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용, 경영권·뇌물·무노조 등 사과
    노동·시민 “사과와 불법 책임은 별개”
    박용진 “책임회피, 법적 면죄부 위한 구색용 사과”
        2020년 05월 06일 07:27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와 관련한 뇌물 혐의를 언급하며 “제 아이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생각”이라고 밝혔다. 무노조 경영 등 그간 불법행위에 대해서도 사과하며 노동3권을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노동·시민사회와 일부 정치권에선 이 부회장의 사과가 양형 감형으로 이어져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다목적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삼성은 글로벌 일류기업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 했고, 오히려 실망을 안겨드렸다. 법과 윤리를 엄격하게 준수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이 모든 것은 저희들의 부족함 때문이고 저의 잘못”이라며 사과했다.

    이 부회장은 “그동안 저와 삼성은 승계 관련해 많은 질책 받아왔다. 최근 승계 관련한 뇌물 혐의로 재판이 진행 중이기도 하다. 저와 삼성을 둘러싸고 제기된 많은 논란 근본적으로 이 문제에서 비롯된 게 사실”이라며 “이제는 경영권 승계 문제로 더 이상 논란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 법을 어기는 일은 결코 하지 않겠다. 편법에 기대거나 윤리적으로 지탄받는 일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는 제 아이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생각”이라며 “오래 전부터 마음 속에는 두고 있었지만 외부에 밝히는 것은 두려워해왔다. 경영환경도 결코 녹록치 않은데다 제 자신이 제대로 평가도 받기 전에 제 이후에 제 승계를 언급한다는 것이 무책임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삼성의 무노조 경영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이 부회장은 “삼성의 노사문화는 시대의 변화에 부응하지 못했다. 최근에는 삼성 에버랜드와 삼성전자서비스 건으로 많은 직원들이 재판 받고 있다. 책임을 통감한다. 그동한 삼성 노조문제로 인해 상처 입은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삼성에서는 무노조 경영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며 “노사관계 법령을 철저히 준수하고 노동3권을 확실히 보장하겠다. 노사 화합과 상생을 도모하고 건전한 노사문화가 정착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이 부회장은 “준법은 결코 타협할 수 없는 가치다. 저부터 준법을 거듭 다짐하며, 준법이 삼성의 문화로 확고하게 뿌리내리도록 하겠다”며 “저와 관련한 재판이 끝나더라도 준법감시위원회는 독립적 위치에서 계속 활동할 것이다. 그 활동이 중단 없이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사과하는 이재용 부회장(왼쪽)과 고공농성 중인 김용희 노동자

    민주노총 “불법행위에 대한 사법적 책임과 사과는 별개”
    참여연대·민변 “정준영 재판부, 이재용 사과와 상관없이 합당한 처벌 내려야”

    이날 이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는 ‘총수 일가의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과정에서 벌어진 법 위반 행위에 대해 사과하라’는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의 권고로 이뤄졌다. 준법감시위는 이 부회장의 사건을 맡고 있는 재판부의 요청으로 꾸려졌으나, 이 부회장 감형을 위한 ‘꼼수’라는 비판이 나온 바 있다.

    실제로 노동·시민사회계나 일부 정치권에선 이번 사과가 이 부회장이 이미 저지른 죄의 감형 요건이 돼선 안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이날 논평을 내고 “‘경영권 승계하지 않겠다’, ‘노동3권 보장하겠다’는 너무나 상식적이고 당연한 이야기가 삼성재벌에게는 특별한 뉴스가 되는 현실이 개탄스럽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사과문 발표가) 이후 재판에서 사법적으로 면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불법행위에 대한 사법적 책임을 지는 것과 오늘 사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민주노총은 “오늘 사과는 더 이상 무노조 경영을 위해 불법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에 불과하다”며 “무노조 정책의 핵심 피해자인 김용희, 이재용 해고자를 비롯한 노동자들에게 직접 사과와 복직, 보상이 돼야 하고 책임자에 대한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 이것이 최소한의 후속 조치”라고 강조했다.

    자신의 자녀에게 경영권 승계를 하지 않겠다는 발언에 대해선 “자식에게는 물려주지 않지만 자신은 경영권을 물려받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밝힌 것”이라며 “사과문이 진정성을 갖기 위해서는 경영 승계 과정에서 발생한 불법, 탈법적인 행위에 대한 사죄와 원점으로 돌려놓겠다는 약속이 있어야 한다. 위법적으로 축적된 재산 전액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그 출발”이라고 했다.

    한국노총도 “많은 관심 속에 열린 기자회견 가운데 노조 관련 사과의 내용은 상식의 나열이었다”며 “‘무노조 경영을 하지 않겠다’ 등은 (이미) 대한민국의 많은 노사가 지켜가고 있는 내용”이라고 꼬집었다.

    한국노총은 “굳이 이 부회장의 사과를 평가절하 하고 싶지는 않다. 문제는 실천이다. 지금 삼성에게는 필요한 것은 백 마디 말보다 하나의 실천”이라며 “삼성은 즉각 성실 교섭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시민사회계도 “사과를 빌미로 현재 진행 중인 이재용 부회장의 국정농단 재판 양형 감형에 대한 어떠한 시도도 있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민변 민생경제위원회와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는 “이재용 부회장의 사과는 그동안 노조 탄압으로 인해 극심한 고통을 겪고 생명까지 잃은 피해자들과 삼성물산 부당합병으로 인해 막대한 피해를 본 국민연금 가입자인 국민들에 대한 사죄는 이뤄지지 않은, 모호함의 극치였다”며 “말뿐인 사과는 기만적이며, 이재용 부회장은 제대로 된 피해구제와 죗값을 치러야 한다”고 이같이 밝혔다.

    사법부를 향해서도 “사법부는 삼성 총수일가가 그동안 자신들이 행한 각종 범죄행위가 세상에 드러날 때마다 앞에서는 사과를 하면서도, 뒤에서는 승계를 위한 불법·편법적인 행위들을 자행해왔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면서 “정준영 재판부는 이를 명심해 이재용의 사과와 상관없이 이재용 부회장 파기환송심에서 합당한 처벌을 내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경제민주주의21도 ‘이재용 부회장의 유체이탈식 사과는 형사책임 회피 구실이 될 수 없다’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내고 “대법원에서 사실상 유죄 취지가 확정된 배임·횡령·뇌물죄 등의 당사자가 하는 대국민 사과라면 마땅히 그 범죄행위에 대해 분명하게 언급하고 깨끗하게 법적 책임을 질 각오를 밝혔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이 부회장의 사과 속에서 아무런 진정성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며 “이 부회장의 진정성 없는 사과가 국정농단 사범에 대한 파기환송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하기 위한 구실이 될 것을 진심으로 우려한다”고 비판했다.

    정의당 “사과보다 사법정의가 우선…김용희에 대한 사과 없어 매우 유감”
    박용진 “12년 전 이건희 회장 사과문처럼 버려질 수 있는 구두선언에 불과”

    유상진 정의당 대변인은 이날 국회 브리핑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사과를 권고한) 준법감시위원회의 권고에 따른 이번 사과가 결코 삼성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감형으로 악용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짚었다.

    유 대변인은 “삼성과 이재용 부회장에게는 사과보다 사법정의가 우선이다. 죄를 인정한다면 사과와 함께 이에 걸맞은 법적 처벌을 달게 받기를 바란다”며 “준법감시위는 오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과가 말뿐이 아닌 진정성을 갖고 실행에 옮길 수 있도록 감시하고 재발 방지의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이 부회장은 무노조 경영에 대한 비판을 인정하면서도 300일이 넘게 강남역 철탑에서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 씨에 대해서는 어떠한 사과나 언급이 없었던 점에서 매우 유감”이라며 “무노조 경영에 대해 잘못을 인정한다면 우선 김용희씨에 대해 사과와 진상 규명 및 재발방지와 피해 보상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은혜 민중당 대변인도 “삼성에 대한 국민의 지탄은 이재용 본인의 경영권을 무리하게 승계하며 벌인 국정농단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금 자신이 누리는 부정한 권력은 손톱만큼도 내려놓지 않고, 몇 십 년 뒤가 될지 모를 ‘자녀 경영권 승계 포기’ 언급은 말장난”이라며 “사과 같지 않은 사과를 면죄부로 삼으려는 심보는 더더욱 용납할 수 없다”고 질타했다.

    이 대변인은 무노조 경영에 대해서도 “지금까지 저지른 반헌법, 반인권 범죄에 대한 법적 책임을 약속해야 한다. 김용희 씨를 비롯한 노조탄압 피해자에 진심으로 사과하고 구체적인 보상 대책을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별도 입장문을 내고 “변명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도덕적 책임회피와 법적 자기면죄부를 위한 구색 맞추기식 사과”라며 “법적인 잘못을 도덕적인 문제로 치환해 두루뭉술하게 사과하는 일은 제대로 책임지는 자세가 아니다”라고 직격했다.

    박 의원은 12년 전 이건희 회장의 차명계좌 대국민 사과문을 언급하며 “당시 이건희 회장은 4조 5천억원 규모의 차명계좌로 밝혀진 검은 돈에 대한 실명전환, 누락된 세금납부, 사회환원을 약속했으나 지키지 않았다. 구체적 계획이 없는 구두선언에 그쳤기 때문”이라며 “오늘 이재용 부회장의 발표문도 12년 전 아버지 이건희 회장의 사과문과 같이 언제든지 휴지조각처럼 버려질 수 있는 구두선언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미 저지른 불법을 바로 잡는 일은 법적 책임을 지는 것”이라며 “두루뭉술한 사과문으로 법적 책임을 회피하려 해서도 안되고, 사법기관이 이를 핑계로 면죄부를 주어서도 안 된다”며 이 부회장의 단죄를 촉구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