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벤트 유혹 벗고 정책과 비전으로 승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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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9월 07일 10:4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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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31 지방선거 때 민주노동당 내에서 기대를 모으며 30대 젊은 서울시장 후보로 선출된 김종철 전 민주노동당 최고위원은, 패배의 쓴잔을 마셨다. 기대치보다 훨씬 못 미친 득표율에 대해 다양한 분석과 비판이 나왔으며, 이 과정에 ‘사회주의’ 논쟁도 잠깐 있었다.

    김종철 전 최고위원은 현재 빈민운동 조직인 전국빈민연합에서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가 민주노동당의 현재를 반성적으로 되돌아보면서 향후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몇 가지를 제안하는 글을 <레디앙>에 보내왔다. 원고가 길어서 두 차례 나눠서 싣는다. <편집자 주>

    5.31지방선거가 끝나고 한 달가량 쉬면서 느낀 점이 있다. 별다른 직함을 갖지 않은 평당원의 입장에서 민주노동당의 활동을 지켜보았으나 잘 느껴지지가 않는 것이다. 신문도 3가지를 보고, 매일매일 인터넷을 하는 입장에서 나같이 당에 애정이 많은 사람이 당의 활동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른다면 아마도 민주노동당에 대한 일반 민중들의 인식은 그보다 더할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그리고 아마도 보수언론의 공세로 말미암아 민주노동당에 대한 인식은 그 대부분이 부정적인 것에 머물고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주노총당, 데모만 하는 당, 일방적인 친북정당 등…

    패기 상실한 의원단과 내부 매몰된 최고위원회

    그리고 여러 여론조사를 통해 민주노동당이 열린우리당과 질적으로 다른, 파격적인 ‘진보정치운동’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비록 정부비판 데모도 많이 하고, 국회에서는 여당과 대립을 하고 있어도 민중들은 노무현 정권과 민주노동당이 근본적으로 다른 정치세력임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민주노동당 의원단

    상황이 이렇게 된 데는 아무래도 당 지도부의 한계가 가장 클 것이다. 의원단은 기성 보수질서를 파격적으로 넘지 못하고, 패기를 상실했다. 최고위원회는 정세를 이끄는 활동보다는 내부 문제를 처리하는데 바쁜 상황이다. 이에 따라 당의 지역조직은 중앙당이 정세를 선도하지 못한 상황에서 홀로서기를 하고 있다.

    민주노동당만의 색깔과 패기를 만들지 못하다 보니 젊은이들도 당 참여를 꺼리고 있다. 당의 주요활동기반이 돼야 할 젊은이들의 당 참여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고, 이에 따라 당의 평균 연령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사회의 전반적 보수화 때문이긴 하지만, 다른 측면으로는 당이 젊은 세대에게 사회변혁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의 반증이다.

    가중되는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민중들은 정치세력 전체를 불신하게 됐는데, 그중에서도 온건부르주아세력, 진보정치세력은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경제 불황, 공황의 시기에 양극화와 더불어 대중의 의식도 확연히 분화되고 있는데, 현재 이념지형으로는 대중의 의식은 거의 전적으로 오른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한마디로 민주노동당의 위기이다.

    07년 대선 10년 평가와 비전의 경연장…‘이벤트의 유혹’ 벗어나야

    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어느 정도 대중적 인기가 있는 민주노동당 예비 대권주자들의 경선을 멋진 이벤트로 만들어 지지도를 높여보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내용 없는 이벤트는 열린우리당의 각종 이벤트가 허무하게 마무리됐던 전철을 밟을 수 있다.

    2007년과 2008년 정국에서 과연 우리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10년, 20년 후 민주노동당은 어떤 정당이 돼 있을지를 생각하며 2007년 대선을 준비해야 한다.

    2007년 대선은 김대중, 노무현 정권 10년의 평가의 장이자, 동시에 한국사회 양극화 해소에 대한 비전의 경연장이다. 수구보수 세력은 미국 중심의 세계화, 성장, 경쟁력을 중심모토로 들고 나올 것이고, 온건 부르즈와 세력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아마도 노무현 정권과 차별화를 위해 오히려 노무현 정권보다 좀 더 우경화된 입장으로 무장하고 2007년을 맞이할 것이다.

    현실 정치에서 1년 후의 상황을 예측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현재 상황으로만 보면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한 수구보수 세력의 집권가능성은 매우 높으며, 노무현 승계 세력, 즉 열린우리당 주류 세력은 아주 어려운 상황에 내몰릴 것이다.

    2007년 대선은 전반적으로 이념지형이 우향우 하는 가운데, 진보정치세력인 민주노동당이 독자의 입지를 확보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마련해야 하는 장이 될 것이다.

    2007년 대선에서 누가 집권하든, 이 집권세력에 대한 강력한 견제세력으로 자신을 위치 지워야 하는 것이 2008년 총선에서 ‘정권비판세력’의 화두이다. 그렇다면, 2007년 대선에서 민주노동당은 수구보수, 온건보수를 막론하고 보수세력 전체와 확연히 차별화된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그 비전은 단순히 무엇 무엇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우리가 지향하는 사회를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이 돼야 하는가. 나는 그 비전이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와 이를 넘어서는 체제 대안으로서 민주적 사회주의의 비전’이라고 생각한다.

    왜 민주적 사회주의인가

    먼저, 나는 당의 이념과 관련하여 지금까지 오래된 논쟁 주제였던 ‘사회주의냐, 사민주의냐’는 식의 논쟁은 좀 더 실천적인 논쟁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 논쟁은 너무나도 광범위한 주제를 다루고, 지난한 역사를 해석해야만 가능하기 때문에 단시간의 토론으로는 다뤄지기가 어렵다.

    오히려 각자가 주장하는 이념기반 아래서 구체적으로 어떤 실천을 할 것인가, 예를 들면 2007년 선거 강령으로는 어떤 것이 제출되어야 하는가를 놓고 토론하는 것이 더 생산적일 것이다. 실천적인 토론을 부탁드린다.

    나는 앞서 당의 현실을 진단하면서 젊은이들의 당 참여가 이뤄지지 않고 있음을 지적했다. 그리고 이것은 10년, 20년 후 한국진보정치의 미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기에 유심히 보아야 한다. 먼저 우리 사회에서 소위 민주화세력, 진보세력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현재의 지위를 확보했는가를 돌아보자.

    민주화, 통일, 노동해방, 진보정당… 지금까지 우리운동이 주장했고, 투쟁했고, 이뤄왔으며, 또 진행 중인 과제들이다. 이러한 우리의 과제들은 초기에 이것을 주장하고 투쟁하였을 때는 소수였으나, 궁극적으로 옳은 것이고 다수 민중의 이해에 뿌리를 둔 것들이었기에 승리를 쟁취할 수 있었다.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서는 대안이어야 한다

    군부독재의 압제 아래서도 진보세력은 저항을 지속적으로 벌여왔고 결국 87년 대투쟁 이후 지속적인 민주화를 이뤄왔으며, 6.15선언과 일련의 상황을 거쳐 통일에 대한 열망과 미국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려는 민중들의 열망 또한 지속적으로 성장했다.

    특히, 진보정당 건설의 경우에는 운동진영 내부에서도 소수였지만 정치세력화 없이는 민중들의 해방도 없다는 당연한 가치가 대중 속에서 지지를 받으며 성장한 사례이다. 오늘날 이러한 가치들에 대해 비록 섬세한 접근의 필요성은 얘기되고 있지만, 가치 그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그런데, 이러한 가치가 대부분 이뤄진 상황에서 우리가 새롭게 추구해야 할 가치는 무엇인가. 그것은 앞선 운동의 경험처럼, 비록 처음에는 소수라 할지라도 궁극적으로는 대다수 민중의 지지를 받고 세상을 바꿔낼 그런 가치여야 한다. 그래야만 그 가치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특히, 앞으로 우리 진보운동의 대들보가 될 젊은 세대가 그러하다.

    나는 그 가치를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서는 대안’이라고 판단한다. 그리고 그 대안 중에서도 가장 구체적으로 검토돼 왔으며, 엄정한 토론 끝에 당 강령에도 명시된 ‘민주적 사회주의’라고 판단한다.

    그러나 비록 ‘민주적 사회주의’라는 가치에 동의한다 하더라도 구체적으로 그 실내용이 무엇인가가 더욱 중요하다. 또한,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것을 ‘민주적 사회주의’로 표현하는 데는 동의하기 어려운 사람들도 그 실내용을 토론하다보면 실천적 합의점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민주적 사회주의는 무엇인가

    먼저, ‘민주적 사회주의’를 우리의 대안으로 이끌어내게 된 나의 생각은 다음과 같다.

    첫째, 우리가 겪는 단말마적인 양극화와 빈곤의 고통은 세계화된 자본주의에서 필연적인 현상이며, 이를 극복할 사회적 비전을 가져야 한다. 즉,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사회적 전망이 필요하다. 그것은 탈자본주의의 전망이며, 이 전망의 실현은 자본주의와 정면으로 맞서 싸울 때 가능하다.

    둘째, 민주적 사회주의의 기본원리는 인간의 삶에 가장 중요한 부분부터 사회주의적 운영원리로 재편하는 것이다. 이 부분은 자본주의적 방식을 탈각하고, 정부와 사회가 책임을 지고 역할을 다해야 하는 부분이다. 그 대상은 교육, 의료, 주거, 에너지, 교통, 환경, 노후, 장애, 보육 등이다.

    셋째, 당장 사회주의적으로 재편되기 어려운 시장부문의 기업들은 민주성과 공공성의 원리로 재편돼야 한다. 기업이사회의 절반 이상은 노동자 투표로 선출해야 한다. 이를 관철하기 위해 강력한 차별적 세금정책, 공공입찰제한 정책 등을 추진할 수 있다. 국가와 사회는 민주성과 공공성이라는 공공선을 추구하는 기업들에 대해 더 많은 혜택을 주어야 한다.

    이 가치를 관철시켜 나가는 기업을 우대하고, 그렇지 않은 소수 지배의 사적기업들은 민주적으로 변화시켜 나가며, 그것을 거부하는 기업은 체계적으로 도태시켜야 한다.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기업들은 민주성과 공공성의 가치로 심판해야 한다.

    넷째, 사회주의적으로 재편돼야 할 공공부문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산업의 산업’인 금융부문은 가장 먼저 민주적이고, 공공적인 운영체제에 편입시켜야 한다. 이를 통해 사적 금융자본이 여타 산업과 노동자, 민중을 지배하는 것을 막고, 민주적 경제체제의 안정성을 아래로부터 지켜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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