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처럼 해서 스웨덴처럼 살겠다고?
    2006년 09월 08일 07:3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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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 2030>이 목표하고 있는 몇 몇 지표가 달성 불가능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박정희에서 노무현에 이르는 한국의 역대 정부는 추상적 국정 목표에서든 경제 운용에서든 외국 정부들로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성과를 내왔고, <비전 2030>의 목표 역시 그 관성 안에 들어 있을 수 있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

문제는 박정희에서 노무현으로 올수록 정부의 기획력과 집행력이 급속히 와해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미 2004년에 구매력 기준 소득 21,000불이 되었으니 가만히 앉아 있어도 환율 변화 등에 의해 1인당 GDP 2만 불을 이룰 것을, ‘2만 불 시대’ 어쩌구 하며 여러 일을 벌이는 바람에 오늘날까지도 이 모양이다.

1990년대 전반에 재벌 계열의 종합금융회사들은 외국에서 3개월짜리 자금을 빌려와 국내 기업에게 10년짜리로 빌려주는 돈놀이에 여념이 없었다. 결국 받을 돈과 갚을 돈이 안 맞았고(mismatch), IMF에 손을 벌리게 되었다.

<비전 2030>은 미스매치 투성이다

<비전>은 대학 교육을 2010년에는 독일 수준으로, 2020년에는 스웨덴 수준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그리고 그를 위해 ‘공영형 혁신학교·자립형 사립학교·대안학교 활성화·조기진급 조기졸업·교육 과정 자율화·교육시장 개방·대학 구조조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교육시장주의자로 알려진 사람을 교육부총리에 지명한 것도 <비전>의 계획과 일맥상통한다.

<비전>이 목표삼고 있는 독일과 스웨덴 그리고 교육평가 1위국인 핀란드가 대학까지 무상교육을 하고, 그를 통해 중고급노동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한 것은 간과되고 있다. 오히려 <비전>은 공교육 투자 의무를 지자체에 전가하기에만 급급하다.

이것은 <비전>이 ‘교육 시스템 효율화 → 인적 자원 고도화 → 첨단산업·지식서비스 산업 핵심인재 양성’을 교육철학으로 삼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런데 노무현 정권과 <비전>이 꿈꾸는 지식서비스 산업은 GDP의 0.5%를 차지할 뿐이다. 따라서 지식서비스 산업이 급격히 성장하여 GDP의 1~2%를 차지하게 될지라도 필요노동력은 그에 미치지 못할 것이고, 교육과 산업, 노동시장의 괴리는 더욱 심화될 것이다.

한국의 대학진학율이 미국(60%), 일본(50%)보다 월등히 높은 80%라는 사실은 대학 교육이 여러 사회적 요인에 의해 이미 보통교육화되었음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한국의 산업 구조 역시 중고급 기술 숙련노동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데, 이는 핀란드나 독일, 스웨덴이 ‘평등한 교육 기회 제공’을 위해 대학까지 무상교육을 유지했던 것처럼 대학 교육에 대한 공공투자 확대가 가장 시급한 교육개혁 과제임을 보여준다.

농업 포기하고, 자영업 팽개치고 복지국가?

<비전>은 두 가지 획기적인 농정개혁안을 가지고 있는데, 2030년까지 쌀 전업농을 지금의 30%에서 79%로 높이겠다는 것과 2011년부터는 유기농 및 무농약 농산물만 정부가 인증하겠다는 것이다. 전업농 확대 정책에 따르자면 쌀 생산 농민 다섯 명 중 네 명 꼴로 전업하여야 한다.

전업농 규모 농지에서 중남미형의 플랜테이션이나 고대 로마형의 노예농업이 아니고서는 유기농을 할 수 없을테니, 결국은 유기농 인증 제도를 통해 쌀 농업의 퇴출을 촉진하겠다는 계획이기도 하다.

‘영세 자영업 중심의 개인 서비스업을 교육·의료·관광 등 지식 기반 서비스업 위주로 재편’하겠다는 계획은 상상을 초월한다. 슈퍼마켓 아저씨는 교사 임용고시를 준비하고, 미용실 아주머니는 의대에 다니고, 노점상 할머니는 동시통역자격증을 따서 고급 관광가이드로 나서기만 한다면 노무현의 <비전> 시대에 적응하여 사는 데 별 불편은 없을 것이다.

‘직접 지원보다는 자생할 수 있는 인프라 조성에 집중’이라는 표현이 <비전>이 밝히는 자영업 대책의 핵심이다. 예나 지금이나 ‘인프라를 조성하겠다’는 정부 말은 ‘아무 것도 안 하겠다’는 정치적 은유다.

농업과 자영업을 포기하여, 농민의 2/3인 200만 명이 도시 노동시장으로 흘러들고, 시장 경쟁력이 없는 92%의 자영업소 220만 개 정도가 폐업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미담집인 <비전>은 그 대책을 밝히지 않고 있다. 물론 산업구조 붕괴에 따른 복지 수요 계산도 없다. 아마도 ‘국민적 합의’에 맡기려는 모양이다.

<비전> 되기 전에 조세역진이 나라 망친다

2004년의 절대빈곤율은 3.6%인데,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절대빈곤율이 더 높아질 것은 불문가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비전>은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 기조를 ‘확대’하거나 ‘강화’하겠다고 확고한 신념을 강조하는 반면, 조세역진 현상을 타개하고 조세형평을 이루기 위한 방법에 대해서는 묵묵부답이다.

<비전>의 계획대로 현재의 경제정책과 조세정책이 지속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럴 경우 2030년의 절대빈곤율은 17.32%(조세연구원 추정. 2006년 6월)에 다다를 것이다. <비전>이 실현되어 생계급여 수급율을 전체 인구의 3.0%(05년)에서 3.5%(30년)로 올린다면, 결국 한국 국민의 13~14% 정도가 사회안전망 밖에 방치되게 된다. <비전>이 꿈꾸는 세상은 수백만 명의 빈민이 강도나 납치업에 종사하는 남미형 사회인가? 

<비전> 본보고서에서는 스웨덴이 27번, 미국이 128번 언급된다. 국민이 TV를 통해 보는 <비전>의 목표는 스웨덴이겠지만, 보고서에서 읽히는 <비전>의 방법은 미국이다. <비전>의 외양은 스웨덴이고 정신은 미국이다. 미국처럼 해서 스웨덴처럼 살겠다는 말이다.

미국처럼 해서 스웨덴처럼 살겠다? 다중인격?

이런저런 사회모델을 짜깁기하는 것이 부끄러운 짓은 아니다. 몽골 것이든 트리니다드토바고 것이든 좋은 게 있으면 베껴야 한다. 어떤 사회모델도 완벽하게 창조적일 수는 없다. 모든 사회모델은 구 모델이나 과거 구상의 조합이다.

   
▲스웨덴의 노인시설
 

케인즈식 관리경제는 스웨덴에서 먼저 이루어졌고, 스웨덴의 연대임금제는 이탈리아 좌익의 아이디어였고, 이탈리아의 그람시주의는 마키아벨리의 민주주의 사상으로부터 영향을 받았고, 마키아벨리의 사상은 한비자와 비슷하다.

하지만 사회라는 분모를 이루는 분자 – 제도와 기구들은 서로 유사하여 충돌하지 않거나, 서로 많이 다르더라도 인과와 조응의 관계를 맺어야 한다. 예를 들어 북유럽에서는 한국보다 기업의 진입과 퇴출이 훨씬 자유롭지만, 그것은 협소한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고,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에 의해 보완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비전> 정책들의 상호모순은 정신병리학적인 다중인격에 가까울 정도다. 한 사람이 다중인격이라면 일탈 행위를 저질러 병원에 가겠지만, 다중인격인 사회를 받아주는 병원은 없다. 남는 건 사회 붕괴다.

천민자본주의가 복지를 선택한 사연

<비전>이 발표되자마자 한나라당이 딴지를 걸고 나섰지만, 기초연금제를 도입하자는 한나라당의 정책 역시 <비전>에 못지 않다. 사실, 십 여 년 전부터 자민련을 비롯한 보수정당들은 선거 때만 되면 거의 공산당 수준의 복지 공약을 내세우곤 한다.

이는 정치적 이슈의 감소(해소)에 따른 새 이슈로의 이행이기도 하고, 각종 여론조사에서 나타나는 국민의 복지 욕구에 대한 영합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복지는 지속 성장 위기에 처한 한국 자본주의의 ‘합리적 선택’이다. 세계 최저의 출산율, 세계 최고의 이혼율과 자살률은 이미 널리 알려졌다. 잘 알려지지 않은 두 가지 지표가 더 있다.

1990년대 후반 20%를 넘던 저축률이 급격히 하락한 것이다. 한국의 순저축률은 1.5%로, 미국 2.3%, 일본 5.3%, 독일 10.6%(이상 2002년 기준)보다 아주 낮은 편이다. 1970~1990년대의 30여 년 동안 한국 자본주의를 유지 발전시켜온 ‘세계 최장시간 노동 → 세계 최고 저축률 → 총여신 50% 이상 5대 재벌 투자’라는 공식의 핵심고리가 무너진 것이다. 국민이 자본주의 재투자에 협조하지 않으니, 가져다 쓸 돈이 없다.

저축을 안 하면, 소비라도 하고 있는 것일까? 한국의 민간소비 증가율은 2003년에 OECD 최하위를 기록했고, 그 이후 한 번도 경제성장률보다 높은 적이 없다. 요즘 세상에 쓰고 싶은 만큼 쓰는 집안이 몇이나 되겠나? 국민이 지갑을 닫았으니, 내다 팔 시장이 없다.

   
▲유니세프 2005. 미국에서는 수백만의 어린이가 밥을 굶는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인이든 관료든 국가의 기획자나 운영자들이 합리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당연하게도 공공지출 확대다. 특히 한국의 공공사회 지출이 OECD 최하위(GDP 대비 8.6%)임을 감안하면, 무궁무진한 신규 시장이라 할 수 있다. 대규모의 국책 토건 사업은 이미 진행 중이므로 복지에 투자해 신규 시장을 창출하겠다는 아이디어의 총합이 바로 <비전 2030>이다.

사회복지의 두 가지 의미

만약 만에 하나 <비전>의 휘황찬란한 꿈이 이뤄지면 좀 나아질까 오해하지 말자. “살만한 세상에서 일과 여가의 기회를 충분히 누리게 되는 것(8월 30일자 한겨레)”이라는 의도적 오해는 ‘한겨레’에 맡겨두면 된다.

‘사회복지 천국’이라는 스웨덴의 복지비가 제일 많을까? 아니다. 스웨덴(54%)보다 미국(57%)이 더 많다. 그런데도 미국의 상대빈곤율은 스웨덴 5%의 세 배를 넘는 17%나 된다. 가난한 사람들은 의료보험도 없는 야만국가 미국은 북유럽 복지국가들보다 몇 배나 많은 의료비를 지출한다.

이것은 미국의 복지 체제와 복지비 지출이 저소득층과 낙후지역의 최저소비를 진작하여 민간서비스 자본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설계돼 있고, 그 역할에 집중되기 때문이다.

<비전>은 미국 복지 제도를 흉내내 근로장려세제(EITC)를 2007년부터 시행할 계획이다. 한국이 벌써 복지수당에 눈이 멀어 일하기를 기피하는 ‘복지병’ 나라가 됐나 보다. 전체 빈곤 가구 중 65% 가량이 근로빈곤 가구라는 통계, 전체 피고용자 중 50% 이상이 비정규직이라는 통계는 ‘일하지 않아서 가난’이라는 미국식 EITC의 문제의식이 한국에는 전혀 맞지 않을 뿐더러, 한국에서의 가난은 전적으로 ‘나쁜 일자리’ 때문임을 분명히 보여 준다.

EITC는 최저임금과 각종 복지급여를 올리려는 시도에 대한 방해로 작용할 것이고, 일할 수 없는 빈민들을 나쁜 일자리로 몰아낼 것이다.

사람의 팔과 새의 날개는 다른 기능을 하는 같은 기관이다. <비전>이 보여주는 복지상은 살만한 북유럽 복지국가들을 표방했으되, 미국 자본주의의 끔찍한 설계 목적에 따르고 있다.

동력을 잃어가는 자본주의, 동기를 못주는 민주주의

낮은 출산율, 저축과 소비의 급감 같은 한국 상황을 국가실패로 평하기에는 이르다. 여러 사회 지표는 비교적 건강한 편이다. 하지만 징후는 아주 불안하다.

투표율은 1980년대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목적의식적인 정치 불신 조장과 정치 독점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사회구성원 과반수의 정치적 의사결정 불참은 상시적 불안 요소일 수밖에 없다. ‘내가 뽑은 놈도 아닌데…….’ 전쟁 발발시 참전하겠다는 청소년이 일본의 1/4인 10% 뿐이라는 사실은 지금의 대한민국이 충성을 다할 매력적인 국가가 전혀 아니라는 말이다.

   
▲구운 베이컨 조각과 함께 있는 부드러운 자화상. 살바도르 달리. 1941

지난 수 십 년 동안 한국 국민은 개인과 가족, 국가를 동일시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이제는 저축도 소비도 안 하고(할 수 없고!), 투표도 안 하고, 나라를 지킬 생각도 없다. 오히려 다수의 국민은, 국가를 자신과 가족의 안위에 대한 위협물로 간주한다. 급속한 국가 이완이다.

그래서 <비전 2030>이 출현했다. 그럴듯한 포장을 하고 화려한 유혹을 던지며……. 하지만, 그 기획자들 스스로도 이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갈지 알지 못하는 듯하다. 단지, “정치는 끊임 없는 상징 조작”이라는 괴벨스의 가르침에만 충실할 뿐이다.

<비전 2030>은 동력을 잃어가는 자본주의, 동기를 못주는 민주주의가 자신의 추하고 기괴한 미래를 그린 자화상이다. 물론 그 자화상에는 노무현 대통령 특유의 지독한 자기애가 진하게 배어 있다. ‘세계의 배꼽’을 자처한 살바도르 달리의 그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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