대 진영의 대결체제가 종식되었고 아직 새로운 대결 체제는 오지 않은 현재의 상황은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고 얼마나 현명하게 처신하느냐가 우리의 운명을 결정지울 수 있다.

    탈냉전이 열어놓은 가능성을 현실화 한 예는 많다. 북방정책이라든가 중국과의 수교 및 관계의 발전, 햇볕 정책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그런 정책의 추진이 나름대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에는 다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1998년 8월부터 터져 나온 금창리 시설에 대한 의혹과 미국의 대북정책에 대한 전면 재검토의 위기가 결국 페리 프로세스로 귀착된 사례가 웅변하듯, 그것은 어지간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신념과 정책의 구체성이 뒷받침되었을 때 가능하다.

    같은 해 8월 31일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른바 대포동 미사일이 발사되었다. 그리고 강경파인 페리가 대북 정책 조정관으로 임명될 때만 해도 한반도에는 암운이 드리운 듯 했다. 99년 6월에는 서해교전이라는 대규모 분쟁사태도 있었다.

    하지만 99년 10월에 발표된 페리 프로세스의 골자는 대화를 통한 일괄타결이라는 김대중 정부의 안이 거의 전적으로 반영된 것이었다.

    위기의 원인 대 유일한 대안

    전작권 환수 논란의 이면에 가려져 있는 미국의 이익에 일방적으로 기초한 동맹 재편, 그 배경에는 한미관계의 문제점과 대안을 상대적 자주성과 전쟁 방지에만 맞춘 노무현 정권의 인식과 전략부재가 있다.

    북한 역시 문제가 있었다. 이런 상황을 돌파하는 것은 강경책을 구사함으로써 미국의 봉쇄 및 압박 정책을 합리화시켜주는 것도 아니고, ‘대충 버티기(muddling through) 전략’도 아닐 것이다.

    핵실험 등의 선택은 부시 행정부를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기는커녕, 부시의 실패를 거론하며 적극적인 대화를 주문하는 미국 민주당 쪽도 격앙시킬 가능성이 많다.

    당장 전쟁이라는 선택을 하지는 않을지 모르나, 이제 북한의 목을 조르려는 시도가 본격화되고 있다. 쿠바가 40여년의 봉쇄를 견뎌냈듯이, 90년대의 위기를 고난의 행군을 통해 관통했듯이 북한 체제는 쉽사리 붕괴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와중에 겪을 아사와 가족 해체 등 고통은 오롯이 북한 민중의 몫이다. 그리고 또다시 재현되는 대결체제 속에 경제적, 사회․문화적 퇴행의 부담을 뒤집어 쓸 남한 민중의 몫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단지 남북간의 대결체제의 지속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의 국가주의화와 우경화가 가속화되고 힘을 통한 패권을 지속하려는 미국의 정책이 구체화될 가능성이 높지 않은가?

    서서히 덥혀지고 있는 냄비 속의 개구리, 그 운명으로부터 벗어날 대책은 무엇인가? 평화체제의 창출을 위한 적극적 노력, 그것은 현재의 상황에서는 단지 옳은 소리가 아니라 유일한 방도라고 할 수 있다.

    소위 현실주의에 기초한 대결적 방법이나 섣부른 압박은 자신의 입지를 최소화하는 것과 함께, 결국 미국의 의도에 끌려가는 것임은 지난 10여년의 역사가 웅변하고 있다.

    합리적 해결방안으로 미국을 설득하는 것의 최대치는 현 부시 행정부하에서는 2005년의 9.19 공동성명의 도출 정도일 것이다. 그리고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나온 ‘포괄적 접근방안’의 모색이라는 합의 아닌 합의를 통한 시간 벌기 정도일 것이다.

    제언 1. 남북 주도의 평화체제 창출

    물론 제재와 봉쇄에 대해 덥석 합의하지 않고 시간을 번 것 자체를 완전히 폄하할 필요는 없다. 문제는 어쩌면 마지막 기회라고들 하는 “현재의 유예된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일 것이다. 권영길이든 누구든 길잡이를 자청하고서 DJ를 모시고(?) 방북을 하는 것은 어떤가?

    북한이 최소한 6자회담에 복귀하겠다는 대외적 약속을 한 바탕 위에 남북정상회담을 합의하는 것을 특사 파견의 성과로 건져야 할 것이다. 지금은 단지 대화를 복구하고 그 모멘텀을 유지하는 정도가 아니라 역진의 가능성에 쐐기를 하나하나 박는 구체적 성과가 필요하다.

    그리고 미국으로 하여금 대화의 장에 나오지 않을 수 없게끔 하는 공세적 평화전략이 필요하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에도 제네바 합의 이후 그들은 의회의 반대를 핑계로 단지 소극적인 현상유지 정책에 머무르다가, 남북 정상회담 이후 부리나케 관계개선을 서둘렀던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남북정상회담에서는 핵 활동의 동결 및 폐기의 의지 표명, 그와 연동된 북미관계의 개선 등의 일괄타결 원칙의 재확인과 함께, 남북한 차원에서 할 수 있는 평화와 관련한 강력한 시그널을 국제 사회에 공표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남한 당국의 경우 전시작전통제권 회복의 명분으로 추진하고 있는 대대적인 군비의 중단을, 북한 당국의 경우 주한미군의 후방 재배치에 따라 전략적 가치가 의문시되는 장사정포의 후방배치 등을 천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일련의 조치들은 대선 국면이 본격화되기 전인 내년 상반기까지는 완료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제언 2. 대안적 전략의 모색

    이런 단기간의 현상 돌파 전략과 더불어 한반도 및 동아시아 차원의 평화체제 창출의 구체적 방도, 한미동맹의 미래 등에 대한 각계각층의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한미동맹의 경우 다수의 사람들이 그 존속을 대전제로 하다 보니, 주한미군의 감축과 철수를 위협으로 한 미국이 협상에 있어 일방적 우위에 설 수밖에 없는 배경을 형성하고 있다. 얼마 전, 한미동맹을 미국과 태국간의 동맹 정도로 변환시키려했다는 럼스펠드의 초기 구상을 <조선일보>가 보도한 바 있다.

    필자는 그 보도를 접하며 그것이 태국이 아닌 호주라는 나라로 대체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수백 명 정도의 미군이 주둔하는 정치적 수준의 동맹, 그것이 미국과 호주, 태국간의 동맹이다. 한반도에서의 평화체제의 진전과 함께 주한미군의 점진적 철수, 그 귀결로서 한미동맹은 유지된다고 하더라도 그런 식으로 전환되어야하지 않을까?

    제언 3. ‘동아시아 평화공동체’에 대한 의지적 낙관

    대안과 관련한 논의과정에 잊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바로 ‘동아시아 평화공동체’의 문제이다. 현 정부도 그것을 천명하기는 했지만 일본과의 관계 악화 등으로 인해 어느새 이상주의자의 꿈 정도로 치부되는 분위기이다.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과 심화는 동아시아 차원의 평화공동체의 구축과 결코 떨어뜨릴 수 없다. 이것 한반도의 완전한 평화도 불가하며, 지역적 역할 강화와 관련한 미국의 요구를 뿌리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진보진영 내 일부 논자나 현 정부의 당국자들의 경우 북한과 관련해서는 많은 인내심을 발휘하며 남북한 간의 평화공존은 어떤 상황에서도 견지해야 할 원칙이라고 천명하면서도, 일본 등 주변국과의 평화공존, 평화체제의 구축은 어떤 간난신고를 겪더라도 견지해야 할 원칙이라는 것을 간과하는 경우가 흔하다.

    일본이나 중국 당국의 일부 정책이나 일부 정치 지도자들의 행태가 못마땅하다고 할지라도 즉자적 반발이나 민족주의적 감정에 호소하는 것은 원칙의 차원을 넘어 현실적으로도 가장 어리석은 대안이다. 대결의 분위기 속에 이 지역에서의 지위를 공고화하는 것은 미국이요, 국가주의화를 부추기는 일본의 집권 세력 등임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일본과 미국의 강경파들이 그들의 정책을 국내적으로 승인 받고 구체적인 정책을 통해 이 지역에서 관철시키려는 데 있어 빌미로 사용하는 것이 바로 북한과 그 대결적 정책이다. 북한 핵이나 미사일 등이 합리적으로 해결된다면 그들의 정책이 설 입지는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 문제에 대한 가장 합리적 해결책으로서 평화적 수단과 동시 행동의 원칙을 현실화시키는 것과 함께, 인내를 갖고 ‘동아시아평화공동체’를 이 지역 전체에서 담론화시켜내야 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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