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주의가 정당화하는 불평등
[책소개] 『능력주의』(마이클 영(지은이)/ 이매진)
    2020년 04월 10일 11:4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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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4년과 2020년의 능력주의
– 평등과 공정과 정의에 바탕한 엘리트 계급의 세습 사회

아이큐 125를 넘는 상위 5퍼센트의 ‘뛰어난 계급’에 속하지 못하면 하층 계급이 돼야 하고, 몇몇은 엘리트 계급에 고용돼 가내 하인으로 일해야 한다. 인구 전체의 5퍼센트에 지나지 않는 엘리트들은 정치와 경제와 문화를 손아귀에 쥔 채 평등과 공정과 정의를 내세워 자식 세대에게 지위를 세습하지만, 하층 계급과 그 자녀들은 점점 나락으로 떨어진다. 우열반으로 나뉜 학교에서 단 한 번 치르는 시험이 인생을 판가름하고, ‘빌거’와 ‘휴거’와 ‘엘사’가 ‘강남 공화국’과 ‘스카이 캐슬’을 떠받히는 지금 여기 한국의 이야기일까?

영국 출신 사회학자이자 사회운동가인 마이클 영은 사회학적 디스토피아 소설 《능력주의》에서 ‘지능(IQ)+노력(Effort)=능력(Merit)’이라는 도식에 바탕한 ‘능력주의’와 ‘능력주의 사회’를 그린다. 2034년의 영국 사회를 배경으로 하는 과두제에 붙인 ‘능력주의’라는 이름은 영어 사전에 올랐고, 이제 21세기 지배 계급의 신념이자 도덕 기준이 됐다. 성평등이나 비정규직 등을 둘러싼 논란이 벌어질 때면 나이와 계급과 이념을 뛰어넘어 ‘86세대’부터 ‘일베’까지 ‘평등’하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승자독식과 능력주의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한국에서, 이 사회학적 풍자 문학은 능력에 따른 차별과 능력 있는 엘리트 계급의 세습을 정당화하는 능력주의가 사회를 어떤 방식으로 개조할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능력주의 사회의 도래
– 현실 같은 소설과 소설 같은 현실 속 능력주의

능력주의가 지배하는 미래를 그린 이 이야기는 1870년부터 시작한다. 1870년 영국은 무상 공교육과 공무원 공개 시험 채용을 시작하고, 승진 시험을 도입한다. 1944년에는 교육법을 개정하면서 중등학교가 귀족 학교(대학 진학이 목표인 그래머스쿨)와 서민 학교(직업 교육을 하는 현대식 중등학교)로 나뉜다.

《능력주의》가 출간된 1958년에는 교육 평등화가 진행되고 기회 균등이 확대되지만, 중등학교에 들어가는 11세에 인생이 결정되는 방식이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대안으로 미국식 종합학교가 도입된 뒤에도 명문 사립 학교와 그래머스쿨을 둘러싼 논란은 사그라지지 않는다. 기회 균등이 능력주의에 동일시되면서 평등하고 민주적인 교육이라는 이상은 흔들리고 만다.

이야기는 1958년을 기점으로 나뉜다. 1958년 이전을 다룬 부분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지만, 그 뒤는 지은이가 현실의 흐름을 바탕으로 예상하고 상상한 허구다. ‘능력주의(Meritocracy)’라는 단어와 ‘지능(I)+노력(E)=능력(M)’이라는 도식을 만들어낸 영은 능력주의 사회는 ‘지능’을 기준으로 능력, 실력, 업적, 재능을 가늠하게 된다고 상상한다. 어떤 사람들의 자손은 기업, 정부, 교육계, 과학계에서 책임 있는 지위를 획득할 만한 능력이 없다는 인식이 폭넓게 자리잡고 있다. 교육과 선발 분야 전문가들은 미래 지도자를 가려내는 데 과학적 원리를 적용한다. 우리는 지능에 관련해 등급, 자격, 경험, 적용 등을 해야 할 필요가 있고, 지위를 획득하는 데 요구되는 일정한 역량을 갖춰야만 한다. 한마디로 모든 사람은 미래의 새로운 사회에서 발전시킬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줘야만 한다.

영이 볼 때 인간 능력을 가늠하는 기준이 협소해지는 현실은 능력주의가 지닌 가장 큰 문제점이다. 소설 속 능력주의 사회나 우리가 지금 겪는 능력주의는 모두 획일화된 시험을 중요한 도구로 활용한다. 대입 시험, 입사 시험, 자격시험, 국가고시 등이 모두 ‘평등’하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시험 형태를 취한다. 소설 속 능력주의 사회는 지능 측정이 점점 과학화되고 정밀해지면서 잠재적 아이큐, 곧 미래에 높아질 수 있는 아이큐 최대치를 정확히 예측하는 기술도 발달한다. 한때 ‘평등의 황금기’를 이끈 능력주의가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가 되고, ‘운 좋은 정자 클럽’에 든 기득권층과 세습 엘리트들만 올라가는 출세의 사다리는 더욱 견고해진다. 이제 엘리트들의 능력은 기득권 계급의 자격증이 되고, 능력 있는 엘리트들의 계급은 자식 세대로 이어진다. 능력은 계급이 되고, 계급은 세습된다.

진정한 기회 균등
– 능력과 계급의 세습을 넘어 사람을 먼저 생각하기

사실과 허구가 뒤섞인 이야기는 좀처럼 갈피를 잡기 어렵지만, 이야기의 배경과 줄거리를 정리한 옮긴이 글을 먼저 읽고 책장을 넘기면 2034년의 영국을 배경으로 능력주의와 능력주의 사회를 조감하는 기회를 누릴 수 있다. 1부에서는 전쟁 때문에 인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할 필요가 커지고 낮은 생산성이 점점 치열해지는 국제 경쟁에서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귀족주의와 세속주의를 나누는 경계가 허물어지는 한편, 교육 분야와 산업 분야에서 능력주의가 뿌리를 내리는 과정이 서술된다. 2부에서는 능력주의가 가져온 여러 부작용, 특히 상층 계급과 하층 계급의 변화된 상황이 묘사되면서 포퓰리스트 그룹을 대표로 한 저항 시도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한동안 순조롭게 작동하던 능력주의 체제는 계급 간 격차가 눈에 띄게 벌어지고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굳어지면서 계층 사이의 사회적 이동이 가로막히자 포퓰리스트 운동이라는 새로운 저항 세력의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지능 검사 기법이 발달하고 유능한 아버지가 유능한 자녀를 낳는 지능우생학과 일자리 상속 관행이 확산된 결과, 어느 정도 무작위로 분포하던 지능은 폭넓은 재분배 과정을 거쳐 계급 간 격차를 그대로 드러낸다. 재능 있는 상층 계급들은 자기 능력에 합당한 수준까지 올라갈 기회를 부여받지만, 하층 계급은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의 몫이 된다. 최고 수준의 지능과 업무 능력을 갖춘 엘리트들만 상을 받고 나머지 대부분은 벌을 받는 유토피아 사회는 마침내 악몽으로 치닫고, 하층 계급이 일으키는 혼돈과 반란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면서 소설은 마지막을 향해 달려간다.

마이클 영은 소설 속 〈첼시 선언〉을 통해 ‘기회 균등’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려 한다. 진정한 기회 균등이란 ‘사회의 계층 사다리를 올라갈 기회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각자 타고난 덕과 재능, 인간 경험의 깊이와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모든 능력, 삶의 잠재력을 지능에 상관없이 최대한 발전시킬 기회를 균등하게 만드는 일’이다. 모든 어린이는 지능 검사의 대상이 돼야 하는 ‘인적 자원’이기에 앞서 ‘소중한 개인’이기 때문이다. 학교는 직업 구조에 맞춰 일자리를 채우는 데 몰두하지 말고 ‘인간의 모든 재능’을 장려하는 데 힘을 쏟아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능력주의를 타도하자
– 무한 경쟁과 양극화의 디스토피아를 넘어 새로운 교육, 능력, 평등을 상상하기

20세기, 영국 노동당을 지지한 사회학자 마이클 영은 《능력주의》를 쓴다. 2001년, 토니 블레어 총리가 미국을 뒤따라 영국을 완전히 능력주의 사회로 바꾸자는 연설을 하자, 영은 왜곡된 능력주의를 맹신하는 노동당 정부에 발끈해 《가디언》에 ‘능력주의를 타도하자’는 칼럼을 쓴다. 《능력주의》를 둘러싼 핵심적인 모호성은 이렇게 좀더 명확해진다. 현실 속의 마이클 영과 소설 속의 마이클 영은 정치적으로 정반대에 서 있지만, 능력주의가 지닌 양면성처럼 서로 겹치기도 한다. 그런 양면성 탓에 《능력주의》는 풍자 소설이나 디스토피아 소설이 아니라 현대 세계의 주요한 조직화 원리를 예언한 책으로 받아들여지고, 능력주의는 미국을 중심으로 근대화의 척도이자 현대인의 신앙이 된다.

21세기, 소설 속 능력주의 사회는 비로소 한국에서 만개한다. 정치적 견해와 사회적 계급에 상관없이 ‘능력에 따른 보상’의 ‘공정함’을 신앙하는 한국 사회는 단 한 번 치르는 공정한 대입 시험으로 미래의 인생이 결정되는 시스템을 신뢰한다. ‘영원한 군비 경쟁’을 떠올리게 하는 입시 전쟁은 무한 경쟁과 양극화를 낳고, 엘리트 계급을 둘러싼 세습 경쟁에서 탈락하고 안정된 일자리에 목마른 대부분의 무능력자는 모자란 능력을 탓하면서 낮은 자존감에 시달린다. 앙상한 도식으로 제시되는 능력주의와 빈약한 논리에 갇힌 능력주의 비판을 넘어서 어떻게 공정하고 새로운 교육, 능력, 평등을 상상할 수 있을까? 마이클 영이 아니라 우리에게 되물어야 하는 물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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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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