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가루, 악수 그리고 코로나19
[역사의 한 페이지] 미국의 경제원조와 악수 문화
    2020년 04월 17일 09:5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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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이 끝난 지 벌써 2년이 지났다. 당시 선수들은 설원과 빙상에서 그들의 기량을 겨루었고, 승자들은 승리의 기쁨을 그들 나름의 세레모니로 표현하였다. 대한민국에 첫 금메달을 선사한 남자 쇼트트랙의 임효준은 시상대에 오르면서 어깨를 툭툭 털고 손가락을 딸랑 딸랑 흔들고는, 하늘을 향해 두 번째 손가락을 높이 치켜들었다. 쇼트 트랙 동료인 곽윤기, 서이라가 메달을 땄을 때 했던 세러모니에 자신의 세러모니를 더한 것으로 동료들과 함께 한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여자 쇼트트랙 계주에서 금메달을 딴 최민정, 심석희 등 한국 팀은 메달 시상대 위에서 ‘엉덩이 밀기’ 세레모니를 선보였으며, 스켈레톤의 윤성빈은 압도적인 기록으로 금메달을 딴 뒤 설을 맞은 시민들에게 ‘큰절’ 세레모니로 설 인사를 대신했으며, 스노보드 평행대회전에서 은메달로 한국 설상 종목 첫 올림픽 메달을 획득한 이상호는 시상식이 끝난 뒤 숙소에서 배추를 들고 사진을 찍어 ‘배추 보이’에 걸 맞는 세레모니를 연출했다.

그런데 이런저런 세레모니 장면들 중에서 필자의 눈길을 끈 장면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그 해 2월 20일 여자 스키 하프파이프 시상식에서 한 외국 남성이 시상대를 향해서 큰절을 하는 장면이었다. 그 남성은 경기에서 은메달을 딴 프랑스의 마리 마르티노 선수의 남편으로 아내를 축하하기 위해서 존경의 마음을 담아 큰절을 한 것이었다.

그런데 서양 사람이 하는 큰절이라…….

좀 이상하지 않은가?

[사진] 2018년 평창 올림픽 환희의 순간들이다. 왼쪽 위·아래는 각각 임효준과 이상호의 우승 세레모니, 오른쪽 위는 여자 쇼트트랙 우승 후의 엉덩이 밀기 세레모니 장면이다. 오른쪽 아래는 여자 스키하프파이프 경기에서 은메달을 딴 아내에게 프랑스인 남편이 축하를 전하는 세레모니로 큰절을 하는 장면이다. (인터넷 사진)

큰절과 악수

큰절은 한국을 포함해 동양 사람들이 어른이나 높은 이를 향해서 하는 인사 예법이다. 서양 사람들 사이에 ‘큰절’이란 인사 문화는 없다. 그래서 윤성빈의 큰절은 자연스러운 데 비해, 프랑스 사람의 큰절은 분명 낯선 것이었다. 원래 동양에서 다른 사람에게 인사하는 방법은 자기를 낮춤으로써 상대를 높이는 방식을 취했다. 자신의 몸을 낮추는 것만큼 상대가 올라가니 몸의 각도나 높이를 통해 둘의 관계도 파악할 수 있다. 목을 가볍게 숙이는 관계가 있는가 하면, 허리를 조금 숙이거나 아니면 아예 허리를 90도 각도로 숙이기도 하고, 그 보다 더한 경우에는 몸을 완전히 땅에 엎드려 큰절을 하기도 한다. 그러니 ‘큰절’은 최고의 예우와 존경을 담은 인사법인 것이다.

나를 낮추어 상대를 높이는 방식으로 예를 표하는 이런 동양식 관념은 높은 사람을 부르는 옛 용어에도 잘 나타나 있다. ‘폐하’, ‘전하’, ‘각하’, ‘합하’, ‘저하’라는 말들이 대표적이다. 이 말들에는 한결같이 ‘당신은 저 위의 높은 데 있는 분이고, 나는 그 집 밑에 엎드려 당신을 우러러 본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뜻을 풀어보자. 먼저 폐하(陛下)의 ‘폐(陛)’는 섬돌(돌계단)을 말하는데, 폐하는 ‘섬돌 아래에서 엎드려 뵐 분’이라는 의미이다. 전하(殿下)의 ‘전(殿)’은 임금이 정사를 보는 큰 집을 말하므로, 전하는 ‘큰 집 아래에서 엎드려 뵐 분’을 뜻한다. 또 각하(閣下)의 ‘각(閣)’은 궁궐의 전(殿)과 같은 급의 건물은 아니지만 그 다음 중요한 건물을 지칭하는 용어이며 관공서의 경우 해당 관청의 수장이 기거하는 건물을 의미한다. ‘각하’는 보통 정2품 이상의 최고위 관료를 지칭하는 용어로 쓰였다. 합하(閤下)의 ‘합(閤)’은 궁궐의 중요 건물에 붙은 부속 건물을 뜻하는데, 합하는 정1품의 아주 높은 관료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극을 보면 흥선대원군을 부를 때 합하라는 호칭을 쓰는 것을 볼 수 있다. 저하(邸下)의 ‘저(邸)’는 귀한 분이 조용히 거처하는 집을 말하는데, 우리가 좋은 집을 말할 때 쓰는 ‘저택’의 ‘저’가 바로 이 글자다. 보통 왕의 아들인 세자를 존칭할 때 ‘세자 저하’로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

위에서 열거한 이런 용어들과 어울리는 장면을 생각해보자. 높은 곳에 힘이 센 권력자가 앉아 있고, 그 아래 바짝 엎드려있는 신하의 모습이 연상되지 않는가? 그래서 이런 용어들은 왕조시대 신민들이 왕이나 최고위관료를 지칭할 때나 어울린다. 이런 이유 때문에 1990년대 김대중 대통령은 이전부터 써 왔던 ‘대통령 각하’라는 표현 대신 ‘대통령님’으로 써 달라고 당부했다. 봉건 왕조 시대에 쓰던 말을 민주주의 공화국 시대에 쓰는 것이 가당치 않았던 것이다.

[사진] 경복궁 근정전 앞 답도와 돌계단. 저런 돌계단을 ‘폐(陛)’라고 하는데, ‘폐하’ 용어는 저기서 유래

큰절을 하는 것이 서양에 없던 인사법이듯이 지금 우리가 흔히 하는 ‘악수(幄手)’는 거꾸로 서양의 인사법으로 원래 우리에게 없던 것이었다. 상대방의 손을 잡고 흔드는 이 인사법은 보통 앵글로 색슨계 남자들이 우호적 관계를 맺고 싶을 때 상대방을 공격하지 않겠다는 표시로 오른 손을 내밀어 어떤 흉기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상대방에게 보여주던 것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처음에는 선의를 보여주기 위해 손을 잡는 행위였으나 이후 반가움을 나타내는 인사법으로 발전해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고 한다. 지금 이 악수는 서로 대등한 입장에서 주로 반가움과 감사의 마음, 그리고 우정을 표시하기 위한 인사로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다.

언젠가 16세기 역사를 다룬 EBS 다큐멘터리에서 명나라 장군과 후금 관리가 만나 악수하는 장면이 나온 적이 있다. 과연 500년 전 저런 장면이 가능했을까? 스토리 전개상 넣은 상징적인 장면일 뿐 실제 그런 장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조선시대 사극에서 양반 둘이 만나 서로 악수하는 장면을 상상해보시라. 조선시대 사람들이 초가삼간에 모여앉아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것만큼이나 우스쾅스러운 장면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이렇게 동양과 서양의 인사법이 서로 달랐으니, 두 낯선 세계가 처음 만났을 때 그들은 어떻게 서로 반응했을까? 여기 재미있는 장면이 하나 있다.

때는 1883년 9월! 1882년 미국과의 수교가 이루어진 후 조선 정부는 민영익을 단장으로 보빙사라는 외교사절단을 미국에 파견하였다. 보빙사 일행은 뉴욕의 Avenu 호텔에서 미국 아서 대통령을 접견하였다. 이때 보빙사 일행은 그들이 조선의 국왕에게 흔히 하듯이 넙죽 큰절을 하게 된다. 보빙사 일행의 이런 낯선 인사법에 미국 대통령 아서는 어떻게 대응해야할지 무척 당황스러워한다. 이 장면은 당시 미국의 [Newspaper]란 신문에 스케치로 실려 있다. 두 낯선 세계는 이렇게 흥미롭게 만났다.

[사진] 1883년 9월 민영익 등 보빙사 일행이 미국 아서 대통령을 만나 큰절을 하는 장면으로 당시 미국신문 [Newspaper] 1면에 실린 것이다.(박건호 소장)

1950년대 악수 문화의 대중화

서양식 악수문화는 개항 이후 서양인들을 통해 한국인들에게 소개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 악수를 하는 한국인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완전히 이질적인 인사 문화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는 법! 조금씩 조금씩 악수문화도 보급되어갔다.

필자가 수집해 소장하고 있는 자료 중에는 이 악수 문화의 대중화와 관계된 흥미로운 자료가 있다. 1950년대 미국의 경제 원조 당시 미국이 준 밀가루를 담았던 포대들이다. 이런 포대들은 지금도 그리 어렵지 않게 수집할 수 있다. 경매에 가끔씩 나오는데, 수집 가격은 대략 5∼10만 원선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이런 밀가루 포대가 왜 악수 문화의 대중화와 관련된 것일까?

1950년대 미국은 6.25전쟁으로 피폐해진 한국에 의료품, 생필품, 농산물 등 다양한 원조 물자를 제공하였다. 당시 미국이 준 원조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미국의 잉여 농산물, 그 중에서도 밀, 설탕, 면화였다. 195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들어온 미국의 농산물은 당시 기아선상에 시달리던 한국인의 식량난 해결에 큰 도움을 주었다. 특히 이때 들어온 미국의 농산물 중 밀이 70%를 차지했으며, 이는 한국 곡물 생산량의 40%를 차지할 정도로 많은 양이었다. 이런 이유로 당시 밀가루 값은 쌀값과 비교했을 때 무척이나 싼 것이었다. 당시 화교들이 운영하는 중국집에서 싼값에 짜장면을 공급할 수 있게 된 배경이었다. 이로써 대한민국에서 짜장면의 대중화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미국의 잉여농산물이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 1956년부터이니 짜장면의 대중화는 이즈음부터로 잡으면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때 들어온 밀가루가 짜장면의 대중화와 함께 악수 문화의 대중화를 가져왔다는 점도 흥미롭다.

당시 미국이 보낸 밀을 가공해 담은 밀가루 포대에는 매우 인상적인 그림이 찍혀 있었다. 그 포대에는 성조기를 상징하는 별 4개와 두 사람이 굳게 악수하는 그림, 그리고 “미국 국민이 기증한 밀로 제분된 밀가루, 팔거나 다른 물건과 바꾸지 말 것”이란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특히 악수 그림은 당시 한국인들에게는 무척 낯설면서도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밀가루를 ‘악수표 밀가루’라고 불렀다.

[사진] 미국이 원조한 밀을 가공해 담은 밀가루 포대. 가운데 악수하는 마크가 선명하다. (박건호 소장)

이 원조 물자에 새겨진 악수 장면을 보고 당시 한국인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더러 식자(識者)들이 있어 그게 서양 인사법이라고 알려줬을 것이다. 사람들은 호기심 반 재미 반으로 이 인사법을 따라 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혹은 어색하게 서로 손을 잡고 흔들며 인사 같지도 않은 인사를 체험해보며 키득키득 웃기도 했을 것이다. 또 누구는 손을 너무 세게 잡았다고, 또 누구는 손을 너무 많이 흔든다고 지청구를 듣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악수는 미국의 밀가루가 한국인의 식탁을 점령해가는 그 속도로 한국인의 생활 문화 속에 자리 잡아 갔다. 미국의 경제 원조는 경제적으로 한국의 식량난 해결에 도움을 주었지만, 사회사적으로는 뜻하지 않게 미국식 악수 문화가 자연스럽게 대중화되는데 기여했던 것이다.

그런데 수 천 년의 전통이 하루아침에 사라지지는 않는다. 외래문화가 들어와도 전통 문화는 그것과 어떤 방식으로든 융합되는 법이다. 전통은 그래서 전통이다. 한국인들은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악수를 나누는 서양식 인사를 처음에는 그대로 따라했겠지만, 이것이 주는 불편함을 서서히 느꼈던 모양이다. 그래서 ‘한국식’ 악수 문화가 새롭게 만들어진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나보다 윗사람일 경우에는 악수할 때 허리를 꼿꼿이 세우기보다는 약간 꺾어서 한다. 그리고 윗사람에게 술을 받거나 따를 때 두 손으로 하듯이, 악수도 한 손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공손히 한 손을 받치고 두 손으로 한다. 한국식 퓨전 악수 문화인 셈이다.

오리지널 악수 문화와 한국식 악수 문화의 이런 차이는 때때로 여러 논란과 오해를 불러 오기도 했다. 같은 악수인데 어떤 경우에는 서양식으로 악수해서, 어떤 경우에는 한국식으로 해서 이런 저런 이야기 거리가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2007년 10월 노무현 대통령이 방북했을 때, 우리 정부 각료 대부분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악수할 때 약간씩 허리나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지만, 김장수 국방장관은 허리를 숙이지 않고 악수했다. 이를 본 우리 국민들은 김장수 국방장관을 ‘꼿꼿장수’라고 부르며 그를 칭송했다. 원래 허리를 펴고 악수하는 글로벌 스탠다드를 그대로 따랐을 뿐인데, 그는 ‘적’의 수장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하여 칭송을 받았던 것이다.

한편 그로부터 반년이 지난 2008년 4월 일본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이 일본 천왕과 악수하는 장면도 두고두고 말이 많았다. 이 대통령은 천왕과의 악수에서 허리를 깍듯이 숙여 예를 표했지만, 천왕은 허리를 꼿꼿이 세워 대비가 되어 굴욕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것이다. 그에게 천왕과의 이 악수(握手)는 결국 ‘악수(惡手)’가 되고 말았다.

악수 하나도 이런 복잡한 논란을 불러올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악수를 할 때도 상황과 맥락을 잘 따져보고 악수를 해야 한다. 악수가 단순히 둘이 손잡고 흔드는 행위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진] 한국에서 악수는 그 숙이는 허리의 각도에 따라 때로는 꼿꼿함의 상징으로, 때로는 굴욕으로 해석된다. 위쪽은 김장수 국방장관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악수하는 장면, 아래쪽은 이명박 대통령이 일본천왕과 악수하는 장면이다.

코로나 이후의 세계

문화는 늘 변한다. 고정 불변의 문화는 없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인사 문화도 그렇다. 악수는 서양에서 들어왔지만, 한국인들은 그것을 바꾸어 한국식으로 악수한다. 인사 문화는 시대에 따라 늘 새롭게 창조되고, 변형되고 융합된다. 이를 잘 보여주는 재미있는 장면이 하나 있다. 다시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으로 돌아가 보자. 올림픽 폐회식 때였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이 감사의 말을 하던 중 출전 선수들 중 몇 명 이름을 불러 자기 앞으로 오게 하더니 선수들을 대표한 그들과 함께 “한국의 ‘전통적인’ 방식으로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큰절’을 하려는 줄 알았다. 한국의 전통적인 방식으로 인사를 한다고 했으니 ‘큰절’말고 다른 무엇이 있었겠는가?

그런데 바흐 위원장과 선수들이 한 것은 뜻밖에도 ‘손가락 하트 인사’였다. 이 인사법은 엄지와 검지를 교차해 작은 하트를 만들어 전하는 인사법으로 영어로는 ‘Korean finger heart’라고 한다. 한국에서 유행하기 시작했으니 ‘Made in Korea 인사법’인 셈이다. 이 평창 올림픽이 끝난 몇 개월 뒤 가을 정상회담차 만난 남북의 두 정상이 백두산 정상에서 영상을 통해 전 세계인들에 전한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도 또한 이 ‘손가락 하트’였으니 한국에 관심 있는 외국인이라면 이 ‘손가락 하트’를 한국의 전통 인사법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권위 있는 IOC 위원장과 남북한의 정상들이 보여주는 인사법이니 이건 확실한 한국의 전통 인사인 것이다. 앞으로 외국인들이 한국인을 만나게 되면 그들이 우정의 표시로 손가락 하트를 날릴지 모를 일이다. 이때 우리들은 당황하지 말고 이것이 우리의 전통이라고 속으로 되뇌이며 똑같은 방식으로 인사를 받아주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새로운 인사문화는 창조되고 변화해 가는 것이다.

[사진] 평창올림픽 폐막식에서 한국의 ‘전통 인사’인 손가락 하트를 날리는 바흐 IOC 위원장과 선수들

몇 개월째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일상생활이 큰 변화를 겪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구호 아래 이전에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던 일들이 이제는 비정상적인 것으로 치부될 수도 있겠다. 이제 사람들은 재채기를 할 때 팔로 코나 입을 가리지 않는 사람을 이상하게 볼 것이며, 평상시 마스크를 집에 비축하는 것은 상식이 될 것이며, 비대면 업무와 재택근무는 더욱 일반화되고 상시화 될 것이다. 당분간 크루즈 여행업계는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다. 회식 문화를 좋아하는 한국인들은 당분간 사람들과의 모임을 당분간 줄일 것이다. 인류의 가장 강력한 무기로 핵미사일이 아니라 ‘세균무기’일 가능성이 커짐에 따라 군사적 패권을 추구하는 나라들은 신종 생화학 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할 지도 모를 일이다. 선진국을 자처하던 나라들이 마스크를 수입에 의존하다가 품귀현상을 겪게 되면서 사람들은 국가의 산업은 특정 산업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1, 2, 3, 4차 산업이 모두 다 중요하다는 것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을 것이다. 또한 ‘의료 민영화’를 주장하는 정치 세력들의 선동적 슬로건들이 얼마나 위험하고 불안한 미래를 가져올 수 있는지도 적나라하게 확인하게 되었다.

코로나19는 인사법에도 작지 않은 변화를 가져왔다. 사람들은 만나면 악수를 하는 대신 팔뚝을 부딪치거나(‘팔뚝 인사’ 또는 ‘팔꿈치 인사’), 주먹으로 인사하는(‘주먹 인사’ 또는 ‘펀치 악수’) 새로운 인사법을 만들어냈다. 1340년대 유럽을 휩쓸었던 흑사병이 중세 봉건사회의 붕괴에 큰 영향을 끼쳤듯이, 2020년의 코로나19도 세계사를 크게 바꾸어 놓을 가능성이 있다. 그 변화 중 악수라는 우리 시대의 보편적 인사법이 어떤 변화를 겪게 될 지 필자는 흥미진진하게 관찰할 것이다. 앞으로 팔뚝 인사나 주먹 인사는 기존의 악수를 대체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한 때의 에피소드로 끝나고 말 것인가?

[사진] 코로나19 이후 일상화되고 있는 팔뚝인사와 주먹인사(인터넷 사진)

역사의 한 페이지 칼럼 연재 링크

필자소개
박건호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 국사학과와 한국외대 대학원 정보기록학과를 졸업하고 명덕외고 교사로 있다가 현재는 역사 자료들을 수집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글을 쓰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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