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을 당원들에게 돌려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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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01월 30일 04:3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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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류파’나 ‘봉합파’라는 험담에도 불구하고 ‘쇄신파’임을 자처했던 심상정 비대위가 소위 ‘혁신안’을 공개하고 2월 3일 임시당대회에서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편향적 친북행위’와 ‘패권주의’를 핵심쟁점으로 삼아 재정과 조직의 쇄신을 요구한 이번 안을 두고, ‘분당파’ 혹은 ‘신당파’로 분류되는 이들은 대체로 만족한 듯 보인다. 물론 김창현을 필두로 한 소위 ‘자주파’는 털을 곤두세우고 결전의 날만 기다리고 있는 태세다.

    비대위 관계자는 진보신당 쪽에서 이야기하는 ‘종북주의’ 규정이 오히려 평가와 논의를 막아버리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며 ‘편향적 친북행위’라는 문구를 사용했다고 설명하지만, 김창현(전 사무총장)은 친북이라는 표현조차 “우리 입장에 대한 일종의 낙인찍기요, 정치공세가 아닌가 생각”한다며 비대위가 오히려 당을 파국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종북주의’가 아닌 ‘대선패배’의 책임을 지고 비례후보의 꿈을 접었던 그이지만 비대위의 안은 도저히 받을 수 없다는 얘기다.

       
    ▲ 2006년 당대표 선거 부정에 항의하는 민주노동당원들
     

    한편에선 손석춘 씨도 “분당하려거든 재나 뿌리지 말라”며 거들고 나섰다. 종북주의를 논하는 것은 공안당국의 논리라는 얘기다. “분열주의자들은 최종적으로 지배계급, 보수정당과 야합하는 길을 걷게 될 것”이라며 진보신당운동에 저주를 퍼부었던 김창현과, 그는 몸은 둘이지만 머리는 이미 하나이다.

    당내 자주파의 ‘친북’ 혹은 ‘종북’ 행위를 입 밖에 내는 것은 당을 분열시키는 짓이며, 진보와 겨레의 위기를 불러와 민중을 도탄에 빠뜨릴 것이라고 엄살을 부린다. 당내의 부패사건이 터질 때마다 부르주아 사법부에 기대선 안 된다며 오히려 눈을 부라리던 행태의 최종판이다.

    ‘종북’ 없다는데야 …

    당을 바라보는 천 개의 눈이 모두 ‘친북노선 청산’에 쏠려 있다. ‘새로운 진보정당 운동’을 하겠다는 김형탁 준비위 대변인도 사회당, 초록당 등의 진보정당과 단결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라며 “종북주의 청산이 새로운 진보정당의 기준”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친북노선’은 진보정당 운동의 가장 큰 걸림돌도 아니고, ‘종북주의 청산’이 여러 정치세력을 한 곳에 모으는 깃발이 될 수도 없다.

    당헌 당규를 어기며 당 간부의 성향을 북에 밀고했어도 ‘종북주의자’는 없다고 당사자들이 말하지 않는가? 오히려 분당을 추진하는 것이 대중투쟁에 대한 신념 부족 때문이라며 엄한 철퇴를 가하겠다고 으르대지 않는가?

    스스로 통일운동가, 민족주의자로 자처하는 사람들까지 싸잡아 ‘종북주의자’로 매도할 필요는 없다. 곧 없어질지 모르는 통일부 인사들 또한 자신을 ‘종북주의자’라 부르면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지금 ‘통일운동가’들은 스스로 누구를 위해 일하고 있는지 회의하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종북주의가 아니다. 당헌과 당규, 당 강령은 쉽게 무시하면서도 선거 때만 되면 온갖 흑색선전을 일삼고, 무조건 다수결로 자기 주장을 관철시키려 드는 비민주적 태도가 문제의 핵심이다.

    이를 두고 다들 ‘자주파의 패권주의’라 말한다. 그러면서 종북주의와 패권주의가 마치 한 뿌리의 쌍생아인 듯 이야기를 몰아간다. 물론 반전반핵의 당 강령을 무시하고 핵무장을 ‘자위권’으로 인정하는 등 자주파가 다수의 힘으로 당의 정신을 무력화시킨 것은 사실이다.

    더구나 자주파는 당비대납, 위장전입, 세팅 선거 등 온갖 패악질을 부지기수로 저질러 왔다. 하지만 종북주의와 패권주의를 연계하는 것은 소위 ‘평등파’의 비민주성을 눈속임하는 거짓부렁에 지나지 않는다.

    심상정 비대위원장은 “정파 패권주의를 발생시킨 개인과 집단, 정파는 당원과 국민 앞에 공개 사과해야 한다”며 혁신의 깃발을 치켜들고 나왔다. 하지만, 그 역시 혁신의 대상임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심상정, 깃털만 희생양 삼아

    심상정 위원장은 신당파들에게 “책임을 다수파에게 돌리고 반성도 없이 예단과 억측으로 비대위 실패를 예단하는 분열적 행위를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누군가 당원과 국민 앞에 공개 사과해야 한다면 “사실관계가 확인된” 일부 당직자를 문제 삼기 이전에 당내 주요정파의 수장이었던 본인부터 반성하고 분골쇄신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야 괜히 말단의 깃털들만 희생양 삼는 것에 불과하지 않은가!

    물론 다른 사람은 몰라도 본인은 자주파의 전횡에 대해 줄기차게 문제제기해 왔다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비대위가 당규개정건으로 제기한 현행 ‘명부별 1인2표제’의 선거방식이야말로 자주파와 평등파의 ‘협잡’을 ‘공생’으로 수준으로 윤색한, 감출 수 없는 증거물이다. 이 또한 패악질이라면 패악질이었다. 다만 공인된 것이었기에 당원들은 함부로 따지고 들지 못했을 뿐.

    당 조직진단팀의 결과보고대로, 당의 핵심활동가들은 민주노동당 위기의 근원을 당의 지배구조와 리더십에 대한 회의와 불만에 두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불만이 모두 ‘자주파’에 대한 불만이라고만은 볼 수 없다. 주대환 씨는 “나가려면 손님(자주파)이 나가야지 왜 주인(평등파)이 나가느냐”며 볼멘소리를 하지만, 지금 주인 행세하는 자는 그 누구도 당의 주인이 아니다.

    누구나 입버릇처럼 당의 주인은 당원이라고 말해왔다. 하지만 평당원들은 당이 가장 힘겨울 때 한 몫 거들고 조용히 사라진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다시 채우는 자는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몇몇 정파의 똘마니들일 것이다.

    ‘혁신파’든 ‘신당파’든 ‘정파등록제’를 말한다. 비대위는 등록한 정파에 대해서는 인센티브를, 미등록 정파에 대해서는 패널티를 주겠다 했다. 신당파로부터는 ‘정파’명부 비례대표제를 실시해 당대회와 중앙위원회의 1/3에서 1/2을 명부에 등록한 정파에게만 내어주겠다는 말까지 나온다.

    다른 것은 몰라도 ‘자주파’ 또한 ‘정파등록제’만큼은 쉽게 동의할 것이다. 당연하지 않은가? 당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안에서건 밖에서건 당내의 정파가 제 목숨을 이어갈 길은 ‘정파등록제’밖에 없다.

    당내의 각 정파가 자신의 주장과 정책을 분명히 밝히고 대중의 심판을 받아 책임정치를 구현하는 것은 누가 보아도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이를 빌미로 당내의 각 정파가 당의 지분을 나누어 가지려 한다면 이는 당의 쇄신이 아닌 쇠락의 길이 될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건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민주적 자질의 함양과 민주적 제도의 건설이다. ‘편향적 친북행위’의 청산이 아니라, ‘당원 민주주의의 회복’이 시급한 과제이다.

    ‘당원 민주주의의 회복’이 가장 시급한 과제

    루소가 이미 비판했듯이, 18세기의 영국인처럼 우리 또한 “선거 때만 자유롭고, 그 밖의 경우는 노예상태에 있다.”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뿐만 아니라 민주노동당의 당원으로서도 우리는 노예상태에 있다.

    그러한 노예들로부터는 민주주의가 이룩될 수도 없고 당의 발전과 변혁도 불가능하다. 우리는 여태 무수한 노예를 보아왔고 당내 각 정파는 선거마다 노예들을 만들어 왔다. 심지어 열성적인 당원조차 한두 번 선거를 치르고 나면 노예나 좀비로 전락하고 만다. 이들을 사슬에 묶고 이들에게서 생명을 앗아간 자 누구인가? 당의 혁신은 이러한 물음에서부터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

    어느 정파에 소속되지 않은 당원이 당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어 보인다. 여기에 더해 등록한 정파에게만 특권을 주겠다는 발상은, 지역에서 헌신하고 있는 소규모 풀뿌리 활동가들은 진보정당에 합류하지 말라는 엄포에 가깝다.

    민주노총과 당, 그리고 그 옛날의 서클 활동을 통해 ‘조직운동’ 그 자체의 한계를 숱하게 보아오지 않았는가? 당을 무능하고 폐쇄적인 집단으로 보는 것은 단순히 정파갈등이나 언어구사의 문제 때문만은 아니다.

    소위 ‘조직활동가’들은 노조와 시민단체, 풀뿌리 조직 할 것 없이 서너 개의 직함을 꿰차고 앉아 그들끼리 동분서주할 뿐이다. 낮에는 사무실에 모여 진보를 논하고 밤이 되면 맥주잔을 부딪치며 날을 지샌다.

    ‘시민 없는 시민운동’을 하더니, 창당 후 8년이 지난 민주노동당은 ‘당원 없는 당 운동’을 하고 있는 형국이다. 조직 활동이나 조직 운동은 지역의 선남선녀들이 삶의 주인이 되어 그들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임을 왜 모를까? 진보적이고 민주적인 활동은 어떠해야 하는지 근본에서부터 다시 성찰해 보아야 한다.

    루소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의사들이 우리를 위해 어떤 병을 치료해 주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이 우리에게 아주 치명적인 증세를 안겨다 준다는 것은 알고 있다. 예를 들어, 무력증, 소심함, 경솔한 맹신, 죽음에 대한 공포 등이다.

    의사들은 인간의 육체를 치료하면서 그 대가로 인간의 용기를 죽여 버린다. 그들이 시체를 걷게 만든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정으로 살아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누구도 그들의 손에서 그런 사람이 걸어나오는 것을 보지 못했다.”

    대의민주주의 넘어서야

    비대위 또한 선무당이나 마찬가지다. 그들이 ‘정파등록제’의 허울로 당을 치료한다 해서 당원들을 되살릴 수는 없다. ‘직접 행동’에 나선 당원들이 진정 살아있는 당원들이다. ‘혁신파’여, 여태 당신들이 억눌러 왔던 이들의 열성을 더 이상 폄하하지 말라!

    다른 제 정치세력과 함께 하기보다 총선 전 깃발 꽂기에만 맹진하고 있는 ‘신당파’여! 이들 살아있는 당원들을 주인으로 바로 세우고 지역의 활동가들이 함께 할 수 있는 방안부터 고민해 보라. 그렇지 않으면 창당 초기처럼 이들은 다시 제 각각 조용히 사라지고 흩어져버릴 것이다.

    대의민주주의는 결코 민주적이지 않다! 대리자를 뽑고 스스로 노예 되기를 선언하는 선거는 오히려 가장 비민주적인 제도이다. 당이 더 이상 노예 훈련소이어서는 안 된다. 몇몇 당원이 제안한 바대로 당 간부들을 추첨(제비뽑기)할 것을 강력히 제안하는 바이다. 초록당에서는 이미 실시하고 있다 하니 좋은 모범이 될 것이다.

    단, 이호곤 당원이 제안한 것처럼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추첨에 의해 누구나 대의원과 중앙위원을 맡는” 방식은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없다. 실제로 민주주의의 교과서로 불리는 그리스의 민회에서도 이런 추첨방식을 택하지는 않았다. 민주주의는 자발적 참여로 이루어져야 하며, 그 권한에 따르는 책임을 분명히 지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대의원이나 중앙위원으로 입후보하고자 하는 당원에게 회의의 3/4 이상 참여하는 것을 의무화하고 그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간부에게는 막중한 벌칙을 부과해야 한다. 그래서 공적 임무를 수행할 자신이 없는 자는 감히 대중 앞에 나서지 못하게 하는 제도가 갖추어져야 추첨제도가 빛을 발할 수 있다.

    쉽게 말해, 능력 있고 공명정대하게 일을 처리할 의지가 있는 자만이 당직이나 공직에 나아가게 해야 한다. 만일 이런 사람들만으로 후보군이 추려진다면 그들 가운데 누가 추첨에 의해 뽑히더라도 문제될 일은 없을 것이다.

    이렇게 추첨으로 뽑힌 당의 간부에게는 막중한 책임이 주어지고, 평당원에게는 이들을 감시하고 이들에게 조력할 의무가 부과된다. 만일 이러한 간부가 부정을 저지른다면 당기위 같은 ‘구제기구’의 결정을 기다리지 말고 곧바로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부정의 싹을 없애야 한다.

    일상적으로 당의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사람들이나 비례국회의원 후보 같은 경우에는 이러한 추첨제가 유용하지 못하다. 이 경우에는 등록된 정파의 후보군을 보고 당원들이 투표로 선출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단, 이 경우에도 정파에 등록한 당원수에 비례해서 정파 간 지분을 나누는 식의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만일 최고위원회와 같은 기구에서 다수파가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면, 당원들이 선출할 권리를 제한할 것이 아니라, 화백제도처럼 최고위원회에서의 만장일치를 요구할 일이다. 설령 만장일치가 되지 않아 중요한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하더라도 잘못된 결정을 내리는 것만은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추첨제 하자

    이런저런 말이 많았다. 새벽 6시가 다 되어 가는 지금, 복도의 맞은 편 집에서는 여자아이의 울음 섞인 훈계가 이어지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앞집에서는 부부싸움을 벌이는데, 오늘은 아이의 비명이 예사롭지 않아 혹시 칼부림이라도 날까 하고 벨을 눌러 진정시키고 돌아온 길이다. 그 후로 남편과 아내 모두 숨죽이고 있고, 아이가 제 부모를 타이르는 목소리만 간간이 들려온다.

    좋은 비유는 아니지만, 자주파이건, 평등파이건, 신당파이건, 혁신파이건 이제 더 이상 이들이 당원의 어버이 노릇을 해서는 안 된다. 당은 당원에게 돌려주라! 당을 당원이 아닌 지역민에게도 열어 주라! 그들이 설령 당원이 아니라 하더라도 지역을 위해 봉사할 수 있도록 너른 품으로 그들을 안아라! 그들이 바로 운동의 미래요, 우리의 어버이다.

    지금 거꾸로 선 민주노동당은 두 발이 아닌 하나의 머리로 서 있다. ‘종북주의 청산’으로 머리를 처박고 거꾸로 서서 고개를 들 줄 모른다. 다들 2월 3일 당대회가 걱정이라 한다. 하지만 별 걱정할 일은 아니다.

    민주노동당은 제 몸무게를 가누지 못해 목이 부러질 테지만, 그 모양으로는 어차피 오래 버틸 수 없었다. ‘혁신안’은 전혀 혁신적이지 않았다. 많은 고민이 있었겠지만, 혁신파는 스스로를 혁신할 줄 몰랐다. 머리를 땅에 처박고 있었기에.

    비대위의 서슬 퍼런 말을 이제 비대위에 다시 되돌려주고 싶다. “어설픈 미봉책으로는 대중들에게 실망과 분노만 안겨줄 뿐, 신뢰와 지지를 받을 수 없음이 분명하다.”

    하정호 / 민주노동당 광주광역시 동구 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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