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기브 마푸즈를 애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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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9월 02일 09:3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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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집트인들은 가슴이 뜨거운 사람들이다. 가난하지만 여전히 인간미가 넘치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가슴을 지배해왔던 진정한 별이 지난 8월 30일, 떨어졌다. 이집트인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아랍세계의 유일한 노벨문학상 수상자(1988년)인 나기브 마푸즈가 94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운명소식을 접한 이집트 국민들과 그를 아는 세계의 문학 애호인들은 당대의 위대한 문학인의 마지막 가는 길에 격정적인 애도를 표현했다. 5년이 지났지만, 그의 집을 직접 방문하여 인터뷰를 했던 필자도 그의 부고를 접하고서는 자연스럽게 고개가 숙여진다. 하지만 그를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존경하던 이집트 국민들은 다음 날 있었던 나기브 마푸즈의 장례식에서 완전히 배제되는 이중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다음 날(8월 31일), 나기브 마푸즈의 장례식은 이집트의 국장으로 치러졌다. 대통령이 무바라크가 직접 참석했고 장례식은 군사적인 예식으로 치러졌다. 말이 국장이었지 사실은 이집트 정부각료들과 가족들만 참석한 썰렁한 장례식이었다. 이집트정부에서 그의 시신과 장례식을 가로챈 것이다.

    이날 카이로시내는 거의 모든 상점들이 문을 닫았고 마지막 가는 마푸즈를 보기 위해 수십 만의 카이로시민들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미리 예상이라도 한 듯 수천 명의 무장경찰들은 길거리의 시민들을 물리적으로 통제했고, 장례식에는 누구도 참석할 수 없게 만들었다. 장례식에 참석할 수 없었던 시민들 중에는 “마푸즈는 우리들 사람”이라는 피켓을 들고 눈물을 흘리면서 행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진정 나기브 마푸즈는 이집트 민중들에게 속한 인물이었다. 그는 무바라크와는 하등의 관계도 없는 가난한 이집트 사람들과 함께 평생을 살아온 문학가였다. 그를 만나기 원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그가 항상 가는 피샤위 카페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17세의 나이에 이미 책을 출판한 바 있는 나기브 마푸즈는 90세의 나이에도 저작활동을 하고 있다. 이미 수십 편의 소설과 단편모음집, 희극등을 쓰면서 ‘이집트의 발자크’로 명성을 떨쳤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그는 35년간의 공무원 생활을 한 뒤, 정년퇴직을 하기도 했다. 공무원일을 하면서 신문에 기고도 하고 책도 출판했다.

    특히 52년도의 7월 혁명 이전에 씌어진 ‘카이로 트릴로지’(카이로 삼부작)가 대표적인 저작으로 꼽힌다. 카이로 트릴로지는 제목을 카이로의 거리이름에서 따왔다. ‘궁전길, 욕망의 궁전, 설탕로’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삼부작은 한 가족의 삼대역사를 이야기로 다루고 있다.

    배경은 1차대전부터 이집트의 왕 파룩1세 시대까지 영국 식민통치하에서 고통당하는 이집트인들의 삶을 한 가족의 역사를 통해서 조명하고 있다. 이 소설은 시대에 따라서 변하는 인간들의 심리적 변화를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엄밀하게 말한다면 나기브 마푸즈에게 노벨상을 안겨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금기시하던 이슬람 세계의 어두운 면들을 나기브 마푸즈는 과감하게도 책의 주제로 다뤘다. 이로 인한 수 많은 핍박 속에서도 그는 지칠 줄 모르는 저작활동을 지속했다. 또한 사다트 대통령과 이스라엘의 평화조약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레바논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아랍 국가들에서 그의 작품은 금서로 낙인 찍히기도 했다.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 시대와 초기 기독교시대, 이슬람시대를 겪어온 이집트의 역사적 다양성과 풍부성은 작가를 단지 한 시대에만 얽매일 수 없게 만들었다. 그의 초기 작품들인 아바트 알아크다르(1939), 라두비스(1943), 키파 티바(1944)등은 역사소설이다.

    어떤 문학평론가는 그의 세 작품이 월터 스콧의 영향을 받았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어쨌든 그는 이집트의 전체 역사를 소설을 통해서 드러내려고 시도했으나 미완성의 과제가 되고 말았다. 이후 그는 세 번째 소설을 계기로 개인의 심리적 문제로 깊이 파고들면서 사회적 변화와 개인의 변화를 주로 다루게 된다.

    마푸즈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아랍 현대문학을 전세계에 소개하는 계기가 됐으며 아랍 세계의 문학가들에게도 노벨문학상의 길을 열어놓았다. 세계문학의 두터운 장벽을 넘지 못하던 아랍 문학의 문을 전세계로 활짝 열어놓은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이다.

    당시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나를 자신의 곁에 앉히고서는 손수 과일을 권하던 훈훈한 모습은 내 기억 속의 한 부분으로 지금도 뚜렷이 남아있다. 그의 인간미 넘치던 모습과 인정스러운 이집트인들의 슬퍼하는 모습이 겹쳐지면서 이집트 정부에 분노가 솟구친다. 그의 마지막 가는 길마저도 정치적으로 이용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이집트 무바라크의 마지막 길도 눈에 선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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