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주방송 프리랜서 PD의 죽음
    유족 "방송계 노동착취 뿌리 뽑아야"
        2020년 02월 12일 05:0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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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의 죽음으로 다시 이슈화되고 있는 방송·언론계에 뿌리 깊이 박혀있는 일명 프리랜서라는 명목 하에 행해지는 비정상적인 불법 노동착취 실태를 철저히 조사하고 밝힐 수 있도록 건의해 근본적이고 실질적인 대책을 함께 요구하겠다”

    고 이재학PD의 동생 이대로 씨는 12일 오전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씨는 “회사의 근로감독·지휘 하에 수행하는 중요 노동자였음에도 CJB청주방송은 그들이 PD라고 불러왔던 저희 형의 14년을 이제 와서 지우고 인정하지 않겠다고 한다”며 “형이 그래왔듯 저 역시 단 한발도 물러서지 않고 제대로 된 진상조사를 통해 형의 잃어버렸던 명예회복과 그에 따른 당연한 대우를 되찾을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추혜선 의원실

    청주방송 고 이재학 PD는 조연출과 작가 등 프리랜서 제작진의 임금인상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모든 방송에서 하차를 통보 받았다. 그가 160만 원의 임금을 받고 청주방송에서 일한 14년 동안, 처음으로 한 임금인상 요구였지만 청주방송은 그렇게 그를 해고했다. 이 PD는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제기하며 회사의 부당해고에 저항했지만, 1심에서 패소했고 항소 5일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한 게 없다”, “억울해 미치겠다”. 지난 4일 숨진 이PD가 남긴 유서 내용의 일부다.

    이PD는 2017년부터 2년 넘게 매주 목요일 1시간 동안 방영되는 <아름다운 충북> 등 주간 프로그램, <청풍논객> 등 평일 매일 방송하는 프로그램, 각종 특집 프로그램을 연출했다. 이 밖에 지자체 보조금으로 제작되는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데 있어선 사업 수주 단계부터 문건을 만들고, 업무를 수행하며, 보조금 수령과 정산까지 모두 그가 했다.

    이PD를 비롯한 프리랜서 조연출과 작가들의 처우는 터무니없었다. 유족과 시민사회단체 등에 따르면, 고인이 책임PD로 있던 <아름다운 충북>은 1회분을 방송하기 위해 2일간 촬영, 3일간 편집을 하면 다음주 아이템 준비까지 했다. 이렇게 한 주를 꼬박 일해 1회분을 내보내고 받는 돈은 고작 회당 40만원이었다. 그나마 고인은 책임PD였기에 이 정도 수준이라도 받을 수 있었다. 막내 작가의 월급은 80만원 수준이었다. 2012년 이후 7년째 그대로였다. 이PD는 월 160만원을 받았다.

    오랜 시간 함께 일해 온 동료 프리랜서들은 처우 문제에 대한 고민이 컸다고 한다. 고인은 동료들의 대표로 임금인상, 인력충원을 요구했다. 청주방송은 이PD를 프로그램에서 하차시켰고 다른 외주업체와 더 높은 금액으로 계약했다.

    이재학 PD, 후배들 처우개선 위해 선례 남기고자 했는데…
    “법원조차 그를 보호해주지 않았다”

    이 PD는 저항했다. 직장갑질119에 이 사실을 알렸고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진행했다. 자신의 복직과 임금 문제가 아니라 프리랜서로 일하는 수많은 동료와 후배들을 위한 판례를 남기고자 했다. 유족 대리인 이용우 변호사는 이날 회견에 참석해 “고인은 개인적 권리 구제가 아니라 동료 처우 개선 선례 남기겠다는 의지를 밝혔다”고 전했다.

    소송 과정에서 청주방송은 거짓 주장으로 일관했고 지방법원은 청주방송의 주장을 모두 수용해 이PD에게 패소 판결을 안겼다.

    이 변호사는 “고인은 (자신의 근로자지위를 확인받기 위한) 56개의 증거를 제출했고, 회사는 12개만 제출했다. 고인의 주장과 근거는 외면당했다. 핵심근거였던 비정규직 동료들의 고인의 근무실태에 관한 절절한 진술서는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배척됐다. 반대로 회사 간부의 진술서는 재판에 나오지 않았음에도 채택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고인은 권한이 있는 어떤 기관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했고 법원에서도 권리를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청주방송의 부당해고와 법원의 편향적 판결이 이PD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정의와 평등 부르짖던 방송국…속은 부정부패로 가득”

    유족은 물론 시민사회·법조계도 이PD의 죽음에 대해 청주방송에 책임을 묻겠다는 의지가 분명하다.

    특히 형의 죽음을 계기로 방송계의 민낯을 마주하게 된 이대로 씨는 형의 명예회복을 비롯해 방송계의 프리랜서라는 폐해를 뿌리 뽑는 계기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 씨는 “정의와 평등을 부르짖던 방송국의 속 모습은 정말 참담하고 비상식과 부정부패로 가득했다. 특히 민영방송들은 더욱 심했고 그 중 청주라는 지역사회에서 마치 스스로 왕처럼 군림하고 있는 CJB청주방송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기형적인 사조직화가 되어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최소한의 윤리와 정의도 없는 CJB청주방송에서는 임원, 회장 개인 용무까지 봐줘야하는 비상식적인 업무행태에도 형과 같은 프리랜서, 비정규직 PD들과 스텝들은 참아야 했고 이런 부조리 속에서 그동안 그 속은 그들의 피와 눈물로 이미 썩을 대로 썩어 있었다”고도 전했다.

    그는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우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CJB청주방송은 형 고 이재학 PD에게 이것을 풀지 못할 어려운 일로 조작하고 만들어 집어던졌으며, 그것을 풀고자하는 그 과정 속에서조차도 온갖 불법 행위들로 고인에게 억울함을 더했다”고 질타했다.

    이 씨는 “CJB청주방송이 행해 온 위증 행위, 직원에 대한 갑질, 압박, 회유 등의 수많은 불법 행위와 나아가서는 비상식적인 자회사·외주개발사 운영 및 직원 운영 행태 등의 모든 불법 사항들에 대한 책임을 정확히 묻겠다”며 “많은 증거와 진술을 통해 확보한 임직원 가해자들에 대해 엄중한 법적·도덕적 책임 역시 물어 연루된 단 한명도 이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히 “형의 죽음으로 다시 이슈화되고 있는 방송·언론계에 뿌리 깊이 박혀있는 일명 프리랜서라는 명목 하에 행해지는 비정상적인 불법노동착취 실태를 철저히 조사하고 밝힐 수 있도록 건의해 근본적이고 실질적인 대책을 함께 요구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변호사 또한 “청주방송은 지금이라도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며 “특히 이번 사안을 계기로 분명하게 가짜 프리랜서 바꿔낼 수 있도록 하겠다. 유족과 시민단체 정당 관계기관이 함께 할 것이고, 이러한 진전이 없는 한 이 사태를 종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정부, 주어진 권한 모두 사용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청주방송은 지난9일 임직원 일동 명의로 “유명을 달리한 고 이재학 피디에게 머리 숙여 명복을 빈다”며 “진상을 철저히 조사하고 프리랜서 근무환경을 개선하겠다”는 입장문을 냈다. 유족과는 어떠한 협의도 없이 발표한 일방적인 입장이었다.

    이에 대해 추혜선 정의당 의원은 “고인에 대한 사과도 없는 입장문이었습니다. 반성이라고는 없는, 면피를 위한 태도라고 볼 수밖에 없다”며 “청주방송은 (지난 10일 유족과 면담을 통해 합의한) 공동조사를 자신들에게 주어진 마지막 반성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고인의 명예를 회복하고, 고인이 바로잡고자 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불합리한 노동조건, 기형적인 방송구조를 이 기회에 바로잡을 수 있도록 진실한 태도로 공동조사에 임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고용노동부와 방송통신위원회를 향해서도 “방송계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을 마지막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다. 특별근로감독부터 비정규직 사용 실태조사까지 주어진 권한을 모두 사용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추 의원은 “우리는 더 이상 어떤 목숨도 이렇게 잃을 수 없다”며 “고 이재학 PD의 유족들과 여전히 방송을 만들어가야 할 고인의 동료들에게 청주방송과 정부가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 똑똑히 지켜보면서 이들과 함께 하겠다”고 덧붙였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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