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진우, 선수협 그리고 노동조합
        2006년 08월 30일 03:1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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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일 밤이었습니다. 여의도의 한 술집에서 맥주를 한 잔 하다 우연히 송 회장님의 역사적인 200승 달성을 보게 됐습니다. 운동선수로는 고희도 지났다는 불혹의 나이에 집념과 투혼으로 ‘쟁취’한 200승에 대해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진심으로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저와 술자리를 함께 했던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에서 일하는 분들은 대부분 프로야구 경기장 한 번 가 본 적 없고, 지금 어느 팀이 1등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난 2000년 구단과 야구위원회의 횡포에 맞서 선수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당당하게 싸웠던 회장님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 29일 한국 프로야구 투수 최초로 200승을 달성한 한화이글스의 송진우가 동료들의 박수를 받으며 취재진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사진=연합뉴스)
     

    2000년 3월이었습니다. 회장님이 양준혁 선수를 비롯해 프로야구선수협의회 집행부와 함께 민주노총을 방문했을 때 처음으로 회장님의 얼굴을 마주했던 기억이 났습니다. 선수협의회를 지원했던 민주노총 간부들이 전해준 회장님의 든든한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외국처럼 머지 않아 프로야구선수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겠구나’ 하는 막연한 기대를 갖게 되었습니다.

    선수협의회가 만들어지자 야구위원회와 구단주들이 보였던 모습을 기억하고 계시겠지요. 당시 박용오 KBO 총재는 "선수협이 생기면 프로야구를 그만두겠다"고 말했었죠. 그는 얼마 전 회삿돈 286억을 횡령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외국의 프로야구 선수들은 모두 노동조합에 가입해있고, 미국에서는 1972년부터 지금까지 선수 노조의 파업이 5차례나 있었는데도 야구위원회와 재벌구단주들은 선수협의회를 격렬하게 반대했습니다.

    2000년 시즌이 끝나자 재벌구단들은 회장님과 양준혁 선수 등 6명의 핵심간부들을 자유계약선수로 내쫓아 사실상 해고를 했고, 심지어 직장폐쇄를 하겠다는 협박까지 했었죠. 격분한 선수들이 대거 협의회에 가입했고, 참여하지 않았던 이승엽 선수마저 함께 하고 시민단체까지 나서서 지원하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던 것이 기억납니다.

    지금 민주노총에 가입해있는 2천여개의 노동조합들도 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졌고, 지금 이 시간에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선수협의회가 겪었던 과정을 똑같이 밟으면서 싸우고 있습니다. 6년 전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라"는 선수협의회의 요구를 지금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똑같이 외치고 있습니다.

    200승의 신화를 생중계하지 않아 아들이 아빠의 경기를 보지 못했다는 회장님의 얘기를 듣고 안타까웠습니다. 돈만을 쫓아다니는 언론에게는 회장님의 역사보다 일본 요미우리 경기가 더 중요했겠죠. 그런 언론이 2군에서 힘겹게 뛰고 있는 선수들의 땀방울과 어려운 생활에 관심을 가질 리 있겠습니까? 인간답게 살고 싶다며 노조를 만들고 갖은 탄압에 힘겹게 싸우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중요하겠습니까?

    선수협의회의 설립과 탄압과 좌절과 투쟁을 한 가운데서 온 몸으로 겪었고, 고난과 역경의 세월을 이겨내 마침내 200승이라는 신화를 만들어낸 회장님께 다시 한 번 축하의 인사를 전합니다. 아울러 선수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었던 프로야구선수협의회가 특히 2군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이름없는 많은 선수들을 위해 더 많은 노력과 활동을 기울이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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