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어 낚시와 챔질의 순간
[낚시는 미친 짓이다③] 판단(判斷)
    2020년 05월 06일 08: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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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등산은 스포츠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약간의 존경(?)의 마음을 담아 쳐다보지만 낚시는 별로 그렇지 않다. 하루 종일 쪼그려 앉아 뭐하는 거냐는 식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경우 나는 잡았다가 다시 놓아 준다(catch and release). 방생한다고 하면 뭐 하러 물고기에 상처를 주고, 그걸 좋아라 하냐고 비난이 더 높아진다. 개도 먹을 때는 안 건드린다는 데 하필이면 먹을 때를 노려서 잡는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다.

나는 붕어 낚시를 좋아한다. 잉어나 메기, 빠가사리 등이 잡히면 골치 아프다. 너무 깊게 물어서 바늘을 빼 내기도 힘들다. 붕어에 비해 상대적으로 이 물고기들을 잡기는 쉽다. 그냥 끌고 들어가 버리기 때문에 굳이 찌를 주시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붕어를 잡기 위해서는 순간을 포착해야 한다. 붕어 낚시는 챔질의 순간(timing)이 매우 중요하다. 붕어는 미끼를 먹다가 이물질이 느껴지면 바로 뱉어낸다. 순식간에 말이다. 따라서 그 ‘순간’을 알지 못하면 붕어는 없다. 챔질 시기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우리가 밥을 먹듯이 물고기도 그렇게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물고기들이 미끼를 먹는 방식은 흡입 방식이다. 길게 숨을 들이쉬면서 떡밥이나 지렁이 등을 삼키듯 빨아 먹는다. 육식어종인 메기나 빠가사리 등은 워낙 먹성이 좋아서 깊게 흡입한다. 차이는 이들은 주로 바닥 물고기라서 먹이를 먹고 바닥을 헤엄친다는 것이다. 따라서 눈에 보이는 찌가 사라지거나 옆으로 계속 움직인다.

그러나 붕어는 이와 다르다. 바닥에 닿아 있는 미끼를 비스듬한 자세로 흡입하고, 다시 평형을 유지한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찌는 완전 균형 상태로 맞춘 것이다. 따라서 붕어가 흡입하는 순간 약간 가라앉았다가 붕어가 다시 수평을 유지하는 딱 그만큼 올라오게 된다. 그 순간이다. 챔질의 순간! 붕어가 지렁이나 떡밥에 감춘 바늘을 느끼는 순간 다시 내뱉기 때문이다. 다만 지렁이와 떡밥을 먹을 때 차이가 있다. 아무래도 떡밥을 먹을 때의 찌 올림이 보다 질서정연하다. 주로 떡밥 낚시를 좋아하는 이유다. 초보자와 숙련자의 조과 차이는 바로 이 순간을 얼마나 잘 알아차리는가에 있다.

운동도 마찬가지 아니던가? 시대의 변화 징조를 알아차리는 사람들과 그저 대중의 폭발적 움직임이 있는 이후에야 그 순간을 알게 되는 사람들과의 차이. 언제, 어떤 운동이 필요한지에 대해 주목하고 긴장하는 사람에게는 챔질의 기회가 눈에 보인다. 운동을 하면서 이 “순간”을 잘못 파악해서 실패한 경험이 얼마나 많았던가?

수 십 년 전의 일이다. 한 사업장이 파업을 해서 외딴 곳에 전 조합원을 다 모았다. 직권중재 사업장이라 바로 공권력이 개입을 하는 판국이어서 다른 방법이 없었다. 전 조합원이라야 100명도 안되었지만 산업단지에 전기를 공급하는 곳이어서 명절 직후에 한 파업의 영향은 매우 컸다. 연휴기간이 끝나고도 파업이 지속될 경우 공단 전체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해서 교섭이 잡히고, 조합원들은 천혜의 요새라 할 만한 수련원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곳에 경찰이 진입하기 위해서는 산 밑에서부터 약 2Km정도를 걸어서 와야 하고, 앞은 강이었다. 우리는 느긋했다. 교섭이 난항을 겪자 노조 위원장이 자신이라도 더 깊숙한 다른 곳에 피신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난 그럴 필요가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다음날 오후에 다시 최종 교섭을 하기로 했다. 나흘째였던가? 연휴가 끝나가고 있어서 회사와 정부가 밀리고 있는 형세였다.

그날 그 새벽녘, 나는 조합원 서넛과 함께 낚시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강 쪽에서 뭔가가 오고 있었다. 배에 빼곡하게 타 있는 것은 전투경찰이었다. 산 쪽으로도 경찰이 뛰어오고 있었다. 전원이 체포되고, 모두 끌려갔다. 그리고 파업은 와해되었고, 노조는 해산되었다. 딱 한 번의 상황 판단 실수가 모든 것을 망쳐버렸다. 한순간의 긴장 와해가, 적들에 대한 안이함이, 잘못된 판단이 가져온 엄청난 비극이었다. 아직 우리에겐 시간이 있다고 생각했다가 허를 찔린 셈이다. 돌아보고, 또 돌아보아도 천추의 한으로 남아 있다.

멀리 보이는 야광찌.. 별처럼 보인다

그런데 지금에야 말할 수 있지만, 그들이 들어오는 바로 그 순간 정말 대물 붕어를 잡아 올리는 중이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족히 40cm는 넘을 크기의 붕어를 막 당기고 있었다. 결국 낚싯대를 그대로 두고 잡혔다. 나쁜 놈들, 다 잡은 후에나 오지! 아마도 어떤 운이 좋은 경찰이 낚싯대와 붕어 모두를 챙겼으리라. 어디 가서 다시 내놓으라고 할 수도 없었던 그 상황이라니!!

새벽녘, 멀리서 교회 종소리가 은은히 들리고 부지런한 수탉이 긴 울음을 터트릴 때 그동안 꼼짝도 하지 않던 찌가 서서히 올라오는 경우가 있다. 야광찌가 검은 수면에 한마디씩 감췄던 몸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순간을 상상해 보라. 낚시꾼이라면 미치지 않을 도리가 없다. 환상적인 붕어의 찌올림, 바로 그것을 보려고 낚시꾼들이 밤을 샌다. 한밤 중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찌의 올림을 보고 싶은 것이다. 이것을 낚시의 묘미 중 하나인 “눈 맛”이라고 한다.

왜 잡았다가 놓아 주냐고? 굳이 먹을 것이 아니면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그리고 먹을 경우는 아주 특별한 날이 아니면 별로 없으니까. 그리고 그 만남 자체에 감사한 경우가 더 많으니까!!

<침묵연습> 3

나는 너를 구속하지 않아
내 세계관과 가치를 강요하지도 않아
네가 좋아하는 바람과 물결과 은하수
그 모두를 존중하지
이렇게 만난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지
얼마나 기다렸는데

태초부터 기다렸지만
난 너를 다시 놓아 줄 거야
네가 좋아하는 것들
네가 사랑하는 것들

다만 찰나의 순간일지 모르나
이 만남은 기억해 줘
그 밤공기 서로 나눈 당황의 눈빛
떨리던 네온사인 혹은 풀잎

너도 느꼈을 거야
널 안았을 때 뛰던 내 심장의 고동소리
나도 알았지 네 혈관이 터질 듯함
그런 만남인거지
다시 널 놓아 줄 거야
바람처럼 구름처럼 자유롭게
너를 만나고 싶은 거지
가지고 싶은 게 아니거든

아니 널 영원히 가지고 싶으나
숨 막혀 하는 걸 보고 싶지는 않거든
잡으면 시들 걸 나는 알지

만나고 싶을 땐 또 신호를 보낼게
어둠 속에 작은 불빛 하나
설령 오지 않아도 난 기다릴 거야
그 찬란한 만남의 기억을 곱씹으며

<우리만의 낚시터>

 

아주 멋진 한 친구가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증(?)한 우리만의 작은 저수지. 삼송역에서 가까워서 가기가 쉽다. 장소는 비밀이다. 다만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지가 아직은 미지수라는 단점이 있다. 가족 단위로 와서 텐트를 치고 모임도 할 수 있게 할 생각으로 열심히 꾸미는 한 친구가 있어서 깨끗하게 잘 유지되고 있다.

가끔 낚시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을 데리고 오면 그들이 치맥 파티도 하고, 노래도 부른다. 그런 날은 낚시를 포기하고 얘기하는 데 더 집중하는 게 정신건강에 훨씬 낫다. 뭐, 붕어 대신 사람들을 잡는 경우도 있는 법이니까..

필자소개
이근원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 정책실장. 정치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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