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또 저들을 찍을 것인가?
    총선에서 노동자의 선택
    [총선기고] 비례위성정당 : 거대 양당의 반민주적 꼼수, 반칙, 깡패정치
        2020년 04월 09일 10:5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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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고 글은 공공운수노조 정차신문 <정치가 반이다>에도 실린 글이다. 동의를 얻어 레디앙에 게재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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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폐(積弊)의 뜻은 이렇다. “누적된 폐단, 즉 오랫동안 점차 누적된 그릇된 것들이 뭉친 것’”을 가리킨다. 우리 사회에는 적폐가 산더미다. 대표적인 적폐 중 하나가 바로 민주주의를 가로막고 민심을 왜곡해온 선거제도다.

    한국 정치와 국회는 수십 년 간 거대 보수양당이 여야를 바꿔가며 권력을 독점해 온 놀이터였다. 세상은 늘 정치와 국회의원을 비난하다가도, 선거철이면 또 가진자들에게 몰려들어 표를 헌납하고 권력을 누리도록 했다. 잘못된 선거제도에 갇혀 대안을 만들 수 없으니 또 거대 양당에게 “잘~ 부탁드립니다”라며 아첨해 왔다.

    민주주의의 축제는커녕 민주주의를 망쳐온 선거제도

    국민의 대표 300명을 뽑는 우리나라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지역 후보를 선출하는 소선구제가 주축이다. 253명을 지역에서, 47명만을 비례로 뽑고 있다. 이게 문제다.

    첫째, 지역 후보를 뽑는 풍토부터가 후진적이고 탐욕에 찌들어 있다. 보수 색채가 강한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일수록 지역개발 공약을 남발한다. 이런 지역개발은 국회의원이 할 일이 아니다. 그건 지자체장들에게 맡길 일인데, 여전히 국회의원들은 지역의 부동산 투기 욕망을 부추겨 권력을 챙긴다. 국회의원이란 본디 나라 전체의 비전과 방향을 제시해야 제대로 된 국회의원이다. 불행히도 한국 정치는 그런 국회의원을 국회에 앉히지 못해왔고, 지역의석이 너무 많다.

    둘째, 지역의 1등 득표자가 모든 권력, 아니 득표 이상의 권력을 독차지하는 소선구제가 핵심 적폐다. 가령 수구 정당 후보가 45%를 득표하고 보수정당 후보가 35%, 진보정당 후보가 20%를 얻어도 모든 권력은 수구 정당 후보가 독차지해왔다. 그 결과 55% 국민들의 민심은 국회의석에 전혀 반영되지 않고 사표가 되는 선거구조가 소선구제인 것이다. 즉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 바로 국회이고 정치였던 것이다.

    강조하건데 소선구제에서는 55% 국민의 표심은 쓸모없는 사표가 되고, 새로운 정치세력인 진보정당을 찍는 표심은 사표의 압박에 견디지 못해 다시 거대보수 양당 중 덜 나쁜 쪽을 찍고 마는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수십 년을 이어온 한국정치다. 그러니 혁신세력은 성장하지 못하고 늘 해 먹는 당이 해쳐 먹으며 군림하고 부패하는 것이다.

    실제 지난 20대 총선에선 수구 정당인 새누리당은 33.5%를 득표했지만 전체 의석수 중 40.7%를 차지했고, 더불어민주당은 25.54%를 득표 했지만 의석은 41%을 차지했다. 두 당이 합쳐서 59.04%의 지지로 국회의석의 81.7%를 장악한 것이다. 가장 최근에 치러진 2018년 지방선거에선 민주당이 서울에서 50.9%의 지지를 받았지만 92.7%의 의석을 챙겼고, 반면 대구에선 자유한국당이 46.14%의 지지만으로 83.5%의 의석을 차지했다. 국회와 지방의회의 권력을 독점하는 놀라운 마법의 비밀이 바로 선거제도에 있다. 이것은 민주주의라 할 수 없는 민의의 심각한 왜곡이다. 선거결과 민의에 비례한 의석이 구성되는 게 아니라, 소수의 기득권 세력은 지나치게 많은 대표권을 행사하고, 다수의 약자를 대변하는 세력은 지나치게 적은 대표권을 행사하거나, 대표권을 행사할 기회조차 가지지 못해왔다.

    이러한 ‘과대 대표’와 ‘과소 대표’의 폐단을 개선하고자 유명무실했던 비례대표제를 조금이나마 개혁하려 한 것이 바로 연동형비례대표제다. 대부분의 복지국가 선진국의 선거제도가 바로 비례대표제 중심이거나 연동형비례대표제다. 그런데 미래통합당의 폭력적 훼방과 더불어민주당의 탐욕에 가로막혀 온전한 연동형비례대표제가 아닌, 절반만 민심의 비례성을 반영한다고 하여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라고 불리는 반토막 비례대표제가 탄생한 것이다.

    민주노총 포함 시민사회의 위성정당 해산 촉구 기자회견 자료사진

    비례위성정당이 보여준 꼼수, 반칙, 깡패정치, 그래도 찍어야 하나

    민주주의를 열망해온 시민들은 그나마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일지라도 이전보단 나은 선거제도의 개혁이 이뤄졌고, 이로써 민주주의는 조금이나마 한 발 더 전진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민의 그대로, 표심 그대로’ 총선이 되길 기대했다. 그러나 한국의 보수적 정당정치는 저질 중의 저질이었다. 알량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마저 무력화시키려는 꼼수, 반칙, 깡패정치가 난무하기 시작했다. 그 행동대가 바로 미래통합당의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이고 더불어민주당의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과 열린민주당이다. 이들 거대 양당은 연동형비례대표제의 맹점을 찾아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기상천외한 위성정당을 창당해놓고선 뻔뻔하게도 “우리당과 상관없는 다른 당”이라며 선관위의 합법 판정을 받아냈다.

    이들 위성정당은 민주적 선거제도의 핵심인 민심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는 비례성, 대표성의 가치를 노골적으로 파괴했다. 다시 말하지만 민심의 대표성, 비례성이라 함은 10%의 지지를 받는 정당은 국회의원 300석 중 30석을 얻는 상식적 원칙이다. 그런데 한국의 선거제도는 1등만 기억하는 소선거구제 국회의석을 253석으로 고정해버렸기 때문에 나마지 47석만 가지고 비례성을 반영해야 하는 큰 제약이 있다.

    따라서 비례성과 대표성을 조금이나마 제대로 반영하려면 지역구 의석과 비례의석을 합해 10% 득표율에 비례해 의석을 정하는 연동형 방식으로 표심을 반영해야 한다. 그런데 그들은 이러한 연동형 방식을 축소하려고 47석 모두가 아닌 30석에만 연동성이 적용되도록 했다. 거기에 더해 이제는 아예 이런 기형적으로 쪼그라든 비례의석마저도 다 차지하려고 거대 양당은 비례후보만 출마시키는 위성정당을 만드는 막장에 이르렀다. 이렇게 되면 민심 그대로의 대표성과 지지율 그대로의 비례성은 심각하게 무너지고, 오히려 민주적 원칙을 지킨 진보정당이 손해를 보게 된다.

    정책도 없는 미래한국당, 더불어시민당의 난장판 총선, 그래도 찍을 것인가

    “정치 퇴행, 민주주의 위협하는 총선”, 한 언론이 뽑은 제목이다. 보수 양당의 반칙정치, 깡패정치의 산물인 비례위장정당에 당연히 정책이 있을 리 없다. 한편은 “문재인을 끌어내자”고 하고, 다른 한편은 “탄핵세력의 부활을 막자”며 저질 막장 다툼을 벌이고 있을 뿐이다. 동물적인 권력욕을 가진 적폐세력은 기민하게 움직인다. 그리고 남은 것은 무차별 꼼수와 야합, 국회의원 빌려주기와 같은 막장 코미디다. 그러나 웃을 수가 없다. 코로나 비극을 맞이한 국민들은 정치를 포기할지도 모른다. 유권자의 판단은 무뎌지고 정치에 대한 환멸로 이어지며, 무슨 짓거리를 벌이든 결국 또 정치권력은 모리배들의 차지가 될지도 모른다. “무너진 일상과 희극의 정치” 이게 21대 총선을 앞 둔 한국사회다.

    저 막장 거대 양당을 대체할 유력한 진보정치가 필요하지만, 오히려 위태롭다. 그러나 아직 다른 길은 없다. 심판자인 시민들이 반칙 정치를 퇴장시켜 줄 것을 심할 정도로 어필해야 한다. 촛불이 요구한 것은 낡은 정치를 포함해 “모든 적폐의 청산”이다. 우리 사회 도처에 깔린 악습을 몰아내야 한다. 가진 놈이 더 가지는 정치 양극화가 사회 양극화의 주범이다. 최악의 총선이지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 천박한 거대자본과 거대 보수 양당의 지배동맹이 유지되는 한, 적폐청산도 노동존중도 없다. 그 동맹은 코로나 이후 경제위기를 핑계로 또다시 인간을 잡아먹는 야수로 돌변할 것이다. 그렇게 정치는 우리 노동자의 삶이 된다. 총선에서부터 막아내야 한다. 비례위성정당부터 심판해야 한다.

    1997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전 민주노총 위원장 권영길, 당시 국민승리21 후보는 투표일 며칠 전에 명동성당 앞에서 삭발을 했다. 우리 정치사에서 처음 있는 대통령 후보의 삭발이었다. 권영길 후보는 “나에게 주어지는 표만큼 정리해고를 반대하는 노동자의 힘이 결집되는 것이다. 200만 표를 주면 정리해고를 막을 수 있고, 300만 표를 주면 재벌경제를 개혁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시 민주노총 조합원 46만 명에도 못 미치는 30만 6,026표를 받는데 그쳤다. 그 뒤에 정말로 해고가 일상이 되고 비정규직이 양산됐다. 선거도 투쟁이다. 노동자 계급투표로 진보정치가 다시 선다면, 그것은 또 하나의 진지다. 국회의원 의석 비율에 따라 노동자의 불행과 행복의 비율도 달라진다. 보수정치의 난장판 총선 그래도 그들을 찍을 것인가?

    필자소개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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