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전환자 성별변경 특별법 제정 시급"
        2006년 09월 04일 06:4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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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전환자에 대한 첫 인권실태조사 보고대회가 열려 주목을 받았다.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과 ‘성전환자 인권실태조사 기획단’은 4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지난 4월부터 8월까지 5개월에 걸쳐 진행한 성전환자 인권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성전환자인권연대 ‘지렁이’, 성적소수문화환경을위한모임 ‘연분홍치마’ 등이 참여한 ‘성전환자 인권실태조사 기획단’은 성전환자 38명에 대한 심층면접조사를 진행하고, 이를 토대로 설문지를 구성, 78명의 성전환자들에게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심층면접은 출생 및 아동기, 청소년기 성 정체성 인식, 의학적 조치, 병역, 직업과 노동, 가족구성 등 생애 전 과정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을 기본으로 진행됐다. 설문조사는 가족관계, 가구경제, 거주형태, 의학적 조치, 성별변경, 직업활동, 사회적 관계, 가족구성, 차별경험 등 전반을 조사해 수치화했다. 특히 성전환자들을 위한 정책방향과 목표 등 대안 마련을 위한 정책과제도 포함됐다.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성전환자들은 아동기 때 이미 놀이문화, 옷차림, 성별역할 등에서 생물학적 성에 대한 거부를 경험한다. 특히 청소년기 2차 성징을 겪으며 절망감을 느끼거나 육체에 대한 혐오를 경험했다. 보고서는 이를 ‘육체에서 배반당한 것’이라고 표현했다. FTM(여성에서 남성으로 : female to male)은 생리를 통해, MTF (남성에서 여성으로: male to female)는 발기를 통해 고통을 겪는다는 것이다.

    “보통 남자애들처럼 발기를 한다는 것이 너무 싫었어요. 정신적인 것의 해결책은 아니니까. 발기하는 것이 보일까봐, 옷을 두개씩, 속옷을 두개씩 쫙 붙여서 입었어요.” (박○순, MTF, 60세)

    생물학적 성에 부여된 ‘젠더 규범’이 작동하는 사회생활에서 성전환자들은 더욱 크고 반복적인 고통을 느껴왔음을 알 수 있다.

    “소풍을 가면 저는 음료수를 싸간 적이 없어요. 물을 마시면 화장실을 가야하지 때문에. 화장실이 남녀 공용이 되 있으면 편하게 가겠는데 분리가 돼 있으니까 전혀 이용을 못하죠.” (임○현, FTM, 31세)

    “‘쟤 여자야, 남자야?’. 들리든 들리지 않든 그 말이 정말 칼로 찔리는 것보다 훨씬 더 그 느낌이. 또 하나는 저랑 같이 있는 사람에 대한 미안함. 쟤는 이상한 애랑 다녀, 나는 그 눈빛을 이 사람이 감수를 해야 한다는 상황이 너무 미안했던 거예요.”(김○경, MTF, 34세)

    ‘죽어도 보이면 안된다. 보이면 안된다…’

    이는 성전환자들의 정체성 노출에 대한 공포와도 이어진다.

    “그 때 바다에 죽으러 갔을 때, 고동 잡는 척 하고 가서 쭉 빠졌는데 금세 물먹고 올라왔더라. 근처에 있는 사람들이 구해준 거야. 근데 날 살릴려고 옷을 벗기려고 하고 있더라구. 그 정신에도 죽어도 보이면 안된다. 죽어도 안된다. 악착까지 살았다는 시늉을 하면서 그만두게 했어요.” (신○영, FTM, 48세)

    성전환자들은 ‘트렌스젠더’라는 용어를 접하며 성정체성을 확신하고 동시에 ‘치료의 필요성’내지 ‘치료의 가능성’을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곧 호르몬 투여나 수술 등과 같은 의학적 조치로 실행됐다.

    “계속 불안, 불안하다가 수술하고 나니까 일단은 심리적으로 많이 편안해지는 거죠. 호적도 그렇고 상황이 안정된 건 아닌데 심리적으로 편안해지는 거죠. 미련이나 그런 건 하나도 없었어요.”(김○경, MTF, 34세)

    성전환자들은 특히 직업을 구하는 과정에서 취업기회의 제한, 노동현장에서의 사회적 관계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면접 보러 갔을 때 ‘트랜스젠더입니다’하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잖아요. 면접 보러 가면 ‘남자인 줄 알았습니다’ ‘이력서 보면 여자잖아요. 본인 맞습니까?’ ‘진짜 맞습니까?’ ‘주민등록증 번호 좀 불러보세요.’…면접 보면 제일 먼저 하는 말이 ‘왜 그렇게 하고 다닙니까?’ (합니다.) 다른데 취업 못 하고 있던 가게로 다시 왔죠.” (신○섭, FTM, 26세)

    “어느 순간, ‘쟤 남자였어?’ 라는 얘기. 그러면서 회식하는데 우리 원장님이 농담으로 ‘수술해라, 내가 수술비 대 줄께.’ 농담이었을 거예요. 분명, 그 사람은. 그게 저한테는 위기 상황이었어요. 괜히 그게 또 겁나더라고요. 지레 겁먹은 게 그만두게 됐어요.”(김○경, MTF, 34세)

    설문조사에서도 성전환자들은 생활에서 겪는 어려움 중 취직이나 진학의 어려움이 가장 큰 것(52.6%)으로 응답했다. 이어서 교제와 결혼(42.3%), 생계(37.2%), 가족으로부터의 소외(37.2%), 대인공포(21.8%) 등을 꼽았다.

    차별 경험에 대해서는 65.4%가 성별주체성 때문에 주위사람들로부터 욕설이나 비아냥거림을 들은 적이 있으며 61.5%가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쳐다보거나 수군거린다고 응답했다. 44.9%는 성희롱이나 성추행을 당한 경험이 있고 20.5%는 성폭행을 당하기도 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성전환자들은 차별을 겪으면서도 대부분 참거나(37.7%) 무시하는(36.4%) 것으로 나타났다. 곧바로 항의하거나 시간이 지난 후 감정을 표현한다는 응답은 각각 9.1%, 5.2%에 불과했다. 보고서는 이에 대해 “직접적인 대처 방법을 취할 경우 2차적인 차별과 피해를 당할 수 있거나 원치 않는 커밍아웃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성별 변경 특별법 시급히 제정돼야"

    성전환자들은 국가의 성전환자 관련 정책으로 ‘성별 변경에 대한 법안 마련’을 가장 우선으로 꼽았다. 성전환 수술에 대한 국민건강보험의 적용, 성적취향이나 성주체성으로 인한 차별금지법 제정, 자립 지원 등이 다음을 차지했다. 더불어 희망하는 사회서비스로는 취업 상담을 1순위로 꼽았으며 방문간호와 의료지원, 성별정체성 관련 상담, 기술·기능 교육에 대한 요구를 밝혔다.

    성전환자 인권실태 기획단은 이같은 실태조사 결과를 토대로 “성전환자 성별변경에 관한 특별법이 시급히 제정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기획단은 “현재처럼 가슴수술, 정소·난소제거 수술, 성기형성수술 등 모든 성전환 수술을 이행해야 한다는 요건은 수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태조사 결과, 성전환 수술과 관련 가슴수술에 평균 503만원, 정소·난소수술에 평균 333만원이 지불되고 성기형성수술 비용은 평균 1,390만원으로 나타나 비용부담이 막대하다는 지적이다.

    기획단은 주변 사람들과 관계로부터 성별정체성에 대한 인정을 받고 있는지 여부와 성전환자의 성 주체성 장애라는 전문의의 의학적 진단여부가 확인되면 성전환자 성별변경을 허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더불어 기획단은 신분등록제 상 성전환자의 성별변경 관련 규정 마련을 촉구했다. 성별 변경사실이 불필요하게 알려지지 않도록 하는 보호 장치 마련, 공문서 기록을 성별변경 이후 바뀐 성으로 다시 표기하는 것, 성별변경 이전에 획득한 사회적 자격이나 경력을 보전하는 절차 등이다. 이외에도 병역법의 제도 정비, 성전환 수술의 국민건강보험제도 적용, 성전환 수술의 가이드라인 제시, 차별금지법 제정, 인권 교육 등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최현숙 위원장은 “차별 상황을 전혀 드러낼 수 없었던 성전환자에 대해 우리 사회가 처음 관심을 갖고 정책 마련을 위해 실태조사를 한 것”이라며 이번 조사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노회찬 의원도 보고대회 인사말를 통해 “이번 실태조사는 성전환자들의 인권 보장을 위한 가장 기초적인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데 큰 의의가 있다”며 “성전환자를 비롯한 성소수자의 인권 보장을 위한 법제 정비의 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노 의원은 지난달 21일 국회에서 ‘성전환자 성별변경 등에 관한 특례법(안)’에 대한 입법공청회를 진행했으며 법안을 정비해 이르면 이달 중 해당 법안을 발의하고 입법을 추진할 계획이다. 노 의원은 “이 법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야만에서 문명의 문턱을 넘었는지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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