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임자 임금만 받고 나머지 다 내줬다"
    By tathata
        2006년 09월 11일 09:2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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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사정이 합의한 노사관계 로드맵은 노동자의 결사의 자유를 제한하고, 노조의 파업권을 약화시키며, 고용유연성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노동자에게는 득보다 실이 많은 ‘개악’이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노동법학계의 교수들과 민주노총은 이번 합의를 명백하게 ‘개악’이라고 규정했다. ‘받은 것’은 없으면서 ‘내준 것’은 많아 노동자에는 독이 되어 돌아왔다는 분석이다.

    ▲산별노조 조직화 제약, 민주노조 설립 봉쇄 – 노사정은 복수노조 허용과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를 3년간 유예했다.

    복수노조 허용을 3년간 유예함으로써 이 기간동안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의 길이 진입장벽에 부딪힌 것은 물론 삼성, 포스코, 현대중공업 등 ‘어용노조’, ‘유령노조’의 사업장에 민주노조가 설립될 길이 원천봉쇄 됐다. 임영일 경남대 교수는 “기업으로서는 전임자 임금이라는 저비용으로 노동자의 단결권을 제약하는 성과를 얻어냈다”고 말했다.

       
    ▲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노사정위원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노사 로드맵 3년 유예 협정식을 ‘밀실야합’이라 주장하며 회의장 진입을 시도하던 민주노총 관계자들이 경찰들과 몸싸움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특히 금속연맹이 산별노조 전환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복수노조의 유예는 산별교섭을 약화시켰다는 지적이다. 임 교수는 “복수노조 유예는 조직 대상의 확대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임 교수는 “삼성과 같은 페이퍼 유니온(유령노조)이 있는 사업장에서 산별노조 가입이 가로막힐 뿐 아니라 기업별 노조가 있는 사업장에서 산별교섭을 요구할 수 있는 길도 가로막혔다”고 설명했다.

    ▲대체근로 허용으로 파업권을 무력 – 노사정은 직권중재를 폐지하는 대신 필수공익사업장의 범위에 혈액공급, 항공, 증기 온수 공급, 폐·하수처리업을 추가시켰다. 그리고 필수공익사업장의 노조가 파업할 시에는 필수유지업무 수행의무를 부과하고, 대체근로를 허용하도록 했다.

    직권중재가 폐지됨으로 인해 직권중재에 회부된 이후 15일 동안 파업을 벌일 경우, 불법파업으로 규정되어 지도부의 고소고발과 손배가압류가 남용됐던 전례는 축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노조가 파업을 하더라도 사용자는 신규채용 등의 방법으로 대체근로를 투입할 수 있기 때문에 파업의 효력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노조는 파업권을 ‘무기’로 교섭에서 힘을 발휘하지만, 파업의 영향력이 축소됨에 따라 교섭력은 그만큼 힘을 잃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주호 보건의료노조 정책실장은 “대체근로 허용은 조합원의 파업 참여를 막는 행위”라고 단언했다. 이 실장은 “자신의 일자리에 대체인력이 들어올 수 있기 때문에 조합원들은 ‘고용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고, 파업 자체를 거부하게 된다”고 말했다.

    ▲해고는 더욱 쉽게 – 노사정은 부당해고 판정시 노동자가 신청하면 복직명령 대신 금전보상명령이 가능토록 했다. 또 부당해고시 현재 5년 이하 징역, 3천만원 이하의 벌금 조항을 삭제하고, 대신 노동위원회 구제명령에 대해 이행강제금을 부과하고, 확정된 이행명령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형사처벌 또는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부당해고 벌칙조항은 근로기준법 가운데 가장 강력한 제재조항이지만, 이번 합의로 인해 사용자는 부당해고를 했더라도 이행강제금이나 과태료, 형사처벌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 범위가 대폭 축소됐다. 사용자에게는 그만큼 해고의 권한이 강화된 셈이다.

    오민규 전국비정규노조연대회의 기획국장은 “부당해고를 하더라도 금전보상이 가능하기 때문에 사용자는 언제든 조합원에게 금전보상을 신청하라고 압박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오 국장은 “부당해고에 대한 대법원 확정 판결까지 5년 이상이 걸린 사례에 비추어 보면, 사용자는 해고의 고통을 겪고 있는 노동자에게 언제든 돈으로 회유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경영상 해고시 사전협의 기간을 현행 60일이던 것을, 기업과 해고 규모에 따라 30일부터 차등 설정한 것도 노조의 대항권을 약화시킨다는 지적이다. 사용자는 60일 이전에 정리해고 통보를 하고 노조와 협의를 거치도록 하고 있지만, 일부 사업장은 사전협의 기간이 절반으로 줄어들기 때문에 노조가 대응할 수 있는 기간은 그만큼 단축된다.

    김연홍 금속연맹 정책국장은 “조합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대응방안을 논의하며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실시하는 동안 이미 정리해고가 진행된다”며 노조의 대응기간이 현저하게 짧아 사업주의 해고권이 강화됐음을 강조했다.

    한편, 이번 합의에 노조의 쟁의행위에 대해 사용자가 손배가압류 청구를 제약하는 요건도 빠졌다. 민주노총은 “폭력 파괴행위를 수반하는 행위에 한해서만 손배가압류를 혀용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한국노총이 이에 대해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지 않음에 따라 논의 자체를 제외시키자는 경총의 입장이 관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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