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규제완화, 과잉 공급의 부메랑 되다
    [한국 항공산업의 구조적 문제 ①] 위기의 원인
        2020년 05월 12일 02:5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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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19 위기로 항공산업은 괴멸적 타격을 받고 있다. 위기 극복과 함께 산업 재편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으며, 이스타항공 등 항공산업 구조조정은 이미 진행되고 있다. 정부는 기간산업안정기금을 통해 항공산업을 지원하되, 코로나19 이전에 위기에 빠진 기업은 기존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적용한다는 입장으로, LCC 청산 의도를 내비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2019년에 국적항공사가 모두 적자를 기록할 정도로 한국 항공산업은 구조적 위기에 봉착해 있다. 이에 대한 위기의 원인을 제대로 밝혀야 합당한 대책을 마련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일환으로 한국 항공산업의 구조적 문제를 분석하고, 산업의 올바른 재편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연재 기고 글을 게재한다. 필자는 공공운수노조의 수열 정책기획국장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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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많은 국적 항공사

    2017년 12월 22일. 국토교통부가 에어로케이의 항공사업자 면허 신청을 반려했다. 심사 기간까지 연장하며 사업계획을 보완했지만 국적사 간 과당 경쟁 우려가 크고, 사업계획 실현이 불투명하며, 재무안정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2번째 낙방이었다.

    청주 공항을 허브로 하는 에어로케이의 승인을 추진했던 충북 지자체와 국회의원들은 크게 반발했다. 이시종 충북지사는 에어로케이의 3번째 항공면허 신청을 앞두고 “국토부의 과당경쟁 주장은 기득권층을 보호하기 위한 논리”라며 “헌법소원을 내서라도 (에어로케이의 허가를) 관철”하겠다고 일갈했다. 청주시 청원구가 지역구인 더불어민주당 변재일 의원은 항공사업 면허기준에서 ‘과당경쟁의 우려’ 조항을 삭제하는 <항공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정치권의 지원 사격 속에 에어로케이는 2018년 11월 3번째로 도전했다. 2019년 3월 5일, 국토부는 결국 에어로케이의 국제항공운송사업 면허를 발급했다. 예상보다 많은 3개사가 한꺼번에 승인을 받았다. 이로써 한국의 국적항공사는 총 11개(설립일 순으로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티웨이항공, 제주항공, 에어부산, 이스타항공, 진에어, 에어서울, 플라이강원, 에어로케이, 에어프레미아)에 이르게 됐다.

    세계 최다 LCC 보유국

    1969년 국영항공사였던 대한항공공사가 민영화된 이후 1988년까지 대한항공 독점 체제가 이어졌다. 1980년대 3저 호황과 서울올림픽에 기반해 1988년 아시아나항공이 출항하면서 복수 민항 시대가 열렸다. 이후 1994년 제3민항인 서울항공이 출범했으나 노선권을 얻지 못했고, 오랫동안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체제가 이어졌다.

    양대 항공사의 과점 체제를 깬 것은 LCC(저비용 항공사)였다. 2004년 8월 한성항공이 부정기노선을 띄우면서 사업자 등록을 했고, 곧이어 2005년 1월 제주에어가 설립됐다. 같은 해 8월, 한성항공이 청주-제주 노선 운항을 시작했고, 제주에어는 제주항공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2007년 8월에는 에어부산, 10월에는 이스타항공, 2008년 1월 진에어가 설립됐다. 2010년 한성항공이 티웨이로 사명을 변경했고, 2015년 에어서울이 설립됐다. 이후 4년 만에 3개사가 추가되면서 한국은 LCC만 9개에 달하는 최다 LCC 보유국이 됐다.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그 심각성을 알 수 있다. 남한 인구의 2배가 넘는 일본이 8개,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영토를 가진 캐나다가 4개에 불과하다. FSC(대형항공사) 수 등 고려할 요소가 다양하겠지만, 한국의 LCC가 너무 많다는 점은 분명하다. 오죽하면 2019년 3개 LCC에 한꺼번에 허가가 떨어지자 자유시장과 규제완화의 나팔수라 할 모 보수언론조차 ‘LCC가 고속버스 회사보다 많아질 판’이라고 비판했다.

    수요보다 공급이 많다

    LCC가 많더라도 수요가 받쳐주면 문제될 게 없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공급 증가를 수요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2019년 기준으로 한국의 항공여객은 국내선이 27%, 국제선이 73% 정도로 국제선 비중이 압도적으로 크다. 또, 국내선에는 외항사가 취항하지 않고 있다. 그러니 국제선을 들여다보자.

    8개 국적사 체제가 갖춰진 2016년부터 LCC 3개사가 신규허가를 받은 2019년까지 국제선 상황을 보자. 해당 시기 우리나라 국제선을 이용한 여행객은 7,300만(’16) → 9,038만 명(’19)으로 23.8% 증가했다. 반면 8개 국적사의 국제선 공급좌석은 5,814만 → 7,407만 석으로 27.4% 증가했다. 여행객이 꾸준히 증가했지만 공급량 증가를 따라가진 못했다.(참고로 같은 시기 외항사의 공급좌석 증가율은 16.1%에 불과하다.)

    여객 수요도 출렁였다. 항공수요의 기반이 되는 여행수요는 본래 사회적 분위기에 민감한데다 국제선 수요는 전염병, 국가 간 갈등 등 국제적 환경 변화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2010년부터 연평균 12% 가까운 증가율을 보이던 국제선 여객 수요는 중국과의 사드 갈등이 있었던 2017년에는 5.4%로 급락했다. 2018년에는 이전 수준의 증가세를 회복했지만, 홍콩 민주화 시위와 일본불매운동이 한창이던 2019년 다시 5.2%로 반토막이 났다. 게다가 중국인 유입이 줄었던 2017년에는 별 영향이 없었던 국적사 이용 여행객은 내국인 유출이 줄었던 2019년에는 2.8%로 주저앉았다. 이런 상황에서 LCC 3개사에 새로 허가를 내어준 것이다.

    운항 노선이 겹친다

    2019년 지역별 국제선 여객 실적을 보자. 일본, 중국, 아시아 지역이 총 81.6%를 차지한다. LCC 노선은 이 지역에 집중된다. 신규 허가를 받은 플라이강원과 에어로K의 주요 노선도 중국, 일본, 대만 등지다.

    그렇다고 LCC의 노선을 바꾸기도 어렵다. LCC의 경우 비용이나 정비 효율성 때문에 단일 기종이나 유사 기종으로 기단(機團, fleet)을 형성하게 된다. 국내 LCC의 항공기 보유 현황을 보면 대다수가 보잉사의 B737-800 기종을 운용하고 있다. 이 기종의 항속거리는 5천km 정도인데, 예비연료 등을 제하면 비행 거리는 더 짧다. 때문에 중국, 일본이나 동남아시아 일부 국가 등 중단거리 노선에만 쓰일 수 있다. (앞서 보았던 중국이나 일본과의 갈등 같은 상황에서 다른 곳으로 취항지를 바꾸지 못하고 타격을 고스란히 안게 되는 이유다.) 2019년 신규 LCC 허가 당시 플라이강원은 2022년까지 B737-800 단일 기종으로 9대를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같은 기간 에어로케이는 에어버스사의 A320급 6대를 도입하겠다는 계획인데, A320 역시 운항 거리는 유사하다. 엎친 데 덮친 격이다.

    노선 다변화를 위해 새로운 기종을 도입하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현재 매각 절차를 밟고 있는 이스타항공이 주인공인데, 이스타항공은 2018년 12월과 2019년 1월 B737맥스 2대를 들여왔고, 2019년 말까지 4대를 추가 도입할 계획이었다. B737맥스 기종의 항속거리는 6천5백km 정도로 중거리 노선 취항이 가능하기 때문에 타 LCC에 앞서 중거리 노선을 선점할 구상이었다. 그러나 에티오피아항공 등 737맥스 추락 사고가 연이어 터졌고, 전 세계 항공사들이 해당 기종의 운항을 금지했다. 미국 연방항공청 조사 결과 수평꼬리날개 제어 시스템에서 결함이 밝혀졌다.

    취항 3개월만에 운항이 중단된 이스타항공의 737맥스 2기는 인천공항에서 주기료(비행기의 주차료)만 까먹었다. 한 푼의 수익 없이 리스료 5~6억을 포함해 매달 수십억 원이 날아갔고, 이스타항공은 2019년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 (참고로 위에 언급한 B737-800 기종 역시 지난해 말 비행기 동체와 날개 연결부에 금이 가는 결함이 발견되었고, 돌아가며 운항중단에 들어갔다.)

    규제완화의 필연적 귀결

    항공산업의 공급 과잉은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공급 과잉, 무분별한 과당 경쟁, 수익성 악화로 인한 항공사 파산과 인수합병은 세계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항공산업이 가장 발달한 미국이 대표적이다. 1978년 카터 정부의 항공자유화 이후 1985년까지 신규항공사만 118개가 생겼고, 이후 99개가 쓰러졌다. 20세기 최대 항공사였던 팬암항공과 국내선 최강자 이스턴항공은 1991년에 파산했고, 운항 역사가 가장 긴 트랜스월드항공은 2001년 아메리칸항공에 팔려야 했다.

    한국 역시 유사한 길을 걷고 있다. 국토부는 이미 포화상태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3개 LCC에 신규 허가를 발급했다. 2017년 에이로케이와 플라이양양의 사업 허가를 반려하면서 지적했던 노선 편중과 과당경쟁 가능성 우려가 2019년에는 ‘사업자 신규 진입으로 경쟁이 촉진되고, 항공시장의 혁신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180도 바뀌었다. 지역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등의 명목으로 정치권과 지자체가 합세했다. 국회는 결국 <항공사업법>을 개정해 항공사업 면허 기준에서 ‘과당경쟁 우려’ 조항을 삭제했다.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기간산업을 지원하면서 정부는 코로나19 사태 이전에 이미 위기에 빠진 기업은 구분해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밟겠다고 했다. 대규모 해고가 예상되는 대목인데, 사실 항공산업에서는 이런 구분이 무의미하다. 코로나19는 방아쇠가 되었을 뿐 판데믹 이전부터 항공산업 전반이 위기에 처해 있었다. 경쟁력 확대를 명목으로 규제를 풀어 공급 과잉 상태를 만든 정책 실패가 첫째 원인이다. 위기 극복을 위해 항공노동자에게 희생을 전가할 것이 아니라 그 위기가 어디에서 오는지 분명히 들여다봐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필자소개
    공공운수노조 정책기획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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