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퍼즐을 만들기를
[그림책 이야기] 『르 데생』(마르크 앙투안 마티외/ 에디시옹 장물랭)
    2020년 04월 04일 05:1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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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편지

화가 에두아르의 장례식이 열립니다. 단짝 친구이자 화가인 에밀은 담담한 모습으로 장례식을 치릅니다. 아마도 친구 에두아르가 영영 떠나버렸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자 슬픔이 몰려옵니다. 에밀은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 보내며 아무 그림도 그리지 못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에두아르가 보낸 마지막 편지가 도착합니다. 에두아르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미리 에밀에게 편지를 써 두었던 것입니다. 편지에서 에두아르는 에밀에게 선물을 남기고 싶다며 주소를 하나 알려줍니다. 그곳에 가서 많은 물건 가운데 하나를 고르라고 합니다. 에밀이 고른 것이 곧 자신이 주고 싶은 선물이라며 말입니다.

에밀은 편지에 적힌 주소지로 찾아갑니다. 창고 관리인은 에밀을 반갑게 맞아줍니다. 창고는 에두아르가 수집한 온갖 예술품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창고 안에서 꼬박 하루를 보낸 에밀은 한 데생 앞에 멈추어 섭니다. 데생은 에두아르가 살던 아파트 내부를 그린 것이었고 제목은 반사(reflection)였습니다. 에밀은 그 데생을 자신의 선물로 고릅니다.

집에 돌아온 에밀은 에두아르의 편지와 데생을 번갈아 살펴봅니다. 신기하게도 편지의 첫 글자를 모아보니 데생의 제목과 같은 Reflection입니다. 에밀은 문득 데생에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에밀은 돋보기를 듣고 데생을 자세히 들여다보기 시작합니다. 놀랍게도 데생은 너무나 정교했습니다. 과연 에두아르는 데생에 어떤 비밀을 숨겨 놓았을까요? 게다가 에밀이 데생을 고를 것이라는 걸 에두아르는 어떻게 알았을까요?

복잡한 퍼즐, 그 이상의 계획

마르크 앙투완 마티외가 만든 『르 데생』의 첫 장을 펼친 독자라면 아마 마지막 장을 넘길 때까지 숨도 못 쉬고 푹 빠져들 것입니다. 다행인 것은 『르 데생』이 그리 길지 않는 작품이라는 사실입니다. 만약 『르 데생』이 『토지』나 『태백산맥』처럼 엄청난 분량이었다면 너무 몰입한 나머지 숨 쉬는 일을 까먹어서 심각한 불상사가 생겼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죽은 친구에게서 편지가 온다는 것만으로도 신기할 노릇입니다. 그런데 친구는 나에게 선물을 남겼습니다. 게다가 수많은 물건 가운데 내가 고를 물건을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작품의 제목과 편지의 첫 글자를 일부러 똑같게 만들어서 자신의 작품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했습니다. 그리고 작품 속에는 정말 상상도 못 할 선물을 숨겨 놓았습니다.

마르크 앙투완 마티외는 이 복잡하고 정밀한 구조물을 정말 마술처럼 세련되게 완성했습니다. 그가 만든 퍼즐은 그저 그런 수수께끼가 아닙니다. 만약 그저 복잡하고 세련된 수수께끼였다면 독자들의 머리만 아프게 만들었을 겁니다. 그는 사랑하는 두 친구를 위한 퍼즐을 만들었습니다. 작품 속에서 화가 에두아르는 혼자 남게 될 친구 에밀을 위해 퍼즐을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퍼즐은 주인공 에두아르와 에밀이 함께 만들어가는 우정의 퍼즐이기에 아름답고 감동적입니다. 에두아르에게는 다 계획이 있었습니다.

코비드19 시대의 에두아르

어쩌다 우리는 지금 전염병이 만연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코비드19에 감염될까 두려워서 회사도 못 가고, 학교도 못 가고, 집 밖에도 못 나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감염된 사람도 있고 죽은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살아남은 사람 역시 살아도 사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보다 나중에 죽는 사람에 비하면 우리는 모두 먼저 떠나는 선배가 될 것입니다. 마치 에밀을 두고 먼저 떠난 에두아르처럼 말이지요. 두 사람 사이에는 『르 데생』이라는 퍼즐이 있습니다. 퍼즐을 풀어가는 에밀을 보면서, 왠지 『르 데생』이라는 그림을 그리고 퍼즐을 만든 에두아르가 에밀보다 더 행복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에밀이 퍼즐을 푼 시간보다 에두아르가 퍼즐을 만든 시간이 더 길었기 때문입니다. 에두아르가 에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음에도 말입니다.

물론 우리 모두에게는 인생의 함정이 있습니다. 누가 먼저 세상을 떠날지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그 사실은 에두아르와 에밀에게도 적용되는 함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에두아르와 에밀의 차이는 누가 먼저 세상을 떠나느냐가 아니라, 에두아르에게 계획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일상으로 만드는 사랑의 퍼즐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제안합니다. 에두아르처럼 사랑의 퍼즐을 만들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떠나도 남아있는 사람들을 위해 사랑의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면 좋겠습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우리를 기억하고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선물을 남겨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는 가족들을 위해 깜짝 선물을 준비할 것입니다. 누군가는 호기심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퍼즐 같은 선물을 준비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복잡한 퍼즐을 만들 자신이 없습니다. 저는 그냥 제가 살던 일상에 사랑을 담아서 계속 살아가겠습니다. 쉽고 재미있고 아름다운 그림책을 만들고 소개하는 일을 죽는 날까지 쉬지 않고 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아름답고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여러분이 하던 일을, 사랑을 담아서 꾸준히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살아남은 에밀이 『르 데생』을 보며 사랑과 행복과 지혜를 얻은 것처럼, 여러분이 사랑하는 사람들 또한 여러분이 만들어준 추억 덕분에 행복할 것입니다.

필자소개
이루리
동화작가, 그림책 평론가, 도서출판 북극곰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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