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대는 국경과 세대를 넘어 호소한다
    [책소개]『불혹의 페미니즘』(우에노 지즈코/스핑크스)
        2020년 05월 09일 12:1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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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미니즘의 최전선에서 싸워온 우에노 지즈코의 거침없는 리얼타임 보고서. 20대에 우먼리브(women’s liberation) 운동을 겪고 페미니즘에 입문 후, 싸움을 걸어오면 피하지 않고 상대한다는 우에노 지즈코. 저자의 20대부터 60대까지의 40년 세월은 일본 페미니즘의 40년 역사와 포개진다. 그의 발언은 때로는 공감을, 때로는 물의를 일으켰지만, 그 배경에는 그의 솔직한 생각과 여자가 여자인 채로 해방을 꿈꾸는 페미니즘 사상이 있었다. 저자는 우먼리브와 페미니즘 사상에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밝히고 있지만, 동시에 그 움직임을 일으키고 이끄는 데도 상당한 역할을 했다.

    이 책은 저자가 4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언론에 발표한 글들을 모아 엮은 책이니만큼 당시의 현장감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페미니즘이 무엇과 싸워서 무엇을 얻었고, 무엇에 실패했는지를 검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비록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소개되는 그의 글들이 나라와 시대와 문화가 달라 문제의 지점과 해결 방식이 다를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 역시 여전히 교육이나 직장에서 여성 차별 문제, 성 인지 감수성 문제, 학내 성폭력 문제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쌓여 있어 우리는 그의 글로부터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연대는 국경과 세대를 넘어 호소한다. 서로 아지트에서 벗어나, 분야를 넘어, 지역을 넘어, 세대를 넘어 연대를 만들자고 저자는 호소한다. 일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화제가 된 2019년도 도쿄대학교 입학식 축사를 특별 수록했다.

    페미니즘 최전선에 선 우에노 지즈코
    무엇과 싸워서 무엇을 얻었고, 무엇에 실패했는가?

    페미니즘의 최전선에서 싸워온 우에노 지즈코의 거침없는 발언을 생생하게 기록한 한 권의 보고서. 40여 년간 불 같은 열정으로 쉬지 않고 달려온 우에노 지즈코. 20대부터 60대까지 저자의 40년 세월은 일본 페미니즘의 40년 역사와 포개진다. 그동안 저자는 우먼리브(women’s liberation)와 페미니즘 사상에 많은 영향을 받았지만, 동시에 그 움직임을 일으키고 이끄는 데 지대한 역할도 했다. 저자를 포함한 여러 세대의 여성들이 저마다의 입장에서 하나의 조류처럼 만들어온 거스를 수 없는 역사적인 변화가 페미니즘인 것이다.

    “20세기 전반을 뒤흔든 사상이 마르크스주의였다고 한다면, 20세기 후반을 뒤흔든 사상은 페미니즘이었다. 결코 과장이 아니다. 대체 그 이전에 누가 ‘여자’가 사상이 될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차별 중의 차별, 너무나도 당연시되고 고착화되어 차별이라고 느끼지도 못했던 최후의 차별이 문제화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 근대가 ‘개인’과 ‘인권’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냈을 때, 동시에 싹튼 여성해방사상을 페미니즘이라고 부른다.” (본문 중에서)

    이 책은 그러한 페미니즘에 대해 이따금 발표했던 일종의 ‘시국 발언집’이라 할 수 있다. 기간은 1980년부터 2009년에 이른다(2019년도 도쿄대학교 입학식 축사 특별 수록). 매체는 소수 집단 대상의 출판물부터 사외보, 홍보지, 신문, 잡지 등 여러 방면에 걸친다. 실시간으로 쓴 것도 있고, 회고나 회상 형식으로 쓴 것도 있다. 학술 논문이 아니라, 동료나 일반 청중을 대상으로 쓴 편안한 문체의 글을 주로 수록해서 가독성을 높였다. 주제를 담은 짧은 글이니만큼 그 문제의식은 명료하고 강렬하다.

    페미니즘은 남자와 똑같은 룰 위에서 여자에게도 경쟁에 참가할 권리를 달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룰 그 자체를 바꾸라고, 기존 사회에 날카롭게 ‘노’를 외쳐왔다. 저자는 페미니즘이 필요 없어지는 사회를 목표로 해왔지만, 그것은 당분간 어려울 것 같다고 전망한다. 페미니즘이 필요 없어지는 사회란 여자가 남자와 동등하게 강자가 되는 사회가 아니다. 약자가 약자인 채로 존중받는 사회, 그런 사회를 바라는 것이다. 페미니즘이 무엇과 싸워서 무엇을 얻었고, 무엇에 실패했는지를 이 책을 통해 어느 정도 검증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저자의 예측에서 무엇이 맞았고 무엇이 빗나갔으며, 어떻게 일관성이 있었고 또 변해왔는지도 확인하게 될 것이다.

    걸어오는 싸움은 피하지 않는다…우에노 지즈코의 말과 싸움

    『불혹의 페미니즘』 서문에서는 불혹이 된 ‘페미니즘의 40년’을 회고하고,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뜻의 에세이를 두 편 실었다. 2000년대에 쓴 첫 번째 에세이에서, 페미니즘을 ‘20세기 후반을 뒤흔든 사상’이라고 한 것은 과장이 아니다. 그런 역사적 자리매김을 한 페미니즘이 어떻게 출발했는지를 알기 위해 바로 이어서 1980년대에 쓴 에세이를 수록했다. 회고와 증언으로 이뤄진 서문은 페미니즘의 과거의 초심과 현재의 도달점을 보여준다.

    1장은 1980년대에 쓴 글들로, 성장기의 페미니즘과 그 안에서 생겨난 여성학이 저항과 몰이해를 겪으면서 어떻게 성장했는지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특히 1982년부터 1984년에 걸쳐 미국에 체류했던 저자는 그때 접했던 미국의 여성 운동이나 여성학에서 받은 신선한 충격을 묘사하고 있다. 귀국 후 페미니즘 논쟁에는 거의 빠지지 않고 개입했는데, 이 파트에서는 남녀고용기회균등법, 여·여 대립을 부추긴 소노 아야코와의 논쟁 과정 등이 실려 있다. 저자는 분명히 논쟁적인 사람이지만 싸움을 좋아하지는 않는다고 밝힌다. 다만 날아온 불똥을 피하지 않을 뿐이다.

    2장에는 1990년대의 글들을 수록했다. ‘젠더 평등의 지각 변동’이라는 제목은 과한 것이 아니다. 많은 이들이 1991년을 세계사적 전환점으로 보는데, 일본은 이 해를 다음의 3종 세트와 함께 맞이했다. 첫째는 소련 붕괴에 의한 동서 냉전 체제 종식, 둘째는 세계화 물결, 셋째는 버블 붕괴다. 일본형 경영 신화나 일본형 근대 가족 등 전후 일본 사회를 안정적으로 유지해온 젠더 분업 체제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음이 명백해졌다.

    1991년 버블 붕괴 후의 ‘잃어버린 10년’은, 아이러니하게도 젠더 평등 정책에 있어서는 ‘획득한 10년’이었다. 1991년의 육아휴업법, 1997년의 섹슈얼 해러스먼트 방지 조치를 사용자에게 요구한 개정 남녀고용기회균등법, 그리고 그 대단원인 1999년의 남녀공동참여사회기본법까지. 2001년에는 ‘가정폭력방지법’이 제정되면서 ‘세쿠하라’나 가정 내 폭력 등 남녀 사이의 일로 치부되던 폭력에 정치가 개입한다는 변화가 일어났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페미니즘의 구호에 국민적 합의가 이뤄졌던 것이다. 그때 당시 각각의 논란에 대해 저자의 명확한 입장이 잘 드러나 있다.

    2000년대는 페미니즘에 역풍이 불어닥친 시대다. 역풍은 페미니즘이 강해졌다는 증거이며 궁지에 몰린 보수 세력의 울부짖음이라고 저자는 ‘가볍게’ 생각했다. 패배 의식이 팽배해진 보수 세력의 울부짖음이라는 것은 틀리지 않았지만, 풀뿌리 보수의 영향력은 얕잡아 볼 것이 아니었다. 3장에 수록된 백래시의 기록은 꽤 상세하다. 백래시의 움직임은 각지에서 조직적으로 일어났다. 강연 취소, 특정 도서 배제, 여성회관 예산 동결, 여성재단 해산 명령 등 실질적인 손해가 줄줄이 이어졌다. 변화는 직선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역사에 일보전진과 이보후퇴가 있음을 기억하고 늘 경계하는 자세로 있어야 한다고 저자는 당부한다.

    4장에는 주로 동인지에 투고했던 글들을 실었다. 여성학이 아직 이 세상에 없던 시절부터 2000년대까지, 4장에 수록된 글들을 읽어보면 여성학을 만드는 것 자체가 하나의 운동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장에서 여러 번 되풀이해서 말하고 있는 것은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학문이고 연구인가. 저자는 페미니즘을 ‘여성해방의 사상과 실천’이라고 정의했다. 타인의 해방이 아닌 나의 해방, 그리고 무엇이 해방인지는 각자 자신이 정한다. 타인에게 맡길 수 없고, 맡겨서도 안 된다. 그리고 혼자서는 불가능하므로 반드시 협력할 동료가 필요하다. 여성학이란, 여자가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기 위한, 후에 ‘당사자 연구’라고 불리게 된 분야의 개척자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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