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인스의 우울한 귀환 혹은 부활?
    [기고] 코로나 그린뉴딜 vs 자본주의의 땜질성 관리
        2020년 03월 19일 11:0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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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대한민국의 1,2당은 총선에서의 자기 기득권을 유지 강화하기 위한 위성정당 꼼수 경쟁에 올인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들의 삶은 코로나19의 불안으로 또 이와 직접 연결되는 민생경제 및 한국경제 전반의 위축과 위기로 힘든 시간,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금은 이러저런 위성정당 놀음이 아니라 코로나19와 경제위기에 대한 해법을 가지고 토론하고 경쟁하고 호소해야 할 시점이다. <코로나 그린뉴딜>로 과감하게 접근할 것인지, <재난시기의 자본주의적 땜질 관리>로 이 국면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인지 논의해야 할 시점이다. 이와 관련한 경제정책의 전환을 강하게 촉구하고, 이를 이론적으로 설명하는 남종석 연구원의 글을 게재한다. 다소 길지만 나누지 않고 게재한다. 조금 어렵더라도 진지한 일독을 권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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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화면 캡처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충격이 현재진행형이다. 중국, 한국을 중심으로 확산되던 감염병이 이탈리아를 거쳐 유럽, 미국으로 상륙하자 세계 금융시장은 요동을 치고 있다. 경제위기, 장기불황에 대한 이야기가 꾸준히 나온다. 한국은 11.8조의 추경을 편성했고 한국은행은 역사상 최저 금리인 0.75%로 금리를 인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7000억 달러 양적완화, 500억 달러 정부 재정지출 놓았으며, 연준은 제로금리로 돌아왔다. 미국 정부는 엄청난 규모의 유동성 공급과 함께 GDP 2.4% 수준의 재정지출 발표한 반면 한국은 GDP 대비 0.62% 초미니 추경안을 내놓았다.

    기재부가 제시한 코로나19의 경제적 대응방식은 많은 한계가 있다. 규모가 너무 작고, 실질적으로 피해를 입은 경제주체들은 지원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경기부양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기재부의 추경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전히 재정안정성 도그마에 빠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추경에서 경기부양을 위한 유동성 공급은 대부분 대출 보증으로 채워져 있는데 그 규모도 아주 작다. 수요절벽에 직면한 소상공인과 서민층을 위한 직접 지원은 제외되었다. 수요보조는 수급대상자와 같은 최빈층에 한정되었다. 재정적자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이유에서이다. 기재부는 재정정책은 최소한만 활용하겠다는 입장이다.

    한국 경제의 성장률은 최근 몇 년 동안 꾸준히 잠재성장율에 미달하며, 물가상승률은 목표인플레이션율보다 낮았고 기업의 설비가동율은 70% 초반대로 유지된다. 이런 상태에서 코로나19의 충격이 지속된다면 한국 경제는 더 큰 불황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 그나마 한국은행이 이자율을 0.5%p 떨어뜨린 것은 큰 진전이다. 반면 기재부는 위기에 대한 의식보다 재정안정 유지를 절대시한다. 침체가 지속되면 잠재성장률을 더 낮추며 이는 경제의 기초 체력을 갉아먹는다. 그럼에도 기재부는 장기침체와 저성장에서 정부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는다.

    재정안정성에 집착하는 기재부의 논리, 정부 빚에 부정적인 일반여론이 만들어진 뿌리의 많은 부분은 경제학의 통념에서 비롯된다. 1980년대 이후 새케인즈주의자들은 통화주의자들의 가설을 수용하여 경제학을 변모시킨다. 오늘날 대학교재들 대부분은 장기에 있어서 ‘경제정책 무용론’을 설파한다. 정부가 경제에 개입하더라도 장기적으로 그 효과는 없다는 의미다. 시장은 장기적으로 균형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단기적인 정책에서도 재정정책보다 금융정책을 우선한다. 재정적자와 인플레이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한국의 기재부 관료들은 이 교리를 학습하며 관료가 된 이들이다. 그러다 보니 그들은 경기둔화, 저성장, 실업으로 인한 가계의 고통에 둔감하다. 경제정책 담당자들이 시장근본주의와 큰 친화성을 갖게 되었다는 말이다.

    이 글은 1980년대 이후 세계경제의 흐름과 경제정책의 우선순위가 어떻게 변화되었는가에 대한 스케치이다. 필자는 우선 현대 경제의 금융화를 이윤율의 경제학을 통해 설명한다. 더불어 금융정책이 경제정책의 주도권을 형성하게 된 배경을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2008년 이후 뉴-노르말 시대에 금융정책에 대한 불신이 크게 된 이유와 함께 금융정책에 대한 재정정책의 우위를 주장하는 대표적인 주장들은 소개한다. 간단히 요약하면 장기불황이 지속되는 상태에서 금융정책의 경기부양 효과가 점차 의문시되었다는 점이다. 그만큼 세계경제가 병을 앓고 있다는 의미다.

    이윤율의 경제학

    주류경제학의 스타이든, 급진주의 경제학자들이든 2010년 현대 경제가 ‘문제적’이라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다. 장기에 있어 시장은 자기완결적으로 작동한다는 주장은 이제 시야에서 사라졌다. 왜 경기부양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물경제는 그에 제대로 반응하지 않는가?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설명을 우회해보자.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은 이윤율 저하라는 관점에서 현대자본주의의 위기를 설명하고 있다. 이윤율의 경제학에 대해서는 여러 쟁점이 있지만 간단히 요약하면 자본소득분배율이 고정되었다고 가정할 때 자본생산성이 하락하면 이윤율이 하락한다는 의미다. 자본생산성은 자본 1원당 부가가치 비율을 나타내는데, 자본투입이 지속될 때, 다른 부분에서의 변화가 없다면 1원당 생산하는 부가가치의 양은 감소한다. 자본생산성의 하락은 1인당 자본장비율의 상승률보다 1인당 노동생산성이 상승률이 낮기 때문에 나타난다. 신고전파 경제학에서는 이를 ‘자본의 한계생산성 체감’이라고 한다.

    마르크스주의자들에 따르면 이윤율이 하락하면 기업들은 투자를 줄인다. 투자에 따른 수익성이 하락하기 때문에 저축 성향이 강화되고 이렇게 남은 잉여자본은 금융자본의 성장으로 이어진다. 1976년 영국의 금융빅뱅으로부터 시작하여 영미의 자본주의가 금융화되는 데는 재화와 용역을 생산하는 생산부분의 이윤율 하락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경제의 금융화는 이윤율을 회복시키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금융시장의 성장을 통해 전체 기업의 수익률을 높이기 때문이다. 지오바니 아리기는 이를 금융 주도적 축적국면이라고 설명한다(아리기, 2008). 아리기에 따르면 경제의 금융화로 인해 자본의 이윤율은 회복되지만 금융부분과 실물경제의 괴리가 확대되면서 이 국면이 지속될 수는 없다고 한다. 금리생활자들에게 더 없는 행복을 주는 시대도 어느 시점에 이르러 한계상황에 도달한다는 의미다.

    <그림 1>은 Paitraridis & Tsoulfidis(2019)가 제시하는 미국의 이윤율 추이다. Paitraridis & Tsoulfidis 전체 경제를 대상으로 한 일반이윤율과 생산적 부분만을 대상으로 한 실물경제의 순이윤율 추이(net rate of Profit)를 비교한다. 그래프의 붉은 선이 순이윤율, 파란 선이 일반이윤율이다. 순이윤율이 재화와 용역을 생산하는 부분이고 일반이윤율은 금융 등 가공자본의 이윤이 포함되어 있다. 이윤율의 장기추세를 보면 1982년까지 꾸준히 하락하던 이윤율은 그 이후 2000년까지 점진적으로 상승한다. 이 시기를 경제학자들이나 언론은 신경제(New Economy)라고 불렀다. 신경제는 저실업, 저임금, 저인플레이션, 재정흑자의 시대로 요약된다. 그러나 순이윤율은 1997년부터, 일반이윤율은 2000년부터 다시 급격히 하락하기 시작한다. 2001~2002년 닷컴 기업의 붕괴와 함께 신경제가 끝나기 때문이다.

    닷컴 기업들이 붕괴되면서 주식시장은 크게 침체하고 수익성은 하락한다. 그러자 위험성은 훨씬 크지만 수익성은 높은 파생금융상품 투자가 확대된다. 파생금융상품 붐이 일면서 일시적으로 경기가 회복되지만 2008년 세계금융위기와 함께 이윤율은 다시 폭락한다. 2010년 이후 양적완화 등을 통해 경기부양에 힘쓰지만 회복탄력성은 매우 낮고 2015년 이후 세계경제는 다시 침체로 돌아선다. 2017~2019년 미국은 다시 반짝 경기상승을 겪지만 2020년 세계경제는 침체한다.

    일반이윤율과 순이윤율의 차이도 흥미롭다. 1960년대부터 1985년 이전까지 일반이윤율과 순이윤율은 서로 겹쳐지지만 1985-2008년까지 일반이윤율이 순이윤보다 높다. 일반이윤율이 순이윤율보다 더 높다는 것은 금융부분이 실물부분보다 더 높은 이윤율을 기록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금융 주도적 축적국면의 모습이다. 그러나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일반이윤율이 순이윤율보다 더 낮아진다. 실물부분의 이윤율 회복이 지체되고 있지만 금융부분 등 비생산적인 부분 이윤율이 더 낮아지면서 나타난 결과다. 파생금융상품과 같은 위험자산의 리스크가 커지면서 안전자산 선호가 나타났으며 그 결과 국채금리는 지속적으로 하락한다. 자산시장으로 자금이 흘러가면서 자산수익률은 하락한 반면 위험성은 줄어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실물부분과 금융부분의 동시적 침체가 지속되는 상황이다. 금융 주도적 축적국면이 황혼에 이른 것이다.

    <그림 1> 1963-2015 미국 일반이윤율과 순이윤율
    자료) Dimitris Paitraridis & Lefteris Tsoulfidis(2019)

    마르크스에 따르면 이윤율이 하락하면 투자가 지체된다. 미래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경제의 금융화는 저축이 기업 투자로 흘러가지 않고 주식 채권 등 자산시장으로 흘러간 결과이다. 이를 자본파업이라 할 수 있다. 자본파업이란 기업의 고유한 업무인 투자 회피를 비판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케인즈도 유사한 주장을 했는데 그에 따르면 예상수익률 하락으로 인해 기업인들은 본능적으로 투자를 회피하게 된다. 하이만 민스키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투기 성향이 훨씬 커지는 셈이다.

    그러나 세계시장의 모든 자본가들이 그런 것은 아니다. 세계시장에서 보자면 중심부 국가의 자본은 이윤율이 크게 낮아져 투자가 줄어들지만 주변부에서는 저임금 경쟁자들이 꾸준히 시장에 진입한다. 중심부 국가에서는 자본생산성 하락으로 수익성이 크게 악화되었지만 신흥공업국은 풍부한 노동력과 현저히 낮은 임금을 기반으로, 때로는 국가의 강력한 지원을 등에 업고 세계시장의 후발 경쟁자로 등장한다. 자본은 해외로부터 수입하고 자동화된 생산설비를 통해 선진국의 기술을 빠르게 자기화하면서 신흥공업국은 세계시장의 점유율을 빠르게 확대하는 것이다. 중국, 인도, 러시아, 브라질 등 대국들이 새로운 경쟁자이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이윤율이 떨어지면 투자를 하지 않아야 하는데, 그의 예언과 달리 신흥공업국들은 그래도 투자한다. 기술적으로는 뒤떨어지더라도 현저하게 낮은 가격으로 세계시장에 진입하기 때문에 중심부 국가의 기업들은 더 강력한 가격 하방압력에 시달린다. 이는 중심부 자본의 이윤율을 더 떨어뜨린다. 선진국 자본은 수익성 개선을 위해 기술진보를 통한 격차를 확대하고 노동에 대한 공격을 통한 비용 절감 노력을 하는 등 나름대로 대안을 마련하지만 가격 하방 압력을 쉽게 이겨내지 못한다. 이윤율이 정체하는 이유다. 아담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이를 시장의 한계로 설명한다. 현 시기는 마르크스적 위기론과 아담 스미스적 위기론이 중첩되는 국면이다.

    금융화의 한계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미국, 유럽, 일본의 정부들이 경기부양을 위해 지속적으로 비전통적인 금융정책(제로금리, 양적완화 등)을 실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물경제는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 세계경제의 현실은 저금리, 저물가, 저성장, 고부채, 불평등의 시대로 요약될 수 있다. 금리가 낮아도 투자는 이뤄지지 않고 노동생산성 상승률은 지체되었으며 자산소득자들로의 부의 집중은 더 가속화되고 있다. 경제학자들은 이를 일컬어 뉴-노르말(New Normal)이라고 한다.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경제학계 내에서 경제정책에 대한 새로운 쟁점들이 제기된다. 금융정책에 비해 재정정책이 유효성에 대한 논의가 점차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197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경제학계의 큰 변화 가운데 하나는 케인즈주의가 쇠퇴하고 통화주의의 영향력이 높아진 점이다. 경제학계 내에서 통화주의가 주류가 된 것은 아니고 통화주의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네오(Neo)케인즈주의가 변모하게 되는데 이를 새(New)케인즈주의라 한다. 새케인즈주의는 경제의 금융화를 수용하고 인플레이션 통제를 중요한 정책 목표로 설정한다. 더불어 재정적자 누적에 대한 우려로 재정정책을 주변화하고 금융정책을 경기부양의 핵심수단으로 활용한다. 이자율 조정을 통해 시중의 통화량을 조정하는 것이다.

    현대경제학에서 말하는 재정정책은 재정적자를 의미하는데 이는 정부수입보다 정부지출을 더 늘리는 것을 일컫는다. 세출이 세입보다 더 큰 정책이다. 정부지출을 확대한다 해도 이것이 세입을 늘려 세출을 증가시키면 세입을 늘리는 과정에서 민간소비, 투자를 위축시키기 때문에 경기부양에는 한계가 따른다. 반면 재정적자 정책은 민간수요(가계와 기업)를 감소시키지 않으면서 정부수요를 늘리기 때문에 경기부양 수단으로 제격이다. 이것은 케인즈 경제학의 핵심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 이후 재정정책 중심의 경기부양 정책은 긍정적인 효과보다 부정적인 효과가 크다는 비판에 직면한다. 통화주의자들은 정부가 빚을 내어 인위적인 경기부양을 하더라도 가계는 언젠가는 이 빚을 갚아야 할 것으로 보기 때문에 추가 지출을 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를 리카르도 등가성 원리라고 한다. 이 가설이 성립하려면 인간은 매우 합리적인 존재여야 한다. 통화주의자들은 심지어 인간은 자기 생애 동안 총소득이 얼마인가를 계산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 또한 이들은 재정적자 정책이 민간수요를 줄인다고 주장한다. 정부가 국채를 발행해서 시중의 자금을 동원하면 민간자금이 줄어들기 때문에 정부수요는 늘지만 투자와 소비가 위축되어 민간투자를 억제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 구축효과라고 한다.

    1970년대 정부의 경제정책이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반면 기업 투자를 확대시키지 못하자 이와 같은 비판은 큰 설득력을 얻게 된다. 재정정책은 부차적인 것이 되고 금융정책이 중요한 정책수단으로 자리잡는다. 경제학 교과서에서는 경제가 잠재성장률 상태에 있을 때 재정정책은 아무런 효과가 없다고 쓰여 있다. 잠재성장율이란 한 국가가 자신의 보유한 자원을 최적으로 사용하는 상태의 성장률을 일컫는다. 이 경우 정부의 재정지출은 단기적인 성장을 이끌 수 있지만 물가인상과 임금인상을 유발함으로써 기업 투자를 위축시킨다. 잠재성장율 상태에서 정부의 인위적인 경기부양은 물가만 인상시킨다.

    통화주의자들은 비록 ‘화폐수량설’, ‘합리적기대가설’ 등 다양한 이론들을 내놓았지만 경제학의 주류를 형성하지는 못한다. 통화주의의 가정대로 인간이 완전히 합리적이면 경제정책은 아무런 효과가 없으며 이 이론의 정책적 함의는 경제정책 무용론이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이 경제정책 무용론을 수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더군다나 인간의 합리성은 매우 제한적이다. 새케인즈주의자들은 인플레이션목표제, 자연실업률, 금융정책 중심의 경제정책, 금융화를 위한 규제완화 등 통화주의자들과 많은 부분에서 교감하지만 정부정책을 통해 경기변동에 개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케인즈주의자들이다. 더불어 이들은 정부는 정책개입을 통해 실업자를 구제해야 한다는 케인즈의 핵심 주장을 계승한다.

    경기가 위축되면 이자율을 내리고 유동성을 충분히 공급한다. 금융시장이든 실물시장이든 충격을 받으면 연준은 유례없이 이자율을 낮추어 유동성을 공급했다. 그러면 주식시장은 곧바로 회복되었고 덩달아 실물경제도 개선되는 효과가 있었다. 자산소득이 발생하면 지출이 늘고 총수요는 증가하기 때문이다. 그린스펀이 연준 의장으로 있을 때 금융시장 투자자들은 이를 ‘그린스펀 풋’(Greenspan put)이라고 했다. 주식시장이 교란되면 연준이 나서서 구제한다는 것을 이렇게 표현한다. 금융자본들은 기꺼이 주식, 채권 등 자산시장에 투자한다. 그러다가 자산시장 붕괴가 나타나면 연준은 금리를 낮추고 정부는 세금 인하 등 수요 진작을 통해 경기를 부양한다. 주가는 다시 상승한다. 금융자본은 이래도 이익이고 저래도 이익이다.

    우파 정부들은 금융정책과 함께 기업들의 투자 확대를 위해 감세 카드를 많이 활용했다. 감세는 두 가지 형태로 제시된다. 특정한 기간 법인세난 상속세를 크게 감면해 준다. 상속세의 경우 면제 기간을 두기도 한다. 수요 진작을 위해서는 페이롤 택스(Payroll Tax) 감면도 쓴다. 페이롤 택스는 급여에 대한 세금을 의미하는 데, 간단하게 이해하면 사회보장세이다. 국민연금, 의료보험, 고용보험료 등이다. 기업이 50%를 내고, 노동자들의 임금에서 50%를 뗀다. 페이롤 택스(Payroll Tax)를 면하면 기업에게는 세금감면 효과가 있고 가계에게는 가처분소득이 증가한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뉴-노르말 시대는 금융정책의 효과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각국은 제로금리, 심지어 마이너스 금리까지 이자율을 낮추었다 양적완화를 통해 미국은 2010년부터 2015년까지 꾸준히 민간이 보유한 부실자산을 매입했다. 3조 달러의 본원통화가 증가했다. 유로존도 2015년 이후 양적완화에 동참한다. 그러나 제로금리, 양적완화에도 불구하고 실물경제의 성장은 크게 나타나지 않았고 경기활성화의 효과도 크지 않았다. 불황기는 길고 호황기는 짧은 전형적인 장기 침체의 모습을 띤 것이다. 비전통적인 금융정책을 통해 풀려진 돈은 금융권에서 맴돌면서 주식, 주택, 파생금융상품만을 키워놓은 반면 실물경제에 긍정적인 자극을 주는 데 근본적인 한계를 보여준다. 금융정책의 유효성에 큰 의문이 제기된 것이다.

    케인즈의 부활?

    이렇게 되자 새케인즈주의자들은 금융정책의 한계를 지적하며 재정정책의 필요성을 다시 강조하기 시작한다. 2016년 전미경제학에서 오바마 행정부의 경제자문위원회(CEA) 의장이었던 제이슨 퍼먼은 “재정정책은 이자율을 높여 민간투자를 저해한다”는 낡은 생각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른바 구축효과에 대해 비판한 것이다. 여기서 낡은 생각이란 금융정책이 효과나 정책전달 경로 측면에서 우월한 반면 재정정책이란 재정 건전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논리다. 퍼먼은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은 보완적 관계에 있으며 “인플레이션이 낮고 저금리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재정정책은 특히 효과적”이라고 주장했다(조귀동, 2017)

    우리에게 VAR(벡터 자기회귀 :Vector Autoregression) 모형으로 유명한 크리스토퍼 심스 교수는 ‘재정적 물가결정이론’(fiscal theory of the price level)을 통해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의 조합을 제시한다. 심스는 경기 침체기에 “중앙은행이 금리를 낮추어도 정부가 재정적자 정책을 하지 않으면 유효수요가 늘어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금리하락은 국채에 대한 이자부담을 줄이기 때문에 재정수지가 개선된다. 정부가 민간에게 지불할 이자가 줄어드니 민간의 소득은 감소하고 정부 재정건전성은 높아진다. 이 경우 재정운영은 자동적으로 긴축효과를 낳기 때문에 총수요를 더 줄이는 결과를 낳는다. 금리를 낮추더라도 재정적자 정책을 통해 더 확장적인 수요를 창출해야만 물가가 목표인플레이션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 즉 장기불황의 국면에서 화폐 공급을 확대하는 것만으로 목표인플레이션에 도달할 수 없고 반드시 재정적자 정책으로 보완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Sims, 1994). 정부가 재정적자를 감수하면서라도 총수요를 유발시켜야 한다는 취지다.

    1980년대라면, GDP 대비 100%의 정부부채는 정부 파산의 신호로 읽혔을 법하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학자들은 부채의 절대적 규모보다 중요한 것은 부채와 국내총생산의 관계라고 주장한다. 부채의 절대적 규모가 크더라도 경제 규모가 더 커지면 부채는 관리가능하다는 취지다. IMF의 수석경제분석 경제학자였던 올리비에 블랑샤 교수는 “정부가 국채를 발행해 공공정책에 쓰는 게 민간이 금융시장에서 채권을 발행해 자율적으로 투자하는 것보다 효율적일 수 있다.”고 했다(조귀동, 2017). 민간보다 정부 재정적자가 경제에 더 효율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깜짝 놀랄만한 발언이다.

    물론 블랑샤가 정부적자가 누적적으로 증가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Blanchard, 2019). 블랑샤는 정부 빚은 관리 가능한 수준이면 거시안전성에 큰 문제를 야기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에 따르면 경제성장률이 이자율보다 높으면 자본소득분배율은 감소하기 때문에 적자로 인한 이자부담은 통제가능하다고 한다. 이는 간단한 케인즈의 자본축적 방정식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

    식 (1)은 케인즈의 자본축적 방정식에서 유래한다. 잠재성장률 상태에서 저축률( )이 고정되면 자본소득분배율의 변동은 이자율( )과 경제성장률?( )에 의해 결정된다. 식 (1)을 로그를 취하면 식(2)가 된다. 이자율( )의 변화율보다 경제성장률의 변화율( )이 더 크면 자본소득분배율( )은 감소한다. 자본소득분배율이 감소한다는 것은 부채가 늘어 채권자의 소득이 절대적으로 증가하더라도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오히려 감소한다는 의미다. 빚 그 자체의 절대 규모보다 경제성장률이 더 중요한 이유이다. 경제가 성장하면 빚의 관리는 가능하다.

    장기에 있어서 재정정책은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이야기를 경제학 교과서에서 여전히 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경제학자들의 이와 같은 입장 전환은 확실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한 때 경제학계는 재정적자 누적, 정부 파산에 대한 두려움으로 재정정책보다는 금융정책을 더 선호했지만 이제 비전통적인 금융정책조차 경기부양에서 큰 효력이 없다는 역사적 경험으로 인해 새로운 정책수단을 간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새로운 정책 수단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폐기했던 것을 다시 테이블 위에 올려놓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더 클 것이다. 즉 케인즈를 그들은 다시 불러들이고 있는 셈이다.

    지금도 많은 경제학자들은 인간이 합리적 존재이고, 전 생애의 기대소득을 계산할 수 있으며, 미래에 지불할 세금을 근거로 현재의 소비를 줄인다고 대학에서 가르친다. 미시경제학 교과서에서 신성시되는 ‘최적화 원리’는 인간의 합리성을 극단화했을 때만 성립한다. 그러나 인간은 그렇게 합리적이지 않다. 우리는 제한된 합리성 속에서 자기 이익의 극대화를 추구하며 때로는 자기 이익을 초월해 행동하기도 한다. 케인즈는 인간의 비합리성을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이라 표현했다.

    케인즈의 복권은 어떤 점에서 보면 화려함보다는 불가피함을 보여준다. 앞에서도 썼듯이 경제의 금융화는 자본주의의 장기성장을 유인하기보다 자산시장을 키워 불로소득과 불평등을 낳았다. 실물부분과 금융부분의 괴리는 경제의 불안정성을 크게 높였다. 실물경제와 자산시장의 괴리가 커지면서 거품이 크게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2000대 이후 금융부분 이윤율은 실물에 뒤처지기조차 한다. 더불어 수익성 하락과 불안정성의 증가는 안전자산인 국채시장으로 자본이 몰리게 되면서 국채금리를 마이너스로 곤두박질 치는 상황이다. 금리가 마이너스여도 투자는 확대되지 않는다. 경기 부양의 유일한 수단이 정부가 되었다는 의미다. 이 상태에서 재정적자 정책 말고 다른 무엇이 있는가?

    코로나 사태 이후 한국

    한국의 정부 빚은 GDP 대비 40% 내외이다. OECD 평균에 비하면 한참 미달하는 수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경제관료들은 재정적자 누적에 대해 매우 우려한다. 그들에게 거시 안정성은 하나의 교리에 가깝다. 그러므로 기획재정부 관료들의 입장에서 보면 재정적자를 감수하며 정부투자를 확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해 경기부양을 할 의사는 있지만 재정을 동원할 생각은 없다. 이는 문재인 정부든 그 이전 정부든 차이가 없다.

    그러다 보니 코로나19에 대응한 추경 편성에서도 예의 그 재정안정성 원리가 강하게 지켜지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봉쇄전략(격리, 검사, 봉쇄)으로 인해 소상공인들이 수요절벽에 직면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상공인에 대한 지원 정책은 금융완화 즉 대출조건 완화가 유일하다. 수요보조를 위해 3조를 풀긴 하지만 지원대상은 코로나19로 소득감소를 크게 겪고 있는 불안정 노동자들이 아니라 최빈층이라 할 수 있는 수급대상자들이 중심이다. 최빈층 외에는 자력갱생이 원칙이다. 실직을 한 이들은 실업보험을 통해 구제하면 된다. 더 이상의 지출은 거시안정성을 해치며 재정건전성을 위협한다.

    기재부 관료들은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이 매우 약해지고 있다는 신호를 애써 무시한다. 한국 경제는 최근 몇 년 동안 잠재성장률에 미달하는 경제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올해도 2.3의 잠재성장률을 달성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현재의 국면이라면 1점대 중반의 성장률을 기록할 공산이 크다. 이미 중국 산출이 크게 감소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에서 미국과 유럽으로 바이러스가 확산됨으로써 해외수요는 더 크게 줄어들 것이다. 수출을 통한 경기 반등 가능성이 매우 낮다. 재정적자를 통한 경제에 긍정적 충격을 주는 것 외에 다른 뾰족한 수단이 없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재부 관료들은 거시안정성이라는 신화에 젖어있다.

    앞에서도 썼듯이 정부 빚의 절대적 규모보다 경제성장률 하락이 한국 경제의 거시안정성에 더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경제의 기초체력 저하로 인한 잠재성장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면 그것이 곧 위기의 징후이기도 하다. 재정정책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의 맥락에서 정책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유효한 수단임은 분명하다. IMF는 코로나19로 인한 피해가 가중되지 않은 시점에서도 한국 정부가 재정지출을 통해 경제의 기초체력을 키워야 한다고 권고했었다. 여타 해외의 경제학자들도 한국 경제에 대해 같은 조언을 했었다. 코로나19로 인해 그 필요성이 더 커졌다. 다만 한국의 경제관료와 경제학을 대학에서 가르치는 이들만 이에 침묵할 뿐이다.

    <참고자료>

    조귀동(2017), 「경제학이 바뀐다」, 비즈니스조선.

    지오바니 아리기(2008), 『장기 20세기』, 그린비.

    Christopher A. Sims(1994), “A Simple Model for Study of the Determination of the Price Level and the Interaction of Monetary and Fiscal Policy,” Vol. 4(3), pp. 381–99.

    Olivier Blanchard(2019), Public Debt and Low Interest Rates, AMERICAN ECONOMIC REVIEW, Vol.109(4), pp. 1197-1229.

    필자소개
    경남연구원 연구위원. 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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