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대 총선과 인류세 정치
    [에정칼럼] 2030년과 2050년의 전환 서사는 어떻게 가능할까?
        2020년 04월 20일 02:1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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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외출이 적극 권장됐던 21대 총선은 집권 여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지역구 의원(163석)만으로 더불어민주당은 과반 의석을 넘겼고, 미래통합당은 84석 확보에 그쳤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허점을 극적으로 살린 패밀리 정당의 효과도 대단했다. 비례대표 47석 중 미래통합당-미래한국당 19석, 더불어민주당-더불어시민당 17석, 정의당 5석, 국민의당 3석, 열린민주당 3석으로 할당됐다.

    ‘슈퍼 여당’의 출현은 민주화 이후 처음 있는 사건이지만 1990년 보수대연합인 ‘3당 합당’과 닮은 점이 있다. 선거 후에 이뤄진 정치공학적인 정계개편도 아니고 다소 이질적인 정당 간의 결합도 아니지만, 더불어민주당-더불어시민당-열린민주당이라는 세 가족은 우발적 필연성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의 취지를 무력화시킨 책임을 전적으로 이 정치세력에게 돌릴 수는 없다. 하지만 의석 지대추구의 최대 수혜자가 이들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반면 실력과 대안을 갖춘 정의당 같은 군소정당들은 눈물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선거제도의 편법을 통해 고안된 투표 동원은 결국 양당체제와 지역구도를 소환했다. 두 거대정당으로 결집된 지지층을 기본값으로 설정하고 무당층과 부동층의 표심을 자극했다. 코로나 국면에서 고양된 정치적 관심과 높은 투표율(66.2%)은, 한편으로는 정당 텃밭을 지키는 데 활용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국난 극복을 위한 정권 안정을 선택했다. 이로써 제3안의 대안은 심각하게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이미 끝난 선거를 되돌릴 수는 없다. 아무리 기형적인 게임의 룰이었다고 한탄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선택을 21대 국회가 어떻게 받을 것인가에 달려 있다. 의원 수가 많든 적든, 원구성이 어떻게 됐든, 지금까지 잘했다는 평가를 받은 정당과 국회를 꼽기 어렵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이제는 각 정당이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당장은 코로나 재난을 헤쳐 나갈 대책을 펼쳐야 한다. 깜깜이 선거 과정에서 정책이 실종되긴 했지만 정의로운 경기부양(just recovery)에 가까운 정책공약을 제시한 정당은 의석을 챙긴 정당 중에는 정의당이 유일해 보인다. 그러나 ‘코로나 해고 금지’를 의제화하긴 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바이러스와 기후변화가 증명하는 인류세(편의상 자본세와 생태세 개념을 통칭)에 맞는 새로운 정치를 기획해야 한다. 홀로세의 정치가 인류세에 먹힐까? 막말이 야기하는 정치의 후퇴보다 뼈아픈 것은 정녕 필요한 말들이 없다는 데 있다.

    우리는 이미 바이러스와 공존하는 세계에, 기후가 바뀐 세계에 살고 있다. 따라서 바이러스와 기후변화를 문제로 보기보다는 그 자체가 새로운 세계라는 관점을 세워야 한다. 지나간 세계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고, 새롭게 경험하는 미지의 실재를 더 빨리 인정할수록 새로운 정치와 사회를 위한 실험들을 펼치고 맞춤형 리얼리즘의 서사를 추구할 수 있게 된다. 코로나19에다 폭염, 가뭄, 산불, 통신 장애가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난다면? ‘사용후핵연료 공론조사’의 선택지에는 최악이나 차악만이 있는 게 아닐까?

    변화무쌍한 신세계는 4년을 바라보는 입법 권력의 좁은 시야에서는 볼 수 없다. 정권 유지와 정권 교체냐의 프레임으로는 2030년과 2050년의 전환 서사를 그려볼 수도 없다. 과거 1만년 동안 거대한 역사적 흐름을 타고 일종의 원시공동체에서 현대의 지구적 자본주의체제로 변모해왔다. 홀로세와 질적으로 단절된 인류세에서 과거의 지배적 양식을 지탱하려면 할수록 더 충격적인 사건을 통과하면서 적응을 강제 받게 된다. 국가를, 정당을 실제로 바꿔야 비로소 신세계에 적응할 길이 열리게 된다. 개헌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시간대를 늘릴수록 정치적, 사회적 상상력을 펼치기 어렵다. 그러나 그럴 필요성은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제기되고 표출되어 왔다. 인류세는 자연과 사물로 그 영역이 확대되고 있지만, 실재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홀로세에 머물러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 상황에서도 세계 최초로 시행된 대한민국 총선의 근본적 한계가 바로 이것이다. 선거 결과 숫자 맞추기에 쏟는 정성의 일부가 향할 지점이기도 하다. 기후변화는 현재의 예측가능성이나 계산가능성이 통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전문성의 역할도 바뀌어야 한다.

    막강한 의회권력을 위임 받은 홀로세 정당과 ‘기후국회’를 만들고자 투신한 전문가와 활동가 출신 의원 몇몇이 인류세 정치를 어떻게 생각할지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제안하고 싶다. 그럴듯한 가능성보다는 아직까지 전면화되지 못한, 소수의 생각으로 치부된 대안들을 도입할 기회를 만드는 데 주력하면 어떨까. 그렇다면 역설적으로 익숙한 인간적인 국회와 의원이 아니라 낯선 비인간적인 새로운 국회, 새로운 의원의 존재가 출현해야 되는 게 아닐까.

    인류세 정치에 관심이 있다면 기후위기비상행동의 ‘21대 총선 세부정책요구안’으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에너지전환 정책이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고, 지지부진했던 정책 중 일부 성과도 예상된다. 그러나 정권의 에너지-기후 계획과 정책은 홀로세에 갇혀 있을뿐더러 신기후체제에 진입할 준비가 턱없이 부족하다. 탄소제로사회와 그린뉴딜을 꺼내들었지만 지속가능성의 외피를 씌운 성장주의를 지향한다. 현실적인 방법은 모든 시민에게 기본소득을 전면 보장하고, 탄소제로에 동참하는 전환기업에게 선별 지원하는 것이다. 잠시 멈춤 시기에 비상한 새로움은 이렇게 실현된다.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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