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복수노조 유예 입장 전달”
    2006년 09월 12일 07:0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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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단병호 의원 사무실은 한국노총과 경총, 정부가 전격 합의한 ‘노사관계 선진화 로드맵’에 대해 논평을 요청하는 기자들이 줄지어 있었다. <레디앙>의 인터뷰가 이어지는 가운데도 ‘로드맵 문제’를 묻는 전화와 방문객이 끊이지 않았고, 사무실 밖에는 MBC가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산별노조 전환에도 큰 타격

“노동운동이 어떻게 될 거 같냐고 물어보면 참 갑갑하죠. 이번 합의는 노동계로서는 합의할 수도 인정할 수도 없는 내용이예요. 한국노총은 반노동자 정책에 합의한 겁니다. 이번 합의가 입법화되면 노동계가 시도하고 있는 산별노조 전환에도 큰 타격이 될테고, 850만 비정규직은 노동기본권 밖에 방치될 수밖에 없어요.”

복수노조가 유예됨에 따라, 기업노조에서 산별노조에 가입하려는 조합원의 권리가 원천봉쇄되고, 정규직 노조에 가입할 수 없는 비정규직 역시 산별노조에 가입하는 길이 막히게 되었다는 말이다.

왜 한국노총은 그런 내용에 도장을 찍었을까?

   
 

“한국노총은 철저히 조직 이기주의에 선 겁니다. 복수노조를 막아 현재의 한국노총 조직을 보존하겠다는 거죠. 그런데, 한국노총이든 민주노총이든 조합에 가입해 있는 노동자는 대개 정규직이기 때문에, 복수노조를 막음으로써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조 가입 권리를 원천봉쇄한 겁니다.

대신 노조전임자 임금을 받은 건데, 전임자 임금을 노사자율에 따라 확보해야겠다는 의지도 자신도 없음을 스스로 인정한 셈입니다. 결론적으로 한국노총은 자기 조합원 이외의 노동자를 외면한 겁니다.”

정부 가시적 성과에 집착한 결과

그렇다면 복수노조가 이루어지면 민주노총에는 득, 한국노총에는 실이라는 계산이 있었던 건 아닐까?

“그렇지 않습니다. 한국노총에서 민주노총으로 오고 싶어 하는 노동자들이 있는 것처럼, 복수노조만 된다면 한국노총으로 가거나 민주노총보다 더 급진적인 노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민주노총 조합원 역시 많습니다. 실제 민주노총 사업장 안에서도 민주노총에 반대하는 제2노조 움직임이 적지 않아요.

복수노조는 민주노총에게든 한국노총에게든 똑같이 기회이며 위기입니다. 민주노총이 복수노조를 지지하는 것은 그것을 통해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노조를 선택하는 것이 노동자의 기본권이기 때문이예요.”

그처럼 어려운 노사합의에 경총이 합의한 이유는 또 무엇일까?

“자본가들끼리도 이 문제를 보는 시각이 첨예하게 대립했어요. 유령노조가 있는 삼성이나 LG, 포스코는 복수노조 금지를 주장했고, 민주노총 조합이 있는 현대와 대우에서는 복수노조 허용을 주장했죠. 결국은 삼성이 이긴 겁니다.”

정부의 입장은 어떠했을까?

“이상수 노동부 장관은 신중한 입장이었어요. 정부가 마련한 로드맵 안이 국회에서 바뀌는 것이야 어쩔 수 없지만, 정부 스스로 바꿀 수는 없다는 의견이었거든요. 그런데 한국노총과 경총이 합의한 직후에 여당과 청와대에서 ‘노사 합의를 존중해야 한다’는 식의 입장이 전달됐대요.

노무현 정부가 ‘개혁’이라는 말 참 많이 쓰잖아요. 실제 바뀐 건 없지만. ‘노사관계 선진화’라는 말, 그리고 합의를 이루었다는 가시적 성과에 집착했기 때문에 이런 결과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민주노총 줄 것 다주고 한국노총에 뒤통수 맞은 것”

이번 합의과정에서 민주노총이 어떻게 대처했는가라는 물음에 단병호 의원은 민주노총에게 물어보라며 직답을 피했다. 다만, “노사정이 합의에 조인하는 회의가 조만간 열릴 것이라는 것은 누구든지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죠.”라고만 지적했다.

   
 

그동안 민주노총은 한국노총과 여러 가지 연대 활동을 해왔다. 그런데 이번 일을 겪으며 양 쪽 조합원의 감정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상할 수도 있다. 혹시 서로를 ‘타도 대상’으로 적대시하던 80년대 상황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닐까?

“민주노총에서 이수호 집행부가 들어서면서 한국노총과의 연대가 강조됐죠. 그 필요성과 의의가 크죠. 하지만 연대의 내용이 무엇이어야 하는가, 연대를 통해 실제 얼마나 성과를 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은 적었던 것 같아요.

민주노총은 모르겠지만, 한국노총은 대단히 정략적으로 양 노총 연대에 임했어요. 비정규법 때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민주노총을 동원해서 딸 것을 딴 후에는 한국노총이 번번이 독자행동을 했죠. 민주노총은 몸만 대주고, 한국노총은 입장을 관철시킨 거죠. 줄 것 다 주고, 뒤통수 맞은 거죠. 서로의 진정성과 명확한 목적 없는 양 노총 연대는 재고해야 합니다. 지금과 같은 연대는 부정적입니다.”

“국회 밖에서 싸워야 로드맵 막을 수 있다”

빠르면 이번 주 안에 정부가 ‘노사관계 선진화 로드맵’을 입법 예고할 수도 있다. 결국, 어쩌면 단 한 명일 수도 있는 노동계 의원 단병호 혼자 ‘노사정이 합의한’ 법안에 맞대응하게 되었다.

“민주노총과 함께 대체입법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곧 법안으로 제출할 예정입니다. 복수노조 유예 기간을 삭제하고, 필수공익사업장 대체근로 투입도 삭제하는 내용입니다. 한나라당 배일도 의원도 복수노조 허용안을 낼 가능성이 큽니다.

이번 사안은 비정규직 문제와는 많이 다릅니다. 비정규직 문제야 국민이 어느 정도 알고 있었고, 막아야 한다는 명분도 얻었지만, ‘로드맵’은 국민들이 잘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노사정 합의’라고 포장돼 있거든요. 국회 안에서의 대응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어요. 밖에서 적극적으로 싸워주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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