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린 엔진이 망가진 차, 민주노총이 고마워"
        2006년 09월 14일 10:3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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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줌이 줄줄 나오고 숨이 차서 금방 죽을 것 같았어. 그 자리에서 쓰러졌지. 서울 성모병원에 와서 진폐증이라는 진단을 받았어. 그 뒤론 어디도 취직을 할 수 없었지. 집사람과 애들은 먹여 살려야 하는데 숨이 차서 노가다는 못하겠고. 길바닥이라도 쓸고 빌어먹으면서 여적지 이렇게 사는 거야"

       
     

    강원도 태백에서 탄을 캐다 ‘진폐증’에 걸린 장수철(75. 서울 미아동) 할아버지는 울먹이듯 말했다. 언제쯤 쓰러졌냐는 물음에 그는 "글쎄, 한 20년쯤 됐을까. 이젠 기억도 안 나. 치매도 오나봐"라고 말했다.

    14일 저녁 5시. 그는 서울 여의도 노사정위원회 앞에서 열린 ‘산재보험 개악저지, 재가진폐환자 문제해결을 위한 집회’에 왔다가 같이 일했던 동료와 오랜만에 얘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평생 불구가 됐는데 산재보상금은 석 달치 월급이 전부

    그는 당시 장애 최저등급인 11급을 받았고, 보상금으로 석 달치 월급이 나왔다. 산재보험법에는 위로금으로 두 달치 월급을 주게 되어 있는데 그는 그것도 받지 못했다. "자기가 신청해야 주는 거래. 아무도 나한테 그런 얘길 안 해줬어. 근데 2년이 지나면 그것도 안준데. 국고로 환수한대나…"

    그가 산재로 쓰러지자 집은 엉망진창이 됐다. 아내가 날품팔이를 해야 했고, 아이들도 제대로 돌볼 수가 없었다. 마흔 넘은 큰아들은 집 나간지 오래고, 작은 아들도 집구석 꼴보기 싫다며 얼마 전 집을 나갔다. "마누라도 아파 누워있지, 애들도 다 망가졌어. 옛날엔 안 그랬는데"

    그는 미아동에서 4천만원짜리 열 평 남짓한 전세방에 살고 있다. "차로 말하면 엔진이 망가졌잖아. 우리는 숨이 차서 산에도 못 올라간다구. 건강진단에 엑스레이 찍으면 가슴이 뿌옇게 나와. 근데 누가 우릴 받아주겠어?" 그는 한 달에 한 번 병원에 가서 한달치 약을 타다 먹으며 살아가고 있다.

    할아버지들이 노사정위원회를 찾은 이유

    산재보험법에 따르면 그는 재가(在家)진폐환자다. 병원에 입원한 진폐환자는 평균임금의 60%를 받지만 재가진폐환자는 돈 한 푼 주지 않는다. 폐결핵, 결핵성 홍막염, 속발성 기관지염 등 9가지가 산재보험법에서 정한 진폐의 합병증이다.

    합병증이 없으면 유족보상금도 받지 못한다. 무엇보다 9가지 합병증이 아니면 아무리 아파도 치료조차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똑같은 진폐환자인데 누구는 생계보조를 받고 누구는 고통 속에 신음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보다 멀쩡한 사람들이 병원에 입원해 있어. 빽이나 힘있는 사람들이지. 만약 입원환자나 통원환자에게

       
     

    똑같은 생계보조금을 준다면 아마 반 이상이 퇴원할 거야" 옆에 있던 김상전(73. 서울 성수동) 할아버지의 얘기다. 이들이 40년만에 산재보험법을 개정한다는 노사정위원회 앞을 찾은 이유다.

    김상전 할아버지는 태백에서 20년을 일했고 2000년에 11급 판정을 받았다. 그의 집 형편도 똑같았다. 큰아들은 신용불량이 돼서 이혼당하고, 작은 아들은 집 나가서 얼마 전에 안산 어딘가에 일을 얻었다고 연락을 했더란다. "우리들 아마 대부분이 이렇게 살고 있다고 봐야지. 그러다 죽은 사람도 많고"

    "민주노총 너무 고맙지 뭐야"

    할아버지들은 민주노총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연신 했다. "이 사람들 목 쉬어가면서 우리 얘기 해주고, 정부에 전달해줬어. 수십 년 동안 아무도 우리 얘길 들어주지 않았거든. 너무 고맙지 뭐야."

    민주노총은 산재보험법이 제정된 지 40년만에 정부가 개정을 한다고 하자, 재가진폐환자들의 보호대책을 마련할 것과 특수고용노동자들에게 산재보험법을 적용시키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정부와 한국노총, 사용자들은 재가진폐환자의 요구는 외면하고 있고, 특수고용노동자들한테는 민간보험처럼 스스로 돈 내고 보험을 적용받는 안을 내놓고 있다.

    더 나아가 노사정위원회 산하 산재보험발전 특별위원회는 ▲사용자 이의신청권 부여 ▲요양기간 강제 축소 ▲표준요양기간 설정 등의 내용으로 산재보험을 고쳐 산재노동자의 권리를 축소하려고 하고 있다.

    진폐환자, 민주노총 간부 등 500여명 노사정위에 계란 던지며 항의

       
     

    민주노총은 이날 재가진폐환자 150여명과 금속노조 확대간부 등 500여명이 서울 여의도 노사정위원회에 모여 ‘산재보험 개악저지, 재가진폐환자 문제해결 결의대회’(위 사진)를 열었다. 민주노총은 집회를 마치고 노사정 위원회 앞에서 산재보험 개악 내용에 대한 화형식을 진행하고, 노사정위원회에 계란을 던지며 개악중단을 촉구했다.

    재가진폐협회 주응환 회장은 "86년도에 진폐판정을 받은 사람이 얼마 전에 건강해졌다는 판정을 받았고, 얼마 전 안산에서 정밀검진에서 정상 판정을 받은 진폐환자가 나중에 폐암으로 죽었다"며 "우리는 이런 엉터리 심사위원들을 검찰에 고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안전보건교육센터 김신범 실장은 "진폐환자들은 합병증이 있으면 병원에 입원해주고 휴업급여도 주고 유족보상금도 주는데 입원을 못하면 아무 것도 안 준다"며 "합병증에 대한 기준이 모호하고 혜택이 극소수에게 집중되면서 문제가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의 비용으로 모두에게 휴업급여나 유족급여를 줄 수 있다는 서울대 보건대학의 연구결과가 나왔는데 노동부가 그걸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일하다 다치면 치료받게 해달라" "산재보험법이 산재노동자들을 보호하는 법이 되게 해달라" 이날 노사정위원회 앞에는 광산에서 청춘을 바친 백발의 선배노동자들과 민주노총의 젊은 노동자들이 한목소리로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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