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엇을 사랑하든
    독사처럼 칭칭 감겨들라!”
    [책소개] 『루쉰 독본』(루쉰(지은이), 이욱연(옮긴이)/ 휴머니스트)
        2020년 04월 19일 09:0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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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나 세상과 정면으로 승부했던 문학인 루쉰

    근대 중국 최고의 문학가 루쉰의 대표적인 소설과 산문을 루쉰 전문연구자 이욱연 교수가 우리 시대에 절실한 질문에 따라 새롭게 옮기고 엮었다. 중국 최초의 근대소설 〈광인일기〉와 ‘정신 승리법’의 대가를 다룬 소설 〈아Q정전〉부터 기성세대가 제 역할을 다할 것을 요청한 〈우리는 지금 어떻게 아버지 노릇을 할 것인가〉와 어설픈 관용이 사회악을 키운다고 일갈한 〈‘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 절망에 반항할 것을 단호하게 선언한 산문 〈희망〉까지, 루쉰의 유명한 저작은 물론 당시의 논쟁적인 산문까지 고루 실었다.

    이 책을 통해 선보이는 루쉰의 글은 혐오와 배제가 일상적인 우리 시대에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지금까지 루쉰의 소설이나 산문을 단편적으로 읽어본 독자는 루쉰의 다양한 면모를 발견할 것이고, 루쉰을 처음 만나는 독자는 루쉰의 날카로운 통찰력에 신선함을 느낄 것이다.

    루쉰의 핵심적인 소설과 산문을 단 한 권으로 읽는다

    그동안 루쉰의 작품은 소설집과 산문집으로 나뉘어 출간되곤 했다. 루쉰 하면 〈아Q정전〉이나 〈광인일기〉 같은 소설을 소개하는 데 치우쳤고, 산문은 루쉰을 좀 더 잘 아는 사람들이 접했다. 이번에 출간된 《루쉰 독본: 〈아Q정전〉부터 〈희망〉까지, 루쉰 소설·산문집》은 과감하게 루쉰의 핵심적인 소설과 산문을 함께 엮었다. 기존과 다른 구성은 루쉰의 글을 단순한 ‘고전’이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질문을 던지는 ‘현재의 고전’으로 읽기 위함이다.

    이육사부터 이광수, 염상섭, 김광주, 전우익, 리영희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수많은 문학인과 지식인이 루쉰을 읽었다. 우리 사회의 강력한 반공주의 정서 속에서 ‘중국의 대문호’ 정도로 받아들여지던 루쉰은 1980년대에 들어서 정치적 억압에 대항하는 실천적인 문학가로 소환되었다. 시대의 부조리와 잔혹함을 예리하게 해부하고 다수의 독재에 맞서 개인의 목소리를 올곧게 옹호하는 루쉰의 글은, 뜨거웠던 시절 많은 청년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지금까지도 읽히고 있다. 하지만 어느샌가 루쉰의 글은 정형화된 읽기에 함몰된 채 진면목을 들여다볼 기회도 없이 고전문학의 서가에 조용히 꽂혀 있을 뿐이다.

    오랫동안 루쉰을 연구해온 옮긴이 이욱연 교수는 루쉰이 당대에 맞서 치열하게 분투해왔음을 떠올렸을 때, 급격한 변화 속에 새로운 질서를 갈망하는 지금이야말로 루쉰을 더욱 적극적으로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소설과 산문이라는 형식이 아니라 우리 시대에 제기되는 질문에 따라 읽을 때 루쉰의 글을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하고 우리 자신을 정확하게 돌아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옮긴이는 〈아Q정전〉과 〈광인일기〉 같은 대표적인 소설 일곱 편을 비롯해 〈우리는 지금 어떻게 아버지 노릇을 할 것인가〉, 〈노라는 집을 나간 뒤 어떻게 되었나〉, 〈‘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 〈희망〉처럼 독자의 머리를 깨우는 마흔세 편의 산문을 함께 엮었다. 독자는 《루쉰 독본》 단 한 권으로 루쉰을 새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시대의 절실한 질문으로 엮은 루쉰 문학의 정수

    루쉰의 여러 소설을 비롯해 산문집 《아침꽃을 저녁에 줍다》를 번역한 이욱연 교수는 오랫동안 루쉰을 깊이 연구해왔다. 그는 기성세대의 윤리 의식과 청년 세대의 고통에 각별히 주목한다. 수년 간 대학에서 청년들과 더불어 루쉰을 읽으면서, 우리 사회의 혐오와 배제가 갈수록 심해지는 데 반해 기성세대의 성찰은 무뎌지는 것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옮긴이는 희망과 절망, 등급 질서, 사회의 개혁, 혁명의 변질, 기성세대의 윤리, 지식인의 허울, 자기만의 관점, 기억과 망각, 근대의 빛과 그늘 등의 주제에 따라 루쉰의 글을 배열하고 세심하게 설명을 덧붙였다. 루쉰의 글 하나하나가 모두 우리의 현실에서 쓰였다 해도 무리가 없을 만큼 생생하기 때문에 가능한 작업이다.

    “노라를 위해서는 돈, 고상한 말로 경제가 제일 중요합니다. 인간에게는 한 가지 큰 결점이 있지요. 자주 배가 고픈 것입니다. 이 결점을 보완하려면, 그리고 인형이 되지 않으려면 오늘날 사회에서 경제권이 제일 중요합니다. 따라서 첫째는 가정에서 남녀 간에 균등한 분배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둘째로는 사회에서 남녀 간에 동등한 힘을 지녀야 합니다.”

    〈노라는 집을 나간 뒤 어떻게 되었는가〉, 201쪽

    “용감한 권사(拳師)는 넘어진 적은 절대 때리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우리가 모범으로 삼을 만하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도 용감한 투사여야 한다는 전제다. 순진한 사람은 개가 물에 빠진 것을 세례받은 것이라 여기면서, 그가 분명 참회했을 터이고 다시는 사람을 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착각이며, 그것도 엄청난 착각이다.”

    〈‘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 270~271쪽

    루쉰의 글은 암울한 현실 속에서 절망에 반항하며 쓰였기에 강철처럼 단단하고 칼날처럼 예리하다. 권위와 신분 상승에 매달리고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추종하는 사람들에 맞서 고독한 개인으로 문학을 했던 루쉰이 지금 우리의 가슴에 와닿는 이유다. 독자들은 《루쉰 독본》을 통해 ‘절망에 반항한 작가’ 루쉰의 정수를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과 함께 출간된 《루쉰 읽는 밤, 나를 읽는 시간: 그냥 나이만 먹을까 두려울 때 읽는 루쉰의 말과 글》을 나란히 읽으면 루쉰의 생각 속으로 한결 쉽게 들어갈 수 있고, 루쉰의 문제의식과 오늘 우리의 문제를 연결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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