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등 디지털 성범죄 처벌,
법안 발의 아닌 통과와 실행 더 중요
미투 이후에 관련 법 발의는 남발, 통과된 건 소수
    2020년 03월 25일 08:3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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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메신저 텔레그램 채팅방에서 여성의 성착취 영상을 제작·유포한 이른바 ‘N번방 사건’으로 파문이 일면서 국회에선 제작·유포한 자에 대한 처벌강화와 유포된 영상물을 본 가입자를 처벌하는 법안 등이 발의됐다.

디지털 성범죄 사건에 국회가 법안을 발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실제 법 통과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앞서 국회는 2018년 시작된 미투 사건 때도 150건에 달하는 미투 관련 법안이 발의됐지만 통과율은 절반도 되지 않았다. 국회 안팎에선 20대 국회 내에 N번방 관련 법안을 처리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온다.

대표발의자 백혜련 의원을 포함한 18명의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디지털 성범죄 발본색원을 위해 ‘N번방 사건 재발 금지 3법’을 공동발의했다. ▲형법 개정안 ▲성폭력처벌법 개정안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다.

형법 개정안은 성적 불법 촬영물을 이용해 협박하는 행위를 형법상 특수협박죄와 강요죄로 처벌하고, 협박 상습범은 가중처벌하는 내용이다. 성폭력처벌법 개정안은 유포 목적이 없더라도 성적 불법 촬영물 또는 복제물을 다운로드 받는 행위 자체를 처벌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성착취 영상물 공유 채팅방 가입자를 처벌하기 위한 법이다. 또 본인의 신체 촬영물이라도 본인의 의사에 반해 유포될 경우 처벌하도록 하고, 촬영·반포·영리적 이용 등에 관한 처벌도 대폭 강화했다.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불법 촬영물에 대해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은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를 처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백 의원은 “성적 불법 촬영물 관련 범죄는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인격권을 침해하는 패륜적 행위로 엄벌해야 한다”며 “입법이나 법 집행에 있어서 지금껏 법무부, 법원의 태도가 피해자 중심주의와는 거리가 있었다. 디지털 성범죄 발본색원을 위해서는 국회가 보다 적극적인 입법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N번방 사건과 관련한 법안은 민주당 외에 다른 정당 소속 의원들을 중심으로 이후 계속 발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더 중요한 문제는 법안 발의보다 통과다. 국회는 여론이 주목하는 사건과 관련해 적극적으로 법안을 발의해 왔지만 여론이 잠잠해지면 법안 통과엔 큰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미투 사건 관련 법안의 통과율이 대표적인 사례다.

미투 때도 법안 발의는 남발, 정작 통과된 것은 24%

지난해 1월 29일 민주당 여성폭력근절 특별위원회가 주최한 ‘미투 1년, 지금까지의 변화 그리고 나아가야 할 방향 좌담회’ 자료를 보면 미투 관련 법안의 발의 건수는 145건에 달한다. 그러나 본회의 문턱을 넘어 통과된 법안은 35건인 24.0% 정도다. 나머지 법안은 국회에 계류 중이고, 20대 국회가 문을 닫으면 자동 폐기된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서 제안이유·주요내용 중 단순하게 ‘미투’라는 단어가 포함된 법안을 검색해보면 63건이 나온다. 이 가운데 한 건은 미투 운동과 관련이 없는 법안이고 62건이 성폭력에 관한 법안이다. ‘미투’라는 단어가 포함된 법안은 2018년 2월 28일부터 지난해 10월 말까지 지속적으로 발의됐다. 한 달 앞선 1월 29일, 서지현 검사가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성폭력 내부고발을 한 후 파문이 일자 부랴부랴 법안을 발의한 셈이다. 그러나 이렇게 발의된 법안들 다수가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원안가결된 건은 고작 4건, 10여 건 정도는 대안반영 폐기됐다.

이러한 흐름은 국회가 사회운동의 요구를 받아 안지 못한 대표적인 사례로도 꼽힌다. 국회 안팎에선 N번방 사건 만큼은 미투 운동의 실패를 답습하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는 지난 18일 낸 논평에서 “우리는 지금껏 성착취 범죄에 대한 용두사미식 결과를 너무 많이 보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회를 향해 “졸속 성폭력처벌법 개정에 머무르지 말고 디지털 기반 성착취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는 법을 제정하라”고 요구했다.

2020총선시민네트워크도 25일 기자회견을 열고 21대 총선에서 다뤄야 할 5대 의제, 36개 정책과제 중 하나로 “N번방 성착취 근절”을 꼽았다. 2020총선넷은 젠더 차별 혐오 근절을 위한 정책 과제는 성적촬영물 가공·유포 등 사이버성폭력 근절과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등 6개를 발표했다.

23일 정의당의 ‘n번방 처벌법’ 제정 촉구. 아래는 민주당 긴급 간담회, 오른쪽은 조주빈

정의당 “디지털 성착취 범죄 처벌법 제정 21대 국회로 미루는 건 직무유기”

국회 내에서도 N번방 사건에 대한 여론의 분노에 국회가 입법으로 답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정의당은 텔레그램 N번방 해결을 위해 원포인트 임시국회 열자고 제안했다. 심 대표는 23일 당 선대위 회의에서 “날로 지능화되고 재범 우려가 큰 디지털 성착취 범죄에 대한 처벌법 제정을 21대 국회로 미루는 것은 직무유기”라며 이같이 밝혔다.

정의당 성평등 선거대책본부도 24일 브리핑에서 “장자연, 김학의, 버닝썬에 이른 주요 성폭력 사건이 등장할 때마다 철저한 진상 규명을 지시한 것과는 달리 결과에는 책임지지 못했던 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미투 광장에 나선 여성들의 외침은 결국 국회의 담장을 넘지 못해 미투 관련한 많은 법안 역시 제대로 통과되지 못했다”면서 “대통령과 주요 정당은 말이 아닌 결과로, 입법으로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21대 총선 공약으로 해내겠다는 것은 선언에 불과하다. 지금의 여론이 잠잠해진 후, 어떤 책임을 질 것인가”라며 “단 하루만이라도 국회를 열어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에 대해 철저히 수사하고 가해자들을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국회는 응답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필자소개
유하라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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