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민 vs 사회주의’ 넘어 보수와 대논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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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9월 15일 09:1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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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에 불교가 처음 들어온 게 4세기 말이었다. 처음 이름이라도 알려지기 시작한 때가 그 즈음이었고, 사실 7세기 들어서야 제대로 꽃 피기 시작했다. 원효와 의상이 활약한 시절이 그 무렵이었다.

    그런데 그 때는 이미 인도에서 불교가 등장하고 1,000년도 더 지난 뒤였다. 그 천 년 동안 불교의 역사에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던가? 기존의 불교를 소승불교라 비판하면서 대승불교가 등장한 지도 벌써 수백 년이었다.

    게다가 대승불교 역시 하나가 아니었다. 나가르주나(龍樹)의 중관 사상이 있었고, 바수반두(世親)의 유식 사상이 있었다. 여기까지도 사실은 인도만의 이야기다. 중국을 거치면서 분화하고 변형된 것은 아직 셈에 넣지도 않았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천 년의 역사가 한반도에는 한 번에 들어왔다. 범부들은 아직 사성제(四聖諦)가 뭔지 팔정도(八正道)가 뭔지도 아리송한데, 중관파의 변증법에, 유식파의 심층심리학, 거기다가 중국 불교의 거창한 형이상학 체계까지 쏟아져 들어온 것이다.

    한 번 생각해보라. 마치 수백 개의 브라운관이 서로 다른 화면들을 동시에 보여주는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 작품처럼, 천 년의 사상사로부터 튀어나온 수많은 개념과 서로 다른 문제의식, 다양한 실천 노선들이 고대 한반도인의 눈앞에 한꺼번에 상영되는 모습을.

    자연히 혼란이 생길 수밖에 없었고, 다툼이 벌어졌다. 저마다 처음 눈길이 간 화면을 기준으로 작품 전체를 이야기하려 들었다. 불교란 이런 것이다, 저런 것은 불교가 아니다. 아니다, 불교란 그런 것이 아니다, 내가 한 수 가르쳐주마. 한 마디로, 대논쟁의 시대가 시작됐다.

    좀 단순화시켜 이야기하자면, 이 논쟁을 단칼에 정리한 사람이 바로 원효였다. 그의 논지는 비교적 간단했다. 네 한 마음(一心)을 봐. 화면들에 속지 말고 그걸 바라보는 너 자신에서 출발하라고. 그럼 저 수많은 문과 길들이 다 그 하나로 돌아감을 알 수 있을 걸.

    이 때 비로소 한국 불교가 시작됐다.

    ‘사회주의’를 둘러싼 우리의 혼란

    다시 천 년이 훌쩍 넘는 세월이 지났다. 불교와 기독교 이후 또 다른 보편적 사상이 한반도에 들어왔다. 사회주의다. 한데 이번에도 상황이 1,300년 전과 비슷한 데가 있다.

       
    ▲ 1848년에 발간된 맑스와 엥겔스의 <코뮌주의자 선언>
     

    세계 사회주의 운동의 역사는 이미 세 번째 세기에 접어들었다. 첫 번째 세기에는 맑스와 엥겔스의 <코뮌주의자 선언>이 있었고, 사회주의자들과 아나키스트들이 갈렸다. 두 번째 세기에는 사회민주주의자들과 레닌주의자들, 즉 개혁적 사회주의자들과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 살림을 따로 차렸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은 2차 대전 후 지구의 한 귀퉁이에 복지국가를 만드는 데 성공했고, 10월 혁명의 여파는 20세기를 내내 뒤흔들었다. 그리고 이제 세 번째 세기다. 한편에서는 복지국가마저 흔들리고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새로운 혁명을 이야기한다.

    이 땅의 역사도 꽤 오래 전부터 세계 사회주의 운동과 연이 닿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사이에 워낙 심각한 단절들이 있었던 탓에 우리가 사회주의의 여러 흐름들을 현실 의제로 고민하는 것은 사실 이제 처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우리에게 지금, 지난 2백 년 넘는 세월과 그 사연들이 마치 윈도우즈 화면에 뜬 수많은 창들처럼 한꺼번에 들이닥치고 있다. 불교의 ‘가나다’도 처음 듣는 사람들 앞에 팔만대장경이 펼쳐졌을 때 마냥 우리는 지난 두 세기의 세계사를 뒤늦게 다중 화면으로 접하고 현기증을 느끼는 형편이다.

    그래서 역시 혼란을 피할 수 없다. 100년 전의 독일 사회민주당과 영국 노동당을 들어 민주노동당의 갈 길을 이야기하는 것도 그런 사례 중 하나다. 영국 노동당이라고 하지만 도대체 어느 시절, 어떤 순간의 영국 노동당인가? 한 세기가 넘게 수 세대, 수천만이 만들어놓은 역사 속에서 영국 노동당은 이러저러한 물건이었다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한갓되다. 그런 실체란 없다.

    당과 노동조합의 관계만 해도 그렇다. 창당 시기의 영국 노동당은 자유당이랑 별 차이가 없었다. 노동조합에 바탕을 두고 만들었기 때문에 확실히 이념성이 약했다. 하지만 1940년대와 1970년대에 영국 노동당은 유럽의 다른 어느 주류 좌파정당보다도 급진적이었다. 왜 그랬나?

         
    ▲ "노동당이 길을 연다." 노동자들이 상원의 문을 부수고 있는 영국노동당 창당초기의 포스터.  
       

    놀랍게도, 이번에도 그 이유는 당이 노동조합에 기반을 두었기 때문이었다. 노동조합 역시도 변화하는 사물이었고, 따라서 노동조합운동의 격동에 따라 영국 노동당은 오히려 대륙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보다 더 좌경할 수도 있었다. 영국 노동당식 당-노조 관계는 이렇게, 고정되거나 단순한 게 아니라 살아 있는 모순 덩어리였다.

    더구나 ‘사회민주주의’를 이야기하면서 스웨덴의 100년 전통과 요즘의 ‘제3의 길’ 사이를 종횡 무진하는 경우도 보인다. ‘사회민주주의’ 한 마디 읊조리는 가운데 복지국가를 한 삼천 번은 짓고 다시 부수는 격이다. 이 정도면 혼동도 도가 너무 지나치다.

    그렇다고 눈을 부라리며 허물을 물을 일만은 아니다. 이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그럴 수밖에 없는 혼란의 정직한 표현이니까. 하지만 이 혼란에 종살이까지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100년 전 소식과 30년 전 소식 중 어느 게 우리의 자리인지 다투다니, 허망하지 않은가?

    이번에도 역시 문제는 우리의 선 자리에서 우리 자신의 안목을 갖추는 일이겠다.

    사회민주주의도, 사회주의도, 심지어는 코뮌주의도 필요하다

    말이 나왔으니까 말인데, 만약 ‘사회민주주의’가 복지국가 세우기를 뜻한다면, 지금 우리한테 절실히 필요한 것은 바로 그 ‘사회민주주의’일 것이다.

    국민 소득의 절반 가까이를 세금으로 거둬야 한다. 그리고 그 돈을 복지에 쏟아 부어야 한다. 무상공공의료는 물론이고, 국민연금․실업보험 모두 다시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집들을 공공주택으로 사들여서 주택 ‘시장’이란 것 자체가 낯설어지게 만들어야 한다. 주요 대학은 국공립으로 바꾸고 등록금은 최소한 서유럽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

    이걸 만드는 데 좌파정당과 노동조합이 앞장서야 한다. 김종철 전 서울시장 후보도 <레디앙> 지면을 통해 제안했지만, 노동자들은 세금 더 낼 각오를 해야 한다. 그 결의를 무기 삼아 자본가와 부유층이 세금을 제대로 부담하도록 압박해야 한다.

    과연, 당분간 ‘사회민주주의’는 우리의 당면 과제다. 하지만 그것뿐일까? ‘사회주의’는 어떤가? 만약 ‘사회주의’가 자본가계급이 손아귀에 쥔 소유와 통제의 권한을 노동자․민중이 되찾는 것이라면? 필자는, 그렇다면, ‘사회주의’도 다름 아닌 지금 우리의 지침으로서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하겠다.

    한 가지 예만 들어보자. 비정규직 문제가 있다. 그게 사회 양극화의 근본 원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 대안은 무엇일까? 비정규직 차별 철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물론 그렇다. 하지만 ‘반만’ 그렇다.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이른바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의 이마에 불쑥 솟아나온 혹이 아니다. 자본주의, 그 자체다. 자본주의가 가장 정직하게 드러낸 그 본 모습, 그게 ‘신자유주의’다. 그렇다면 그걸 비판한다는 좌파의 처방도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대증요법(對症療法) 수준에 머물 수만은 없다.

    지금 민주노동당의 정치가란 사람들이 비정규직 시위대 앞에서 해야 할 연설은 양극화를 규탄하고 비정규직 대책이 필요하다는 되뇜이 아니다. 그 정도 이야기는 이미 TV에도 다 나온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야 듣지 않아도 벌써 몸으로 다 아는 사실들이다.

    외쳐야 할 것은 비정규직 양산의 원흉인 자본의 독재에 대한 공격이다. 민주노동당의 대표 정치인들은 이렇게 말해야 한다. 주주와 관리자들이 회사의 단기 이익을 위해 비정규직 일자리만 양산한다면, 좋다, 이제 소유와 경영의 권한을 노동자들에게 넘겨라. 사회에 넘겨라. 지금 같은 방식으로밖에는 버틸 수 없다면, 그건 당신들의 때가 이미 다했다는 징표다.

    이런 맥락에서, ‘사회주의’는 현안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핵심에 있는 금융자본을 놓고 보면, 더욱 그렇다. 그 발목을 묶기 위해서도 힘부터 빼놓고 봐야 한다.

    그러나 또, 여기서 그치는 게 아니다. 국가통치와 화폐경제를 넘어선 사회를 ‘코뮌주의’라고들 불러왔다(이 말의 일본식 번역어가 ‘공산주의’였던 것인데, 역사의 상처도 있고 번역어 자체도 좋지 않아서 요즘은 그냥 ‘코뮌주의’라고들 한다. 필자도 이런 새로운 관행을 따르겠다). 그리고 그야말로 먼 미래의 과제라고들 생각해왔다.

    한데, 이제는 그렇게만 볼 수 없게 되었다. 예를 들어, 시장과 국가의 처방만으로는 더 이상 황폐화를 막기 힘든 농업의 문제가 있다. 화폐경제의 작동을 근저에서 위협하는 듯 보이는 새로운 시간들의 출현, 즉 고령화 문제도 있다.

    이런 문제들은 바로 지금부터 코뮌주의의 상상력이 작동하길 요구한다. 시장과 국가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도시와 농촌을 서로 잇고 하나로 통합할 방안은 없을까? 노년의 시간을 결핍으로부터 보호하면서 화폐가 아니라 연대와 협력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새로운 매체가 되는 공동체를 만들 수는 없을까?

    “하늘나라는 겨자씨와 같다”고 했지만(마태복음 13장 31절), 지금 우리에게 ‘코뮌주의’는 이미 겨자씨보다는 큰 무엇이다. 그것은 이제 ‘멀고 먼’ 미래가 아니라 ‘우리 사이에 벌써 싹튼’ 미래여야만 하게 되었다.

    말하자면, ‘사회민주주의’도 필요하고, ‘사회주의’도 필요하다. 그런가 하면, ‘코뮌주의’까지도 필요하다. 그 중 어느 하나도 우리는 놓쳐선 안 된다. ‘사회민주주의’와 ‘사회주의’, ‘코뮌주의’의 문제의식과 고민, 실천의 결단들이 모두 한 데 만나야 한다.

    이 만남을 뭐라고 부르긴 해야겠는데, 부를 말이 마땅치 않다. 언제나 그렇듯이 이 경우에도 이름은 진실을 한 발짝 비껴가고 만다. 그래도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김종철 동지가 제안한 ‘민주적 사회주의’ 정도가 적당하지 않을까 한다.

    돌아가야 할 ‘내 마음의 고향’

    이게 웬 기상천외한 절충주의냐고 반문할 분들도 많을 것이다. 그저 이도 좋고 저도 좋다는 식이라면 절충주의의 궤변에 다름 아닐 것이다. 하지만 서로 시간대를 달리 하는 문제의식과 고민, 결단들을 만나게 한다는 것은 그저 이리저리 뜯어 붙인다는 말만은 아니다. 당연히, 진정한 겨룸이 있어야 한다. ‘화’(和)하기 전에 ‘쟁’(爭)이 있어야만 한다.

    그 만남과 겨룸, 어울림의 자리만 분명하면 된다. 그 자리가 어디인가?

    그것은 지금 살아가는 민중들의 한 걸음 앞이라고 말하겠다. 우리 민중들의 삶이긴 한데, 그 ‘한 걸음 앞’이라는 것이다. 지금의 불행을 돌려 행복을 향해 결연히 나아갈 수 있는 그 삶, 현재의 무력함을 돌려 엄청난 능력의 가능성을 보여줄 그 삶 말이다. 전태일 열사가 돌아가겠다고 한 “내 마음의 고향”도 결국은 이 자리가 아닐까?

    그래서 복지 문제만큼은 지금부터 확실히 해결하고 봐야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본주의의 실상을 똑바로 보고 그것을 넘어서려는 열의로 무장해야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본주의․제국주의 문명의 고정 관념을 넘어서는 상상력을 북돋겠다는 것이다. 바로 지금 여기 살아가는 민중들의 삶의 능력을 키운다는 그 한 가지 원칙을 중심으로 우리의 이념과 실천을 벼리자는 것이다.

    이 한 자리가 같다면, 우리 내부의 논쟁에 시간과 힘을 낭비할 것 없이 이 사회의 지배자들․기득권 세력과의 대논쟁에 뜻을 모으자. 하지만 아무래도 그 선 자리 자체가 영 다른 것 같다면, 그 때는 정말 서로의 진심을 드러내 놓고 한 번 겨뤄 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물어야 할 것이다. 과연 우리의 삶을 어떤 방향으로 바꿔가려는 것인지, 그 일대사(一大事)를 놓고 어떤 승부수를 던지려 하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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