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바논을 보면서 제주 4.3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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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9월 04일 05:2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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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퍽이나 무더운 여름이었다. 선풍기 바람 아래 책장을 넘기면서 나는 허덕허덕 시간을 보냈다.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에 세상의 이목이 쏠렸을 즈음 권귀숙의 『기억의 정치』를 읽었다. 이 책은 4.3의 상처를 다루고 있다. 역사가 공식적이라면, 기억은 비공식적이다. 관점에 따라 상이하게 펼쳐지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은 생생함을 가지기에 울림이 있다.

    제주가 겪은 4.3의 상처에 대해서야 두말할 필요가 없을 성싶다. 제주의회에서는 대량학살에 의해 희생된 사람을 12,243명으로 잡고 있으며(「제주도 4.3피해 조사 보고서」 2000년 수정보완판), 진보적인 사회단체에서는 3만여 명(당시 인구의 10%)으로 추산하고 있을 정도다.

    상당히 많은 인명이 무고하게 죽어간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데, 각각의 입장에서 증언을 들어보면 논의는 어지럽게 얽혀 버리고 만다. 가해자일 수 있는 경찰, 경비대/군인, 서북청년단, 산사람, 좌익단체, 민보단원(특공대원 또는 자경대원)의 목소리가 전혀 접합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념이 아닌 생존을 중심으로 그 참혹한 시절을 보냈다고 하는 ‘무서웠다’라는 기억만이 유일하게 일치하고 있다.

    레바논의 참상을 전하는 사진들을 보면서 그네들의 모습들을 떠올려 보았다. 아직도 이글이글 불에 타면서 녹아내리는 시체, 몸뚱이와 머리통이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 시체, 얼굴 한 편으로 피를 철철 흘리는 소년, 얼굴이 일그러져 형체가 뭉개진 아이, 정육점에 걸린 고기마냥 어디론가 옮겨지는 시체, 비통하게 울부짖는 부모의 모습 등. 누군들 이런 상황의 한가운데 놓였을 때 생존의 위협을 느끼지 않겠는가.

    이러한 공포가 자신이 저지르는 모든 행위에 대해 "어쩔 수 없다"는 합리화를 불러오는 게 아닐까. 기억은 그래서 어긋나는 것일 게다. 나는 오늘의 레바논에서 과거의 4.3을 본다. 이런 것이 전쟁의 보편적인 참상일 테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념의 절대성을 믿지 않는다. 그보다는 생존이 우선한다. 최근 논란이 되는 남제주군 화순 지역의 해군기지 건설에 대해서도 같은 입장으로 접근한다. 미국은 전략적 유연화 전략에 따라 중국을 견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화순의 해군기지 건설도 그와 맞물려 있다.

    그러니까 서울의 미군 기지가 평택(서해안)으로 확장 이전하는 맥락과 그리 동떨어지지 않은 셈이다. 물론 중국이 눈 뜨고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리 만무하다. 누군가 내게 묻는다. 당신은 미국의 편이냐, 중국의 편이냐. 나는 어느 편도 아니다. 그저, 나와 내 가족이 살고 있는 땅을 전쟁의 위험 한가운데로 몰아넣고 싶지 않을 따름이다.

    어리석은 자는 역사에서 배움을 얻지 못한다. 옛날 세계 최강의 제국이었던 원은 남송과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탐라의 지정학적인 가치를 이용하였다. 그러다가 원이 멸망하자 1374년 공민왕은 전격적인 탐라 공략을 실시하였다.

    전함 314척, 정예병 25,605명이었다고 하는데, 훗날 명나라를 치러 갔던 요동 정벌군이 38,830명이었으니 상당한 규모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전쟁터였던 새별오름 일대에는 "칼과 방패가 바다를 뒤덮고 간과 뇌가 땅을 가렸다"고 전해진다. 당시 원이 멸망하리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고려와 원의 사이에 끼어 무고하게 죽어간 탐라인들은 대체 무슨 죗값을 치른 것일까.

    해군기지 문제가 여전히 쟁점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고 보면 여름이 간다고 쉽게 선선해지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이 글은《제민일보》에도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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