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물 흘리며 누구 목을 참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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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9월 06일 11:4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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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읍참마속(泣斬馬謖)처럼 많이 인용되는 고사도 없을 것이다. 기강을 세우기 위해 군령을 위반한 마속을 제갈공명이 울면서 참하였다는 이 고사는 조직의 내부단속을 할 때마다 나오는 표현이다. 실제로는 제거하고 싶었던 사람을 제거하면서 이 고사를 쓰는 경우가 많아 씁쓸하기는 하지만, 변방에 위치한 촉나라가 유비 사후에도 실력을 발휘한 비밀은 읍참마속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읍참마속이 반드시 순수한 것은 아니다. 실제 공명의 처신을 보면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모습도 보인다. 마속에게 길목을 지키라고 명한 것은 공명일 뿐만 아니라, 이 전투의 패배로 촉은 상당한 타격을 입는다.

    여론의 압력이 마속을 만들어낸다

       
     ▲ 제갈공명
     

    김구용 본을 보면 자신의 눈물에 의구심을 표현하는 부하들에게 자신의 눈물은 마속에 대한 미련이 아니라 마속을 믿지 말라고 경고한 이미 죽은 유비를 흠모하는 마음에서 눈물을 흘린다고 표현하였다. 게다가 공명은 상징적이지만, 전쟁의 실패의 책임은 자기에게 있으니 계급을 3단계 강등하는 안을 황제에게 올려 허락을 받는다. 어찌보면 이는 자신의 책임을 교묘히 회피한 것으로 보이기도 하다.

    그러나, 제갈공명의 의도가 어찌되었던 간에 읍참마속은 전쟁에서의 패배를 오히려 전기로 바꾸었으며, 실질적인 국정의 최고책임자인 제갈공명이 자신이 총애하는 사람을 참수했으니 나머지 부하들도 더욱 심기일전하게 되는 효과를 낳았다고 볼 수 있다.

    읍참마속처럼 극단적인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조직의 유지를 위하여 실력자가 희생하는 관행은 사실 대단히 만들기 어려운 것이다. 대개의 민주주의 국가에서 읍참마속이라는 것은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여론의 압력에 기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여론의 압력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라면 사실 이미 때가 늦은 것이다.

    역대 정권의 대통령들이 자신의 아들들 때문에 임기 말에 곤란을 겪고, 비교적 젊은 노무현 대통령조차 조카 때문에 구설수에 오르는 것을 보면 읍참마속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로 자발적으로 실행하기는 불가능한 원칙인지도 모른다.

    약한 조직에서 진가 발휘하는 ‘읍참마속’

    그렇기 때문에 이를 시행한 힘이 약한 촉나라는 자신의 힘을 극대화시켰을 지도 모른다. 즉, 비교적 시스템에 의하여 굴러가는 힘 있는 조직에서보다 도약하려고 하는 힘이 없는 조직에서 읍참마속은 진정한 진가를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다수파는 전횡을 하기 마련인데, 이것을 최대한 억제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다수파의 리더십을 공고히 하기 때문이다.

    읍참마속을 실행하기 어려운 것은 실제로 이것이 잔인(?)하기 때문이다. 고락을 같이 해 온 사람을 실수가 있다고 하여 단호하게 제재하는 것은 인간적으로 너무 잔인하게 느껴진다. 실제로 대부분의 경우 각종 이유를 들어 거의 아무런 제재를 내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별로 자신들이 믿지 않는 원칙을 들어 제재를 회피하기도 한다. 사법부의 판단을 불신하는 조직에서조차 ‘무죄추정의 원칙’을 들먹이기도 하고, 한나라당의 모 의원 성 추행 사건처럼 자체적으로 판단하여야 할 일을 사법부에 떠 넘기기도 한다.

    하지만, 외곽의 지지자들은 이를 반색하며 반긴다. 자신의 팔을 자르는 모습은 수천, 수만의 팔들로 하여금 그들을 돕게 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엄정한 모습을 보여주는 집단에게 희망을 발견하는 것은 생계가 고달픈 사람들에게조차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한 팔을 자르면 수만의 팔이 도와준다

    참여연대가 지금과 같은 공신력을 확보한 것은 소액주주운동이나 조세개혁운동처럼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가능한 방식으로 풀어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는 자신의 활동과 후원의 주축인 전문가집단(변호사, 회계사)의 경제적 이해에 반하는 부가가치세 과세안을 지지함으로써 ‘읍참마속’과 유사한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에서 압도적으로 불리할 뿐만 아니라 이데올로기적으로도 수세에 있는 소수파인 정당이나 정치조직에게 있어서 읍참마속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일 수 있으나, 어느 누구도 고뇌에 찬 결단과는 거리가 머니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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