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죽박죽 세상사에도
농사꾼은 다시 씨 뿌려야
[낭만파 농부] 딴세상 돼 버린 현실
    2020년 03월 27일 11:0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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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만에 초토화다. 코로나19 사태가 무섭게 번져가더니 세계보건기구도 팬데믹(감염병 범세계 유행)을 선언했다. 이 땅에서는 그 기세가 한풀 수그러들었다고 하지만 아직은 전혀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국면인 듯하다. 세상이 그야말로 딴세상이 되어 버렸다.

<농한기강좌>도 당연히 파장이다. 첫강 이후 관심과 기대가 고조되나 싶었는데, 위기경보가 ‘심각’ 단계로 올라가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권장되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이 강좌 전면취소를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쉬워 할 틈도 없이 ‘지금 농한기강좌가 문제가 아닌’ 상황이 펼쳐졌다.

갈수록 확진자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저마다 몸이 멀어지고, 마음이 멀어졌다. 그거야 어떻게든 버틸 수밖에 없고, 버텨야 한다고 치자. 그러나 장사가 안 되니 조업시간도 줄고, 수입도 줄게 마련이다. 일거리가 없어지고, 일자리에서 떨려나는 사람이 줄을 잇는다고 한다. 위기가 닥치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크게 고통 받는 건 장애인, 비정규직 노동자, 영세상인, 농어민, 노인 같은 밑바닥 계층이다. 그 심상찮은 사정이 감지된 지는 이미 오래 되었다.

이 점에서 국가의 존재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사실 나로서는 국가라는 물건에 대해 그다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편이다. 그래도 기왕 생겨나와 인민을 다스리고 있다면 이럴 때야말로 제구실을 했으면 싶다. 어제는 ‘국민 80%에 재난지원금 100만원씩 지급 추진’ 기사가 떴기에 웬일인가 싶었더니 금세 오보로 밝혀졌다. 그리고 나온 시책이 ‘기업구호 긴급자금 100조 투입’이란다. “코로나에 걸려 죽기 전에 굶어 죽겠다”는 아우성이 들끓는 판국에 당최 뭘 하자는 것인지.

이 와중에도 봄은 왔다. 한낮에는 여름을 떠올릴 만큼 햇볕이 따사롭다. 천지 사방이 울긋불긋 봄꽃으로 물들고 있다. 우리 집 울안에도 매화가 한철이고 개나리가 뒤를 잇고 있다. 복숭아꽃, 살구꽃, 명자나무꽃 망울은 한껏 벙그러졌다. 이내 꽃 잔치가 벌어지겠지.

저들처럼 우리네 삶도 희망의 꽃이 활짝 피었으면 좀 좋은가. 그러나 난망하다. 코로나19뿐만이 아니라 채 한 달 안짝인 국회의원 선거판도 심란하기 짝이 없다. 선거라는 게 나라를 어떻게 운영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놓고, 견주는 마당 아니던가. 그러나 정책이며 비전 같은 고갱이는 눈을 씻고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오직 하나 ‘위성정당’을 둘러싼 개판싸움으로 날이 밝고 해가 지는 형국이다.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지 싶었는데 다시 생각하면 전무후무한 정치잔혹극으로 끝날 것 같아 섬뜩하다. 진흙탕 개싸움은 정치혐오를 불러일으켜 인민으로 하여금 선거에 등을 돌리게 할 것이다. 그리고는 열혈지지층 대결로 승부를 가리겠다는 것이 거대 여야정파의 셈법? 정녕 그런가?

이래저래 세월은 하수상한데 앞산 노을은 왜 이리 고운지(필자)

갑갑하고 속 터질 노릇이지만 꽃이야 피든 지든, 세상사 뒤죽이던 박죽이던 봄이 왔으니 농사꾼인 나는 다시 씨를 뿌릴 것이다. 어쨌거나 밥을 먹고 기운을 내야 코로나도 이길 수 있고, 진흙탕일망정 개싸움도 할 수 있는 법이니까. 달포 뒤에는 올해 벼농사를 시작하게 된다.

세월이 하수상하니 농사라는 게 그나마 정직해 보여서일까, 얼마 전 청년 대여섯이 유기농 벼농사를 함께 짓겠노라 찾아왔다. 반가운 마음에 영상자료까지 준비해서 설명회를 열었다. 기대와 곤혹스러움이 엇갈리는 표정이더니 아무튼 우리 벼농사두레와 함께 하기로 뜻을 모았다.

벼농사두레도 농사에 들어가기 전에 정기총회를 연다. 지난 한 해 활동을 뒤돌아보고, 올해는 어떻게 움직일지 계획을 잡는 자리다. 작년 총회 때 대박이 났던 ‘멋진 회원상’ 시상식을 이번에도 진행하기로 했다. 어떤 즐거운 소동이 벌어질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벼농사용 유기농 상토도 들여왔고, 국립종자원에 찰벼 볍씨도 주문했으니 며칠 안으로 배달될 것이다. 빠뜨린 거 뭐 없나?

울안의 텃밭은 올해도 퍼머컬처 원리에 따라 짓기로 하고 일찌감치 골판지를 이용해 시트멀칭(다층덮기)을 해뒀다. 하필이며 서너 차례 된바람이 불어오는 바람에 바닥을 덮었던 골판지들이 흩날려 버렸다. 일단 주섬주섬 모아두었고, 비가 내린 다음에 다시 덮고, 장각개비로 눌러둘 요량이다. 무슨 일에나 시행착오는 있게 마련인 모양이다.

아, 간만에 전하는 돼지농장 소식. 완주군이 가축사육업 허가신청에 대해 불허처분을 내렸지만, 업체쪽은 기어이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불허가처분 취소청구)을 제기했다. 완주군이 피고로서 법정 공방의 주체지만 실질적 이해관계자는 주민이므로 우리 이지반사(이지바이오 돼지농장 재가동을 반대하는 완주사람들)도 다시 바빠지게 됐다는 거. 오늘은 여기까지.

필자소개
시골농부, 전 민주노총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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