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총선 이후 정의당의 진로 제언
    [기고] ‘눈덩이효과(Snowball Effect)’를 위해
        2020년 04월 27일 03:0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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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5 총선 이후 정의당의 앞날은 무척이나 험난하다. 대통령 지지율에서 나타나는 문재인 정권의 국정수행에 대한 국민들의 강력한 지지와,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의 조기출현으로 인한 수혜를 받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은 김대중 정권의 집권당인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정권의 집권당인 열린우리당을 모든 면에서 압도한다.

    따라서 정의당은 지난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 이후 진보정당이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초거대 자유주의정당의 출현’이라는 새로운 정치환경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이라는 과제를 떠안게 되었다.

    사실 민주당의 힘은 ‘민주대연합’ 노선에 기반한다. 민주당표 ‘민주대연합’의 첫 출발은 1990년 등장한 보수대연합의 초거대 여당인 민주자유당(3당 합당)에 맞선 야권 통합정당인 민주당(1991∽1995년)의 등장과 함께 한다. 두 번째는 노무현의 숙원인 ‘지역구도 타파’이다. 그는 뿌리가 같은 한나라당의 김영삼계 정치인들과 통합하여 한국 정치의 지형을 1987년 대선 이전으로 되돌리는 것이 진정한 민주대연합이라고 생각했으나 한나라당 수도권 일부 세력(독수리 5형제)의 호응밖에는 얻지 못했다. 세 번째는 ‘빅텐트’이다. 혁신과통합은 원샷 통합의 기치 아래 정파등록제를 제시하며 진보정당까지 흡수하려 했지만 2011년 민주대통합론자들은 민주통합당에, 진보대통합론자들은 통합진보당에 결집함으로써 ‘진보개혁진영의 단일대오’라는 최대목표치 달성에는 실패했다.

    그러나 2012년 19대 총선에서 두 정당이 전면적인 후보단일화라는 차선책에 합의함으로써 이후 빅텐트는 2019년의 4.3 재보선과 2019년 ‘4+1협의체’에서 보듯 정의당과 민주당의 협력관계의 토대가 된다.

    미국의 양당제, 상대다수대표제, 소선거구제와 빅텐트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

    민주당은 진보정당의 정책들에도 주목하기 시작했다. 2011년 민주당이 발표한 ‘3무1반’복지정책(무상급식, 무상의료, 무상보육, 반값등록금)은 진보정당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결과이다. 당시 무상급식을 둘러싼 갈등은 서울시장 보궐선거로까지 이어졌다. 문재인 정권이 추진하는 ‘공공부문 일자리 81만개 창출’ 같은 공공부문 확대나 ‘주52시간 근무제’ 같은 근로시간 단축 역시 진보정당의 의제를 수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코로나19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여권의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주도한 ‘긴급재난지원금’ 지원정책은 민주당의 4.15총선 선거결과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위성정당’을 둘러싼 정의당과 민주당의 갈등은 ‘민주대연합’이 단지 민주당의 위계질서 안에서만 작동됨을 여실히 보여준다. 정의당이 ‘비례연합정당’ 참여를 거부하자 민주당은 ‘정치개혁연합’에 모인 시민사회단체와 다른 진보정당과의 제휴를 통해 정의당을 고립시키려했다. 민주당은 이들 역시 통제범위 밖으로 벗어나려 하자 ‘정치개혁연합’을 무력화시키고 ‘비례위성정당’을 교체함으로써 자신들이 다른 참여주체보다 우월한 존재임을 과시했다. 민주당 이탈세력인 열린민주당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이번 사태에서 민주당은 시민사회세력과 군소정당을 포함한 모든 반미래통합당 조직체들을 민주당 아래로 수직계열화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보여줬다.

    이렇게 오랫동안 민주당이 주도하는 틀 안의 정치현실에 안주해온 정의당은 새롭게 변화해야만 한다. 지금의 현실은 심상정 대표가 각종 여론조사에서 ‘범여권’의 대선주자로 분류될만큼 정의당의 독자성과 자율성은 심하게 침해받고 있다. 예전 주대환은 이런 관계의 재정립을 ‘독립’이라 표현했는데 진보정당의 정치적 독자노선이 힘든 것은 ‘고립무원’의 처지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원칙을 선택한 정의당이 총선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지지율 추락이라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으나 마지막에 스스로의 힘만으로 9.76%의 정당지지율을 만들어낸 것은 작은 성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로코(Große Koalition) – 현 독일 메르켈 정권의 집권 기민당과 제1야당인 사민당의 대연정을 말한다. 독일정치는 독립주체들 간의 ‘연정’을 지향한다

    고립을 피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의당의 지지기반 확대가 필요하다. 누구나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방안은 ‘진보대통합’일 것이다. 그런데 진보대통합에도 원칙이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의당의 창당 배경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유승민처럼 말한다면 ‘북한’이라는 강을 건너와야 하고 한번 건너온 다리는 다시는 되돌아 갈 수 없도록 철저하게 무너뜨릴 수 있는 정치세력만이 통합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결국 과거로 돌아가자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탄핵세력과 결별하지 못해 총선에서 재차 심판을 받은 통합당의 처지와 다를 것이 없다. 진보정당은 더이상 국민의 지지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두 번째로 정의당에 기득권이라는 게 남아있다면 일단 포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준연동비례대표제 도입으로 예년에 비해 정의당의 비례 경선은 과열된 측면이 있다. 비례대표제도의 전신인 전국구제도가 여당에게는 안정적인 의석 확보용으로, 야당에게는 정치자금 확보용으로 악용되었던 전례가 있었기 때문에 비례대표 국회의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여전히 남아있다. 비례 전문정당의 난립도 국민의 불신을 키웠다. 지역구 선거에서 상대적으로 당선 가능성이 떨어지는 정의당이 비례대표제도 개혁으로 의석 확대가 예견되는 상황에 대한 비토 정서도 분명히 존재했다.

    한편으로 우리는 이번에 군소 진보정당들의 원내 진입에 대한 열망도 확인했다. 이들 역시 고립에서 벗어나기 위해 비례연합정당 참여를 시도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민주당은 이들의 독자적인 국회 진출의 어려움을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와 정의당 견제에 십분 활용했다. 만약 함께 할 가치가 있는 정치세력이 있다면 정의당은 군소정당의 이런 애환을 실질적으로 해소시킬 수 있는 노력을 해야 한다. 민주당의 ‘위성정당’ 전술이 이번 한 번으로 끝나리라는 보장은 없다. 형태를 바꿔 재시도될 가능성에 대비해야만 한다.

    적적녹(Rot-Rot-Grün)연정- 사민당과 좌파당, 녹색당이 연정을 이루는 ‘대좌파연정’을 말한다. 2019년7월 독일 브레멘에서 옛 서독지역으로는 처음으로 좌파연정이 탄생했다

    정책의 차이는 정의당이 민주당과 차별화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2018년 조선일보가 보도한 20대 국회의원 이념 지도에 따르면 민주당 국회의원 중에는 남인순, 정춘숙처럼 이념점수만 놓고 봤을 때 정의당과 차이가 없는 진보 성향의 국회의원들과 김진표, 조정식과 같이 민주당보다는 옛 국민의당의 이념점수에 더 가까운 중도보수성향의 국회의원들이 공존한다. 민주당은 한때 2009년 ‘뉴민주당 플랜’이나 2014년 안철수의 새정치연합과의 합당처럼 우경화한 노선을 걸었던 때가 있었던 정당이다.

    이번 4.15총선에서 강남3구와 용산, 분당의 민주당 국회의원 후보들은 일제히 정부의 12·16 부동산 대책에 반하는 ‘1가구 1주택 종부세 인하’ 공약을 내걸었다. 민주당은 박근혜 정권에서 통과되고 문재인 정권에서 시행된 ‘종교인 과세’를 여러 차례 유예하거나 완화하려는 시도를 최근까지 했다. 이렇듯 내부의 폭넓은 생각의 차이 때문에 민주당은 여러 당면한 의제들의 세부내용을 진보정당 수준의 높은 단계로까지 격상시키기 어렵다. 설사 수용한다하더라도 그것은 단순한 선거용 구호에 그칠 확률이 크다.

    그렇다면 민주당이 이념적 한계로 인해 도저히 벤치마킹 할 수 없으면서도 국민의 호응을 받을 수 있는 정책들을 선별해 널리 알리는 것이 어떨까 싶다. 조세, 부동산, 교육, 노동, 환경분야 등에서 민주당과 각을 세울 수 있는 정책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눈덩이 효과(Snowball Effect)’라는 것이 있다. 높은 언덕 위에서 눈덩이가 구르다 보면 점점 커지는 현상을 주식투자에 비유한 것이다. 투자의 결실을 보기 위해서는 눈덩이를 만들고 굴릴 장소를 찾기까지 인내해야 하고 계속 굴려서 성과가 날 때까지 또 기다려야 한다는 뜻이다. 이처럼 진보정당이라는 눈덩이가 눈사람이 될 때까지는 여전히 오랜 시간과 경험이 필요할 것이다. ‘민주대연합’이라는 한 시기가 비로소 끝났다. 이제부터는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정의당2.0’이 출발해야 할 시점이다.

    필자소개
    독자. 국방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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