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원-헌재 누구와 사전조율 했나"
        2006년 09월 11일 01:2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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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인준을 둘러싼 논란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전 후보자의 헌재재판관 사퇴가 청와대와 대법원의 사전조율에 따른 것이라는 여당의 주장 때문이다.

    여당은 이번 논란의 본질을 입법 미비에 따른 인준 절차의 문제로 규정하면서 사법부의 정치적 독립성을 문제삼는 한나라당의 비판은 근거를 상실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여당의 주장을 ‘물귀신 작전’, ‘책임을 분산시키려는 얄팍한 꼼수’로 규정하고, 사전조율의 구체적인 방식과 내용에 대해 밝히라고 추궁하고 있다.

    이는 전효숙 후보자 인준 문제가 자칫하면 정치권을 넘어 사법부까지 불씨가 번질 가능성마저 엿보여 주목되는 대목이다.

    "민정수석실의 전화 한 통화로 헌법재판관직을 사퇴했다"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인준을 둘러싼 논란을 증폭시킨 것은 청와대 민정수석과의 협의를 거쳐 헌법재판관직을 사퇴했다는 전 후보자의 고백이다.

    전 후보자의 이 같은 발언은 입법 미비에 따른 인준 절차상의 하자에 불과하던 것을 사법부의 ‘정치적 독립성’의 문제로 비약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민정수석실의 전화 한 통화로 헌법재판관직을 사퇴했다’는 자극적인 비판은 최고 헌법수호기관의 장으로서 전 후보자의 자질을 의심케 하기에 충분했다.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은 11일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금과옥조로 삼아야 할 헌법재판관이 편법 사퇴한 것도 문제지만, 헌법 수호의 마지막 보루인 헌법재판소의 수장이 되려는 후보가 위헌․위법성 논란의 중심에 선 것 자체가 돌이킬 수 없는 결함을 안고 있는 것"이라고 전 후보자를 비판했는데, 이는 한나라당이 제기하는 ‘자질론’의 핵심이다.

    한나라당이 자신들도 참여했던 인사 청문회를 ‘원천무효’로 돌리는, 어찌보면 무리수에 가까운 초강수를 둘 수 있었던 것도 이번 논란이 ‘사법부의 정치적 독립’이라는 근본 문제에 닿아있다는 나름의 명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권, "사법부의 독립성을 보장하려는 노력의 일환"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은 10일 전 후보자의 헌재재판관직 사퇴가 대법원과의 사전조율을 통해 이뤄졌다고 밝혔다.

    당초 대법원장 지명으로 헌법재판관에 임명된 전 후보자가 대통령이 지명하는 헌법재판소장이 될 경우 전체 헌법재판관 구성비에서 대통령 지명 몫이 하나 늘고 대법원장 지명 몫이 하나 줄어드는 결과가 되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 전 후보자를 사퇴시키고, 대신 대법원장이 헌재재판관을 한 명 더 추천하도록 청와대와 대법원이 사전 협의를 가졌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대법원이 지난달 16일 전 후보자 발표에 맞춰 헌재재판관 후보자 2명을 발표할 수 있었던 것도 전 후보자의 사퇴를 사전에 알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당초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헌재재판관 후보자는 1명이었다. 여당의 주장대로 어느 수위에서건 사전 조율(혹은 통보)이 있었다는 얘기다.

    열린우리당은 이 같은 주장을 근거로 사법부의 정치적 독립성 논란은 일단락됐으며, 문제는 다시 인준 절차상의 법적 미비라는 원점으로 돌아갔다고 보고 있다.

    문병호 제1정조위원장은 "전효숙 헌재재판관 사퇴는 헌재 구성에서 대법원 지명 몫을 유지하려는 의도를 갖는 것"이라며 "사법부의 독립성을 침해하려는 것이 아니라 보장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주장했다. 김한길 원내대표가 11일 "6년 임기를 위한 사퇴는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의견을 수렴한 임명권자의 결정이었다"며 "사법부의 요구를 근거로 한 대통령의 판단을 후보자가 수용한 것"이라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때문에 여당은 한나라당의 공세가 상당분 근거를 상실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단순한 법 형식의 미비를 이유로 동일한 내용의 청문회를 다시 열자고 하면 국민들이 과연 수긍하겠느냐는 것이다. 

    인사청문회에 멀쩡히 참석했던 한나라당이 ‘원천무효’를 선언하며 판을 뒤엎기에는 명분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단지 인준 절차의 문제에 국한된 것이라면 당초 ‘청문회’ 자체를 거부해야 옳았기 때문이다. 여당이 11일 한나라당에 대한 총공세에 나선 데는 이런 판단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귀신 작전, 얄팍한 꼼수, 대법원 누구와 어떻게 협의했는지 밝히라"

    한나라당은 전 후보자의 헌재재판관 사퇴에 앞서 대법원과 조율이 있었다는 청와대와 여당의 주장을 "이번 사태의 책임을 사법부에 미루려는 얄팍한 꼼수"로 규정했다.

    나경원 대변인은 11일 "대통령의 헌법재판소장 임명 과정에서의 여러 가지 문제점을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까지 끌여들여 희석시키려 한다"면서 "과연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공감을 운운하고 있는데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와 어떠한 사전 의견 조율을 했는지, 사전의견 조율을 한 부분이 있다면 이에 관한 모든 과정을 공개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측 인사청문특위위원인 김정훈 의원도 "사태의 책임을 분산시키기 위한 청와대와 여당의 물타기"라며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누구와 어떻게 협의를 했는지 집중적으로 추궁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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