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 '뉴딜’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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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9월 08일 02:3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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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근태 뉴딜론의 정치사회적 배경

궁지에 몰린 여당과 정치인 김근태

김근태 의장이 뉴딜을 공식제안한 것은 7월30일이다. 불과 한달만에 그의 제안은 세인들의 뇌리에서 사라졌고 아무도 뉴딜(new deal) 또는 잡딜(job deal)을 기억하지 않는다. 물론 김 의장은 여전히 뉴딜을 역설하고 다니지만.

사실 사회협약이란 한 나라의 성장-분배체제를 일거에 뒤집을 수 있는 매우 강력한 국가적 의제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스웨덴이나 네덜란드에서와 같은 사회협약은 독특한 역사적 경험에서만 가능한 특수모델이며 역으로 모든 선진국가가 사회협약을 통해 국가운용을 쇄신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주장이 일정 설득력 있는 것은 IMF구제금융 이후 더 가난해진 서민의 생활과 뿌리깊은 노사정간의 불신과 대립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모든 나라가 위기에 봉착했다고 해서 반드시 협약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라는 명제이다.

즉 위기 자체가 협약의 성사를 보증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그 나라의 자본가와 노조대표의 성숙성, 대표체(즉 정상조직 peak organization)의 정당성, 책임감 있는 정치리더십 등이 갖춰졌을 때만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는 그 어느 것도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상태다. 왜 이런 상태에서 정치인 김근태는 사회협약을 성급하게 들고 나왔을까? 그것은 아마도 정치상황과 관련이 깊다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의 의견이다. 내년 대선을 앞둔 상태에서 열린우리당과 김근태 각각이 가망없는 지지율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무엇인가 강력한 의제를 주도하여 유권자의 주목을 얻고자 하였을 것이다.

김근태의 제안은 ‘뉴딜'(New deal)이 아닌 ‘불공정 거래’

이러한 배경에서 급조된 ‘딜’의 거래품목은 초라할 수밖에 없었다. 김근태의장이 전제조건으로 내건 출자총액제한제의 폐지와 구속경영자 사면을 대가로 경제계에서 얻어낸 것은 일곱가지로 정리된다. △추가적 신규투자 △양질의 일자리 △불합리한 하청관행 개선 △공동연구개발을 통해 중소기업의 국제경쟁력 강화 △고용안정 △취약계층 근로자 보호 △근로자 직업훈련과 교육이 바로 그것이다.

반면 그가 노동계(한국노총)에 제안한 것은 △사회서비스분야에서 양질의 일자리창출 △비정규직 노동자 보호 두 가지이며, 요구했던 것은 △불법과격시위 중단 △대기업노조의 과도한 임금인상 자제 △단체협상의 경직성 요구 △생산성 향상을 위한 노사협력 강화 등 네 가지이다. 그나마 민주노총과의 만남은 포항건설노조사태와 고 하중근씨의 죽음으로 인해 성사되지 못하였다.

정리하자면 김근태 의장이 자본과의 거래에서는 구체적 사안을 주고 불투명한 사안을 받은 것으로 보이며, 노동과의 거래에서는 불투명한 사안을 주고 구체적 사안을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즉 매우 비대칭적이며 불공정한 거래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

특히 자본과의 거래에서 제시한 출총제는 투자와는 아무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이 정부(연구기관)의 입장이다. 즉 자본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자본의 신뢰를 얻는 것이 김근태 의장의 목적이었던 것이다.

반면 노동계의 입장은 어느 정도 수용하였을까? 민주노총과의 만남이 무산되어 직접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추정컨대 노동계의 현안인 비정규직 축소(국회계류중인 비정규법안)와 자본의 해고남용 및 노조탄압에 대한 엄정대처를 과연 김근태 의장이 받아들였을까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이다.

나아가서 대기업 지배구조에 노동자가 참여하는 문제(노조의 이사회 및 감사회 참여 등)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과연 수용할 수 있었을까? 이런 것들이 거래되어야 할 협약리스트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거래의 전제조건이다.

2. 게임이론적 시각에서 본 뉴딜의 성격

게임이론으로 본 협상의 프로세스

경제학의 방법론중에 게임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경제활동에서 일어나는 많은 거래와 경쟁상황을 게임의 규칙과 전략으로 풀어가는 이론틀이다.

노사간 임금협상도 게임의 대표적인 예이다. 협상의 주체는 노동조합과 사용자이다. 임금협상의 과정에는 법률적, 사회적으로 정한 규칙이 있으며, 노동자와 사용자는 모두 정해진 범위 내의 행동만을 선택하도록 요구된다. 물론 규칙을 어기고 불법적 행동을 취할 경우 받게 될 불이익도 명시된다.

노동자는 태업, 파업 등 각종 전략을 적절히 사용하거나 혹은 사용하겠다고 위협하여 자신의 이익을 최대한 관철시키고자 한다. 반면에 사용자는 임금인상안, 비임금혜택의 약속 등의 전략을 적절히 사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려 할 것이다. 노동자의 전략과 사용자의 전략이 상호작용하여 조업중단, 임금동결, 소폭인상, 대폭인상 등 가능한 결과 중 하나가 실현된다.

협상의 토대는 상호신뢰

그러나 모든 게임이 최적(optimal)의 결과를 가져오는 것만은 아니다. ‘죄수의 딜레마’ 게임이 이를 정확히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 ‘갑’와 ‘을’은 도둑이고 공범이다. 경찰에 잡힌 이 도둑들은 격리된 채로 경찰의 회유를 받는다. 만약 둘 중 하나가 시인을 하고 다른 하나가 부인을 하게 되면 시인한 도둑은 1년형을 받고, 부인한 도둑은 괘씸죄가 추가되어 5년형을 받게된다. 둘 다 시인하면 3년형을, 둘 다 부인하면 증거불충분으로 모두 석방된다. 이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이때 갑은 부인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 그러나 을에 대한 신뢰가 약해 범죄를 시인하게 된다면 1년형 또는 3년형을 받게 된다. 실험결과는 어떨까? 많은 결과들이 있겠지만 보통 둘다 시인하는 쪽을 결론이 나게 된다. 최악의 결과(5년형)을 피하는 쪽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이때 상호신뢰가 있다면 최적의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사회협약도 마찬가지로 볼 수 있다. 노동과 자본측이 모두 상대를 신뢰하여 협약에 참여하고 이를 준수한다면 경쟁력 강화와 일자리 모두를 얻게 되겠지만, 중간에 이를 이탈할 것을 우려하여 협약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결국 양측 다 최적의 결과를 가져오지 못하게 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상호전략의 신뢰이며 이를 성사시키는 것이 중간매개 즉 정부(정치권)의 역할인 것이다.

3. 김근태 뉴딜의 불가능한 전제들과 사회협약에서 정치의 역할

거래품목보다 중요한 것은 신뢰구축의 조성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김근태 의장이 놓친 것은 명약관화하다. 정치인 김근태는 협약을 성사시키는 리스트를 작성하기 전에 우선 신뢰구축을 위한 분위기 조성부터 시도했어야 했다. 그러나 노동과 자본간의 신뢰구축은 협약체결보다 더 어려운 것이었다.

경총은 김 의장이 자본측과 거래품목을 조율하는 그 순간까지 유연성(해고) 강화만을 주장하고 있었다. 민주노총은 포항건설노조에 대한 강경진압과 노동자 사망으로 인해 정부와 자본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해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무슨 거래가 이루어지고 신뢰가 싹튼단 말인가?

따라서 김근태 의장의 사회협약을 위한 전제는 애시당초 존재하지 않았거나 불가능한 것이었다. 마치 노무현 대통령의 성급한 결론으로 추진된 한미FTA가 시민단체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친 것의 기저에 권력과 시민사회간 불신의 고리가 있는 것처럼, 김 의장의 사회협약 추진에 대한 거부도 그 밑바탕에는 상호전략에 대한 불신이 깊게 박혀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논리적 구조가 타당하다면 김 의장이 했어야 할 일은 이러저러한 리스트를 갖고 자본과 노동 사이에서 흥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협약의 전제조건들, 즉 양측의 불신을 무마시킬 수 있는 선결조건을 제시하고 이행함으로써 신뢰를 보여주어야 했다. 한발 더 나아간다면 불균등한 역관계를 정상화시키고 신뢰를 강제하여야 사회협약의 환경이 조성된다는 것이다.

계급간 거래에서 정치(정당)의 역할은 무엇인가?

한국사회에서 대자본은 사회협약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그것은 자본이 강해서라기보다는 노동이 약하기 때문이다. 즉 상대방의 약화된 전략을 이미 파악했기 때문에 자신의 전략을 더욱 견고하게 주장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권의 역할은 비대칭적인 전략관계를 대칭적으로 돌려놓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90:10의 자본:노동관계를 50:50으로 이동시키고 그 속에서 사회협약을 강제하는 것이 더 현실적인 방안이라는 것이다.

사회협약을 체결하지 않아도 대자본은 영업에 큰 장애를 느끼지 못한다. 만약 노동의 파워가 강해져서(예를 들어 노조조직율이 90%에 육박하거나 총파업을 성사시킬 정도로 단결력이 강한 산별이 존재한다면) 공장의 기계를 멈추고 높은 임금인상이나 경영참여를 요구한다면 자본은 노동과의 휴전을 위해 정치권의 중재역할을 요구할 것이다. 노동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임금인상 요구나 경영참여 요구가 일방적으로 관철되기 어렵다고 판단한다면 자본과의 협약테이블에 들어갈 유인을 갖게될 것이다.

이러한 ‘토대위에서’ 양측간 전략을 만약 정치권이 간파했다면 즉각 거래를 위한 신뢰조성에 들어가야 하며 본격적으로 거래품목을 작성하여 거간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바로 이러한 사례가 스웨덴과 네덜란드에서 벌어진 일들이다. 여기에 그 나라의 독특한 역사적 경험이 추가된다. 1920년대 스웨덴에서는 러시아 혁명이후 소비에트연방의 존재가, 1990년대 네덜란드에서는 폴더라는 협약의 역사적 전통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들이다.

진정 정치인이 사회협약을 원한다면…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어떠한가? 물론 남북이 대치되어 있지만 그리 위협적인 상황은 아니다. 중도우파 정치인들은 중국의 추격과 일본과의 격차를 거론하며 위기론을 설파한다. 그러나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법이 협약만 있는 것은 아니기에 그리 강한 합리성을 띠지 못한다.

결국 협약의 이유는 비정규직 등 양극화 해소와 노동의 경쟁력 강화에서 찾아야 하며 이를 위한 토대로서 노동의 파워가 상승되어 자본과 대등한 위치가 되어야 거래의 필요성이 가시화된다. 또한 노동과 자본 모두가 협약의 이행을 감시해야 할 필요성이 있기에 상호이행의 신뢰가 담보되어야 한다.

이러한 감시의 비용(monitering cost)이 낮아지거나 없다면 거래의 신뢰조성은 구축되었다고 보아도 좋다. 상호신뢰가 구축된다면 즉시 거래품목을 작성하고 이를 교환하고 추인한다. 이 과정에서 정치(정당)의 역할은 지지세력을 동원하여 거래품목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일이다.

김근태 의장은 이러한 전제조건들을 무시하고 직접 거래의 순서로 들어갔기 때문에 자본과 노동측 모두에서 면박을 받은 것이다. 정치인들은 즉각적인 효과를 포착하는 동물적 감각을 갖고 있지만 그 장점이 바로 복잡한 세력관계로 들어가는 순간 ‘전략의 상실’이라는 단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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