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노총 야합보다 더 절망스런 민주노총의 무기력
        2006년 09월 12일 02:1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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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일 오후 4시 서울 여의도 동양증권 빌딩 21층 노사정위윈회. 한국노총과 정부, 사용자단체가 수십명의 기자들 앞에서 로드맵에 대한 노사정 합의 결과를 발표하며 서로 손을 굳게 잡고 미소를 짓고 있었다.

    같은 시간 동양증권 빌딩 앞에는 20명도 안되는 사람들이 초라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마이크 소리는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고, 맥빠진 구호와 힘없는 투쟁가가 건물 안팎을 가득 메운 경찰들 사이로 맥없이 울려퍼지고 있었다.

    노사정 합의 소식을 뒤늦게 전해 들은 금속연맹과 금속노조 간부들 30여명이 회의를 중단하고 달려왔지만 초라한 풍경은 그대로였다. “한국노총과 자본의 야합을 결코 좌시하지 않고 투쟁해나가겠다”는 연설자들의 외침은 공허하게 메아리칠 뿐이었다.

    노동조합이 없는 89%, 1천3백만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선택권을 또 다시 유린하고, 정리해고 사전통보기간을 단축해 해고를 쉽게 만들고, 필수공익사업장 확대와 대체근로 인정으로 파업을 어렵게 만드는 법안과 노조간부 임금을 맞바꾼 ‘희대의 야합’이 벌어진 날 그 많은 민주노총 간부들은 어디에 있었을까?

    ‘노사정 야합’은 소리없는 9.11 테러

    복수노조는 노동조합이 없는 노동자들뿐 아니라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에 속해있는 150만 노동자들에게도 중요한 권리다. 노동자들에겐 한국노총보다 강성인 노조를 선택할 권리도 있고, 민주노총보다 더 실리적이거나 반대로 더 원칙적인 노조를 선택할 권리도 있기 때문이다. 공산당 성향의 노조와 사회당 성향의 노조를 맘대로 선택하는 유럽의 노동자들처럼 복수노조는 노동자들의 ‘기본권’이다.

       
    ▲ 정부와 한국노총, 사용자단체 대표들이 11일 로드맵 합의를 발표하며 손을 굳게 맞잡고 있다.
     

    선거에서 내가 원하는 정당을 선택할 권리가 있듯이 내가 원하는 노동조합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복수노조 유예로 10년째 유린되어 왔는데, 이날 민주노총을 뺀 노사정은 또 다시 3년을 유보했다. 폭발적인 노동조합 설립을 두려워한 한국노총과 사용자단체, 그리고 정부가 노동자들에게 ‘소리없는 9.11 테러’를 가한 것이다.

    한국노총 야합보다 더 절망스런 일이 민주노총의 무기력이다. 민주노총은 지난 주 한국노총과 사용자단체에게 ‘5년유예 합의’라는 뒤통수를 맞고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을 뿐더러, 주말에 벌어진 노사정의 ‘음모’에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았고, 이날 오후 2시 매우 ‘형식적인 집회’를 잡아놓았을 뿐이었다.

    뒤통수 맞고도 멍하고 있던 민주노총

    이날 한국노총과 이용득 위원장은 당당했다. 오후 5시 사용자들과 정부 관계자들이 차를 이용해 뒷문으로 빠져나갈 때 이용득 위원장은 민주노총 간부들이 있는 정문으로 당당하게 걸어나왔다. 고함과 욕설이 오갔고, 분에 못이긴 한 노조간부가 이용득 위원장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 노사정위원회가 위치한 동양증권 빌딩에 모여앉은 민주노총 조합원들.

    그러나 그는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다. 민주노총 간부들은 고작 50명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5분 거리에 있는 한국노총 건물의 간부들을 불렀고, 20여분이 지나자 100여명의 한국노총 간부들이 노사정위원회로 모여들었다. 그는 그들의 호위를 받으며 당당하게 한국노총 건물로 걸어갔다.

    “천만노동자 팔아먹은 밀실야합 박살내자” 민주노총 간부들이 길을 가로막으며 ‘노사정야합’을 규탄했고, 일부 간부들은 이용득 위원장 앞에 드러누워 “나를 밟고 가라”고 외쳤지만, 한국노총 간부들과 이용득 위원장은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당당하게’ 정부가 지어준 한국노총 건물로 들어갔다.

    민주노총이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 전국노동자대회를 열고 강력하게 저항했다면, 최소한  가까운 지역의 간부들을 비상소집해 노사정 야합을 막는 투쟁을 했다면, 한국노총처럼 비상대표자회의를 열어 농성을 벌이면서 ‘야합’에 대비했다면 한국노총이 ‘부끄러운 합의’를 하고도 떳떳하게 걸어나오는 사태를 목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허탈하고 참담하고 부끄러운 9월 11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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