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식국독자론의 ‘국독자’ 측면
    [‘21세기 한국사회 성격’ 탐구②] 개발도상국에서의 국가자본주의
        2020년 02월 20일 09:3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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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요지] 전후 출현한 국가독점자본주의는 비록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라는 한계 내에서이긴 하지만, 생산과 소비 양 측면의 계획적 조절을 통해 자본주의의 고유한 과잉생산 모순을 완화시켜주는 일종의 ‘조직된 자본주의’로서의 기능을 보여주었으며, 사회적 자원의 동원과 배분 기능을 상당 정도 수행함으로써 과거 자유방임적 자본주의보다는 비교적 높은 생산력 발전을 가능토록 하였다. 경제개발 당시의 한국의 ‘국가자본주의’ 역시도 ‘준(準)국가독점자본주의’라 불릴 정도의 수준을 갖추었는데, 그 결과 한국경제는 비교적 빠른 경제성장과 생산력 발전이 가능하였다.

    2. 신식국독자론의 두 가지 측면

    신식국독자론이 본래 지니고 있던 진정한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또 그것이 오늘날 변화된 현실 속에서 여전히 유용한 이론일 수 있는지를 검토하기 위해선, 그것이 지니고 있는 두 가지 측면, 즉 국가독점자본주의 측면과 신식민지 측면의 함의와 그 상호관계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 먼저 국가독점자본주의 측면이 성립하는 과정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1) 국가독점자본주의 측면의 성립

    신식국독자론에 있어 국가독점자본주의 측면이 갖는 함의는 중층적이다. 그것은 한국과 같은 애초 생산력이 미발달한 개발도상국가에 있어 현대적 산업화에 성공한 현실을 인정하는 것임과 함께, 또 그것이 이루어지는 과정과 방법론까지를 담고 있다.

    필자가 보기엔 이론으로서의 신식국독자론은 크게 개발도상국에서 어떻게 국독자가 성립할 수 있는지를 밝히는 ‘과정론’, 그리고 그것이 성립한 이후에 고전적 국독자와 비교하여 갖게 되는 구조와 축적방식 등에 있어서의 특수성에 관한 연구, 그리고 향후의 발전전망 이상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신식국독자론은 먼저 한국과 같은 개발도상국이 어떻게 현대적 산업화가 가능하였는지를 밝혀줄 필요가 있다. 이 문제는 오늘날도 세계 각국 연구자들의 적지 않은 관심을 모으는 주제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2차 세계대전 이후 구식민지에서 독립을 쟁취한 수많은 신생독립국들 중에서 한국처럼 현대적 산업화에 성공한 나라는 극소수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한 연구를 통해 이후 ‘신식민지 측면’이 도입되게 되는 계기 또한 찾을 수 있다.

    한국의 경제발전의 성공은 직접적으로는 1960년대 들어 본격화한 경제개발로부터 비롯된다. 이 같은 국가주도의 경제개발정책은 그 본질에 있어 ‘국가자본주의‘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단순히 국가자본주의 전략이 한국의 산업화를 완수하게 했다고 지적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왜냐하면 종전 후 많은 신생국들도 그 같은 전략을 취하였기 때문이다. 예컨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정치적 독립을 획득한 저개발국들에서 보편화된 경제과정에 대한 국가의 광범한 간섭, 특히 생산수단에 대한 국가적 소유의 확대와 국가경제개발계획에 기초한 경제발전은 1956년 7-8월에 <뉴 타임즈> 지상에 발표한 루빈슈타인의 논문을 계기로 하여 갑자기 주목을 끌기 시작하였고 국가자본주의로 파악되게 되었다.”(1)

    그럼에도 한국처럼 경제발전에 성공한 국가는 별로 찾아보기가 힘들다. 때문에 우리는 여기서 국가자본주의의 일반적 의미보다 좀 더 강력한 개념을 빌릴 필요성이 생기는데, 이 경우 다음 두 가지 사항이 고려되어야 한다. 첫째는 한국의 개발독재정권 주도하의 경제개발이 보여준 국가의 강력하고 효과적인 경제 관리와 조직 능력이다. 둘째는 국내외 자원에 대한 동원능력이다. 이 두 가지는 한국의 국가자본주의를 다른 개발도상국의 그것과 구별되게 만들었던 요인이라 할 수 있다. 이것들을 고려할 경우 당시의 한국 국가자본주의는 ‘준(準)국가독점자본주의‘라 불릴 수 있을 정도로 전후 서구 선진국들이 가졌던 정교하게 잘 조직된 국가독점자본주의 수준에 가까웠다. 실제 양자는 모두 상당정도 ‘조직된 자본주의’로서의 기능을 가졌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잠시 국가자본주의와 국가독점자본주의 상호 관계를 정리하고 넘어가도록 하자. 소련의 경제학자 베스노프에 따르면 자본주의사회에서 국가자본주의는 역사적으로 4개의 형식을 갖는다. 즉 ➀봉건제로부터 자본주의로의 이행기의 국가자본주의, ➁독점 이전 단계의 국가자본주의, ➂국가독점자본주의, ➃제국주의의 식민지체제 붕괴기의 저개발국에서의 국가자본주의가 그것이다.(2) 우리는 여기서 국가자본주의와 국가독점자본주의 양자는 본래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국가독점자본주의는 넓은 의미에서 국가자본주의 범주에 속하며 후자의 한층 고도화된 형식이라 볼 수 있다.(3)

    국가자본주의 내의 고도화된 형식으로서의 국가독점자본주의는 원래 역사적으로 보면 자본주의가 상당 수준 발전을 이룩한 서구 선진국에서 출현하였다. 2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이들 국가들을 중심으로 나타난 국가독점자본주의의 발전은, 자본주의 생산양식 하에서 이루어진 생산관계의 한차례 부분적 조정의 성격을 지녔다. 전후 과학기술혁명의 발발에 따라 생산의 사회화 수준은 전대미문이라 할 만큼 높아졌다. 이 같은 생산력 발전에 발맞추어 자본주의 생산관계 역시도 상응한 변화가 요구되었는데, 전후 국가독점자본주의의 발전은 이 같은 배경 하에서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이루어진 자본사회화 정도의 제고이었다.

    생산관계 측면에서의 이러한 조정이 있었기에 전후 세계자본주의는 과학기술혁명이 가져다준 생산력 발전을 수렴하면서 비교적 장기간의 호황을 누릴 수 있었다. 예컨대 국가독점자본주의는 대규모 생산이 필요로 하는 거액의 자본투자와 민간 독점자본의 자금 조달 상의 한계 사이의 모순을 해결하는데 기여를 하였다. 또한 국민경제 각 부문의 지속적인 분화 발전 속에서 국가독점자본주의는 경제의 무정부상태의 심화를 해결하고 사회적 생산의 계획적이고 비례적 조절을 달성하는데 있어서도 일정한 도움이 되었다. 이렇듯 국독자는 비록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틀 내에서이긴 하지만, 나름대로 생산과 소비 양 측면에서 일종의 ‘조직된 자본주의‘로서의 기능을 보여주었으며, 또한 사회적 자원의 동원과 배분 기능을 수행하여 과거 자유방임적 자본주의보다 비교적 높은 생산력 발전을 가능케 해주었다.

    경제개발 당시의 한국의 국가자본주의 역시도 이와 유사한 능력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박정희 개발독재정부의 강력하고 효과적인 경제관리 능력과 국가의 대규모적인 사회자원 동원능력이 그것인데, 그 결과 한국의 국가자본주의는 서구 국독자와 같은 높은 생산력 발전의 추동을 가능케 하였다.

    여기서 한국 개발독재정부가 가졌던 두 가지 능력, 즉 효과적인 경제관리 능력과 사회자원 동원능력 상호관계에 대해 좀 더 살펴보도록 하자. 둘 중 보다 근본적적인 것은 후자 즉 사회자원의 동원능력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다른 많은 신생국들이 경제개발에 성공하지 못했던 근본 원인은 바로 이러한 사회자원 동원능력 상의 결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서구 국가독점자본주의 성립에 있어서도 이러한 사회자원의 동원능력은 매우 관건적이었다. 국가독점자본주의 개념 중의 ‘국가’는 그것이 본래 경제적 기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국가와 독점자본의 결합’ 특히 국가가 ‘국가독점소유제’와 같은 형식을 빌려 하나의 독자적인 경제주체가 됨으로써 국독자가 성립될 수 있었던 것이다.(4)

    결국 ‘국가독점자본’이라는 물적 기초의 존재야 말로 원래 상부구조인 자본가계급의 국가가 국민경제에 전면적인 간여와 조절을 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질 수 있게 된 핵심 요소라 할 수 있다. 국가가 이를 위해 채택할 수 있는 방법은 재정과 화폐 수단, 국유기업, 혼합기업 등과 같은 직접적인 물적 기반을 스스로 확보하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것은 재정과 화폐 수단의 보유라 할 수 있는데, 그 근저에는 국가가 화폐발권력을 장악하는 ‘중앙은행제도’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현대적 조세제도’가 있다.

    당시 한국 국가자본주의 역시도 사회자원에 대한 동원능력에 있어서만 본다면 이러한 국독자적 요건을 대체로 만족시켜주었다. 언뜻 보기에 당시의 한국사회는 강력한 권력을 휘두르는 권위주의적 정부가 존재함으로써 국가는 이 같은 정치적 힘에 입각하여 경제개발 과정을 이끌었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것은 오해이다. 한국의 경제발전은 비록 강력한 국가주도로 진행되었지만, 그 같은 국가주도가 가능했던 근저에는 현대적 재정조세제도와 함께 ‘한국은행-시중은행’으로 이어지는 현대 신용체계가 존재하였다.

    예컨대 후자의 경우, 한국정부는 1950년대에 민영화되었던 모든 상업은행을 1960년대 초반에 다시 국유화함으로써 금융자금 배분에 대한 정부개입 확대의 길을 열어 놓았다. 또 은행주식 보유를 통한 소유적 통제와 행정적인 은행감독권 이외에도, ‘금융단협정’이라는 수단을 확보하였다. 이들을 통해 은행 간 경쟁을 제한하고, 정부 통제하의 통일적인 은행경영을 실시하는 등의 잘 정비된 은행신용체계를 통해서 자금을 정부가 원하는 방향으로 집중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가능하였다. 한국정부는 또한 이들 외에도 또 한 가지 중요한 자금동원수단을 갖고 있었는데, 바로 외환에 대한 통제이다. 외환관리법(1961년)과 외채지불보증법(1962법)을 제정하여 외환집중관리체계를 구축하였으며, 이를 통해 해외차관과 그 사용도 거의 완전히 통제할 수 있었다.

    이 같은 현대적인 조세와 신용제도의 구축이 있었기에 한국정부는 경제발전과정에 있어 관건적이라 할 수 있는 자본의 조달과 배분 및 운영과정에 대해 강력한 통제를 수행할 수 있었으며, 국가 스스로도 많은 공기업들을 설립하면서 직접 그 소유주체가 될 수 있었다(아래 표1 참조). 또 이러한 물적 기반이 뒷받침 되었기에 한국정부는 민간자본의 형성과 통제 및 국민경제 전반에 대한 깊숙한 개입을 수행하는 것이 가능하였다. 이 점은 선진국독자와 마찬가지로 당시 한국의 국가자본주의가 ‘조직된 자본주의’로서의 비교적 높은 수준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었음을 보여준다(5).

    다음으로, 이 같은 자원동원과 경제관리 능력을 통해 한국 국가자본주의가 경제성장을 추동한 측면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당시 한국이 경제개발 기간 동안 이룩한 높은 경제성장률은 한국의 (’준(準)국가독점자본주의‘ 수준에 이른) 국가자본주의가 자신의 특정한 기능을 매우 극대화한 형태로 발휘하였음을 보여준다. 이 부분은 선진국독자와의 차이점이기도 한데, 선진국독자는 역사적으로 보자면 생산과잉과 자본과잉 상태에서 출현하여 그것의 해결과 사회적 균형의 모색을 일차적 과제로 하였다. 그에 비해 한국의 국가자본주의는 생산력이 아직 미성숙하고 자본이 결핍된 개발도상국이라는 상황 속에서 출현하여 산업화를 가급적 조속히 달성할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이러한 배경과 동기 상의 차이점은 양자의 성격을 확연히 구분케 만들었다. 서구의 그것은 경제발전을 추구하는 것뿐만 아니라, 과잉생산 문제의 해결과 노동계급의 체제 내 포섭이라는 과제를 중시하게 만들었다. 이와 비교할 때 한국의 국가자본주의는 신속한 산업화 목표를 달성키 위해 사회자원에 대한 경제개발과정에의 ‘총동원체제’로서의 성격이 보다 강하였다. 그를 위해 대중의 소비욕구를 최대한 억제시켰으며, 한발 더 나아가 노동자계급과 농민 등 민중 전반에 대한 초과착취와 수탈이 국가권력의 엄호 하에서 노골적으로 진행되었다. 이러한 측면에서도 당시 한국의 국가자본주의는 서구의 선진국독자가 지니고 있던 생산력발전을 추동하는 측면을 좀 더 극단적인 형태로 밀고 나갔다고 할 수 있다.(6)

    잠시 근본적인 문제 하나를 짚고 넘어가도록 하자. 즉, 생산력 발전이 미진하고 특히 민간독점자본 발전이 미성숙한 한국과 같은 개발도상국가에 있어, 어떻게 애초 그 같은 강력한 자원 동원능력을 갖춘 국가자본주의의 성립이 가능할 수 있었느냐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볼 때 개발도상국에서 국가자본주의에 의한 자원동원 전략은 다음 두 가지 요인 때문에 제한을 받는다. 하나는, 제국주의 지배로부터 막 독립한 신생국으로서의 전반적인 낮은 경제발전 수준인데, 이것은 매우 근본적인 제약 요인이 된다. 다른 하나는, 토지개혁의 불철저한 수행과 부유계층과 관료와의 유착 등과 같은 불철저한 사회개혁으로 인한 제약이다. 당시의 한국사회 역시 이 두 가지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7)

    여기서 한 나라의 생산력 발전수준은 관건적 요소가 된다. 예컨대 국가의 동원능력 즉 조세와 중앙은행을 정점으로 하는 현대 은행신용체계도 사실상 민간독점이 충분히 발전한, 즉 생산력이 상당정도 발전한 물적 기초 위에서라야 제대로 기능할 수 있다. 만약 생산력 발전수준이 낮다고 한다면 국가의 조세와 재정능력도 당연히 낮을 수밖에 없다. 또 비록 형식상 중앙은행과 은행신용체계를 갖추었다 손 치더라도 이처럼 낮은 조세재정 능력을 기반으로 단순히 ‘지폐’를 찍어 내는 것만으로는 악성 인플레이션을 유발 할 뿐 장기적인 경제개발에 필요한 투자재원을 조달하기가 힘들다. 이렇듯 국가가 자국 내에서 스스로 이용할 수 있는 물적 토대 자체가 취약할 경우, 국가는 경제과정에 개입하는데 있어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으며, ‘강력한 국가자본주의’의 성립은 결국 공염불에 그치게 된다. 앞서도 언급하였듯이 이 같은 체계의 성립은 결코 정치논리만으로는 성립할 수 없음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 이 문제에 대한 해결의 열쇠는 외자에 있었다. 한국의 경제개발이 한창 진행될 무렵인 1960~1970년대는 마침 서구 선진국독자가 이미 성숙단계를 거쳐 생산과잉과 자본과잉 상태에 접어든 무렵이었다. 이 때문에 일찍이 20세기 초 구 제국주의시대의 자본수출보다도 훨씬 큰 대규모 자본수출이 전 세계적으로 이루어졌다. 이점은 한국과 같은 개발도상국가에 있어 국내적 자원동원 능력이 근본적으로 제한되는 상황에서 어떻게 이 같은 ‘강력한 국가자본주의’의 성립이 가능하였는지를 해명하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계속)

    [‘21세기 한국사회 성격’ 탐구] 연재를 시작하며

    [본문 주석]

    1. 편집부 엮음, 1988년,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 논쟁Ⅰ>,p32. 벼리. 고딕체 강조는 인용자에 의한 것임.

    2. 위의 책,p37.

    3. 베스노프는 또 현대 저개발국의 국가자본주의가 지닌 특수성에 대해, “자립적인 국민경제의 형성이라는 점에서 보면 바로 19세기의 후발자본주의 나라와 공통된 과제를 갖고 있으면서도 완전히 다른 세계사적 환경 속에서 그 과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에 오늘날의 저개발국 국가자본주의의 독자적인 특징이 있다”고 지적하였다(위의 책,p37). 이렇게 볼 때 국가자본주의는 매우 넓은 의미를 갖는 개념이라 보여 진다. 그것은 심지어는 자본주의사회에서도 사용되며 사회주의에서도 사용될 수 있는 개념인데, 후자의 경우 대표적인 것은 레닌이 신경제정책 기간(1921-1924년) 사용했던 정책을 들 수 있다.

    4. 이는 사적 독점자본주의 중의 ‘사적’의 의미와 완전히 같다고 할 수 있다. 즉 사적 독점자본이 원래 모종의 경제 ‘기능’을 갖기 때문이 아니라, ‘개별자본가와 독점자본의 결합’ 즉 ‘사적독점소유제’ 때문에 그것이 사적 독점자본으로서 독자적인 경제주체가 될 수 있었던 것과 같은 원리이다. 또 바로 국가와 독점자본의 결합 특히 국가가 독자적인 독점자본(국가독점자본)으로서의 경제능력을 갖추게 되었기 때문에, 비로소 국가독점자본주의 상황 하에서 상부구조인 국가는 국민경제에 대한 관리와 조절 기능을 보유할 수 있게 된다.

    이는 확실히 결과적으로 볼 때 자본가계급 국가기능의 새로운 발전이라 할 수 있다. 그 이전에는 상부구조로서의 자본가계급 국가기능은 아담 스미스의 ‘야경국가론’에서 보듯 주로 정치적 기능이 대부분이었다. 야경국가론에 따르면, 국가는 민간 경제주체들이 경제활동을 충분히 할 수 있도록 대내적으로는 개인의 소유권을 보장하고, 대외적으로는 외부의 침략을 막아주는 두 가지 역할만으로 충분하다. 이에 따라 국가는 일반 행정·치안·국방과 관련한 최소한의 예산만을 배정받으며 국가독점소유제는 별로 발전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국가는 설령 경제에 간여하고 싶어도 별반 간여할 수 있는 수단을 갖지 못하였다.

    5. 어느 측면에서 보면 한국의 국가자본주의는 계획적인 자원동원과 배분 능력만 놓고 볼 경우 선진국독자의 그것보다도 더욱 강력하였다고 할 수 있다. 서구의 선진국독자는 그 성립과정이 민간독점이 발전한 기초위에서 나중에 국가독점이 성립하는 과정을 밟았다. 그 때문에 경제운영에 있어 민간독점의 힘은 강력하였으며, 국가의 역할은 본질상 민간경제의 자율적 운영의 기초위에서 그것을 보조하고 지원하는 역할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하였다. 이에 비해 한국의 국가자본주의는 국내에서 민간독점자본이 아직 전반적으로 성립하지 않은 상태이었기 때문에, 국가는 경제개발을 위한 자원의 조달과 배분에 있어 처음부터 주요한 몫을 담당하였다. 이에 따라 국민경제에 대한 국가의 통제력은 선진국독자와 비교할 때 더욱 강력하였으며, 이로부터 국내외의 자원을 경제발전을 위해 우선적으로 집중시킬 수 있었다.

    6. 물론 이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문제점이 제기될 수 있다. 먼저 국가가 중심이 되어 자원의 동원과 분배기능을 담당할 경우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이 그것이다. 예컨대 한국 국가자본주의 동원체제의 핵심인 금융시스템의 효율성문제, 또 지나치게 경제성장을 위해 자원을 집중시켰을 경우 국민경제에 있어 소비와 생산 간의 균형이 파괴되는 것 등이 그것이다. 이렇게 되면 단기적인 경제성장의 성과를 거둘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상당기간 지속되기는 어렵다. 이에 대해 그간 국내외 연구결과는 개발독재국가에 의해 수행되는 소위 관치금융이 몇몇 문제점을 야기할 수는 있지만, 그러나 적합한 보완장치가 마련된다면 산업화 초기단계에서는 나름의 상당한 긍정성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즉 원래 경제주체들의 경제활동에 관한 정보가 충분치 않은 개발도상국들의 시장 발달의 미진한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이 같은 관치금융은 오히려 잘 만 운영된다면 시장의 미성숙을 보완하는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경제성장에 대한 자원의 집중으로 초래될 수 있는 국민경제의 불균형 문제의 경우, 한국의 국가자본주의는 외부시장 즉 ‘수출시장’의 개척을 통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한국의 경제개발은 처음에는 수입대체산업 육성과 같이 내부시장 전략으로 출발하였지만, 1965년부터는 점차 ‘수출주도형’ 경제개발로 그 전략을 수정하게 된다. 이 같은 전략수정은 처음에는 경제개발에 필요한 원자재와 기계설비의 수입에 쓰인 외채를 상환해야 하는 절박성이 강제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점차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한국의 국가자본주의가 갖고 있던 경제성장 기능의 극대화 측면이 더욱 두드러지게 작용하였다. 즉 내부 분배기능을 소홀히 하고 공급 측면에 지나치게 자원을 집중한 결과, 국내 시장의 육성이 정체되었으며 해외시장의 의존도는 더욱 높아지게 되었다. 그러나 위의 관치금융의 ‘효율성’ 문제나 협소한 국내시장 문제는 한국에 있어서 국가자본주의 전략의 성공 가능성을 근본적으로 부정케 할 정도의 장애는 아니었다.

    7. 이 부분에서 얼마간 보충설명이 필요하다고 보여 진다. 독점자본주의와 그 내적 특성의 전면화로서의 국가독점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그에 상응하는 자본주의의 높은 수준의 생산력발전을 전제로 한다. 이 점은 이러한 전제조건을 필요로 하지 않은 국가자본주의와는 본질적 차이가 있다. 예컨대, “자유경쟁에서 독점으로의 이행과 동시에 생산의 사회화에서 거대한 진보가 시작되었고, 국가독점적인 과정이 가능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필요불가결하게 된 조건이 나타난다.” (편집부 엮음, 1989년, <국가독점자본주의론 연구-제1분책 드라길레프 논쟁>, p121, 벼리); “독점은 생산력발전의 결과이며, 이런 의미에서 독점은 질적으로 새로운 생산력수준을 나타내고 있다.”(위의 책, p148) 등의 주장은 독점자본주의 및 국가독점자본주의가 단순히 생산관계 차원만의 변화가 아니라, 근본적으로는 상당히 높은 수준의 생산력발전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 레닌은 <제국주의론>에서 대기업에서의 생산의 집적과, 그 기술적 기초로서 그곳에서의 ‘증기력과 전력’의 압도적 부분의 집중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강조하였다. ‘증기력과 전력’은 당시엔 선진적인 생산력을 대변하는 용어였다.

    필자소개
    북경대 맑스주의학원 법학박사 , 노동교육가, 현재 민주노총 정책연구원 정책자문위원, 맑스코뮤날레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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