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대를 살아내어
    다음 세대를 이어간다는 것
    [서평] 「곱게 물든 저녁노을 멀리서 손짓하네」를 읽고
        2020년 02월 09일 09:2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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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2세의 고령으로 250쪽 분량의 책을 내셨네요

    「곱게 물든 저녁 노을 멀리서 손짓하네」를 읽어보니 세상에 흔하디흔한 그런 자서전 같은 것이 아니더군요.

    근세조선이 막을 내리고 일제 강점기가 진행된 3년 후 1929년에 태어난 산골 소녀가 부모의 사랑 속에 친구들과 오빠와 함께 학교 다니며 살았던 향수 가득한 이야기, 그 이야기가 끝나기가 무섭게 6.25전쟁이 발발하여 온 나라가 아비규환 속에 그 당시 반공 애국청년단장이셨던 작가의 부친이 따발총으로 무장한 인민군에게 포승줄로 꽁꽁 묶여 가족들 앞에 끌려와서 공포에 떨던 부친의 모습과 절규하는 가족 이야기는 숨을 죽이고 읽어야만 했습니다.

    9.28 수복과 함께 부친은 인민군에게 학살당하고 온 가정이 풍비박산되어 몰락하는 처참한 광경이 눈앞에서 보는 듯 독자의 가슴을 저리게 합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자마자 생전의 부친이 정해 놓은 시집을 가기 위해 꼬박 2박3일 동안 마차를 타고 얼굴도 모르는 신랑을 찾아 부여로 시집가던 이야기, 풍비박살난 친정 소식을 몇 해 동안 모른 채 눈물로 시집살이 했던 이야기, 가난한 살림 속에서 4남매 기르며 억척배기로 살았던 이야기가 눈앞에 보는 듯 펼쳐지고 책장을 넘길 때 마다 그 다음이 궁금하여 책을 놓을 수 없는 이야기는 계속 이어집니다.

    초등학교 학력의 92세 노인의 처녀작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필치와 이야기의 전개는 하나의 드라마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이 책은 이름이 제법 알려진 어느 여류 작가의 그 무엇보다 읽을 가치가 충분히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의 발간 의미에 대하여 편집자 김영심 씨는 소설가 김진명씨의 말을 인용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개인의 가장 큰 공헌은 당대를 살아 다음 세대를 이어간다는 것 그 자체이다. 태어나서 죽는 것만으로도 다음 세대에 기여하는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바로 92세 할머니 이은방 작가님은 그런 의미를 이미 아신 듯 발간 서두에 그와 같은 말이 써있습니다. “어느 날 자신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 평생 가슴속에만 묻어두었던 파란만장한 자신과 가족의 역사가 소리 없이 묻힐 것만 같은 안타까움에 큰 용기를 내어 책을 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숱한 나날을 날밤을 새워가며 원고를 썼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책은 내 가족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누가 읽어도 감동이 넘치는 우리의 이야기라 생각되어 적극 추천합니다.

    필자소개
    전교조 부위원장 겸 사립위원장. 대전충남녹색연합 상임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