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 문중원 농성장 철거,
    정부에 일제히 분노 입장
    “사태 해결은커녕 분향소 침탈해”
        2020년 02월 27일 05:3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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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마사회 부산경남경마공원 소속 고 문중원 기수의 추모 농성장과 분향소가 강제 철거된 것에 대해 정치·노동·종교·시민사회 등에서 일제히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고 나섰다. 공공운수노조 임원단은 지난 2017년 마필관리사 고 박경근 씨의 죽음 후 재발방지를 약속했던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선거사무실에서 무기한 점거농성을 시작했다.

    침탈 직전 불안해하는 유족들. 왼쪽은 용역들 모습(사진=시민대책위)

    민주노총, 공공·금속 성명 내고 정부 비판
    “엄중한 국면으로 인식…반인륜적 폭거에 책임져야”

    2013년 한진중공업 최강서 열사 대책위원회 이후 7년 만에 민주노총 차원의 열사대책위원회까지 꾸리며 조직적 투쟁에 나섰던 민주노총은 “오늘의 사태를 엄중한 국면으로 인식한다”며 “묵과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27일 성명을 내고 “대규모 용역과 경찰을 동원하여 저질러진 행정대집행은 인륜을 저버린 파렴치한 작태이고 반노동, 반인권 행위”라며 “행정당국의 폭력을 동원한 분향소 철거와 강제연행에 참담함을 금할 수 없으며 결코 묵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사태 해결은 고사하고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분향소부터 침탈한 오늘의 사태를 민주노총은 똑똑히 기억할 것”이라며 “시민대책위와 함께 더욱 강력한 투쟁을 전개하겠다”면서, 정부가 사태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거듭 촉구했다.

    공공운수노조는 ‘여기 사람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경찰이 용역 깡패가 진입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고, 분노한 시민들의 접근을 차단해주어 용역 깡패들이 유족에게 폭력을 행사하도록 비호, 방조했다”며 “문재인 정권이 결국 자신 스스로 어떤 정권인지를 밝힌 날로 역사에 남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노조는 “정부는 두 달이 넘는 그 오랜 시간 동안 (마사회 문제 해결을 위해) 대체 뭘 했나. 오체투지, 상여행진, 108배 등 유족들은 정부가 나서주길 바라며 안 해본 일 없이 호소해왔다”면서 “정권이 진정 두려워한 것은 신종 바이러스가 지역사회에 번지는 것이 아니라, 공기업 한국마사회의 적폐 원인이 문재인 정권 스스로에게 있다는 생각이 국민들에게 번지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문재인 정권에 이번 사태를 만든 책임을 물을 것”이라며 “문재인 대통령은 이 반인륜적 폭거에 책임지고 유족과 시민사회에 공식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금속노조도 ‘정권은 야만을 선택했다’는 제목의 성명에서 “죽은 이를 욕보이고 남은 이들의 가슴에 씻을 수 없는 슬픔을 상처로 남기라고, 정부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유족에게 몹쓸 짓을 하고 부패한 공공기관을 싸고돌라고 우리가 대통령을 뽑는 것이 아니다”라고 규탄했다.

    노조는 “정권과 경찰은 무자비한 폭력철거를 사과하고 원상복구하라”며 “부정과 부패로 뭉친 도박기업 마사회를 해체하고 모든 연행자를 즉시 석방하라”고 촉구했다.

    종교·정치권도 문재인 정부 강력 비판
    “코로나 빌미로 탄압 시도 의심”
    “무리한 행정집행으로 유족에 폭력 행사…문재인 정부에 깊은 우려”

    종교계도 입장을 내고 문재인 정부에 대해 “촛불정권임을 포기한 것”이라고 규정했다.

    원불교 시민사회 네트워크는 이날 “(정부가) 창궐하는 코로나 바이러스 핑계를 대며 강제로 빈소를 강제 철거하는 행정집행 폭거를 저질렀다”며 “유족과 시민들에게 오늘 벌어진 이 사태에 우리는 무엇이라 말할 수 없이 참담하기만 하다”고 했다.

    이들은 “억울함을 밝혀달라는 유족과 시민들의 외침에 돌아온 대답이 과거 독재정권에서나 보여 주었던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며 “코로나 바이러스로 병원을 방문하는 것도 자제하는 상황에서 불상사가 우려되는 무리한 행정집행을 강행해 유족과 시민들에게 인권을 무시한 만행과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촛불로 탄생한 문재인 정권에게 실망을 넘어 깊은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부는 유족 앞에 나서서 사과해야 한다”며 “결코 오늘의 사태를 창궐하는 바이러스 탓으로 돌리는 행태를 보여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정의당 노동본부도 “최소한으로 운영하던 분향소에 대규모 용역을 동원해 충돌을 일으킨 정부 행정당국의 행태는 결코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없다”며 “또한 이번 침탈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빌미로 정부가 노동자들의 정당한 목소리마저 탄압하는 신호탄이 아닌지 의심이 든다”고 주장했다.

    노동본부는 “마사회의 노동적폐 해결에는 침묵하면서 100일 가까운 시간동안 장례조차 치르지 못한 희생자에 대한 최소한의 추모공간을 폭력침탈하는 정부의 행태를 규탄한다”며 “정부는 고 문중원 기수에게 유족들에게 사과하고 조속히 마사회의 노동적폐를 해결하라”고 촉구했다.

    공공운수노조 임원단, 이낙연 전 총리 선거사무소 무기한 점거농성

    최준식 위원장을 포함한 공공운수노조 임원 10명은 이날 오전부터 서울 종로에 있는 이낙연 전 국무총리 선거사무소에서 분향소 철거와 마사회 문제 해결에 관한 이 전 총리의 답변을 요구하며 무기한 점거농성을 시작했다.

    이낙연 선거 사무실 농성 모습

    노조 임원단은 “이낙연 후보는 국무총리 재임 당시 박경근, 이현준 열사의 죽음에 ‘신경 써 살피겠다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임기 동안 두 명의 노동자가 더 목숨을 버렸다. 국무총리로서 그 죽음의 원인을 규명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을 세웠어야 함에도 그러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문중원 기수의 시민분향소가 있는 정부서울청사 앞은 이낙연 전 총리가 출마 의사를 밝힌 종로에 속한 곳이다. 이들에 따르면, 이낙연 후보는 문중원 열사 분향소에 방문하기로 했다가 돌연 취소했고 이틀 후에 분향소 강제 철거가 이뤄졌다.

    아울러 “코로나19의 대처에 있어 5평 남짓 유족이 머무는 공간이 얼마나 위험해 법률적 도의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침탈을 자행했는지 궁금하지만, 그에 앞서 문재인 정부 하에서만 4명의 경마 기수와 마필관리사가 목숨을 끊을 동안 정부와 집권 여당은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임원단이 농성을 시작한 후 선거사무소 안팎으로 경찰병력이 배치됐으나 캠프 관계자와의 면담이 이뤄지면서 철수했다. 임원단은 이 전 총리가 시민분향소 강제 철거와 마사회 문제에 대한 답변을 내놓을 때까지 농성을 이어갈 방침이다.

    한편 종로구청은 이날 오전 8시경부터 공무원 100명과 용역 200여 명, 병력 12개 중대를 동원해 정부서울청사 인근에 있는 문중원 기수 시민분향소와 농성장 강제 철거를 진행했다. 시민대책위와 민주노총 관계자들은 전날 밤부터 흰 천으로 몸을 묶어 분향소와 농성장을 에워싸고 저항했다. 이 과정에서 6명이 부상을 입어 병원으로 이송됐고 공공운수노조와 금속노조 관계자 4명이 연행됐다. 철거는 2시간 여 만에 끝났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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