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대포·소화기 뚫고 공장으로 들어가다
    2006년 09월 13일 10:1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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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눈물을 토하는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이 소화기와 물대포의 아수라장을 뚫고 꿈에 그리던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비정규직이 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공장에서 쫓겨난 지 1년만의 일이었다.

12일 오후 3시 30분 서울 구로구 기륭전자 앞에서 열린 기륭전자 투쟁승리 금속노동자대회에 참가한 500여명의 노동자들은 좁은 공장 앞 길목을 가득 메웠다. 비정규직의 설움은 비정규직이 안다고 했다. 이날 집회에는 하이닉스매그나칩과 KTX에서 쫓겨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기륭전자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을 함께 했다.

   
 

기륭전자 김소연 분회장과 강화숙 부분회장은 흰 소복을 입고 맨 앞에 앉았다. 이날로 단식 20일째였다. 얼굴은 많이 야위었지만 눈빛에 담긴 결의는 강렬했다. 두 여성노동자가 인사를 하자 참가자들이 뜨거운 박수로 격려했다. 목숨을 건 단식농성에 회사는 당황했고, 이날 금속노조 위원장과 사측의 면담이 이뤄졌다.

금속노조 김창한 위원장은 "사측은 여전히 노동조합을 인정하고 사태를 해결할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며 "추석 전에 집중교섭을 통해 기륭사태를 해결하지 않으면 그에 응당한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구로공단 10만 비정규직의 희망 기륭전자

기륭전자가 위치한 구로공단은 1987년 민주노조운동의 불꽃을 피웠던 곳이었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지금 디지털단지라는 이름 아래 10만명의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으로 살아가고 있다. 바로 이곳에 기륭전자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이 민주노조의 깃발을 올린 것이다.

   
 

서울남부민중연대 최규엽 공동대표는 "기륭전자의 투쟁으로 주연테크라는 컴퓨터회사에 민주노조가 만들어졌다"며 "기륭전자는 구로공단에 있는 10만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희망"이라고 말했다.

그랬다. 평소 "노조가 생기면 회사 문 닫겠다"고 주장하던 주연테크의 사용자들은 쫓아내도 1년 넘게 싸우면서 회사에 엄청난 피해를 안긴다는 것을 확인하고 곧바로 노조를 인정했다. 전체 사원 모아놓고 "우리 회사는 비정규직 철폐했다"고 말했고, 지난 9월 6일 노조설립 두 달 만에 노동조합의 요구를 수용해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감옥으로 변한 기륭전자 공장

   
 

기륭전자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내쫓고 공장을 감옥으로 만들었다. 4m에 육박하는 쇠철문을 만들었고, 담벼락 위에는 날카로운 철조망을 쳤다. 해여 철조망이 떨어질까봐 시멘트로 발라버렸다. 공장 옥상에 달려있는 3대의 감시카메라가 노동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었다.

기륭전자 조합원들은 20일째 단식을 벌이고 있는 간부들을 내버려둘 수 없었다. 11명의 여성들이 이날부터 집단단식을 벌이기로 결의했다. 순박한 아주머니들을 투사로 만든 회사가 이제는 죽음으로 내몰고 있었다. 참가자들은 악덕사용자를 상징하는 모형물에 대한 화형식을 벌이며 투쟁을 결의했다.

4시 40분 집회를 마친 노동자들은 "공장으로 돌아가자"며 정문을 향해 걸어갔다. 이날 회사는 용역회사 직원들을 모두 뒤로 숨기고 경찰을 앞세웠다. 경찰은 좁은 출입문을 열 겹으로 막았다. "우리가 피땀흘려 일궈놓은 공장이야. 니들이 뭔데 막아?" 노동자들의 항의가 이어졌지만 경찰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소화기와 물대포로 공장골목 아수라장

   
 

경비실 옥상으로 올라간 용역경비들은 물대포를 쏘기 시작했고, 경찰들은 소화기를 무차별 난사했다. "소화기를 왜 뿌리냐"고 항의하는 여성노동자의 얼굴을 향해 소화기를 쏘기까지 했다. 순식간에 좁은 기륭전자 앞 골목은 숨조차 쉴 수 없을 정도로 소화기 분말로 뒤덮였다.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은 이런 일을 당한 게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남성노동자들은 도리어 뒤로 물러섰다 나아가기를 반복했지만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은 맨 앞에서 맨 몸으로 경찰에 맞서 싸웠다.

   

경찰도 혀를 내두르는 용역경비들

한 여성노동자가 경찰에게 길을 비키라며 "핸드폰 문자로 해고되는 기분을 니들이 아냐?"고 외쳤다. 그러자 경찰이 "나 핸드폰 없다. 씨발"이라고 말했다. 여성노동자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노동자들은 "핸드폰이 없으니까 문자메세지로 해고해도 된다는 거냐?"며 격렬하게 싸웠다.

경찰보다 더 한 건 용역경비들이었다. 이날 용역들은 경비실 위와 공장 안에서 무차별로 물대포를 쐈다. 심지어 다친 경찰의 치료를 받기 위해 길을 열어주고 있었는데도 물대포를 멈추지 않았다. 경찰이 물대포를 쏘지 말라고 소리치고 항의하기까지 했다. 한 정보과 형사는 "용역경비들이 해도해도 너무한다"고 말했다.

울분을 토하는 여성노동자들의 절규는 1시간 넘게 계속됐다. 노동자들은 뒤로 물러섰다 다시 앞으로 나아가기를 반복하며 끝까지 물러서지 않고 싸웠다. 결국 경찰은 공장 안으로 밀려들어갔다. 공장에서 쫓겨난 지 1년 만에 공장 안에 첫발을 내딛은 날이었다.

눈물바다가 된 기륭전자

기륭 여성노동자들은 경찰 앞에서 제발 조금만 더 뒤로 물러가라고 애원했다. "1년 동안 우리가 어떤 설움을 당했는지 알아?" "공장 안에서 마무리 집회를 하고 나갈 거야. 제발 조금만 뒤로 물러나" 이은미 조합원이 울먹이기 시작하자 잇따라 조합원들이 울음을 터뜨렸다.

   
 

조합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다 같이 울부짖었다. 지켜보던 노동자들의 눈에도 눈물이 맺혔다. 순식간에 기륭전자 공장 안은 눈물바다가 됐다. 결국 경찰은 10m를 뒤로 물러섰다. 윤종희 조합원은 "무슨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고 반드시 공장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이날 단식농성에 합류한 11명의 노동자들이 묵을 대형천막이 세워졌다. 기륭 조합원들은 연대투쟁에 나서 준 금속노조 조합원들과 일일이 손을 맞잡았다. 집회가 끝난 공장 앞 골목은 두껍게 쌓인 소화기 분말가루로 마치 눈이 내린 것 같았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저녁 7시 주변 공장의 노동자들과 주민들은 안쓰러운 눈으로 이 광경을 목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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