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똥과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
        2006년 09월 03일 10:3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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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쟁 때 미국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장면이 있었다고 한다. 볼 일을 볼 때면 뒤를 움켜쥐고 부리나케 달려가 집에서 볼일을 보는 것이었다. 밥은 나가먹는 일이 있더라도 똥은 집에 와서 싸야 하는 습관 때문이었다.

    우리 조상들이 똥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고 소중하게 다뤘는지 길 가던 개가 오줌이라도 싸놓으면 바로 삽으로 흙째 떠다 밭에다 주었다는 얘기가 그걸 대변한다. 

       
     

    똥은 아주 귀한 거름의 재료다. 그 중에 사람 똥은 더 영양분이 풍부하다. 사람은 먹을 것 중에 30% 정도밖에 소화를 못 시키고 나머지는 다 배설물로 배출한다. 다른 가축들보다 배설하는 영양분이 많다. 다음으로 닭똥이 거름발이 제일 세고, 다음으로 돼지똥, 그리고 다음으로는 소똥을 친다.

    닭은 잡식인데다 오줌과 똥이 분리되지 않고 함께 배설되어 거름기가 세고 돼지는 잡식성이라 세고 소똥은 초식이라 제일 거름기가 약하다. 그래서 거꾸로 제일 안전한 거름이 소똥이고 축분 중에는 제일 조심해야 되는 거름이 닭똥이다. 사람 똥은 닭똥보다 더 조심해야 한다.

    팔팔 끓인 똥과 똥 후라이는 고급영양제

    하여튼 옛날엔 항상 거름이 모자랐기 때문에 충분히 발효시켜 쓸 여유가 없었으므로 안전하게 빨리 쓰는 방법이 중요했는데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똥을 삶아 쓰는 것과 똥을 모래햇볕에 말려서 가루로 쓰는 법이다.

    똥을 삶아 쓰는 법은 큰 전용 가마솥에 생똥을 넣고 끓이면 멀건 똥물이 된다. 이 물을 거름이 모자라 누레지는 작물에 그냥 뿌려지면 즉효라 했다. 끓이면 살균도 되고 또 고형질이 다 녹아 풀어지니 작물이 흡수하기가 좋다. 뙤약볕 모래밭에 똥물을 바가지로 퍼 놓으면 계란 후라이처럼 똥후라이(?)가 되는데 이를 절구에 빻아 비 오기 전날 가루로 뿌려주면 이 또한 화학비료를 준 것처럼 즉효를 본다고 한다.

    뜨거운 물과 뙤약볕에 깨끗하게 살균을 하니 위생적이고 바로바로 영양제를 뿌려주니 사람으로 치면 고급영양제를 링게르로 맞는 셈이다.

    5∼6종에 달한 다양한 전통 뒷간

    우리가 얼마나 똥을 소중하게 다뤘는지는 전통 뒷간을 보면 알 수 있다. 전통 뒷간이 5~6가지 있었다고 하면 요즘 사람들은 우리 뒷간이 그렇게 많았나 의아해 할 것이다. 대개 이른바 푸세식 정도나 알 정도다. 그러나 푸세식 말고, 재나 왕겨에 버무리는 잿간, 언덕배기에 설치했던 절간의 해우소 뒷간, 돼지에게 먹이로 준 제주도식 통시 등이 우리 전통 뒷간의 전형적이 예이다.

    그 말고 해안 마을에서 썼던 것으로, 바다에 떨어지도록 절벽 위에다 설치하여 만든 것도 있었다 한다. 또 푸세식 중에 똥 받는 통을 두 세개 땅에다 묻어 두고는, 통 밑이 파이프로 연결되어 한쪽에서 똥을 싸고 다른 쪽에서 삭은 똥이 파이프로 건너와 거름을 퍼내는 식으로 된 것도 있다.

    경북 지방에서는 3조식이라 해서, 통을 세 개 묻어 한쪽이 다 차면 두 번째 통에서 일을 보고, 이게 다 차면 세 번째 통에서 일을 보는데, 이때쯤 되면 첫 번째 통의 것이 거의 숙성이 되어 거름으로 퍼내 쓰는 뒷간도 있다.

       
     

    구더기 예방을 위한 재와 왕겨

    이런 전통 뒷간 중에 아무래도 푸세식 뒷간이 제일 관리하기가 힘들다. 이는 똥오줌이 뒤섞이는 방식인데, 이렇게 되면 인분에 수분이 많아 발효보다는 부패가 되어 구더기가 끼고 세균이 많이 증식하여 비위생적이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일을 보고 나면 재나 왕겨를 뿌려주거나 아니면 갈잎 같은 낙엽이나 오동잎을 뿌려주어 수분도 조절하고 구더기 발생도 예방했을 뿐만 아니라 부패가 아닌 발효를 촉진하여 양질의 거름도 얻었다. 또 이렇게 하면 악취 발생도 매우 억제되어 뒷간을 위생적으로 관리할 수 있었다.

    이런 뒷간 문화가 왜곡되기 시작한 것은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부터였다. 우리의 뒷간은 전형적인 농경문화에 근거한 것이었다. 한마디로 우리의 뒷간은 퇴비간의 연장이었다. 그래서 우리 뒷간은 우선 안채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넓고 통풍도 잘되는 건조한 곳이어야 했다.

    서양 것이라면 다 좋아 보였던 시절

    그러던 것이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뒷간 공간은 좁고 음침하며 습하고 통풍도 좋지 않은 곳으로 찌그려졌다. 자연히 도시의 뒷간은 오염의 온상이고 비위생적인 곳의 대표였다.

    유럽이나 미국으로 유학을 가거나 여행을 다녀 온 사람들이면 대개 그들의 깨끗한 카페 같은 화장실을 부러워했다. 그리고는 불결의 온상지인 우리의 뒷간을 부끄러워하던 게 불과 10년도 안된 시절의 얘기였다.

    사실 우리는 서양의 것이라면 모든 게 다 좋아 보였던 시대를 살아왔다. 특히 미제라면 최고의 상징이었다. 학교라는 공교육에서부터 서양 중심의 서양식 사고방식을 배워오고, 어른이 되어서도 양복을 입고 다녀야 정상인 취급받는 세상을 살다보니 당연한 현상이었다.

    음악을 들어도 국악은 왠지 어색하기만 하고 서양식 음악을 들어야 분위기도 센치(?)해지고, 대화를 할 때 가끔 영어를 섞어 써야 교양인이 된 것 같은 이상한 세상을 살고 있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 중에 우리 것이라면 제일 부끄러웠던 것이 김치나 된장이나 마늘 냄새였고 제일 부끄러워 감추고 싶었던 것이 변소간이었을 것이다.

    서양 똥과 동양 똥의 차이

    그리고 우리는 서양이 100년에 걸쳐 이뤄낸 수세식 화장실 문화를 거의 20년만에 달성한 저력을 발휘했다. 이제는 어느 화장실이 제일 깨끗하고 카페 같은 멋있는 분위기를 갖추었는가 조사를 해서 상도 주는 세상이 되었다. 이쯤되면 화장실까지 서양화되었으니 우리의 생활은 밑바닥까지 서양 사람이 돼가고 있는 중이라 해야 할 듯하다.

    고기를 주식으로 하면 배설시간이 오래 걸린다. 섬유질이 부족하고 가스가 많아 대장에 배설을 도와주는 유산균이 적기 때문이다. 또한 냄새도 독하고 더럽다. 이런 똥은 순식간에 물로 싹 씻어버려 내 눈앞에서 얼른 사라져야만 했다. 서양의 화장실이 수세식 변기와 함께 쉼터(rest)로 발전한 것은 이 때문이다.

    반면 우리의 똥은 초식이어서 섬유질도 많고 유산균이 많은 발효음식이 대부분이어서 깨끗하다. 말하자면 냄새도 구수하고 황금색의 똬리똥을 싸는데 그것도 오래 걸리지 않고 쑤욱 가래떡 뽑듯이 끊기지 않고 뽑아낸다. 쉬기는 커녕 끙! 소리 한번 내면 끝이다. 쉼터에 오래 머물 일이 없었다.

    이기적이고 위선적인 수세식 화장실

    서양식 수세식은 또 얼마나 물의 낭비가 심각하고 똥의 오염화가 심각한가? 수세식 변기를 통해 모아진 똥은 대부분 해양 투기되고 있다. 바다를 오염시키고 있는 것이다. 현재 서울 사람들의 똥은 난지도 오수처리장에서 일차로 정화되고 남은 슬러지는 해양투기되고 있다.

    주로 군산과 포항 울산 앞 먼 바다에 버려지고 있다. 아주 일부만 지렁이를 이용해 거름으로 만드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인분만이 아니라 축산 분뇨까지 합쳐 위탁업체에 맡기는 해양투기 비용이 일 년에 몇 천억이나 들고 있다고 한다.

    똥은 퇴비로 재활용하면 아주 훌륭한 자원이 된다. 퇴비로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메탄가스를 에너지로 활용하면 그 가치는 더욱 배가 된다. 몇천년 동안 똥은 퇴비의 원료로 사용하면서 땅을 비옥하게 유지해 온 우리 뒷간 문화의 과학성과 미덕으로 볼 때 수세식 화장실은 미관과 위생을 가장한 이기적이고 위선적인 뒷간일뿐이다.

    그런 우리의 소중한 뒷간을 부끄러워하고 서양사람보다 더 서양식으로 살아가려 하니, 이런 사실이 오히려 더 부끄러운 모습이 아닐까 싶다. 똥부터 서양화하려다보니 입는 것, 사는 것, 먹는 것, 생각하는 것 모두가 다 서양화를 추구하고 거꾸로 우리 스스로 우리의 것을 부끄러워하는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을 내면화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사스가 김치 때문에 우리나라에는 침범하지 못했다 하여 김치가 세계화되고 이제 김치 냄새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으니 그나마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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