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 바이러스는
    국적·인종 가리지 않는다”
    재난지원금, 이주민도 평등하게 지급해야···"각종 세금도 다 내는데"
        2020년 05월 07일 04:5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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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19 사태 대응을 위한 재난지원금을 이주민에게도 차별 없이 지급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온다. 정부는 배우자가 내국인인 결혼 이주민과 영주권자를 제외한 대다수의 이주민을 이 정책 대상에서 배제했다. 코로나19 초기부터 극성을 부려온 인종차별로 상처 입은 이주민에 대해, 정부가 또 다시 차별과 배제의 정책을 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올 만하다.

    이주공동행동, 이주인권연대 등 전국 이주인권단체들은 7일 오전 청와대 앞에서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바이러스는 국적과 인종을 가리지 않고, 재난피해가 이주민만 비켜가지 않는다”며 “대다수 이주민을 배제하는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기준은 제도적으로 대다수 이주민을 차별하고 배제하는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제위기 돌파를 위해 전 국민에게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재난 상황으로 인해 소득이 사라진 이들의 생계를 보장하고 이를 통해 소비를 진작해 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취지다. 이 정책의 논의 초기엔 지급범위를 소득하위 70%까지로 정했다가, 전 국민으로 확대해 정책의 보편성을 보장하기로 했다.

    문제는 대다수 이주민이 이 정책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재난지원금 범정부TF는 지난 4월 대상자 선정 세부기준에서 ‘재외국민, 외국인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지만, 결혼 이민자 등 내국인과 연관성이 높은 경우 및 영주권자는 지원대상에 포함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3월 말 기준 장기체류 이주민 약 173만 명 중 약 144만 명이 정책 대상에서 제외된다.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제외 대상자엔 고용허가제로 국내 사업장에서 저임금으로 일하는 이주노동자와 방문취업비자 등을 받아 요양보호사, 간병인, 식당, 모텔 등에서 일하는 이주 여성, 단순노무업무에 종사는 난민인정자 등이 포함된다. 대부분 재난 상황에서 가장 먼저 해고 당하고, 사업주의 고용보험 가입 회피로 사회안전망 사각지대에 방치돼온 이들이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은 “코로나의 영향으로 해고 당한 이주노동자들은 다른 회사를 구하지 못하고 쉼터 등에서 지내고 있다. 사업주들이 이주노동자 고용보험도 들어주지 않기 때문에 실업급여도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인들이 꺼려하는 일들을 하며 정부가 정한 세금도 다 내고 있다. 이주노동자 없이 농업, 제조업, 건설업, 서비스업 등 산업이 굴러가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라며 “하지만 이주노동자는 경제 위기가 오면 가장 먼저 해고당하고, 정부의 차별적인 정책에 희생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주민 배제는 보편성을 원칙으로 하는 재난지원금 취지에도 맞지 않을 뿐 아니라, 그간 내국인이 기피하는 업종에서 일하며 한국 경제의 하부를 떠받쳐온 이주민에 대한 차별 정책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주인권단체들은 “공적 마스크 구매자격 제외부터 시작된 정부의 차별적 처우와 이주민 혐오로 이주민은 회복되기 어려운 빈곤과 사회적 상처를 경험 중”이라며 “이주민 역시 생활터전이 국내에 있고 광범위한 피해를 동일하게 입는다는 측면에서 지원정책에서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사진=이주공동행동

    경제 기여도를 따져 봐도 한국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이주민에 대한 차별은 납득하기 어려운 지점이다. 국세청 통계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이주민 57만 3천명이 근로소득세 7836억 원을, 8만 명이 종합소득세로 3815억 원을 냈다. 이 밖에 지방세, 주민세, 각종 간접세 등을 모두 납부하고 있다. 이민정책연구원 보고서는 “이주노동자의 경제기여 효과는 2016년 74.1조원, 2018년 86.7조원에 달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주인권단체들은 “인구의 재생산과 확충, 노동력 보완, 소비와 경제생활, 각종 세금과 사회보험 납부 등에 있어서는 이주민을 필요한 존재로 포함시키다가 재난 지원정책에서는 마치 유령과 같이 보이지 않는 존재로 취급하는 것은 아무런 정당성이 없다”고 비판했다.

    외국에서도 이주민 제외 지원은 드물어

    해외 사례를 봐도 재난상황에 이주민을 제외하고 지원하는 경우는 드물다. 일본은 코로나19 위기에 따라 3개월 이상 등록 이주민을 포함하여 1인당 10만엔(약 114만원)을 ‘특별정액급부금’이라는 이름으로 지급한다.

    미국도 사회보장번호가 있는 이민자들을 포함해 연소득 7.5만 달러(부부합산 15만달러) 이하에 1인당 1,200달러를 지급하고,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미등록 이주민에게도 현금을 지원한다. 캐나다도 유효한 사회보장번호가 있으면 단기이주노동자와 유학생도 요건 충족시 긴급대응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독일은 세금번호를 받아 수익활동 하는 모든 내·외국인 프리랜서, 자영업자, 소상공인 등에게 5천 유로를 지급하고, 호주에서는 이주노동자와 유학생 등에게 긴급지원금을 지급하는 정책이 있다.

    이주민센터 ‘친구’ 이제호 변호사는 “미등록 체류자도 배제하지 않는 우리의 방역대응에 놀라는 해외국가들에서도 재난지원금은 생활기반·지역경제활동 기반으로 지급되고 있다”며 “정부가 이주민에게 차별적인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방역대응 방식과 모순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우리가 코로나19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누구 하나 배제하지 않고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차별 없이 방역에 동참했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차별적 재난지원금은 다시 방역의 사각지대와 방역대책 연대의 끈을 끊어 감염병 공포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현명한 긴급재난지원금의 정책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이주민 배제는 코로나19 초기 중국인 혐오 논란이 재점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이 변호사는 “이주민 차별에 대한 법률적 평가를 넘어 더 심각한 문제는 공인된 제도적인 차별이 사적인 영역에서 이주민에 대한 차별을 공고히 한다는 것”이라며 “정부가 나서서 결혼이민자, 영주권자를 제외한 이주민들을 배제하는 것은 일반 시민들과 개인들에게 차별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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