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동네 하나 남은 책방의 문턱을 넘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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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9월 02일 11:4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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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부터인가 제가 사는 동네 근처에도 교보문고나 영풍문고 같은 대형 체인서점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주민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서 조금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유명한 대형 체인서점들을 이용하기 시작했습니다. 할인도 되지 않고, 그다지 많은 책이 갖추어져 있는 것도 아니었던 동네 서점들은 속속 ‘폐업 정리’라고 쓰인 종이를 내붙이고 헐값에 책을 팔았습니다.

    사라지는 책방들, 잃어버린 추억들

    평소에 사고 싶었던 책들을 싼 값에 구입할 수 있어서 기쁘기도 했지만, 씁쓸한 기분을 어찌할 수는 없었습니다. 먼저 초등학생 시절(당시에는 국민학생이었지요.)에 푼돈을 조금씩 모아서 동생 선물을 한참 고르다가 『좁은 문』을 구입했던 서점이 사라졌습니다.

    다음으로 중고등학생 시절, 방과 후에 설레는 가슴으로 좋아하는 락 뮤지션들의 기사가 실린 잡지를 구입하던(그러면서 옆에 놓인 핑클의 사진이 실린 잡지를 넘겨보며 고단했던 하루의 시름을 달래던) 서점도 사라졌습니다.

    멋들어진 인테리어도, 별다른 행사도 없는 서점들이었지만, 서점 주인 분들과 정겹게 인사를 나누며 신간서적에 대한 소개도 받고 좋아하는 작가에 대한 대화도 나눌 수 있는 곳들이었습니다.

    며칠씩 기다려야 하기도 했지만, 서점에 없는 책을 구해달라고 하면 어렵사리 구해주시기도 했습니다. 기대에 부풀었던 그 기다림의 시간들은 무척 설레는 시간이었을 뿐만 아니라, 소중한 경험이었고 아름다운 추억이었습니다.

    기다림의 미학은 자본 앞에서 무너지고

    대형 체인서점들의 베스트셀러의 수위를 점하고 있는 책들이 말하는 ‘자본의 논리’는 대형 체인서점들이 들어서면서 동네 서점들이 사라지는 것이 당연한 것이며, 또한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온갖 미디어의 홍수 속에서도 우리가 책을 읽는 것은 ‘자본의 논리’를 넘어서는 그 무엇을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신자유주의의 거센 물결은 거대자본에 의한 획일화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지역만의 특색을 가지고 있던 중소영세상점들은 거대자본에 떠밀려 좌초되고 있습니다. 어디를 가나 똑같은 인테리어에 똑같은 상호를 내건 상점들이 대부분이고, 똑같은 옷을 입은 점원들이 기계적으로 인사를 합니다. 기다림과 느림의 미학은, 사람 냄새 풍기던 소중한 추억들은 거대자본 앞에서 너무나도 무력하게 소외됩니다.

    이제 제가 사는 동네에 서점은 하나뿐입니다. 예전보다 찾아오는 사람이 현저히 줄어들었지만, 저는 꾸준히 그 서점 문턱을 밟습니다. 대형 체인서점들이나 온라인 서점들보다 조금 비싸게 책을 구입하게 되더라도, 그다지 개의치 않습니다. 그렇게 돈 몇 푼으로 환산할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을 얻어가고, 지켜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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