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중요한 실험
By tathata
    2006년 09월 02일 06:0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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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2일부터 매주 금요일 대구에서 중요한 실험이 벌어지고 있다. 전농 경북도연맹과 ‘대구경북 농업회생과 지역자치를 위한 사회연대’(전농, 전교조, 민노총 등 지역 사회단체 참여), 대구MBC가 주관하는 지역농산물 직거래 ‘우리농 장터’(farmers market)가 열리고 있다.

여기서는 경북 지역에서 생산된 각 시군 농산물들을 생산자들이 직접 가져와 소비자들에서 판매하게 된다. 앞으로 11월까지 매주 1회 열리게 될 이 농민장터가 다른 일반적인 직거래 장터와는 다른 몇 가지 지점들이 존재한다. (대구 농민장터 홈페이지 http://www.dglocalfood.net)

대구 농민장터의 의의

대구 농민장터는 지역 농민들이 생산한 지역 농산물(local food)을 직접 판매하는 곳이다. 즉 지역 농산물의 직거래에 의한 소비를 제도화하는 공간인 셈이다. 지금껏 우리나라의 농업 및 먹거리 정책에 있어서 ‘우리 농산물’이나 ‘국산 농산물’이라는 개념은 있었지만 ‘지역 농산물’이라는 개념이 존재한 적은 없었다.

농협에서 운영하는 ‘파머스마켓’이라는 우리 농산물 상설매장이 몇 년 전부터 생겨나서 현재 전국적으로 운영되고 있긴 하다. 이 또한 농산물을 직거래하는 외국의 농민장터 개념을 도입한 것이기는 하다. 하지만 농민들이 매주 정해진 날짜에 직접 농산물을 가져와서 판매하는 서구의 농민장터와는 달리, 농협에서 도입한 파머스마켓은 일본의 지역농산물 상설직매장 형태에 가깝다.

   
 
▲ 8월 18일 농민장터 모습 (사진: 사회연대)
 

농민과 소비자가 직접 대면하는 형태가 아니라, 농협이 판매를 대행하는 형태라는 점에서 진정한 농민장터의 의미가 많이 퇴색된다(그나마도 일본에서는 농민들이 상설직매장의 운영과 판매에 많은 부분 참여한다).

게다가 여기서는 지역 농산물만 독점적으로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지역 농수산물(심지어는 수입농산물까지도) 및 가공식품까지도 포괄적으로 판매하고 있어서, 실제 지역 농산물 판매 비율은 몇몇 지역을 제외하고는 그리 높지 않은 실정이다. 따라서 지역 농산물 시장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농민장터’와 농업, 먹거리 살리기

농민시장이 가장 활성화되어 있는 미국의 경우, 2004년 현재 미국 전역에 3,706개의 농민시장이 열리고 있다. 미 농무부(USDA)는 농민시장에 대해 재정적 지원을 비롯한 지원정책을 펴고 있는데, 이러한 의지를 보여주는 한 가지 예가 농무부 스스로가 부청사 앞마당에 농민시장을 열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농민시장은 기본적으로 지역에서 지역 소농들에 의해 생산된 지역 농산물을 농민들이 직접 가져와서 지역 소비자들에게 직판하는 형태이다. 대신 시장에서 거래되는 농산물의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각 농민시장은 운영주체가 존재하면서 규칙을 만들어 운영한다. 그리고 지자체들과 지역 시민단체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지원한다.

또한 영국은 현재 500여개, 호주에는 80여개, 캐나다에는 온타리오 주에서만도 120개가 운영되고 있는데, 이러한 농민시장이 이들 국가에서 의미를 갖는 점은, 자국 소농들에게 안정적인 판로를 마련해 줌으로써 시장에 의존해서는 불가능한 안정적인 생계유지를 가능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들 국가들의 농민 소득 중 적게는 10%, 많게는 50%까지를 농민시장에 의존하고 있다.
(미국 농민시장: http://www.ams.usda.gov/farmersmarkets / 영국: http://www.farmersmarkets.net
호주: http://www.farmersmarkets.org.au 캐나다: 온타리오주 / BC주 / 알버타주)

요컨대 농민시장은 ‘지역농산물 시장’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형성하는데, 이 시장은 지역의 소농 외에는 진입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그리고 유통 마진을 농민과 소비자에게 돌릴 수 있다는 점에서 농민들의 생계를 보호할 수 있는 중요한 방안이 된다.

먹거리 시장에 있어서 민간 영역의 상당부분을 이들 농민시장이 담당함으로써, 시장의 변덕으로부터 지역 농민들을 보호할 수 있다. 그럼 나머지 소득은? 학교급식이나 공공조달 같은 공적인 먹거리 시장 영역을 국가나 지자체가 확보함으로써 가능해 진다.

시장의 변덕으로부터 지역 농민을 지킨다

농민시장은 소비자들에게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생산지에서 소비지까지의 농산물 이동거리(food mile)를 획기적으로 단축시킴으로써 신선도와 영양이 유지되는 지역 농산물을 시장가격보다 훨씬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장소이다.

농산물은 그 자연적 속성상 공산품과는 달리 운송거리가 상품의 품질(신선도와 영양)을 좌우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생산자와 소비자와의 물리적 거리는 가능하면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더 좋다. 이것이 우리 농산물 같은 국가 수준보다는 가능하면 작은 지역 수준에서의 농산물 생산-소비가 설득력을 얻는 이유가 된다.

그리고 우리나라처럼 먹거리의 가격과 질, 안전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가 바닥을 치고 있는 상황에서 농민들이 직접 재배한 농산물을 들고 나와서 소비자와 얼굴을 맞대고 거래가 이루어지는 농민시장은 소비자들이 신뢰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 이유는, 가장 대표적인 형태의 생산자-소비자 직거래로서, 앞서 언급한 물리적 거리의 단축 뿐만 아니라 사회적 관계의 거리 역시 가장 가깝기 때문이다.

사회복지와 농민소득 창출이 만나는 곳 

중간과정에 개입되어 있는 다른 시장 행위자들이 생략되어 있기 때문이며(중간과정이 길어지면 사회적 거리 뿐만 아니라 물리적 운송거리 역시 더욱 길어진다), 따라서 두터운 신뢰관계 속에서 긴밀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 진다. 다국적 농업자본이 지배하고 있는 글로벌 농산물은 도저히 불가능한 이야기다.

농민시장은 지자체에도 좋은 정책 아이디어를 던져준다. 미국이나 영국, 캐나다의 대도시 도심에서 열리는 농민시장은 다양한 볼거리와 먹거리를 제공하는 중요한 관광장소 역할까지 겸한다. 대도시들의 도심 재활성화 정책에 있어서도 농민시장은 시민들이나 외지 관광객들을 도심지로 끌어들일 수 있는 중요한 수단으로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또한 저소득층 주민들에 대한 먹거리 복지정책 시행에 있어서 중요한 공간을 열어준다. 미국에서는 저소득층에 대한 푸드스탬프를 비롯하여 노인과 청소년 등 다양한 계층을 상대로 먹거리 쿠폰을 나눠주는데, 이러한 쿠폰의 주 사용처가 바로 농민시장이다.

이를 통해 사회복지정책과 농민소득 보장 뿐 아니라, 저소득층에게 신선한 지역농산물에 대한 접근권을 보장해 줌으로써 건강 불평등 해소라는 정책목표까지도 다룰 수 있다. 지금껏 우리나라에서는 엄밀하게 말해 ‘지역 농산물 시장’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한 먹거리 쿠폰제가 설령 시행된다 하더라도 실효를 거두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지역 농산물의 제도화와 지자체

   
 
 

이번 대구의 농민장터가 열릴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는 대구에서 먹거리 문제를 고민하는 여러 사회단체들이 연대체를 만들어낸 것과, 대구 MBC가 이를 적극 지원한 것이었다.

문제는 방송이 끝나는 11월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열릴 수 있도록, 그리고 그 숫자도 최소한 구마다 하나씩 만들어지도록 제도화되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자 관건일 것이다.

미 농무부가 지원하는 “여성, 유아, 아동 및 노인을 위한 농민시장 영양 프로그램”의 한글 팜플렛. 영양 보조와 농민 지원이라는 이중적 정책목표를 명시하고 있다.

서구의 농민시장들의 사례를 볼 때 이것이 제도적으로 정착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바로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재정적, 제도적 지원이다. 그렇지 못하면 당장에 장터를 지속적으로 개최할 수 있는 오픈 스페이스를 구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 난관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농민장터의 질을 유지하는 문제도 민간의 자발적 노력도 중요하겠지만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된다면 훨씬 더 쉬워질 것이다.

‘시장’에서 버림받는 소농들을 또다른 시장인 농민‘시장’이 살린다는게 역설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농민’시장’은 시장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의 모습을 빌리면서도 실제로는 공공부문의 제도적인 지원이 없이는 성립하기 쉽지 않다.

   
 ▲ 로컬푸드(지역농산물)의 다면적 가치와 관련 정책영역
 

더 나아가 서구 선진국 지방정부가 역점을 두는 것은 농민장터를 넘어서 지역 농산물의 지역 내 생산과 소비를 진작하는 각종 정책의 통합적 추진이다.

지금껏 먹거리(food) 부문은 온전히 시장 영역에만 맡겨져 왔고 그 결과 비만, 아토피, 광우병 같은 식원성 질병의 만연과 환경파괴, 소농경제 몰락 등이 빚어져 왔다는 반성에서 출발하여, 먹거리 부문에 대한 공적인 개입이 필연적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하는 통합적인 먹거리 정책 및 계획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서구 대도시들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먹거리정책협의체(food policy council)는 농민시장을 비롯하여 학교 및 공공급식, 먹거리 복지 등 도시 내의 먹거리 흐름을 통제하고 계획할 필요에서 각종 먹거리 정책을 통합적으로 펴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들어 몇몇 지자체들이 조금씩 관심을 보이고 있다. 대구 농민장터에 경북도가 상당한 관심을 가지면서 이를 조금씩이나마 후원하고 있는데, 앞으로 대구시와 먹거리 정책 협약을 맺고 공동으로 경북 농산물의 대구 소비 증진을 위한 각종 정책을 펴는 것이 관건이라 하겠다.

먹거리 생산이라는 농업부문에만 국한시키면 도시 지자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지만, 먹거리의 소비 측면에 눈을 돌리게 되면 시민들의 먹거리 소비와 관련된 다양한 측면들(건강, 환경, 사회복지, 지역경제 등)에 지자체가 개입하여 사회적 불평등을 완화하는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FTA와 농민장터

정부가 FTA 협상 과정에서 가장 피해가 클 것으로 예상되는 농업부문과 농민들에게 내세우고 있는 보완책은 10년간 농업 경쟁력 향상에 119조원을 투입하여 농업과 농촌, 농민들에게 돌아갈 피해를 만회해 주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 돈이 얼마만큼이나 실제로 농민들에게 돌아갈 것인지는 미지수이다. 대부분이 농민이 아니라 농산업 부문으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농업 생산기술 개선과 농산물 시장유통을 위한 시설에 들어가게 될 대부분의 돈이 과연 수입 농산물과의 시장 경쟁력 향상에 얼마나 효과가 있을 지도 미지수이다. 차라리 그 돈의 일부만이라도 농민장터나 먹거리 공공조달시스템을 구축하는데 쓰는 것이 농민들에게 확실한 판로를 열어준다는 점에서 훨씬 더 효과적일 것이다. 미국 농무부가 왜 굳이 청사 앞마당에서 번거로운 농민시장을 열고 있는지 생각해보라.

마지막으로 우려스러운 점은, 한미 FTA가 우리나라에서 앞으로 농민보호에 절대적으로 필요하게 될 정책수단인 지역 먹거리 정책에 심각한 장애물로 다가올 수 있다는 점이다. 정부의 협상 결과에 따라서는 지자체들의 지역 농산물 우선 구매정책과 각종 지원정책이 FTA를 위배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미국은 WTO나 과거 NAFTA 협정의 경우에 “농무부의 각종 농산물 조달 프로그램은 정부조달협정에서 예외로 인정”받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은 WTO 정부조달협정 예외조항에 농협을 통해 구매하는 농산물을 넣어두고 있다.

작년 학교급식조례에 대한 WTO 위배라는 대법원 판결문제에 직면하여 우리 정부는 올 초 학교급식은 WTO 정부조달협정 예외조항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개정안을 제출한 바 있다. 다른 선진국들은 포괄적인 예외를 인정받는 반면 우리나라는 학교급식으로 국한되어 있다는 점이 바로 문제의 핵심이다.

이러한 점이 FTA에서 개선될 여지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만약 이런 상태에서 한미 FTA가 체결된다면 미국에서는 활발히 진행되는 농민시장 지원을 비롯한 각종 로컬푸드 증진정책들이 우리나라에서는 모두 FTA 위배가 되면서, 카길 같은 다국적 농기업이 지자체를 제소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주: 대구 농민장터에 대한 소비자의 반응과 농민들의 준비 등 좀 더 자세한 소개는 <녹색평론> 9-10월호에 실린 사회연대 김병혁 사무국장의 글을 참고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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