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출마와 독서의 힘
[기고] 7번째 출마 선언문을 쓰면서
    2020년 02월 22일 10:4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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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선거를 준비하는 방식이 있을 것이다. 나로서는 7번째 출마선언문을 작성하는 일이 가장 힘겨웠다. 6번째 출마선언문을 작성할 때는 재작년 광주시장 후보로 출마하려던 시기인데 그 땐 그 때가 가장 힘들다고 생각했었다. 유권자들에게 무엇에 대해 얘기해야 하고, 당원과 진보진영에 대해 뭘 호소해야 하는지 늘 어려운 숙제다.

나는 선거를 출마하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내 마음 속 키워드와 고민을 정리하기 위한 독서계획을 세우고 실행해 왔다. 좀 더 체계적이고 의미있는 내용을 갖추고 선거를 통해 시대와 호흡하기 위한 나름의 방편이었다.

중앙당에서 제출한 정세보고서는 더 이상 어떤 영감의 원천이 되지 못했다. 진보정당이 당원에게 진보적 상상력의 우물이 되어주기 위해서는 다시 생각해도 당 기관지의 발행이 필수적이다.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으나 나의 경우 처음 공직선거에 출마하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 두 방향에서 용기를 얻었었다. 첫째는 동지들에게서, 두 번째는 당 기관지 ‘이론과 실천’에서 였다.

어쨌든 그런 연유로 선거를 앞두고 집중적인 독서를 하게 되었다.

지난 지방선거 때는 청년세대를 중심으로 담론화되고 있던 헬조선, 이생망, 소확행의 구조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선거를 잘 준비하기 힘들다고 생각했다. ‘안녕들하십니까’, ‘가만히 있으라’ 등의 청년 저항담론이 더 발전하지 못하고, 왜 헬조선, 이생망, 소확행 등의 소극적이고 절망적인 담론으로 퇴행했는지 이해하고 싶었다.

광주라는 도시의 청년들이 어떤 상태에 놓여 있고 이들의 곤궁한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진보정치는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이 문제에 천착하는 것이 다른 세대의 문제를 놓치는 것이 아니기 위해서는 청년세대 문제가 전체 사회문제 안에서 일반론의 지위를 상징적으로라도 확득할 수 있어야 하는데 과연 그러한지 등에 대해 자신있게 말할 수 있어야 했다.

그래서 손에 잡은 책들 중 가장 도움을 받았던 두 권이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이 펴낸 <청춘의 가격>과 ‘천주희’님이 쓴 <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 였다.

<청춘의 가격>의 첫 번째 이야기는 ‘나는 생활하는가 생존하는가’라는 처참한 질문으로 시작한다. 대한민국 헌법은 1980년 개정에서부터 모든 국민은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고 천명하고 있다. 그런데 그로부터 거의 40년이 다 지난 시점에서 이 땅의 청년들이 ‘나는 행복한가?’가 아니라, 내가 생활하고 있는지, 생존하고 있는지 묻고 있는 것이다.

이 기막힌 퇴행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 주변의 청년들에게 묻기 시작했다. ‘요즘 청년들은 청춘이라는 말을 잘 안 써요? 왜 안 써요? 그 말에 어떤 느낌이 있어요?’ 청춘이라는 말은 이렇게 비참한 현실을 가리는 사기형 단어이며, 노숙인에게 진정한 자유를 누린다고 표현하는 것만큼 현실을 모르는 말이며, 듣기만 해도 짜증이 난다는 것이 내가 들은 대답이었다.

“청년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생활을 돌려주고 꿈을 꾸게 하는 공동체의 투자이다. 꿈은 생존이 아닌 생활 속에 있다.”

이 책이 시종일관 주장하는 것은 이 문장에 다 담겨있다. 무슨 거창한 희망 따위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생존이 아니라 그냥 생활하게 하면 그 속에서 충분히 꿈꿀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는 좀 더 구체적으로 청년들이 지게 되는 부채의 늪에 대해서 알려준다. 저자인 천주희씨가 대학에 합격하자 택시노동자였던 아버지는 1000만원이 든 통장을 건네며, 이것이 아버지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이라고 했다. 천주희씨는 그때부터 자신이 대학생활을 하며 기록해 놓은 비용을 분석하여 공개했다. 학부를 마치는 동안 1억 1300만원이 들었고, 대학원에서 석사까지 마치는데 든 비용은 8100만원, 거의 2억원을 썼다. 공부하는 동안 끊임없이 일을 했지만 결국 빚을 지고 말았다. 결국 저자가 우리에게 던지는 말은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 사회를 방치하고 있나요?’이다.

천주희씨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유력한 수단으로 기본소득을 제시하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기본소득이냐의 여부가 아니라 이 문제를 어떻게 직시하고 대면할 것이냐가 아닐까 한다.

광주시장 선거에 출마할 당시 내 출사표의 첫번째 이야기가 <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 지나요?>에 대한 것이었고, 내 명함의 뒷면에는 붉은 글씨로 ‘저는 청년들에게 무채색 미래가 아니라 청춘의 빛깔을 돌려주기 위해 출마합니다’라고 썼다.

이번 총선을 준비하는 과정은 좀 더 마음이 복잡했었다. 광주에 돌아온 지 4년째인데 이번에 출마하면 4년 만에 3번째 출마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이번엔 광주시당 위원장으로서, 내가 출마하는 것뿐 아니라 전체 선거를 지휘하고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개인적인 선거준비에 집중하기가 더 어려웠다.

게다가 정의당의 상황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당이 하나의 조직으로서 유기적이지 않았고 핵심당원들은 지역구보다 비례대표 제도를 통한 국회 진출에 골몰했다. 당 지도부는 모두 지역구에 출마해야 한다고 소리 높이던 분이 정작 자신은 비례대표로 출마하겠다고 한 경우도 있었고, 진보정당에 대한 고민이 일천해 보이는 사람이 대중적 인기에 힘입어 비례대표 선거에 도전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당 부대표 한 사람은 지방의원직을 사퇴하고 비례대표로 출마하겠다며 소동을 일으키다 결국 탈당해버리기도 했다. 잠시나마 이런 사람을 리더로 뽑은 당원들이 원망스럽기도 했었다.

이런 어수선한 상황에서 손에 든 여러 책 중, 마음 속 갈등을 정리하는데 꽤 쓸모가 있었던 두 권을 뽑자면 ‘더글러스 러미스’의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와 ‘장석준’의 <세계 진보정당 운동사>였다.

이 두 책은 모두 한 다섯 번 씩은 읽어야 할 명저들이다. 선거만 아니었으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경제성장이 안되면..>은 크게 두 가지 내용을 다루고 있다. (일본헌법 9조를 통해서 본) 평화문제와 경제성장 및 지속가능성에 대한 생각이다.

저자는 일본헌법 9조를 평화에 대한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지난 100년 동안 국가의 이름으로 살해된 사람을 약 2억명으로 추산할 수 있는데, 이 중 1억 3천만명은 놀랍게도 자국민이었다. 즉 국가의 전투능력이 커질수록 자국민이 안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위협이 커지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일본 헌법 9조처럼 국가의 교전권을 부인하고 군대를 보유하지 않는 것이 평화에 이르는 가장 현실적인 방책이라는 것이다.

후반부의 기록이 더욱 빛난다고 생각하는데, 바로 경제성장에 대한 러미스의 철저한 해부이다. 이 책은 기후위기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많은 지적과 논리적 귀결은 그것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했다.

저자는 발전, 개발이라는 말이 트루먼 대통령에 의해 처음으로 정치적 언어가 된 이래 발전과 개발, 성장이라는 말의 가장 큰 업적은 착취를 가리는 것에 있었다고 일갈한다. 성장은 빈곤을 해결하는 것 아니라 빈곤을 합리화했을 뿐이다, 이것이 저자의 핵심 주장이다. 빈곤의 합리화가 아니라, 빈곤의 추방이 필요하며, 이것이 정치의 목적이다.

지구상에 거주하는 모든 가구가 자동차 한 대씩을 소유하는 것을 상상하고 이것을 발전이라고 한다면, 그 자동차를 움직이게 할 석유는 계산에 의하면 수개월 안에 바닥이 난다. 더 이상의 경제성장을 지구가 버틸 수 없는 상태가 되었는데, 그렇다면 빈곤과의 전쟁에서 우리는 승리할 수 없는가? 그렇지 않다. 아직 우리에게는 정치라는 수단이 남아있으며, 원래 성장과 빈곤해결은 반드시 함께 가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대항발전’이라는 말을 중요하게 언급한다. 경제발전이 아니라 에너지소비를 줄이고, 경제 이외의 것, 예컨대 정치를 발전시키고 협동의 양과 질을 폭넓게 하고, 생활양식과 문화를 발전시키자는 것이다. 그것으로 관점을 전환시킬 때 경제성장 없이도 풍요로운 인간생활이 가능하다.

정의당이 총선 핵심정책으로 이야기하는 ‘그린뉴딜’ 정책도 그린뉴딜 ‘성장’전략으로서가 아니라, 이러한 대항발전으로서의 개념이라는 것을 보다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장석준’의 <세계 진보정당 운동사> 독서는 나에게 당위로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지역구 출마를 결심하게 해 준 책이었다. 역사를 바꾸기 위해 과거의 진보정당들이 맞딱뜨렸던 난제는 무엇이었고 그것을 이기고 한 발짝이라도 전진하고자 했던 사람들이 선택했던 것은 어떤 것이었는지, 현장감 있게 서술되어 있다. 무엇보다 지금의 정의당과 한국사회를 돌아보며 독서할 수 있도록 배려한 저자의 노력이 곳곳에 배여 있다.

영국 노동당의 70년대 총선 공약집 문구처럼 “권력과 부의 불균형을 노동대중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더 이상 돌이킬 수 없게끔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 이번 총선에서도 정의당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 정의당은 작은 개혁목표들의 양적 제시에 머물러서도, 근본적인 변혁의 목표 없이 큰 개혁만을 주장해서도 안 되며, 큰 개혁 과제를 제시하며 작은 혁명이라도 완수하는 정당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가장 인상적인 구절이었다.

이를 위해 전통적인 빈곤과 불평등, 노동의 문제를 놓치지 않되, 지구자본주의와 지구생태계 사이의 모순과 충돌에 대한 혁명적 발상이 필요하다.

이 마지막 장을 읽고서야 이번 선거에서 사람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가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기후헌법-반빈곤평등헌법’을 만드는 제7공화국 운동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 뒤로 이현정과 양경규 두 분 비례대표 후보도 이 내용에 동의하는 내용을 발언에 담기 시작했다. 더 많은 정의당의 후보들이 참고하길 바란다.

토요일 오전만은 휴식을 취하는 것으로 선본이 결정해 주었다. 며칠 전에 누군가가 ‘요샌 글이 짧아져서 참 좋습니다’ 하길래 그냥 웃었었다. 그건 글이 짧아진게 아니고 피곤하고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죄송합니다. 저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이런 사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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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나경채
정의당 전 공동대표. 전 관악구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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