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박 미워하되 게임은 미워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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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9월 09일 08:4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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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행성 게임산업이 국민들의 영혼을 서서히 잠식해 감을 넘어 우리의 일상을 공격적으로 파괴해 가는 것을 온 국민은 2005년부터 지켜 보아왔다. 그러나 오늘 이 사회가 호들갑떨며 주목하는 사행성게임 사태는 마치 어딘가에 예기치 않게 폭탄이 하나 떨어진 것처럼, 대통령 조카 노지원씨의 ‘바다이야기’ 관련업체 재직 사실 발표와 함께 정치적 게이트로 어느 날 떠올랐다.

    게이트보다 무서운 산업 논리

       
    ▲ ‘바다이야기’ 파문으로 게임개발업체 전체가 위기에 몰린 가운데 서울시내 한 업체의 직원이 계약자들이 사라져 판로가 막힌 신형 게임기들을 허탈하게 바라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모순투성이의 정권을 공격할 호재를 만난 한나라당은 노정권 최대의 도박게이트로 몰아가며 여론몰이를 했고, 정부는 이를 두고 정책 실패일지언정, 게이트는 아니라는 궁색한 변명을 했으며, 비난에 나선 국회의원들은 그들 또한 생각 없이 받은 후원금을 통해 이 사태의 동업자 명단에 올라있는 것을 보고 당혹해했다.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면서, “만일 노지원씨가 ‘바다이야기’에 개입되지 않았더라면, 이 사태는 터지지 않았을까?” 라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또 상품권업체 지정에 뇌물이 오고가지 않았다면, 업자들이 게임 하드웨어를 조작하지 않았다면, 즉 모든 것들이 현행법이 정한 테두리 내에서 지켜지기만 했다면, 게임하다 폐인이 되어버린 가장들이 속출할지언정 산업발전 단계의 필요악으로 치부되며 세월은 무상하게 흘러갔으리란 추측이 가능한 건 왜일까?

    게임산업이 문화산업계의 무역수지 개선에 기여하고 있는 공은 눈부신 수준이다. 게임산업의 수출액(2004년 3억8천7백만 달러)은 영화, 방송, 음반, 출판, 인쇄를 모두 합친 액수(3억1천7백억 달러)를 훨씬 뛰어넘는다.

    또한 문화산업에서 무역수지 흑자를 보는 분야는 인쇄와 게임, 방송 정도이고, 한류로 떠들썩한 주목을 받는 방송의 흑자폭이 4천억 달러 정도인데 반해, 게임은 1억8천2백억 달러에 이른다.

    게임산업은 대한민국의 미래다?

    정부는 내친 김에 지난 4월, ‘2010 게임산업 실행전략 보고회’를 통해 2010년까지 세계 게임시장 점유율 10%, 수출 36억 달러를 달성하여 한국을 세계 3대 게임강국으로 발전시킨다는 청사진을 제시했고 ▲산업성장 기반 강화 ▲게임산업 글로벌화 ▲창의적 게임인력 양성 ▲건전 게임문화 환경 조성▲생활 속의 e스포츠 문화 정착 ▲게임 응용기술 개발 활성화 ▲법제도 개선 등 7대 과제를 제시하기도 했다.

    같은 시간 여전히 문화부의 사이트에는 게임에 미쳐 카드 빚더미에 앉은 우리 남편을 내 힘으로 막을 수는 없다는 눈물겨운 탄원은 계속 이어졌으나, 게임산업의 진흥과 사행성 게임산업 근절은 분명 그들에게 완전히 다른 일이었다.

    게임산업이 정부의 응원 속에, 브레이크 없는 성장을 해오다가, 낫자루 썩는 줄 모르고 정치인과 업계가 한꺼번에 ‘오버’하면서 정치게이트의 빌미까지 마련하게 된 이 사태의 배경에는 국가 성장 동력에 대한 암묵적 비호가 사건을 확대시켜온 부분이 있다는 점에서 황우석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생명윤리에 대한 가벼운 문제의식으로 꼬리를 드러냈던 황우석 사태는 생명산업에 거는 국민적 기대를 거대한 사기사건의 비옥한 토양으로 악용한 경우다.

    정부는 산업의 확대를 위해 수단을 문제 삼지 않는 방식의 진흥정책을 구사해왔고, 그 와중에 자본 결탁력이 뛰어난 산업은 매우 정교하고 치밀하게, 그들이 차지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이 사회를 장악했다.
    게임은 분명 2005년부터 사행산업의 주택가 보급을 위한 매체로서 막가는 행로를 걷기 전에도 우리 사회 전체에 광범위한 문제를 야기하는 중독성 강한 놀이로서의 위험을 내포하고 있었다.

    ‘온라인 게임 중독증에 빠진 한국’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5월 ‘온라인게임 중독증에 빠진 한국’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1면 주요기사로 다뤘다. <워싱턴포스트>는 한국의 9살에서 39살까지의 젊은 세대들 가운데 10.2%가 중독 위험의 경계선을 넘나들고 있으며, 한국의 젊은이들이 컴퓨터 게임중독으로 내몰리는 가장 큰 이유는 과중한 학업부담과 정부가 컴퓨터 게임을 장려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굳이 외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게임을 더하려는 아이들을 뜯어말리는 엄마와 집에 오면 등 돌리고 게임에 몰입하는 남편을 컴퓨터로부터 떼어내려는 아내들의 고성은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소음이 되었다.

    검찰에게 공이 넘겨지고, 문화부와 영상물등급위원회, 게임산업개발원, 그리고 문화관광위 소속 국회의원들이 오늘의 사태를 위한 죄를 얼마씩 나눠가졌는지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업계는 물론 정부, 언론들도 사행성 게임산업의 불똥이 게임산업 전체에 대한 비난으로 번지는 것을 우려하며 이 둘을 차별시키려는 노력이 쏟는데 주력하고 있다.

    정부 뜻대로 한국이 세계 3대 게임 산업국이 되어가는 동안 이 세상을 온전히 만나기도 전, 세상의 아름다움과 추함을 자신의 눈으로 발견하기도 전에 게임기 앞에서 시들어갈 아이들의 영혼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자본의 논리로 영화산업도 넘겨주었고, 이제는 아이들의 영혼도 먹고 살자는 논리에 팔아넘길 건가? 

    이제는 게임산업이 우리 사회에 던져주는 사회문화적 의미를 향해 근본적 질문을 던져야 할 때다. 그리고 그 해답을 찾는 과정과 함께 게임산업 정책의 기초가 마련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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