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픈 사람들을
    일하게 하는 것은 미친 짓
    [번역] 코로나와 노동자, 노동조합
        2020년 03월 25일 01:4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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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번역글은 《규세통신》에 실렸으며 동의를 얻어 게재한다. 규세통신은 창원 <노동사회교육원>이 회원 등에게 보내는 부정기 이메일 문서 정보 서비스이다. 글의 원본은 쟈코뱅에 실렸다. (원문 링크) 필자인 마크 버그펠드(Mark Bergfeld)는 영국과 유럽을 무대로 활동하는 사회주의 활동가이다. 관련된 다른 번역글로 “코로나와 노동자:이탈리아의 급진적 교훈들”이 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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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바이러스는 감염 퇴치의 최전선에 있는 의료 전문가들에서 저임금의 청소부들까지 노동자들에게 추가적인 부담을 주고 있다. 그러나 많은 노동자들이 병가를 낼 권리조차 없다. 이는 그들이 바이러스를 퍼트릴 위험을 무릅쓰고도 일하지 않을 수 없다고 느낀다는 뜻이다.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된 승객들이 대피한 후, 프린세스 다이아몬드 유람선은 철저한 청소가 필요했다. 한 호주 업자가 이 일감을 따냈고, 청소부들에게 일주일 동안 일할 ‘좋은 기회’가 왔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문제는 여기 동원된 노동자들이 이런 위험한 상황에 대처해본 경험이 없는 학교 청소부들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 저임금 노동자들로서는 일주일에 5천에서 6천 달러짜리 일감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다행히 연합노조(United Workers Union)는 경영진의 부실한 태도를 지지할 생각이 없었다. 그들은 회사 본사에서 시위를 벌이고 청소부들에게 그 일을 거부하라고 촉구했다. 근무시간과 근무조건은 전혀 불투명했고 특별 교육도 받지 못했다. 노동자들은 심지어 면역력에 영향을 미칠 과거 병력을 포함한 자세한 건강검진도 받지 못했다.

    프린세스 다이아몬드 호를 둘러싼 이 논란은 언론들이 코로나바이러스 위기를 보도하는 방식이 안고 있는 큰 문제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정부와 기업들이 이 사태에 어떻게 대처하려 고 애썼는지에 대한 많은 보도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노동의 세계를 어떻게 바꾸고 있는 지, 노동자들은 어떤 부담을 스스로 떠안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덜했다. 하지만 건강 전문가들의 일만이 아니라 노동의 세계 전체가 정말 달라지고 있다.

    저임금 서비스 노동자들, 격리된 인구를 먹여 살리는 중국 우한의 배달 운전사들, 위기의 영향을 처리해내고 때로는 가장 큰 위험에 처하기도 하는 것은 바로 이런 노동자들이다. 실제 로 많은 경우 청소부와 건물 관리인들이 바이러스 확산을 막는 최전선에 서게 된다. 이런 노 동자들이 최저수준의 임금을 급여를 받는 노동자가 되기 일쑤라는 사실은 참으로 터무니없다.

    최저 수준 임금의 일자리조차 그 방식이 크게 변하고 있는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더 이상 코로나바이러스를 일종의 자연 재해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노동조합이 나서서 노동자들의 안전을 위한 조직 활동을 시급히 펼쳐, 최전선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보수와 보호를 모두 확보하도록 해야 한다.

    1. ‘출근’이 위험하다

    상사들은 항상 결근하는 노동자들을 비난할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바이러스의 시대에 우리는 그 반대로 ‘출근’하는 사람들을 걱정해야 한다. 쉬거나 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가야 한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더 걱정이라는 뜻이다.

    급식 노동자들의 경우를 보자. 이들은 소득이 매우 적어 하루만 일을 못해도 곤경에 처하는 경우가 많다. 한 트위터 사용자가 말했듯이, 그런 노동자들은 만일 병가 혜택이 없다면 계속 출근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건 바이러스 전파 위험도 커진다는 뜻이다. 미국 통계청에 의 하면 서비스 노동자들 중 병가 제도를 적용받는 사람은 2017년에 겨우 46%였다.

    한편 영국에서는 병가 4일째부터 ‘유급’이 적용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4만5천 이상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는 퍼브(간이 주점) 체인점 웨더스푼(JD Wetherspoon)은 코로나바이러스도 다른 질병과 같이 취급할 것이라 발표했다. 이는 바이러스를 전파할까봐 집에 머물고 있는 감염 노동자들의 주머니가 빌 것이라는 의미다. 웨더스푼의 시간제 노동자들이 특히 타격이 클 것이다. 영국의 노동자들은 일주일에 최소 118파운드를 벌어야 병가 수당 자격을 얻는다.

    첫 집단 발병 현장인 중국에서는 민간부문 기업들이 노동자들의 임금을 삭감하거나 지급을 미루고 있다. 노동자들에게 휴가를 먼저 사용하게 하고, 더 길어지면 무급 휴가를 받도록 하는 경우도 많다. 애플 공급사인 폭스콘(Foxconn)은 격리 후 업무에 복귀한 직원들에게 임금의 3분의 1을 주고 있다고 한다. 한편 복귀한 식당 종업원들은 고객들이 꺼려해서 일자리를 잃고 있다.

    일부 고용주들이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런던의 《파이낸셜타임스》는 화이트칼라 전문가들에 게 재택근무 때 지켜야 할 예법에 대해 조언하고 있으며, 사무실 밖 원격근무의 등장이 마침 내 현실화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과거 실리콘밸리와 첨단기술 산업에서만 수행되던 스마트하 고 민첩한 업무로 전환하는 전통 기업들이 늘고 있는데, 직원들의 바이러스 감염을 방지하여 작업 손실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 석유회사인 쉐브론은 300명 이상의 런던 본사 직원들에 게 집에서 일하도록 요청했다.

    그러나 원격 근무로 옮겨가는 이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이 전염병의 확산 저지에 기여하는 바는 미미하다. 왜냐하면 서비스와 제조업에서는 수백만 명의 노동자들이 직장에 출근해서 일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출근한 직원들이 병에 걸리면, 고객들도 감염 위험에 노출된다. 그들을 집에 머물게 하면, 사업을 완전히 중단해야 할지도 모른다.

    문제는 ‘출근’ 중심의 문화가 결정의 부담을 노동자들에게 안기고, 그래서 집에 있어야 할 때인데 출근하는 일이 흔하다는 사실이다. 임금이 필요한 노동자들이 상사의 전횡을 견뎌야 하는 기울어진 직장 내 힘의 균형은 비합리적인 결정으로 사회 전체를 위태롭게 할 가능성이 있다. 출근하는 것이 무작정 ‘직장에 대한 충성’으로 여겨진다 해도, 그것은 실제로는 동료들 이나 고객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탈리아에서 기차 안을 청소하는 노동자

    2. 일이 변하고 있다

    그러나 화이트칼라 직장 문화만 바뀌는 것은 아니다. 노동자들의 작업 내용도, 고용의 형태 도 달라지고 있다. 특히 청소부나 의료 종사자처럼 질병 예방에 기여할 수 있는 산업의 노동 자들, 바이러스의 최악의 결과를 처치하고 있는 의료진들, 잠재적 확산자들 역시 그렇다.

    이번 주말 첫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가 나온 나이지리아에서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세정제를 배급하기 위해 경비원들이 동원되고 있다. 발병을 막기 위해 저임금 노동자들을 이용하려면 추가로 위험수당을 주고 아프면 병가를 사용하게 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일할 수 있고, 실효가 있을 것이다. 그들이 실제로 그들의 일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슬프게도 그게 잘 되지 않고 있다. 가장 부담이 큰 노동자들이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하지만, 더 많은 보수가 주어지지는 않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 브뤼셀의 박물관을 방문했을 때, 그곳에서 직원들은 마지막에 방문객들의 오디오 가이 드를 소독해야 했다. 작은 일처럼 보이지만, 노동자들은 갑자기 자기 업무의 일부가 된 작업 을 위한 적절한 훈련을 거의 받지 못한다. 추가 작업에 대해 수당이 추가되는 경우는 더 드물 다. 그게 모두 ‘업무의 일환’이라고 상사들은 주장한다. 고객을 대면하는 이런 서비스 직종에 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런 작은 업무들이 쌓이면 얼마나 빨리 관리하기 힘든 수준으로까지 늘 어나는지 너무 잘 알고 있다. 특히 질병으로 인원 부족이 악화되는 경우가 그렇다.

    청소 업계에서는 표준화된 작업 공정이 도입되면서 코로나바이러스가 작업 방식을 강화하고 있다. 시장 경쟁력 확보를 위해 자신만의 작업 방법을 성문화하려는 회사들이 지배하는 표준화 기관들이 그것을 정한다. 노동자들은 기준 설정에 대한 발언권이 없다. 그런 기준이 실제로 더 나은 결과를 낳는다는 과학적 근거도 없는데 말이다. 상황 해결의 임무를 맡은 의료 노동자들의 상태도 더 나을 바 없다. 미국 보건복지부의 한 내부고발자는 보건복지부가 노동자들에게 충분한 보호 장비를 주지 않았다고 밝혔다. 보호장구 부족은 일반인들이 안면마스크를 대량으로 구입함으로써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따라서 실제로 마스크가 필요한 의료 전문가들 이 코로나바이러스를 억제하고 감염의 위험 없이 노동자들을 치료할 수 있도록 일반인들은 마 스크 구입을 자제해달라고 미국 의사협회까지 나서서 요청해야만 했다.

    중국의 이번 사태는 병원 노동자들이 과도한 부담을 지게 되면 바이러스 퇴치를 위한 모든 노력이 무산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중국에서는 3천명 이상의 중국 의료 노동자들이 코로 나바이러스에 감염되고 8명이 사망했다. 우한의 병원에 입원한 한 환자가 최소 10명의 의료진 을 감염시킨 사례도 있었다. 의료 물자의 부족, 점점 더 많아지는 환자, 스트레스와 장시간 노 동, 병원 인력의 부족은, 바이러스의 높은 전염성과 더불어, 위기를 관리해야 할 사람들을 악 순환의 고리로 몰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여러 나라를 여행함에 따라, 더 많은 노동자들이 이 바이러스와 관련된 업무를 담당해야 할 것이다. 이런 추가적인 부담이 더 많은 보수, 추가 훈련, 직업 보건 및 안 전의 개선을 의미할 것인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없다면, 최전선의 사람들 이 기본적인 존엄성을 유지하면서 그들이 해야 할 일을 한다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3. 임시직 경제(Gig Economy)의 종언?

    임시직 경제 분야의 노동자들이 특히 바이러스에 걸릴 위험이 높지만, 그들은 가장 보호받지 못하는 일터에 있다. 중국 등지에서 음식을 배달하는 운전자들은 자가격리자들을 먹여 살리는 최전선에서 일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음식을 주문하는 사람이 환자인지 아닌지 알지 못한다.

    관광은 하향 추세지만, 관광객들을 접대하는 서비스 노동자들은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일부는 치명적인 증세를 겪어야만 했다. 중국 본토와 홍콩에서 승객을 태운 적이 있는 한 택시 기사가 2월 타이완에서 숨을 거두었다. 관광업이 위축되자 태국의 택시 기사들은 하루 수입이 1/3로 줄어 생계의 위협에 처해 있다.

    몸이 아픈 사람들이 구급차 대신 택시나 카 셰어링을 이용하는 경우도 많다. 런던에서 코로 나바이러스에 감염된 한 여자 환자는 구급차 대신 우버 택시를 이용해 인근 응급실로 가서, 제 발로 걸어서 접수대를 찾아갔다. 탑승 시간이 짧아 운전사는 감염되지 않았다. 그러나 수 많은 이런 이야기들은 임시직 노동자들이 어떤 위험에 처해 있는지를 잘 말해준다.

    임시직 경제에서 일하는 독립 계약자들은 병가나 의료 보험 혜택이 없다. 《워싱턴 포스트》는 운전자들이 자동차를 세차하고 있다고 보도했는데, 이런 운전자들은 당연히 세차 시간에 대한 보수를 받지 못한다. 리프트와 달리 우버는(*) 운전자들에게 그들이 취해야 할 코로나 예방책을 상세히 기술한 메시지를 앱을 통해 보냈다. 이것은 그들이 우버의 직원이고 직원으로 대접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상기시켜주는 일일 뿐이다.

    이들 회사의 고용 모델, 그들의 문제해결식(algorithmic) 관리와 노동자 통제는 코로나바이 러스 시대에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투명성이 없고 노동 기본권도 없으며, 사용자들은 바이러 스로부터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그러니 일부 운전자들이 아시아 인으로 보이는 승객들을 거부하는 일도 벌어지는 것이다.

    * 리프트(Lyft)와 우버(Uber)는 모두 차량공유 서비스 플랫폼 회사들임. 호출한 승객을 태우고 이동하는 기사는 모두 피고용인이 아니라 자기 차량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독립계약자들이 됨.

    경고: 의사협회는 자본주의가 당신 건강에 위험하다고 결정했다.

    4. 노동자들의 요구, 노동조합의 대응

    현재로서는 코로나바이러스는 계속해서 기존의 노동시장 불평등을 악화시킬 듯하다. 그러나 노동운동은 고용주들이 상황의 피해자일 뿐인 것처럼 하면서 빠져나가게 해서는 안 된다. 기 업들은 보호 장비를 제공하고, 재택근무를 더 늘리고, 추가로 유급 병가와 의료 혜택을 제공 해야 한다.

    예컨대 영국의 총연맹인 노동조합회의(TUC)는 질병 수당 제도의 변경을 주장하는 등 앞장을 서고 있다. TUC는 주당 118파운드 이하인 노동자들도 유급 병가 대상이 되어야 하고, 병에 걸린 첫날부터 수당이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법이 바뀌면 거의 200만의 노동자들이 혜택을 받을 것이다. 3월 3일, 보리스 존슨 총리는 하원에서 법정 병가 수당(주당 94.25파운드)을 첫날부터 주기로 할 것이라 말했지만, 이것이 시간제 노동자들에게도 적용되는지에 대한 노동당 대표 제러미 코빈의 질문에 답변을 거부했다.

    한편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의 경비 노동자들은 마스크 착용을 허락하라고 요구했다. 얼굴 마스크가 바이러스의 확산을 다 막지는 못하지만, 노동조합은 최전선에 있는 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한 장치를 요구해 나가야 할 것이다. 나아가 노동조합은 ‘재택근무’ 혹은 원격지 근무를 더 늘리라고 요구할 수 있다. 지금 노동자들은 그것을 원한다. 재택근무가 더 긴 시간 효율적으로 일 하는 방법인지 아닌지 등 논란이 있지만, 여성노동자들, 특히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이나 부모가 있는 여성들에게는 도움이 될 것이다.

    코로나바이러스 위기가 일의 세계에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은 분명하이다. 그러나 어떤 위기상황에서도 그랬듯이 문제는 누가 비용을 치를 것인가이다. 노동자들에게 한 가지 선택지는 운명론이다. 이제 이 일도 ‘업무의 일환’이라는 상사들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아니면, 사용자들이 책임을 지라고 요구할 수 있다. 노동자들과 일반 대중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한 변화 를 만들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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