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려워 말고 떠나라!
    멋진 세상을 만나게 될 것
    [그림책 이야기] 『토토와 오토바이』(케이트 호플러 글/ 북극곰)
        2020년 02월 29일 02:3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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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밭에 사는 토토

    토토는 조용한 밀밭에서 살고 있습니다. 밀밭 바로 옆에는 아주 커다란 도로가 있지요. 하지만 토토는 단 한 번도 그 도로를 달려본 적이 없습니다. 토토는 밀밭을 떠난 적이 없습니다. 그저 밤바다 도로를 달리는 꿈만 꾸었지요. 매일 밤이요.

    다행히 토토에게는 슈슈 할아버지가 있습니다. 슈슈 할아버지는 이따금 토토를 찾아와서 젊은 날의 모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평생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면서 얼마나 멋진 것을 보았는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을 보았는지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슈슈 할아버지는 언제나 말했습니다.

    “용기만 있다면 정말 아름다운 세상을 볼 수 있단다. 낯선 곳도 오랜 친구처럼 느껴지지.”

    -본문 중에서

    그러던 어느 날, 토토에게 아주 슬픈 소식이 전해집니다. 바로 슈슈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날 이후 아무도 토토를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토토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오토바이가 토토를 찾아옵니다. 슈슈 할아버지가 토토에게 오토바이를 남겨준 것입니다. 토토는 슈슈 할아버지를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토토는 오토바이를 탈 줄도 모릅니다. 게다가 토토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일 년 내내 밀밭에서만 지냅니다. 어딘가 가 볼 생각은 하지도 않습니다. 도대체 왜 슈슈 할아버지는 토토에게 오토바이를 남겨 주었을까요?

    비글호의 박물학자

    제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일입니다. 제주도에 살던 사촌형이 서울에서 재수학원에 다니느라 저희 집에 함께 산 적이 있습니다. 맨날 때리고 구박하던 친형과는 달리, 사촌형은 함께 이야기도 하고 군것질도 하고 뒷동산으로 산책도 하며 저와 놀아주었습니다. 사촌형이랑 너무 놀고 싶어서 독서실까지 찾아가 놀자고 떼를 쓴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1년의 시간은 금방 지나갔습니다. 입시가 끝나고 헤어질 시간이 된 것입니다.

    사촌형은 저를 데리고 동네 서점에 갔습니다. 그리고 이별 선물로 『비글호의 박물학자』를 사주었습니다. 비글호의 박물학자는 진화론의 아버지인 찰스 다윈이었습니다. 사촌형은 동네 서점에서 그 많은 책 가운데 왜 하필 『비글호의 박물학자』를 골랐을까요? 서울에 사는 사촌동생과 비글호의 박물학자는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었던 걸까요?

    19세기 세계 일주의 추억

    『비글호의 박물학자』는 저를 박물학자로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너무나 좋아하는 사촌형이 선물한 책이 아니었다면, 그 책을 끝까지 읽지도 않았을 겁니다. 다윈의 전기를 읽었다고 해서 다윈의 진화론에 열광하지도 않았습니다. 더불어 인간 다윈에게 큰 매력을 느낀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갈라파고스나 파타고니아 같은 지명들과 그곳에 사는 동물 그림들은 저의 뇌리에 남아 있습니다. 마치 찰스 다윈과 더불어 비글호를 타고 세계 일주를 한 것 같았습니다. 19세기의 박물학자와 20세기의 소년이 한 권의 책으로 세계 일주의 추억을 공유하게 된 것입니다.

    이 추억이 제게 어떤 의미로 남게 될지 책을 읽을 당시는 몰랐습니다. 『비글호의 박물학자』를 읽고 30년 뒤, 저는 박물학자가 아닌, 출판사 편집자로서 전 세계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볼로냐로 갔습니다. 이후 프랑크푸르트, 뉴욕, 베이징, 도쿄, 호치민, 타이페이 등 국제도서전을 꾸준히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저에게는 볼로냐가 갈라파고스였고 프랑크푸르트가 파타고니아였습니다. 이미 19세기에 다윈과 더불어 갈라파고스와 파타고니아를 다녀온 저에게 21세기의 장거리 여행은 두렵고 힘든 여정이 아니라 멋진 모험이었습니다.

    돈 워리, 비 해피!

    전 세계가 바이러스로 인해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하지만 바이러스가 아니더라도 집밖은 위험합니다. 이 말은 듣는 순간, 어떤 사람은 속으로 집안은 안전한지를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일단 걱정하기 생각하면 집밖도 위험하고 집안도 위험합니다, 이렇게 삶을 걱정과 두려움으로 가득 채운다면, 단지 죽지 않기 위해 살아간다면 삶은 그 자체로 지옥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오히려 위험하다는 곳을 찾아갑니다. 분쟁지역이나 감염지역에 봉사와 치료를 하러 갑니다. 언제나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은 숨어서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사람이 아니라, 용감하고 꾸준하게 자신의 소명을 다하는 사람들입니다.

    슈슈 할아버지는 어디에도 가지 않는 토토에게 오토바이를 남겨줍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떠나라! 그러면 멋진 세상을 만날 것이다!’ 슈슈 할아버지는 토토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멋진 이야기와 아름다운 책으로 장거리 여행과 모험을 경험한 사람들은 언제든 떠날 용기를 낼 수 있습니다. 마음으로 이미 가 보았으니 언제든 다시 가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두려워하며 살든, 용감하게 살든 우리는 모두 언젠가 죽습니다. 지구는 피할 곳이 많지 않습니다. 부디 두려움에 떨지 말고 용감하게 꾸준하게 자신의 소명으로 행복한 세상을 만들면 좋겠습니다. 저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좋겠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건 위험과 불안이 아니라 언제나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모험입니다.

    필자소개
    세종사이버대학교 교수. 동화작가. 도서출판 북극곰 편집장. 이루리북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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