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보다 20년 뒤쳐진 '불쾌한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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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9월 11일 12:3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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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이들이 무슨 죄

    서울시를 포함한 수도권의 환경수준은 전세계 최악이다. 이 중에서 관리가능한 지표로는 미세먼지가 있는데, 명실공히 OECD 수준 중 세계 최고이다.

    <비전 2030>에 따르면 수도권에서의 아이들의 천식과 아토피로 인한 사회적 손설이 연간 4.1천억이라고 한다. 실제 비용은 이것보다 더 높을 것 같은데, 하여간 어차피 추정이니까 절대적인 숫자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어차피 이 지역에서 네 명의 아이 중에 한 명이 아토피와 천식을 앓고 있고, 강남 같은 경우는 세 아이 중에 한 명이 아토피이다. 어차피 자신이 살고 싶어서 걸리는 병인데 어쩔 것이냐고 야박하게 몰아붙일 수도 있지만, 그야말로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겠나. 사회가 원천적으로 문제의 소지를 줄이도록 노력할 수밖에…

    2. 이명박의 약속

    미세먼지는 자동차와 건설부문에서의 발생비율이 7:3 혹은 8:2 정도 된다. 여기에 중국에서 불어오는 황사가 개입하게 된다. 4월에 황사 심할 때에는 우리나라에서 방진 시설이 제일 잘 된 삼성반도체도 하루나 이틀 정도는 공장을 세운다. 그야말로 답 없는 날이 며칠 된다.

    이명박 시절에 뉴타운 한참 한다고 하고, 종합적 교통대책 같은게 제시되지 못하면서 이 미세먼지가 문제로 여러 번 지적되었다. 정말 대답이 없어서 조사하지 못하던 지하철 미세먼지의 문제는 <국민일보>에서 기획기사로 나왔다. 

    코너에 몰리니까 이명박 시장이 환경부와 협의해서 10년 내에 35㎍/㎥(현재는 70㎍/㎥ 안팎)로 하겠다고 했다. 10년 내에 동경시 수준이 되겠다는 것이다. 이게 수도권 대기개선대책 10개년 계획으로 시작된 건데 똑같은 자료가 어떨 때에는 서울시 자료가 되기도 하고, 환경부 자료가 되기도 하고, 오세훈 서울시장의 공약이 되기도 했다.

    어차피 이명박이 하겠다고 하고, 환경부도 환경보건과를 신설하면서 그렇게 하겠다고 한 건데, 오세훈 시장 공약이 된 건 웃긴다. 더 웃기는 건 이미 정부계획인데도 불구하고 강금실은 아예 공기 문제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이 없이, 아이들이 행복한 서울을 만든다고 했다는 사실이다.

    ‘아픈 아이들의 세대’

    하여간 이명박의 계획은 야심차지만, 두 가지 문제가 있다. 논리적으로는 35㎍/㎥수준이 만족할 수준이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동경도 미세먼지의 지옥인 건 마찬가지고, 미국에서 가장 오염된 도시 중의 하나인 뉴욕이 29㎍/㎥임을 감안할 때 10년 후 동경수준으로 간다는 것은 결코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다.

    유럽의 도시들은 10㎍/㎥  근처를 유지한다. 뭔지 모르지만 서울은 유럽 도시보다 7배 이상한 도시라고 보면 되는데, 황사의 영향이 있으니까 이 중의 일부는 감안을 해야 하기는 한다.

    이명박 전 시장의 10년 후에는 동경수준으로 간다고 하더라도 지금 태어나서 영아와 유아기를 보내는 아이들은 어떻게 할까? 이 아이들은 대책없다. 10년 동안 참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데, 재수없게 서울 혹은 수도권 지역에서 이 기간에서 유아시절을 보내는 세대는 그야말로 불운한 세대이다. 나는 이 아이들을 <아픈 아이들의 세대>라고 부른다.

    3. <비전 2030>의 약속, 아니 뭐야?

    이명박과 환경부가 10년 안에 한다는 계획이 쭈욱 늘어뜨려서 2030년 ’30㎍/㎥’로 하겠다고, <비전 2030>은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쾌적한 삶”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물론 말로는 환경부가 하기로 한 것만큼 – 그러니까 BAU(Business-as-usual) 만큼 – 하겠다고 하고, 실제로는 그만큼도 안한다는 말을 하고 있다. 원래에도 환경부가 결국 서울시의 요구를 받아들여 10년 내에 나름대로 뭔가 하겠다고 했는데, <비전 2030>은 이걸 2030년까지, 아주 천천히 하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미세먼지를 줄이는데, 단기 대책은 공사량 조절, 중기 대책은 교통체제 혁신, 장기 대책은 중국에서의 황사문제의 근원을 해결하기 위한 몽고 등 내륙 사막화진행 지역의 식목 등을 통한 근원대책을 얘기할 수 있다.

       
     ▲ <비전2030> 홍보 브로셔
     

    <비전 2030>은 사실상 아무 것도 안하겠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2030년이 되면 이명박이 열심히 짓겠다고 계획했고, 그 바턴을 이어받아 오세훈도 열심히 짓겠다고 한 뉴타운을 비롯한 신규건설과 재건축/재개발이 어떻게든 다 끝난다.

    그 시기가 되면 어차피 더 이상 지으려고 해도 지을 뭔가가 거의 없는 시기가 올 것이고, 많은 사람들은 10년 후에는 서울도 공동화와 슬럼화가 진행되면서 사람들도 빠져나가고, 교통량도 빠져나갈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예측한다.

    그냥 있어도 2030년이면 서울이 동경시 수준으로 미세먼지량이 줄 것이다. 지금과 같은 생동력을 서울이 그 때까지 유지하고 있을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명박은 10년내에 35㎍/㎥로 간다고 했는데, 이 수준을 2030년까지 질질 끌겠다는 <비전 2030>은 사실상 수도권의 대기질 개선을 위해서는 아무 것도 안 하겠다는 말이다. “쾌적한 미래”에서 ‘쾌적’이라는 말은 빼는 것이 옳다.

    4. 한미 FTA와 4대선결조건

    의심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기본계획은 어차피 정부방침이므로 크게 바뀐 것이 없을테지만, 대기질 전망이 이렇게 10년 목표에서 2030년 목표로 바뀔만한 변화는, 보고서가 몇 번이나, 그리고 여러 곳에서 강조하고 있듯이 한미 FTA를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미국이 우리나라에 요구한 4대 선결조건 중 하나가 수도권대기질 개선을 비롯한 대기정책을 통한 ‘큰 자동차’에 대한 압박을 거두어주는 것이다. 서울과 수도권 문제의 본질은 “자동차이다"라고 서울시와 환경부도 여러번 강조한 적이 있다 (난 이 말이 꼭 맞는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현재의 정부 정책방향은 큰 차에게 더 많은 경제적 부담을 지워서 적어도 서울과 수도권에 사는 사람들은 되도록이면 작은 차 그리고 경유차가 아닌 일반 휘발유차를 타도록 유도하는 것이 한 방향이다. 물론 뻑하면 3,000cc를 넘어서는 미국 차들에게는 판매에 있어서 가혹한 조건이 앞으로 형성될 것이고, 그래서 이 서울 지역의 큰 차에 대한 압박을 줄이는 것이 미국의 4대 선결조건이다.

    어차피 이렇게 비싼 차를 살 사람은 서울과 수도권에 몰려 있을 것이고, 이 곳에서 아토피 대책 등을 위해서 미세먼지를 압박하면 결국 최종적으로 미국 차가 불리하다… 사실상 이게 한미 FTA의 4대 선결조건의 배경이다.

    비전 2030이 제시하는, 10년이 아니라 30년에 하겠다는 전망치가, 만약 과학적인 시뮬레이션 모델링에 기초하고 있다면, 자동차에 대한 압박조건을 줄인 상태에서, 발전소나 공장 등에 대한 오염물질 총량제만을 정책 옵션으로 하고 있다면, 비슷한 수치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미세먼지 발생량이 줄어들지만, 자동차를 빼고 난다면 10년 내에 줄일 가능성이 없어, 30년은 걸릴 것이다… 이런 시나리오가 정책의 변화를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희박한 가능성 중의 하나인 셈이다.

    5. 반환경, 반생태 <비전 2030>

    <비전 2030>은 이명박이나 현재까지의 건교부 계획 등의 그간 ‘정부기조’에 비추어 볼 때, 가장 반환경적인 계획이고, 또 가장 반생태적인 계획이다. 물론 미사여구가 조금 있기는 하지만, 나처럼 숫자만 보는 사람의 눈에는 “그렇지만 정부는 아무 것도 하지 않겠다”와 “너희들도 아무 것도 하지 마라”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으로 밖에 안보인다.

    YS가 처음 비전 어쩌구하는 환경종합계획의 틀을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행했는데, 노무현 대통령이 소신껏 만들어낸 <비전 2030>은 최소한 환경과 생태의 눈으로 보면 DJ 시절은 물론이고, YS의 시대정신보다도 훨씬 뒤로 후퇴해있다. YS는 ‘총량’이라는, 당시 전세계적으로 캐나다의 일부 시범사업을 제외하면 한 번도 이행해보지 않았던 개념을 들고 들어왔다. DJ 때는 ‘예방성 원칙’을 정부 방침으로 상당히 강도높게 받아들였다.

    노무현은? “난 아무 것도 안해, 앞으로 25년간…”의 정신을 담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물론 국립공원 목표치와 같이, 책임지기 어렵고, 그야말로 "말로는 뭘 못해" 같아 보이는 황망한 것들이 있는데, 이것 말고 실제로 대기와 수질 혹은 삶의 질의 직접적 예측을 만들어주는 기초 목표치들은, 수도권 대기질의 경우와 같이 황망하다.

    환경-보건단체 주장과 정확하게 정반대 방향으로

    내가 학위를 받고 우리나라에 돌아온 것이 11년 째인데, YS 때부터 정부의 주요 환경시책과 에너지정책에 대해서 맨 처음 살펴보고, 많은 경우에는 지금처럼 신문에 발표되기 이전에 정책의 내부 모순과 잘못 잡혀진 목표수준을 검토해서 오류를 잡아주는 일을 오랫동안 했던 셈이다.

    미세먼지의 경우도 총리실에 있던 시절에 기후변화협약 종합대책의 일환으로 키우고 예산을 늘리는 일을 했던 적이 있다. 이런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미래 정책에 가까운 환경 대책이 정부의 종합계획 혹은 장기비전에서 지금과 같이 극적으로 후퇴한 경우는 일찍이 본 적이 없다.

    인간의 말로 바꾸면, 사실상 한미 FTA가 체결되면 어떤 변화가 올 것인가를 이미 관련된 연구자들이 시나리오로 사용하고 있고, 그 재앙적 상황이 이미 첫 번째로 <비전 2030>에 반영된 셈이다. 아토피와 천식은 노무현 대통령의 희망대로 2030년까지 발병률이 줄어들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누적 효과 때문에 늘어날 것이다. 그래서 이 계획은 반 환경적일 뿐더러, 반 아동적이고, 그래서 비인간적인 계획이다.

    “아이 많이 낳아서” 군대의 규모를 유지해야 한다는 극우파적인 집착만을 가지고 있지, 지금 우리 아이들이 왜 아프고, 아토피가 왜 증가하고 있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대책은 하나도 없다.

    이런 천기누설은 환경과 관련된 정책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고, 농업정책과 식품안전 정책에 일괄되게 등장한다. 어쩌면 환경단체와 보건단체가 주장했던 것과 이렇게까지 딱 정반대로 갈 수 있을까?

    이명박 시장이 그랬듯이 정부도 보건과 환경에 관해서는 시민단체의 주장을 조금씩 수용하고, “현실적인 범위 내에서 구연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던 것이 지난 2년 간의 흐름인데, 비전 2030은 “난 한미 FTA로 간다”, “미국 수준의 쾌적한 삶이 보장될 것이다”라는 두 가지 말만 있다. 물론 정책은 없다.

    노무현 대통령이 바라본 끔찍한 2030년의 모습에서 지금 아토피와 천식에 시달리는 아이들, 그리고 앞으로 태어나게 될 아이들의 미래는 없고, 그들에게는 아무 비전없는 수도권의 미래가 펼쳐지게 된다.

    다른 건 몰라도 환경과 생태 그리고 유아 보건의 눈으로만 본 <비전 2030>은 <지옥 2030>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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