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만 번의 클릭, 26만 번의 성폭력
    디지털 성범죄, 그 어떤 범죄보다 잔혹
    [대담과 인터뷰] 판사와 변호사, 소아정신과 전문의
        2020년 04월 03일 10:5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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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동 포함 여성 성착취 동영상을 제작·유포·참관한 텔레그램 ‘n번방’ 사건으로 전 사회가 충격에 빠졌다.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 씨와 n번방 가입자 모두를 처벌해달라는 전 국민적 요구가 쏟아졌다. 이에 수사기관은 물론 법무부 장관까지 나서서 가입자 전원을 검거해 처벌하겠다고 공언했지만, 또 다른 ‘n번방’에선 여전히 성착취 영상물이 공유되고 있다. 반인륜적 성착취 범죄에 전 사회가 공분하고 있음에도 이들이 이토록 태연하게 범죄 행각을 벌일 수 있는 이유는 뭘까. 수사기관의 처벌 약속에도 두려움에 떨지 않는 이유는 뭘까.

    <레디앙>은 성범죄 전문 변호사 2인과 해바라기센터, 스마일센터 등에서 아동·청소년 성범죄 피해자 치유 활동을 해온 소아청소년정신의학과 의사 1인, 아동·청소년 성착취 범죄 양형기준의 전면적 재검토 요구에 참여한 판사 1인 등 각 분야 전문가들에게 소라넷, 다크웹, 텔레그램 n번방 사건으로 이어지는 집단적인 연쇄 성착취 범죄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배승민 가천대 길병원 소아청소년 정신의학과 교수와 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 김현아 변호사를 만나 지난달 28일 인터뷰를 진행했고, 스쿨미투 법률대리인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변호사, 임수희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부장판사와의 인터뷰는 서면으로 이뤄졌다. 정리는 유하라 기자가 맡았다. 

    * 기사는 4인의 인터뷰 내용을 종합하여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작성했다.<편집자>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임수희 판사, 배승민 교수, 김재련 변호사, 김현아 변호사

    26만 번의 클릭, 26만 번의 성폭력
    디지털 성범죄는 그 어떤 범죄보다 더 잔혹하다

    일반적인 폭력 피해와 비교했을 때 성폭력 피해는 피해자의 상처를 가늠하기 어렵다. 눈에 보이는 상해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폭력 피해자는 평생을 정신적 피해,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기존 성범죄보다 디지털 성범죄는 가볍게 다뤄진다. 직접적인 성폭행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물리적 성폭력보다 디지털 성폭력의 정신적 피해가 훨씬 더 크다고 말했다.

    정종권 <레디앙> 편집장 (이하 정종권) : 두 분은 성범죄 사건에 있어서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를 상대하고 있다. 텔레그램 n번방 사건 이후 주변 분위기, 또 사건이 터지고 난 후의 개인적 느낌과 생각은?

    김현아 변호사 (이하 김현아) : 가해자의 규모가 26만 명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피해자의 피해 정도는 얼마나 심각하겠나. 심지어 어떤 피해자는 자신의 피해 상황을 제대로 모르고 있기도 하다.

    김재련 변호사 (이하 김재련) :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심각한 공격이다. 가입자의 수가 20만 명이 넘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성착취물에 등장하는 피해자들의 연령, 성착취 방식이 더 심각한 문제다. 국가는 아동·청소년을 포함한 성폭력 피해자를 보호하는 시스템이 있는데 N번방 사건을 보면 피해자들이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 채 계속 성착취를 당했다. 피해자 구조 및 지원 관련한 제도적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거다. 또 2차 피해의 두려움 없이 도움과 상담을 요청할 수 있는 정보가 피해자들에게 얼마나 잘 전달 돼있는지도 들여다봐야 한다.

    배승민 교수 (이하 배승민) : 바로 어제 진료 봤던 환자들도 한참을 울고 갔다. 이런 건이 터질 때마다 과거에 유포됐던 자신의 비디오가 또 도는 것 아니냐는 비정상적인 공포감에 시달리면서 증상이 악화된다.

    디지털 성범죄는 한 명이 강간하고, 촬영했어도 그 동영상이 20만 번 다운로드 됐다면 피해자는 20만 명에 의해서 성폭력을 당한 거다. ‘뭔지 모르고 한 번 봤다’고 하지만 그 숫자가 이미 가해 행동을 강화한 것이다.

    더욱이 피해자는 영상, 이미지가 온라인상에 떠돌아다닌다는 생각에 평생을 쫓긴다. 성폭력 피해를 입은 PTSD(외상후 스트레스장애) 환자들이 ‘버스에 탄 저 사람이 나를 보고 웃었다’면서 피해과대망상에 시달리면 의사조차도 ‘그럴 리가 없다’고 확신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된다. 특히 (온라인에 평생 영상이 떠돌아다닐 수 있다는 사실은) 피해자들의 공포를 더 자극하면서 다시 오프라인 범죄로 재생산된다.

    김현아 : 형사에서 최악의 범죄가 살인이라고 하는 이유가 피해회복이 안되기 때문이다. 디지털 성범죄도 같은 류라고 본다. 피해자 입장에선 내가 죽어도 ‘유작’이 되어 떠돈다.

    삭제 지원센터에서 최선은 다하고 있지만 끝이 어디인지는 삭제를 지원하는 사람도, 지원하는 변호사도, 피해자도 모른다. 어떤 가해자는 처벌을 받고 나서도 ‘USB에 갖고 있다가 너 결혼하는 날 내놓을 거야’라고 협박한다. 협박죄로 또 처벌을 받아도 그 영상의 존재는 끝까지 간다.

    심지어 가해자가 진심으로 뉘우쳐도 자기가 뿌린 영상을 자기가 수거할 수도 없다. 이 범죄의 특징을 반영하는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 디지털 성폭력을 기존 성폭력과 비교하고, 기존 형사 사법체계의 범죄들과 비교해선 안 된다.

    여성 연예인 불법촬영물, 소라넷, 다크웹 그리고 텔레그램 n번방
    “피해자 비난하는 사회 분위기, 성범죄 재발 원인…일반인도 공범 될 수 있다”

    정종권 : n번방 사건이 어느 날 갑자기 떨어진 것이 아니라고 본다.

    김현아 : 처음 시작은 일반인보단 여성 연예인을 대상으로 한 합성, 편집, 유포였다. 하지만 과거에 이런 일로 가해자가 엄정하게 실형을 받기보다는 집행유예나 벌금같은 처벌을 받았다. 이렇게 처벌을 받아도 미약했고 그런 상황이 반복되고 대상이 일반인에 대한 범죄로 확대됐다.

    임수희 판사 (이하 임수희) : 디지털 성범죄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기존 성범죄도 원래 아동, 장애인 등 특히 취약한 대상에 대해서는 동일한 가해자 또는 집단에 의한 중복 피해가 많았다. 그런 피해가 발생했을 때 우리 사회는 가해자에 대한 응징이 아니라 피해자에 대해서 수치심이나 고통을 주는 방식으로 대응해 왔다.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가 디지털 환경, 즉 쉽게 복제․배포되며 순식간에 천문학적 숫자로 퍼지는 디지털 세상을 만나면서 그 피해가 증폭되고, 확산되고, 더 심각한 형태로 발현된 것뿐이다.

    배승민 : 성범죄가 벌어졌을 때 오히려 피해 여성을 비하하는 문화는 전 세계적으로 있어 왔는데, 아시아는 훨씬 더 심하다. 여성의 순결을 가족의 재산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부분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피해자를 비난하는 강도가 훨씬 크다. 예컨대 여성이 외국에서 성적 피해를 입으면 ‘화냥년’이라고 하고 그 집안의 수치가 되는 문화가 있었다.

    여전히 성범죄가 공개되면 본인의 평판이나 모든 일상이 무너질 수 있고, 심지어 가족에게 매장 당하는 위험이 존재한다. 실제로 ‘우리 딸이 그랬으면 내가 혼냈다’고 말하는 아버지가 있다. 피해자는 ‘우리 엄마가 내 편 들어줄 거다’가 아니라 ‘알려지면 우리 아빠한테 죽는다’라는 공포를 느낀다. 피해 사실을 가족에게 알리는 것이 가해자가 피해자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쓰는 분위기 자체가 엄청 끔찍한 상황인 거다.

    정종권 : 텔레그램방 사건의 협박 내용도 부모님한테 얘기한다는 거였다.

    배승민 : 이런 가부장적 시선은 성폭력 피해 사실 그 자체를 약점으로 만든다. 반복적으로 성폭력 피해를 당한 아이들을 보면 공부 잘하는 아이들도 있고, 집안 좋은 아이들도 있는데 얘기를 들어보면 대부분 아빠가 평상시에 엄했던 아이들이 많다. ‘들키면 죽어’ 이런 생각을 하는 거다. 가해자는 이를 빌미로 다음 범죄를 저지른다.

    사회 분위기도 마찬가지다. 피해자들의 행실의 잘못, 걸려든 너의 잘못. 용돈을 얻을 수 있다는 개인적인 욕심, 불성실한 학교생활 등이 잘못이라는 피해자에게만 쏠리는 시선이 있다. (사건의 탓을 피해자에게 찾고 비난한다면) 일반인들도 공범이 될 수 있다. 피해를 말하지 못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범죄 재생산에 불을 지펴주는 것이다.

    성폭력 피해자들의 공포감은 일반적인 시선이 어떤지에 따라 많이 달라질 수 있다. 성착취 영상에 대해 일반인 모두가 피해자를 옹호할 수 있는 분위기가 돼야만 재발하지 않을 수 있다. 소라넷을 잡았더니 다크웹으로 갔고, 다크웹을 잡았더니 텔레그램으로 갔다. 이젠 다른 게임 메신저로 또 이동 중이다. 방을 잡았다고 해결이 되는 문제가 아니다. 일반적인 시선 자체가 변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김재련 : 피해자에 대한 편견 때문에 피해자들 스스로 자책감, 죄책감, 공범자 의식을 굉장히 많이 갖는다. 예컨대 돈을 벌기 위해 자기 몸을 그런 식으로 사용했다는 비난이다. 엄밀하게 들여다보면 그런 행위를 한 아동·청소년은 가족 내에서 지지 기반이 부족해서 가출한 청소년이 많다. 그런 아이들에게 의식주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생존의 절박함 앞에 있는 아이들에게 짧게는 하루 내에 조건 만남을 통해 생존의 문제를 해결해주겠다고 접근해서 성을 착취하는 사람들이 문제인 거다. 그럼에도 본질 들여다보지 못하고 피해자들을 비난하는 이 편견은 엄청난 폭력이다. 이 편견을 깨지 않으면 피해자들은 피해를 입고도 숨을 수밖에 없고 계속해서 착취의 대상이 되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폭력을 바라보는 관점 역시 행위자 중심이 아닌 피해자 중심이어야 한다. 행위자 관점에선 피가 철철 나고, 뼈가 부러지는 것만이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폭력이 무엇인가? ‘너무 무서워서 눈앞이 캄캄해져요’, ‘너무 두려워서 말문이 막혀 버려요’, ‘너무 겁이 나서 심장이 쪼그라들 것 같아요’ 이것이 피해자 관점에서의 폭력이다. 사람들이 폭력을 바라보는 관점이 행위자 관점에서 피해자 관점으로 바뀌지 않으면 편견을 깨기도 어렵다.

    “한 번의 클릭으로도 네 인생은 끝난다”
    가해자를 향한 법의 시그널…강력한 법적 처벌이 사회·문화적 인식을 바꾼다

    임수희 : 디지털 성범죄의 실체를 완전히 새롭게 봐야 한다. 단순 소지, 단순 보관이란 없다. 누구나 클릭 한 번만으로도 ‘나는 강력범죄자다’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강력한 형벌체계가 필요하다. 통신사업자의 사회적 책임도 필요하다. 텔레그램을 포함한 통신사업자가 성착취물을 확실하게 걸러내지 않는다면 행정적․형사적 책임을 지도록 하고 그 수익도 몰수하는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사회와 문화, 사람들이 가진 의식이 법을 만들지만 또 법이 어떻게 만들어지냐에 따라 사람들은 법이 제시한 기준을 중심으로 판단과 의사결정을 하게 된다. 법이 패러다임을 바꾸는 토대 하에서 사회적 시선도 바뀔 수 있다.

    우리나라는 1995년도까지도 형법상 ‘정조에 관한 죄’라는 제목 하에 강간, 강제추행을 규정했다. 정조에서 약간 옮겨온 단계가 성적 자기결정권이란 생각이 든다. 현 성범죄 규정 체계에서는 폭행, 협박, 위계, 위력으로 제압당할 때 ‘노’라고 말하면 그때만 피해자를 보호해준다는 식이다.

    그런데 생명, 신체에 관한 자기결정권이라는 말은 없다. 법은 ‘생명이나 신체를 침해할지 말지 너의 의사를 묻고 그 의사를 존중해 줄께’라고 규정하지 않는다. 즉 살인이나 상해죄에 대한 보호법익이 생명과 신체 그 자체이지, 생명이나 신체에 관한 자기결정권이 아니다. 그런데 왜 ‘성’에 대해서는 ‘성’ 자체를 보호하지 않고, 단지 ‘노’라고 명확하게 표현(언어적․비언어적)한 자만 보호하려고 하는가. 이것은 아직까지도, ‘가부장’의 것이었던 ‘정조’를 여성에게 단지, ‘할지 말지 네가 결정할 수 있게 해 줄게’ 정도의 자유를 허용해 준 것일 뿐이다. 인간에게 성은 단지 ‘할지 말지’의 문제가 아니다. 특히 아동은 ‘건강하고 온전한 성적 발달과 성장’이 필요하다. 아동에게 ‘할지 말지’를 물어서 아동이 ‘오케이’했다고 성을 침범해서는 안된다.

    김재련 : 외국 같은 경우는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 대상이 아동·청소년이면 실질적인 성적 착취 발생 전에도 형사처벌하는 조항을 두고 있다. 그루밍 범죄를 처벌하는 것이다. 주요 선진국의 경우 아동청소년의 착취하는 사건이 발생한 경우, 아동청소년 성착취 범죄자는 ‘남은 인생이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싶을 정도로 형사처벌이 엄중하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소지에 굉장히 관대하다. 법규정이 문제가 아니라 있는 법을 실제 제대로 적용하지 않고 제대로 처벌하지 않는 것이 더 문제라고 생각한다. 디지털 성범죄는 IP를 추적해서 잡기가 굉장히 어렵고, 어렵게 잡아도 대부분 기소유예를 해서 기소를 하는 비율도 낮다. 어렵사리 기소해도 나온 형벌을 보면 벌금이 제일 많고, 집행유예, 선고유예다. 가해자 입장에서 ‘잘 안 걸린다’, ‘걸려도 통사정 하면 수사관, 검사, 판사가 다 봐준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이런 행위에 대한 경각심을 갖기가 너무 어렵다.

    가해자에겐 관대하고 피해자에겐 가혹한 법이 피해자는 더 숨게 만들었고, 가해자는 떳떳하게 세상을 활보하게 만들었다. n번방 사건을 계기로 ‘너는 반드시 검거된다. 검거되면 네 인생은 아작난다’, ‘이 과정에서 돈을 번 자들은 네가 번 돈의 몇 갑절을 토해내야 한다’는 메시지가 명확히 전달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도 수많은 자들이 이런 방을 만들고 입장할 것이다.

    아동·청소년 성보호 위해 성적 제안만으로 처벌 가능하도록 해야

    배승민 : 성인은 디지털 성범죄 피해를 입었을 때는 단일하게 얘기하기 어려운데 미성년자는 일반적으로 PTSD(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비율이 훨씬 더 높다. 아이들은 오프라인보다 온라인 관계에서 맺어진 관계에 더 판타지를 갖고 밀접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온라인에선 가해자가 자신과 같은 10대처럼 (가장하여) 행동하거나, 고민을 다 들어줄 때 훨씬 더 강한 관계라고 생각한다. 성폭력 피해도 문제지만 이 관계가 끊어졌을 때 아이들은 큰 상실감과 추격을 받는다. 페이스북 등 온라인 관계가 일반 성인들이 생각하는 것과 아이들의 패턴이 굉장히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임수희 :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은 아동의 특성에 대한 이해가 충분치 않은 채로 규정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성인 여성에 대한 성범죄 규정도 ‘폭행, 협박’이 디폴트 상태로서 불충분한 보호 체계다. 그래서 비동의간음죄, 그루밍 성범죄 등에 대한 입법 목소리가 높다.

    성인 여성을 기준으로 봐도 불충분한데, 그런 규정을 아동·청소년 영역에도 그대로 가져와 단지 ‘가중’ 처벌하는 형태로만 되어 있는 것이 아청법이다. 하지만 아동은 성인 가해자가 ‘할래?’ ‘하자!’ 정도의 말만으로도 성범죄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즉 아동은 순응하거나 미숙한 특성상 폭행, 협박, 위계, 위력이 필요없이 쉽게 성착취나 성학대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아청법은 아동의 특성을 반영한 ‘범죄구성요건’ 자체가 신설될 필요가 있다. 미 연방 형법에는 우리로 치면 범죄 예비 단계인 ‘설득, 권유, 유인’ 등이 아동 대상 성범죄를 위한 것이면 무겁게 처벌하는 규정이 있다.

    아청법 이전에 사실 더 근본적으로는, 미성년자의제강간 연령을 현행 만 12세(‘만 13세 미만’으로 형법 제305조에 규정되어 있다)에서 상향해야 한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가 한국 정부에게 아동 성보호를 위해 최종 권고한 촉구사항 6개 중 하나가 이것이다.

    그리고, 아청법상 성매수범죄의 대상이 되는 아동을 ‘대상아동·청소년’이라고 칭하고 성매수범죄의 대향범인 매도범죄자로서 풍속반에서 조사를 한다. ‘대상아동·청소년’이라는 표현을 삭제하고 ‘피해아동·청소년’이라는 표현으로 일원화해야 한다. 완전히 피해자화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만 피해아동에게 피해자 쉼터, 지원 등 피해자로서 보호 및 구제해 줄 수 있다. 이런 내용의 아청법 개정안이 국회에 현재 계류 중인데, 법무부의 반대로 발목 잡혀 있다. 빨리 통과시켜야 한다.

    김현아 : 가해자들이 아동·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표현을 방패로 쓰는데 아동·청소년은 철저히 분리해서 다른 패러다임으로 가야 한다. 아동·청소년의 성은 그 자체로 따로 보호해야 한다는 마인드로 가야 한다.

    김재련 : 아청법엔 성착취물을 음란물이라고 표현하는데, 그 용어 자체를 성착취물로 바꿔야한다. 음란물엔 피해자 개념이 없는 것이고, 성착취물은 피해자 개념이 전제돼있다.

    성착취물 소지의 개념도 전통적으로 해석해선 안 된다. 내 몸 주변에 늘 갖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전통적인 소지의 개념인데 디지털 성범죄는 그럴 이유가 없지 않나. 내가 원할 때 그 방에 들어가서 언제든지 성착취물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면 디지털 성범죄에 있어선 소지로 봐야한다.

    배승민 : 텔레그램 방 사건은 조직폭력과 마약 범죄의 특성을 다 갖고 있다. (특히 미성년) 성착취 영상물이 마약만큼 엄청난 고가이고, 구하기 어려운 특수한 물건이다. 함정수사가 허용되는 두 가지 범죄의 성격이 다 있는 것을 감안해서 함정수사든 뭐든 해야 한다. 가해자가 아이라는 걸 알면서도 만나자든가 성적인 것을 물어보는 행동을 하는 것 자체가 범죄의 시작이고, 실제 범죄를 저지르는 전 단계에서 잡아내지 못하면 수많은 아이들을 방치하는 거다.

    김재련 : 온라인 익명성 뒤에서 범죄행위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부자가 제보하지 않으면 파악하기도 어렵다. 그런데 제보할 수 없도록 범죄 조직의 일원으로 만들어서 공범자가 되도록 하지 않나. 디지털 성범죄는 함정수사가 불가피하다. 네덜란드에선 12살 소녀인 것처럼 해서 남성들이 만나자고 제안을 하면 다 잡아들이고 있다. 아동의 성을 사려고 접근한 것 자체가 불법이라고 보고 다 처벌하는 거다. 우리나라도 아동·청소년 대상 디지털 성범죄에 있어서 함정수사를 허용해야 한다.

    “당신은 지금 누구와 연대하고 있나”
    n번방 사건, 남녀의 문제 아닌 인권 대 반인권의 문제

    정종권 :이런 범죄가 터진 후에 일부 남성들 사이에선 ‘나는 26만 명 중 한 명이 아닌데 왜 범죄인 취급하냐’는 이야기도 나오더라.

    김재련 : 강남역 살인사건 등 가해자가 남성인 경우가 많고 피해자가 여성인 경우가 많아서 성을 특정하다 보니 그 행위를 하지 않은, 연대를 해야 하는 남성들조차 사건에 공감하기보단 반감을 갖거나 피해의식을 갖게끔 만드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성폭력의 문제에 성을 굳이 강조할 이유가 있을까.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한 행위이고 성인이 아동에게 한 행위이다. 인권 대 반인권의 문제이고, 폭력 대 반폭력의 문제다. 의도적으로라도 그런 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성 대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 인권을 침해한 자에 대해 우리가 무언가를 해야 하는, 피해자에게 연대하고 실천해야 하는 일이다.

    이보다 앞서 우리는 이 사건에 있어서 누구에게 연대하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피해자에게 공감하지 못하고 가해자와 연대하진 않나.

    이 끔찍한 n번방 사건에 대해 ‘왜 이렇게 여자들이 남자를 잡아먹지 못해서 안달이지?’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광범위하게 이런 종류의 성폭력 범죄에 가담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가담은 하지 않았더라도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에게 그만큼 깊게 공감하는 거다. 여성혐오의 시선으로 접근할 게 아니라 공동체 시민으로서 살아가면서 무엇을 반성할지 생각해야 내가 어떤 연대를 하고, 어떤 실천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다. 가해자들에게 공감하기에 앞서 피해자들에게 공감해야 한다. 가해자들의 앞날을 염려하기 전에 피해자들의 파괴된 일상을 염려해야 한다. 피해자에 대한 공감을 통해 연대와 실천이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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