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상경제 중대본의 규제혁신 추진
    재난 활용 원격의료 등 재계 숙원 해결?
    기업 영리추구 지원하는 전형적 재난자본주의 조치
        2020년 04월 30일 10:4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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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가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한 방안을 발표했다. 원격의료, 가명·민감정보의 정보주체 비동의 활용, 교수의 AI기업 겸직 허용 등이다. 그동안 여론의 반대에 부딪혀 추진하지 못했던 재계의 숙원과제들을 코로나19를 핑계로 정부가 대신 해결해주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만한 대목이다.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경제 중대본)는 29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1차 경제 중대본 회의에서 규제 혁신 대상으로 선정된 10대 산업분야를 발표했다. ▲데이터·인공지능(AI) ▲미래차·모빌리티 ▲의료신기술 ▲헬스케어 ▲핀테크 ▲기술창업 ▲산업단지 ▲자원순환 ▲관광 ▲전자상거래·물류 등이다.

    경제 중대본 회의는 기존에 대통령이 주재한 비상경제회의의 역할을 이어받은 기구로, 코로나 사태 이후의 경제 질서 변화 등에 대한 대응방안이 논의될 전망이다.

    반대 여론에 좌초된 원격의료, 코로나 핑계로 추진

    경제 중대본은 특히 보건의료 분야에서 원격의료를 강조하고 있다.

    규제혁신 방안 보도자료를 살펴보면 “코로나19 사태 효과적 대응을 위해 비대면 서비스 관련 규제개선도 중점 추진”해야 한다며 “보건·의료·방역 등 유망 서비스 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한 제반 규제 혁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이날 회의에서 “원격의료, 원격교육, 온라인 비즈니스 같은 비대면 산업에 대해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는 측면에서 규제 혁파와 산업 육성에 각별히 역점을 둘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한국판 뉴딜’로 원격의료가 논의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14일 국무회의에서 비대면 의료서비스 산업 육성을 강조한 바 있다.

    김용범 기재부 1차관도 “한시적 허용된 전화상담 등 원격의료는 19일까지 13만 건 이상을 기록했으며 별 다른 오진사례는 없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비대면 진료나 원격의료 필요성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필요성을 절감하게 됐다”고 밝혔다.

    의료계와 시민사회계에서 정부가 코로나19를 빌미로 원격의료를 추진하려 한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현재 이뤄지는 비대면 전화상담은 불가피하게 용인되는 한시적 조치인데, 이를 이유로 원격의료를 추진하는 것은 재난상황을 이용한 기업의 영리추구에 불과하다는 비판이다.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은 전날 성명을 내고 “정부는 재난을 빌미로 의료민영화를 추진해선 안 된다”며 “이때를 틈타 제도적 원격의료를 추진하는 것은 재난 상황을 이용한 기업의 전형적인 ‘재난자본주의’”라고 질타했다.

    이들은 “정부와 경제계가 현재 수준의 전화상담과 연관 지으며 원격의료를 제시하는 것은 기만적이다. 전화상담이 무슨 돈이 된다고 비상경제 대책이겠느냐”며 “기업들이 노리는 핵심은 손목시계형 심전도장치 등 디지털 장비와 통신설비를 판매하는 것이다. 값비싼 기기와 설비를 사용해서 의료비를 높여야 경제대책이고 돈벌이가 된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비싸기만 할 뿐 수없이 시범사업을 했지만 안전과 효과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못 내놓았던 것이 원격의료”라고 덧붙였다.

    산간·도서지역, 장애인·노인에 원격의료가 필요하다는 일각의 주장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백재중 녹색병원 부원장은 지난 2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도서지역은 이미 원격의료 하고 있고, 우리나라에 원격의료 할 만큼 산간오지는 없다”며 “이런 지역들은 비상시 후송 체계가 제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장애인, 노인 등에 대해선 “원격의료는 디지털 기반인데 이들은 오히려 디지털 접근성이 취약할 가능성이 높다. 이들에겐 원격의료가 아니라 주치의가 필요하다”며 “환자가 병원에 오기 어려우면 의료진이 가정을 방문하는 체계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백 부원장은 “요즘 가끔 비대면 전화상담하고 처방을 내지만 (이 상황은) 정상이 아니다. 이 상활을 핑계로 한국판 뉴딜이라는 이름으로 기재부가 숙원 사업을 해결하고 싶어 한다”며 “원격의료는 한국판 뉴딜에 걸맞지 않고 기대만큼 효과도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감한 개인의 의료정보도 가명 처리해 활용

    보건·의료분야 영리화 의지는 데이터·인공지능 산업 분야 세부 추진과제에서 더 또렷이 드러난다. 경제 중대본은 최근 국회에서 처리한 개인정보3법을 바탕으로 민감한 개인의 의료정보를 가명처리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입장이다.

    경제 중대본에 따르면, 오는 8월까지 ‘민감정보’도 가명정보에 포함된다는 기준을 명시하는 가이드라인 발표할 예정이다. 민감 정보란 사상·신념, 노동조합·정당의 가입·탈퇴, 정치적 견해, 건강, 성생활 등에 관한 정보를 뜻한다.

    개인정보호법 23조 민감정보처리 제한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민감정보는 정보주체에게 다른 개인정보의 처리에 대한 동의와 별도로 동의를 받은 경우에만 활용이 가능하다. 민감한 내용인 만큼 기존 개인정보보다 활용의 문턱을 더 높여놓은 것이다. 개정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도 민감정보의 활용은 어려운 측면이 있었는데, 경제 중대본은 이날 앞으로 민감정보도 다른 개인정보와 동일한 수준으로 처리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대표는 <레디앙>과 통화에서 “민감정보는 여타 개인정보 보다 인권침해의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엄격하게 보호해야 한다. 그런데 일반 개인정보보호와 똑같이 취급한다면 민감정보라고 규정해놓은 취지가 사라진다”고 지적했다.

    오 대표는 “민감정보도 공익성을 위해 활용될 수 있다고 본다. 절대 활용해선 안 된다기보다 다른 개인정보보호보다 더 엄격한 보호 요건을 규정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민감정보의 활용 요건 완화는 의료정보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그간 의료정보는 매우 민감하고 재식별 가능성도 높아 가명처리해서 활용하는 것에 대한 우려와 의료법 위반 소지도 있었다.

    그러나 경제 중대본은 가명처리한 의료정보도 활용이 가능하도록 했다. 경제 중대본은 “의료데이터의 경우는 민감성이나 재식별 가능성이 높아 가명처리 가능한지 논란, 의료법․생명윤리법과의 해석문제 존재했다”면서도, 오는 8월까지 의료데이터 유형별 가명처리 절차·방법, 안전조치 등을 규정한 ‘의료데이터 활용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의료법 위반 소지에 관해서도 “환자 기록이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가명처리된 이후에는 의료법 제21조 적용대상이 아님을 보건복지부 지침 개정을 통해 명확화하겠다“고 못 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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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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