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성정당의 시대,
    소탐대실과 정치적 로또
    [기자생각] 2004년과 2020년 총선
        2020년 04월 08일 04:4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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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의 선거 지형이 얼마나 엉망진창인지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8일 선대위 발언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소수정파를 육성하기 위한 법인데 그 법이 통과되고 나니까 유명인들이 모여서 따로 당을 만들어서 활동하고 있다”며 “그 분들은 큰 스피커를 가지고 있으며 정치적으로 소외된 약자들이 아니”라고 비판했다. 소수정파의 정치적 공간을 부수고 왜곡시킨 위성정당 파동의 주인공이 할 말은 아닌 듯하지만.

    이 대표의 발언은 민주당의 ‘제1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의 지지율이 또다른 위성정당이라고 할 수 있는 열린민주당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다. 6일 리얼미터 여론조사에 의하면 비례대표 정당 지지도에서 미래한국당 25%, 더불어시민당 21.7% 열린민주당 14.4% 정의당 8.5%, 국민의당 4.7%로 나왔다. 나머지 당들은 의석 배정 기준인 3%에 미달했다. 이를 대략 비례 의석수로 계산하면 미래한국당 15~16석, 더불어시민당 12~14석, 열린민주당 7~9석, 정의당 4~6석, 국민의당은 3~4석 정도로 예상된다. 아직 시간이 있고 변수는 있지만.

    민주당 지도부가 조급해진 것은 자신들의 진성 비례대표 후보들이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순번 11~30번에 배치되어 있고, 이 중에서 최소한 7~8석은 민주당 진성 비례대표 후보들이 챙길 수 있다고 봤는데, 이 계산이 어그러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하향세인 더불어시민당의 정당 지지율로는 14석 전후가 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당연히 안정적이라고 봤던 14번 김홍걸 민화협 대표상임의장도 불안해지고 있는 거다. 반면 정봉주, 손혜원이 급조하여 만든 열린민주당은 애초 3% 전후의 정당 지지율에서 10%를 넘는 지지율로 급등하면서 예상의석이 2배~3배 이상 증가했다. 이번 총선 국면에서 로또를 맞고 지나가다가 돈지갑 주운 정당은 현재로선 열린민주당이 될 터이다.

    이 흐름을 살펴보면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소탐대실

    미래통합당이 연동형 선거제도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급조하여 만든 위성정당 미래한국당을 맹렬하게 비판 비난하다가 자신들도 의석수 계산에서 손해를 볼 수 없다며 급조해 만든 위성정당 더불어시민당에 대한 유권자들의 비판이 생각보다 크고 깊다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 그냥 자기들이 이러저런 시나리오를 짜고 추진하면 지지자들이 군소리 없이 지지해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유권자들을 아무 생각 없는 사람들로 간주한 것에 대한 후과이다.

    결국 이대로 가면 민주당이 위성정당을 만들지 않고 자체적으로 비례대표 후보를 내면 당선 가능한 숫자라도 봤던 7~8명의 진성 민주당 비례대표 후보들도 못 챙길 가능성이 높다. 물론 1~10번에 배치된 소위 소수당(?)과 시민사회 추천 인사들은 제대로 혜택을 보게 될 듯하다. 그런데 그게 소수정당에 대한 배려 혹은 연합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옹색하다는 건 민주당 외 대다수 국민들이 알고 있다. 그런 점에서 위성정당 만들려다가 자신들의 진성 비례대표 후보들은 반타작하게 생긴 민주당이 ‘소탐대실’을 하게 된 것이다.

    둘째, 정치적 로또

    정봉주 등 친문이지만 민주당에서 소외되거나 공천에서 배제된 인사들이 급조해서 만든 열린민주당은 말 그대로 ‘1회용 정당’인데, 이들이 정치적 로또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이들이 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해 어떤 정치활동을 했고, 어떤 공약과 정책을 제시했으며 어떤 일상활동들이 있었는가? 없다. 말 그대로 “우리가 문재인 정부의 진정한 자식들이고 우리들이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할 것”이라는 레토릭 외에 지지를 호소할 꺼리는 없다.

    정당이라기보다는 친문 일부 정치인들의 ‘정치구락부’라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그래서 최근 열린민주당의 지지율 급등은 자체의 노력과 이미지와 정책 등으로 통해 얻어진 게 전혀 아니다. 더불어시민당이 의원 꿔주기 등 미래한국당의 저질행태를 그대로 답습하니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 지지 성향의 유권자들이 차마 위성정당을 찍을 수 없는 지경에 몰린 것이다. 그래서 대체재를 찾으면서, 차라리 막장이지만 화끈한 친문 기조를 드러내는 열린민주당으로 지지가 일정하게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적 로또란 이런 걸 말할 것이다.,

    셋째, 대의명분

    이번 총선에 3% 지지율 이상의 정당 중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정상적으로 낸 정당은 딱 두 군데이다. 정의당과 민생당. 나머지는 지역구 전용정당, 비례대표 전용정당일 뿐이다. 미래한국당과 더불어시민당만이 아니다. 열린민주당과 국민의당도 지역구 없는 비례대표 전용정당이다. 더욱이 열린민주당은 민주당의 효자정당을 자임하는 ‘제2위성정당’이고 총선 후 민주당과 통합하겠다는 걸 공언하고 있는 ‘1회용 정당’이다.

    민주당과 그 안팎의 친문 세력들, 그리고 이에 부화뇌동하는 다양한 지식인 그룹과 일부의 시민사회 인사들에게 정의당은 괘씸죄가 단단히 박혔다. 자신들이 추진하는 위성정당을 그럴 듯하게 포장해주고 알리바이 역할을 해줘야 할 정의당이 자신들 말을 듣지 않은 것 때문이다. 반면 열린민주당은 그냥 관심 밖이었다. 그런데 위성정당의 막장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혐오와 비판이, 친민주당이거나 중도층 또는 합리적 보수층에서도 거셌다. 진보적 시민사회의 대다수도 민주당-미래통합당 거대양당의 위성정당에 대해 비판하고 위헌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역풍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그 역풍은 민주당 지지층에서도 제법 강하게 형성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대체재를 찾기 시작했고 열린민주당 정도가 낙점이 됐다.

    비례대표 위성정당 파동으로 미운 털이 박힌 정의당에게는 아직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민주당 지지성향 중에서도 상식적이고 깨어있는 층이나 중도층, 또는 보수층에서 합리적 판단을 하는 유권자 층에서는 조금씩 정의당에게 마음을 문을 열고 있다. 정의당의 행보가 이러저러한 정치적 실리가 아니라 연동형 선거제도, 정치개혁의 원칙과 대의명분을 지키려고 한 것이라는 주장에 조금씩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것이다. 비례투표 정의당 지지율의 상승이 작지만 소중한 그 징표이다.

    넷째, 찢어진 깃발

    2019년 한국 정치의 1년을 도배했던 게 소위 선거제 개혁을 둘러싼 패스트트랙 정국이었다. 하반기에는 조국 전 법무부장관 사태가 드셌지만 그 와중에서도 선거제 이슈는 지속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작년 12월 ‘50% 연동’에도 못미치지만 어쨌든 준연동형 선거제도가 통과되었다. 하지만 거대양당의 위성정당 막장 정치로 인해 준연동형 선거제도는 걸레가 되었고 선거 현실에서는 무의미한 게 되어버렸다.

    비례대표 의석수는 47석에서 1석도 늘리지 못했다. 2004년 1인 2표를 통해 비례대표제가 만들어졌을 때의 56석보다 근 10석이 줄었다. 그래서 나온 게 연동형을 도입하여 정당 지지을과 의석 점유율을 조금이라도 일치시켜보자는 것이었는데 이 또한 30석 캡이라는 이름으로 반쯤은 유명무실해졌다. 결정적으로 지역구 정당-비례대표 정당이라는 기상천외의 정치, 위성정당들이 등장하면서 30석 캡이라는 의미도 사실상 없어졌다. 더욱이 거대양당의 세트라고 할 수 있는 위성정당만이 아니라 그냥 비례대표 전용정당인 열린민주당과 국민의당 행태로 인해 과거의 병립형 선거제도보다도 현실은 더 후퇴했다.

    예를 들어 2004년 17대 총선에서는 민주노동당이 13.1%의 정당 지지율로 8번 노회찬을 마지막으로 해서 8명의 비례대표 의원이 당선되었다. 그런데 지금 2020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21대 총선에서 정의당이 13.1%를 받으면 몇 석이나 확보될까? 6석도 힘든 상황이다. 그리고 아마 병립형 선거제도였으면 적어도 열린민주당 같은 ‘1회용 정당’은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제도’는 절반의 몫이고 나머지 절반은 그 제도를 운용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의 몫인 것이다. 대한민국의 정치를 이끄는 정치지도자들이 제도를 망치고 걸레로 만든 꼴이다.

    필자소개
    레디앙 편집국장, 전 진보신당 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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