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본주의의 냉혹한 현실 앞에
    몸·마음이 엉망진창 된 노동계급의 삶
    [기고] 켄 로치의 영화 『미안해요 리키』가 주는 감동
        2020년 02월 24일 10:5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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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미안해요 리키』(2019)가 개봉된 지 두 달이다. 영화 전체를 통해 평범한 가정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상을 다루고 있다. 그렇지만 가장으로서 주인공 리키의 삶은 위태위태하다.

    자기 집을 갖고 싶은 소박한 마음에 리키는 건설노동 일을 그만두고 택배기사를 자원한다. 건설노동자의 임금으론 자기 집을 장만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리키는 자신의 성실함을 믿고 자기사업을 해보고 싶었다. 아내 애비 역시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찾아가는 간병인이다. 부부는 아침 7시부터 저녁 9시까지 매일 14시간씩 일을 한다. 남편 리키는 택배기사로, 아내 애비는 돌봄서비스 간병인으로 둘 다 식사 때를 놓칠 정도로 시간에 쫓기는 직업이다.

    리키는 남의 집 셋방살이에 진절머리가 난다며 좀 더 열심히 일하면 집을 장만할 수 있다는 부푼 꿈을 안고 살아간다. 아내 애비에게도 그렇게 설득하며 아내가 타고 다니는 자동차를 팔아 택배 배송용 밴을 10,000파운드(1,500만 원 가량)에 구입한다. 회사 차량을 이용할 경우 하루 14시간을 일하고도 65파운드(10만 원 가량)를 번다. 그렇지만 대출을 받아 자기 소유의 밴 차량을 구입할 경우 최소 150파운드(22만 원 가량)를 벌 수 있다며 아내 애비를 설득한다.

    낡은 회사 차량을 쓰다가 고장 날 경우 대체비용만 200파운드를 물어야 하고 자신에게 떨어지는 수수료에서도 크게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결국 설득 당한 아내 애비는 아침 일찍 버스을 타고 걸으며 먼 거리를 이동한다. 몸이 불편한 독거노인이나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가정을 찾아가 복지서비스를 제공한다. 몸을 씻기고 음식을 조리해 먹이며 설거지와 집안 청소까지 도맡아 처리한다. 영국 노동계층의 삶을 대변하는 리키와 애비는 순박하다 못해 성실하기 그지없다.

    반면, 영화 속 관리자 멀로니는 리키에게 달콤한 말을 건넨다. "리키, 당신은 고용기사가 아니며 따라서 계약서 작성이나 출근카드도 필요없다. 자기사업을 하는 것"이라고 고무한다. 덧붙여 "자기 운명의 주인공은 자기 자신이라며 이 바닥에선 전사만 살아남는다"고 강조한다. 본인이 얼마나 성실하게 그리고 열심히 배송하는가에 따라 배송수수료가 달라진다고 역설한다.

    그러나 자기사업은 허울 좋은 이름일 뿐 리키는 시간에 구속된 채, 점심은커녕 생리문제를 해결할 시간조차 없다. 때 마침 택배기사 친구 헨리가 넣어준 플라스틱 오줌통에다 임시방편으로 오줌을 누면서 배송 일에 쫓긴다. 리키는 정확한 배송과 배송 건수에 따라 수수료가 달라지는 이른바 플랫폼 노동자이다. 한마디로 리키의 삶은 플랫폼 노동자로 살아가는 영국 노동계층의 팍팍한 일상의 한 전형이다.

    리키와 어린 딸 라이사 스틸컷. 토요일도 14시간 택배 배달을 하는 아빠 리키를 도와주는 라이사가 점심으로 샌드위치를 먹으며 택배 밴 차량에 앉아 대화하고 있다. (출처 : 영화사 진진)

    그러나 조금만 더 참고 열심히 일하면 자기 집을 장만할 거라는 소박한 꿈은 리키와 애비의 분주한 일상만큼 영화 전편 내내 외줄타기를 하듯 위태롭게 전개된다. 맨 먼저 리키와 애비의 고된 노동의 연속은 가족의 평온한 일상을 파괴한다. 영화 첫 장면이 저녁 9시까지 일하고 돌아오는 아내 애비의 문 여닫는 소리에 어린 딸 라이사가 잠을 설치다 엄마를 기다리며 포옹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런가하면 맏이인 아들 세브는 학교도 빠지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일탈로 치닫는다. 그런 속에서도 어느 주말 늦은 밤, 온 가족이 모인 저녁 식사 자리가 찾아온다. 가족의 사랑과 정을 나누기엔 크게 부족하지만 모처럼 찾아 온 소중한 시간이다. 한참 가족 간 정서적 유대를 나누는 와중에 울리는 핸드폰 소리는 불길한 여운을 암시한다.

    저녁 식사하는 리키 가족 스틸컷. 모처럼 찾아온 저녁식사 시간에 리키 가족은 행복해 하지만 아내 애비의 핸드폰이 울리면서 불길한 여운을 암시한다. (출처 : 영화사 진진)

    아들 세브가 "식사 시간 핸드폰은 예절이 아니다"며 엄마 애비에게 말을 건넨다. 그렇지만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애비의 착한 심성은 그 순간 갈등한다. 자신이 돌보던 노인이 요양보호사가 오지 않는 바람에 화장실에도 못가고 3시간째 방치돼 있다는 급한 연락이었다. 아내 애비는 화목한 가족 식사 시간을 뒤로하고 얼른 택시를 타고 다녀오겠다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러자 남편 리키는 토요일 저녁이라 택시가 잡히지 않을 거라 걱정한다.

    그 순간 가정의 화목함을 잃고 싶지 않았던 아들 세부의 번뜩이는 기지가 돋보인다. 모처럼 찾아온 가족 간 대화와 정을 나누는 화목한 시간을 빼앗기고 싶지 않아 세브가 긴급 제안을 한다. 가족 모두 아빠 리키의 택배 밴 차량에 포개 타고 지금의 화목한 분위기 그대로 함께 가는 것이다. 모두들 차 안에서 신나게 노래를 부르면서 독거노인이 있는 집 앞에 도착한다. 애비는 3시간 넘게 화장실도 못가 그냥 옷에다 생리문제를 해결하고 미안해하는 노인을 보면서 안쓰러운 표정으로 위로를 건넨다. 아름다운 성품을 간직한 애비는 노인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며 위로한다. 그리고 평소처럼 친절하고 자상하게 뒤처리를 감당하며 대가없이 돌봄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러나 위태위태하게 전개되던 리키와 애비의 일상은 아들 세브의 일탈이 계속되면서 심각한 위기를 맞는다. 아들 세브는 학교를 자꾸 결석하고 그런 친구들과 어울린다. 한 번은 자신의 마음을 그래피티 그림으로 표현해주던 도색용 스프레이를 훔치다 경찰서 신세를 진다. 게다가 학교 폭력 사건으로 아빠 리키와 엄마 애비의 마음을 더욱더 무겁게 몰아간다. 영화 속 매우 안타까운 장면은 아들 세브가 문제를 일으켜 학교로, 그리고 경찰서로 소환 통보를 받는 가운데 리키와 애비는 서로 시간에 쫓기는 바쁜 일상 속에서 힘들어 하는 모습이다. 갑자기 닥친 소환 통보에 남편 리키는 대체 기사를 구하질 못해 벌금 100파운드(15만 원 가량)를 내야 했고 아내 애비는 현실의 암담함 속에 속만 태운다.

    친구들과 벽화를 그리는 아들 세브 스틸컷. 가족 간 화목한 분위기와 따뜻한 대화, 정서적 교감에 목말라하는 아들 세브는 그래피티로 상실된 마음을 표현한다.(출처 : 영화사 진진)

    어렵게 아들 세브와 대화를 나누는 자리는 한참 시간이 지나 문제가 터진 뒤에 마련된다. 리키는 아들 세브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화를 내고 앞으로 학교에 빠지지 않고 잘 다니라며 야단친다. 보통의 부모들처럼 주의를 주고 야단을 치지만 아들 세브는 리키의 말에 관심이 없다. 오히려 세브는 이미 깨어진 가정의 화목한 일상을 그리워하며 반항한다. 특히나 가족 간 사랑과 정서적 유대감에 목말라하는 아들 세브의 반항적인 태도는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더한다.

    심각한 가정의 위기에 직면해서 아들 세브는 결국 리키의 강압적인 태도와 충돌하며 튕겨나간다. 정신없이 바쁜 부모의 일상을 빈정대며 반항하는 것으로 자신의 상실된 마음을 그래피티로 표현하던 아들 세브는 리키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치닫는다.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을 진학하라는 부모의 충고에 아들 세브는 대학을 졸업한들 빚더미에 짓눌려 희망이 없다며 진학을 포기한다. 복지가 축소되고 경쟁이 격화된 신자유주의 영국 사회가 낳은 노동계층의 암울한 한 단면이다.

    그러나 순박한 리키는 여전히 아들 세브의 일탈을 이해하질 못해 야단치고 윽박지르며 급기야 버릇없이 대드는 아들에게 폭력까지 행사한다. 핸드폰을 빼앗긴 아들 세브는 아버지 리키에게 격렬히 반항한다. 그러자 아버지와 아들이 몸싸움을 벌이는 와중에 엄마까지 끼어들어 말리자 어린 딸 라이사가 방에서 나와 "이제 그만해!"라고 울면서 외마디 절규한다. 그 순간 몸싸움이 그치고 리키는 아들 세브에게 당장 나가라고 고함을 지른다. 흥분하던 아들 세브는 리키에게 "당신은 인생 최대의 실수를 한 거"라며 격앙된 목소리를 남긴 채 가출한다.

    일탈로 치닫는 아들 세브에 대해 리키는 강압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만 아내 애비는 그렇지 않다. 모성애적 눈물과 안타까움, 그리고 품위 있는 대화로 갈등을 해결하길 조언한다. 그러나 아내 애비는 엉망진창이 되어 유리조각처럼 깨어진 일상에 절망한다. 더구나 어린 딸 라이사조차 수면불안에 시달린다. 부모의 늦은 밤 귀가와 가정불화 속에 오줌을 지리는 이상행동을 보인 것이다. 리키는 아내 애비에게 돈은 자신이 벌 테니까 일을 그만두고 아이들을 돌보라고 말한다. 아내 애비에게 가정에 충실하라고 큰소리를 치지만 정작 애비가 일을 그만두게 하지는 못한다. 그만큼 리키의 심리는 신자유주의 경제 환경 속에서 하루 14시간, 주 6일을 일하는 영국 하층 노동계급이 살아가는 삶의 팍팍함을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리키는 정해진 시간 안에 많이 배송하는 만큼 돈을 번다. 애비는 정해진 시간만큼 돌봄서비스를 제공하고 돈을 번다. 모두 노동력을 최대한 쥐어짜는 흡혈자본주의 수탈 구조 속에 살아간다. 노동자에겐 생존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만 임금을 보장한다. 따라서 리키와 애비는 노동시간을 최대한 늘려서라도 임금소득을 보전 받고자 기를 쓰고 일을 한다. 하루 14시간에 이르는 중노동과 저녁 9시에 퇴근하는 반복된 일상은 영국 비정규직 노동계급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대변한다. 신자유주의 사조가 보수당 장기 집권이 지속되면서 어떻게 자본의 탐욕을 극대화하고 노동계급의 삶을 위태롭게 파괴해 가는지 영화는 자본의 탐욕이 관철되는 시스템에 주목한다.

    어느 날 리키는 택배 배달 도중 떼강도들에 의해 집단 폭행을 당한다. 얼굴과 몸이 만신창이가 된 리키는 아내 애비와 함께 병원에서 응급처치를 받는다. 그리고 폐 검사와 골절 여부에 대한 X-Ray 검사 결과를 기다리다 관리자 멀로니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도난당한 택배 물품과 리키의 핸드폰은 보험처리가 되지만 택배 물건 가운데 여권은 보험처리가 되지 않는다며 500파운드를 물어내라는 말을 듣는다. 그리고 폭력배들에게 강탈당한 값비싼 스캐너 기계 값 1,000파운드(150만 원 가량)는 대여한 만큼 할부로 갚으라고 리키에게 강조한다.

    이윤 추구를 최고의 가치로 추구하는 냉혹한 관리자 멀로니 스틸컷. 관리감독자 멀로니가 시간이 없다며 택배 기사들에게 위압적으로 지시하고 있다.(출처 : 영화사 진진)

    리키는 재수 없는 관리자 멀로니의 말에 어이없어 하고 화난 표정이다. 그러자 아내 애비는 전화를 가로채 이윤 추구에 눈 먼 관리자에게 격렬히 항의한다. 심각한 부상을 입고 병원에 있는 직원에게 어떻게 회사가 손해를 책임지라는 등 돈 얘기만 하느냐며 항의한다. 아내 애비는 이것은 "가족의 삶에 관한 문제"라며 자신도 모르게 심한 욕설을 내뱉는다. '삶에 관한 문제'를 돈으로 계산기만 두드린다며 관리자 멀로니에게 거칠게 욕설을 내뱉는다.

    욕설을 내뱉자 대기실 환자들 시선이 애비에게 집중되고 애비는 어쩔 줄 모르며 울면서 감정에 북받친 독백을 쏟아낸다. "자신은 본래 친절하고 배려심 많은 간병인으로 욕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며 자기 자신이 왜 이러는지 당황스러워한다. 영화의 이 장면은 탐욕에 눈 먼 자본에 대해, 그리고 이를 구조적으로 비호하는 신자유주의 경제 환경에 대해 절망에 빠진 영국 노동계급의 분노에 찬 절규이자 응어리진 영혼의 외침으로 읽힌다.

    이 영화의 압권은 영화 끝 장면에 나오는 리키의 참을 수 없는 성실함과 절박함에 있다. 이는 신자유주의 경제 구조 속에서 하층노동계급이 끝 모를 나락으로 추락하는 절망감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장면이기 때문이다. 폭행을 당해 한쪽 눈을 뜨지 못해 엉망진창이 된 상태에서도 리키는 이른 아침 가족들 몰래 다시 일을 나간다. 대체기사를 구하지 못할 경우 하루 100파운드(15만 원 가량)에 달하는 벌금과 벌점, 그리고 택배 밴 대출금 상환에 대한 정신적 압박감을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리키는 가족들 몰래 이른 아침 성치 못한 몸을 이끌고 간신히 택배 밴 차량에 올라탄다.

    그러나 택배 차를 막아선 아들 세브와 아내 애비, 그리고 어린 딸 라이사의 눈물겨운 절규는 차라리 영국 노동계층의 절망과 탄식 그리고 분노를 대변하는 듯 가슴 한쪽을 아리게 한다. 리키는 가족의 만류를 뿌리치고 자신이 일을 나가지 않으면 온 가족이 길거리로 나앉게 된다며 차를 후진해 몰고 나간다. 14시간 고된 중노동에 졸면서 위태롭게 운전하는 리키이지만 가족을 따돌리고 출근하는 그 날은 울면서 운전한다. 영화 『미안해요 리키』(2019)는 끝없이 이윤만을 추구하는 수탈 자본주의의 냉혹한 현실 앞에 몸과 마음이 엉망진창이 된 노동계층의 삶을 대변하며 위로하는 영혼의 울림이자 탐욕스러운 깡패 자본에 대한 고발이다.

    왼쪽은 켄 로치 감독. 미안해요 리키 포스터

    아쉬운 것은 사실주의 종합 예술의 세계적 거장인 켄 로치 감독 작품을 대하는 한국인들의 인색함이다. 오래 전부터 생각해 온 것이지만 켄 로치 감독의 영화는 왜 한국사회에서 외면 받고 있는 것일까?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켄 로치 감독의 문제작에 대해 인색할 정도로 무심한 것일까 라는 의문이 항상 있었다.

    아일랜드 독립을 다룬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2006)은 서정성 짙은 매우 감동적인 작품이다. 평점 9.5점을 받을 정도로 빼어난 작품임에도 관객수는 14,000명에 그쳤다. 스페인 내전을 그린 수작 『토지와 자유』(1996) 역시 켄 로치 감독의 대표작임에도 한국 사회에선 환영받질 못했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조차도 관람객 10만 명에도 미치질 못하는 현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단순히 홍보 부족 때문일까? 아직 상영 중인 영화 『미안해요 리키』도 고작 3만 6천명에 그치고 있음은 이해하기 어렵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에서 주인공 다니엘 블레이크는 자신의 분노를 벽에다 글씨를 써서 보수당 정권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저항한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는 영국 보수당 정권에 대한 비판과 저항을 비극적으로 그린 슬픈 영화이다. 그런가하면 『미안해요 리키』(2019)는 보수당 집권이 끝나지 않고 지속되는 영국의 절망적인 현실을 날카롭게 형상화한 작품이다. 성실하고 순박한 리키의 삶 속에서 하층노동계급의 삶이 극한으로 치달으며 우울한 풍경을 연출하는 위대한 서사이다.

    필자소개
    고교 교사. 저서 '미래 100년을 향한 근현대 인물 한국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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