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쏘련 사람이다”
    [쏘련-미래를 향한 추억①] 비자본주의적 근대의 도전
        2012년 04월 30일 08:4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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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노자 교수는 청소년기에 자신이 태어난 나라가 이름이 바뀌는 것을 경험했다. 바뀐 것은 나라 이름뿐이 아니었다. 체제도 바뀌고 사람들의 생각도 바뀌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후 자신은 국적을 바꿨다.

    박 교수는 간혹 글을 통해 청소년 학생 시절의 향수와 회한, 그리고 희망으로서의 사회주의에 대한 믿음을 쉼 없이 강조해왔다. ‘쏘련-미래를 향한 추억’에서 필자는 청소년기에 겪었던 장소, 국가, 체제에 대한 사적인 체험부터, 역사학자로서 쏘련에 대한 역사적, 객관적 평가를 기술할 예정이다.

    과거와 미래 그리고 인간과 체제가 서로 교직하면서 만들어낸 현실로서의 쏘련에 대한 그의 기억은 과거를 소재로 하지만, 거기서 뽑아내는 그의 사유는 자본주의 체제를 극복한 새로운 사회의 꿈이 여전히 현재형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표기법과 관련해 필자는 “원어 발음의 차원에서 북조선식 맞춤법(쏘비에트)이 남한 맞춤법(소비에트)보다 훨씬 더 맞다.”는 의견을 밝혀왔다. 필자의 견해를 존중해 “쏘련”으로 표기하기로 했다. 독자 여러분들의 관심을 기대한다. <편집자 주>

    * * *

    난 늘 ‘호구조사’를 당한다

    가끔 서울에서 택시를 타면 나는 늘 운전기사들에게 “호구조사”를 당한다. “이상하게 생긴” 얼굴 탓에 첫 질문은 언제나 “어디 사람이냐?”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적 세계관에 따르면 “사람”은 늘 일차적으로는 계급도, 직업도, 종교도 아닌, “국가”에 소속돼 있으니까 이와 같은 “호구조사” 방식을 당연지사로 봐야 할 것이다.

    일단 “어디 사람이냐?”는 질문에 나는 늘 “귀화인이다”라고 먼저 답하지만, 보통 기사님들의 호기심은 그 사실로만으로는 절대 충족되지 않는다. 그들에게 “귀화”는 형식일 뿐, 내용적으로는 이국인 취급을 받으면서, 여권 색깔과 무관하게 “이상하게 생긴” 얼굴의 소유자인 나는 “원래 소속 국가”의 서열적 위치에 따라서 자리매김이 되곤 한다.

    독일계 귀화인 이참에게는 절대 할 것 같지 않은 온갖 인종주의적 모욕들을 필리핀계 귀화인 이자스민에게는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곳은 대한민국이 아닌가? 나를 어디까지, 어느 수준으로 “대접”(?)해야 하는가를 알아내기 위해서 나의 “원래 출신 국가”의 명칭은 꼭 필요하다.

    “원래 어디 사람이냐?”는 질문이 빠짐없이 날아올 때에 나는 늘 똑같이 답한다. “나는 쏘련 사람이다.”라고. “쏘련”이란 말을 들을 때에 보통 기사님들은 “아아, 러시아, 옛 쏘련”이라며 내 말을 수정한다. 맞다. 구쏘련의 영토 대부분을 러시아 연방이라는, 인구 구성 등이 같아도 체제상으로는 많은 면에서 너무나 다른 나라가 차지해버리고 말았다.

    옐친-푸틴이 불법 점령한 적대국

    나에게는 정치체로서의 자본주의적 러시아, 즉 옐친-푸틴 정권은 그저 내가 태어난 나라를 불법적으로 점령한 적대국일 뿐이다. 세상이 다 아는 푸틴 정권의 마피아적 성격을 염두에 두면 거기까지 이해가 쉽지만, 구쏘련 망국 이후 거의 21년이 지난 지금까지 내 입에서 왜 계속 “쏘련 사람”이라는 자기소개가 자동적으로 나오는가? 이것을 이상하게 여기는 지인들이 꽤 계시는 것도 사실이다.

    이상하게 여길 만도 하다. 구쏘련은 많은 면에서 실패작으로 판명됐기 때문이다. 간판(“쏘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들의 연방”)과 달리 1920~21년 이후의 쏘련을, 마르크스와 레닌이 생각했던 “사회주의”를 실현한 국가로 보기는 좀 어렵다.

    고전적인 의미의 “사회주의”는 생산의 직접적 담당자들이 생산 과정을 민주적으로 통제하고, 근로대중(적어도 첫 단계에서는 그들의 전위조직)이 국가 기능을 장악하며, “국가”는 점차 사멸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특징들은 내전을 통과한 쏘련에서 점차 희석화됐다가, 스탈린의 집권과 독재 정권의 구축 이후에 그냥 사라지고 말았다.

    “스타하노프주의”(사회주의적 경쟁의 한 형태. 1935년 쏘련의 광부 스타하노프가 기준량의 14배에 달하는 생산량을 달성, 노동자들에게 이를 따라 하라며 대대적으로 전개한 생산성 증대 운동-편집자) 미명하에 자본주의 사회의 실적주의, 효율주의 등이 일터에서 부활되고, “전위당”은 그 어느 사회주의 이론에도 없는 “수령”을 정점으로 하는 관료적인 관리조직으로 왜곡되고, 핵으로 무장된 국가는 사멸되기는커녕 구러시아제국 이상의 지정학적인 자기 확장을 꾀했다.

    제정러시아가 예컨대 1904~1905년의 일본과의 제국주의적 전쟁에서 39도 이북의 조선반도 지역에 대한 자국 영향권 편입을 도모했다가 실패하고 말았지만, 스탈린 정권은 같은 논리대로 38선 이북 지역에 대한 “자국 영향권 편입”을 이루려 하지 않았던가?

    1920년대부터 실패 윤곽 드러내

    김일성 정권의 자주화로 이 “영향권 편입”도 결국 상대화되고 말았지만, 지정학적 논리에 따르는 대외정책은 쏘련식 “사회주의”의 왜곡의 정도를 대표적으로 잘 보여준다. 즉, “사회주의 국가”로서는 쏘련은 이미 1920년대부터 “실패”의 윤곽을 분명히 드러내기 시작했다.

    “사회주의”는 아니더라도 일단 다수의 근로자들이 나름대로 편하게 살 수 있었던 복지국가 쏘련이 1989~1991년 사이에 수치스러운 망국의 길로 접어든 것도, 전세계가 아는 쏘련의 또 하나의 대실패다. 망국을 주도한 세력이 고위 공산당 관료와 유명지식인 등 여론지도자들이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효과적인 저항마저도 조직되지 못했다.

    당 안에서는 (스탈린주의적 입장과 다소 유사하긴 했지만) 자본주의에 결사반대하는 일부 양심적 당원들이 결국 러시아공산주의노동당(RKRP: http://rkrp-rpk.ru/)을 결성해 “러시아” 정권을 상대로 해서 집요한 투쟁을 벌여왔지만, 이는 대세를 바꾸지 못하는 소수의 움직임일 뿐이었다.

    공산당원들만 반자본주의적 조직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 자본화의 과정에서 가장 희생을 많이 치를 노동자들도 거의 저항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간판뿐인 “사회주의” 밑에서 자율성을 획득하지 못한 “공식적” 노조는 결국 어용적인 관습대로 옐친-푸틴 정권과 야합하고 말았으며, 페레스트로이카 시절에 생긴 새로운 민주노조는 대체로 자유주의적 내지 우파사민주의적 지향이었다. 이렇게 해서 쏘련은 이렇다 할 만한 저항도 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변변한 저항도 없었던 망국, 이는 “실패”뿐만 아니라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수치”이기도 한다.

    그런데 실패작, 이중 실패작이라고 이야기를 하면서도, 왜 쏘련은 거기에서 태어나고 자란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원한 고향”으로 인식되는가? 그 한계를 모르는 것도 아니고, 그 체제를 “진짜 사회주의”로 오인하는 것도 아닌데, 왜 나뿐만 아니라 내 주위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쏘련은 여전히 언젠가 – 물론 보다 나은 모습으로 – 부활돼야 할 “당위”로 남아 있는가? 나는 왜 여전히 “쏘련 사람”인가? 답은 아주 간단하다.

    왜 쏘련은 ‘영원한 고향’인가?

    그 모든 왜곡, 변질, 한계에도 불구하고 쏘련은 그래도 1917년 10월 혁명을 나름대로 계승한 사회였기 때문이다. 이는 무엇보다 먼저, 쏘련은 “사회주의”는 아니더라도 그래도 비자본주의적 사회였다는 점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국가 위주의 경제시스템”에서는 국가가 경제 관리를 위해 “집단적 자본가”의 역할을 담당했지만, 개인 자본가가 없었다는 것은 엄청난 해방적 의미를 지녔다. 배당금 형태로 부자들에게 빼앗겨 그 어떤 무의미한 투기를 위해 쓰일지도 모를 이윤이, 쏘련에서는 사회화돼 복지시스템과 과학, 예술 활동 등을 뒷받침할 수 있었다.

    또 노동조합의 현장위원회 승낙 없이 그 누구도 해고될 수 없는, 안정된 직장은 수많은 시골 출신의 제1세대 도시민들에게 “도시 속의 마을공동체”가 되었으며, 그만큼 직장은 애착의 대상이 됐다. 직장 동료들을 “평생의 동반자”로 여기는 데에 익숙해진 쏘련 사람에게는 구미권이나 남한에서 흔한 직장에서의 ‘이지메’, 대인 관계 스트레스 등은 이해하기 어려운 다른 세계의 이야기였을 것이다.

    이윤추구라는 부담이 없는 대신 노후, 의료, 교육이 사회적으로 보장됐던 쏘련에서의 삶은, 오늘날 남한에서의 삶보다 백 배, 천 배 더 “인간적”이었다. 매일 매일의 경쟁, 미래에 대한 공포, 개인의 원자화와 소비주의, 광신적 종교라는 이름의 제도화된 집단적 현실 도피가 거기에서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쏘련보다 더 가난하고, 더 폐쇄적이지만, 실은 많은 면에서 이는 북조선에 해당되기도 한다. 어릴 때부터 급우들을 경쟁자로 여기는 등 “늑대”로 키워지는 남한 사람에 비해서는, 북조선 사람은 적어도 경쟁보다 상부상조를 먼저 익혀야 하는 “인간적” 환경에서 자라게 돼 있다. 북조선 사람의 시각에서 본다면 남한은 “인간”이 거의 살 수 없는 “사막” 내지 “정글”에 가깝다. 이게 과연 그렇게까지 틀린 의견인가?

    비자본주의 사회였던 것은 분명

    “사회주의”는 아니더라도 분명히 비자본주의 국가였던 쏘련의 계획적 경제가 어떻게 운영됐고, 직장단위는 어떻게 구성되었으며, 쏘련의 교육, 의료 등 여러 복지시스템에서 지금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또 적어도 당위 차원에서 철저하게 평등주의적 가치를 내세운, 쏘련이라는 다민족 국가의 민족 정책에서 다민족 사회로 진입하는 문턱에서 서 있는 우리가 무엇을 배울 것인가? 쏘련의 문예는 과연 “당의 선전선동 기관”에 불과했던가? 왜 쏘련의 수많은 명망가 지식인들은 결국 망국에 앞장섰던가?

    이번에 시작되는 연재를 통해서 나는 이와 같은 물음에 답하면서, 너무 분명하게 드러난 쏘련의 한계와 함께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그 장점도 아울러 부각시킬 것이다. 실패의 역사라 해도, 과거의 역사를 배우는 것은 미래의 투쟁을 준비하는 일의 중요한 예비적 과제가 아닌가?

    필자소개
    박노자
    오슬로대 한국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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