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파의 힘'에 짓눌린 '당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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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08월 30일 10:4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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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 

    민주노동당이 삐그덕거리고 있다. 울산에서 시작된 민주노동당의 힘찬 출발은 다시 울산으로부터 그 위기의 징후가 감지되고 있다. 지금의 고통과 시련이 성장기에 겪는 진통으로 끝날지, 아니면 다시 역사를 되돌려 후퇴할지도 모를 처지에 놓여있다.

    원칙은 끝없이 훼손되고 ‘권력’을 쫓는 ‘꾼’들이 몰려와도 아무런 방패막이도 없이 내버려져 있다. 8만 당원이란 숫적인 팽창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으로는 ‘유아기’를 벗어나지 못한 기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제 민주노동당을 만들고 노동자 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위해 기꺼이 몸과 마음을 바쳤던 진보정당건설 초기의 정신을 되살려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지금은 우리가 처한 현실을 다시 직시하고 원칙을 세워내고, 당을 노동자와 서민들의 정당으로 되돌리기 위해 내부투쟁을 시작해야 할 때이다.

    그 대상은 우리 내부에 잔존하는 ‘보수성’이 될 것이다. 이 투쟁을 통해 민주노동당은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문제가 있는 곳에 해답이 있다

    울산의 문제를 들춰내면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문제’ 그 자체가 아니다. ‘문제’를 통해서 ‘해답’을 찾고자 함이다. 민주노동당의 새로운 위기는 그 ‘문제’를 은폐하거나 사소한 것으로 치부하거나 애써 덮어두려 하는 조직문화에서부터 출발한 것이라 봐야 한다. 

    울산의 문제에 대해 누구나 다 알고 있다고 했지만, 그것을 ‘드러내는 일’에 두려움을 느껴야 했다. 왜 그런가. ‘두려움’의 저편에서 ‘내편의 사람’이 다치지 않을까 하는 염려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문제를 ‘은폐’하는 일은 우리 모두를 실패하게 할 뿐이다.

    진정한 사회주의자는 문제 앞에 당당할 수밖에 없다. 문제를 드러내는 일에 주저할 이유가 없다. 지금 당이 처한 현실, 우리가 처한 ‘위기’로 불리워지는 지금의 문제도 ‘있는 그대로’를 보고 인정한다면 ‘바로 잡지’ 못한 일이 없다는 뜻이다. 유물론에서 ‘갈등’은 ‘발전’을 위한 필연적인 ‘모순’이라 했다. 

    지금의 ‘위기’는 우리가 어떻게 문제를 바라보고 대처하는가에 따라서 새로운 도약을 위한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위기감’에 짓눌려 ‘무기력’해지는 것이야말로 ‘문제’앞에 굴복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위기’를 ‘기회’로 전화시킬 그 무엇을 찾아나서야 한다. 더 늦기 전에.

    책임지는 정치가 필요하다

       
    ▲ 지난 5월31일 문성현 민주노동당 대표가 당사에서 굳은 표정으로 지방선거 개표방송을 지켜보고 있다.
     

    이젠 현실의 문제로 돌아와서 얘기해 보도록 하자. 울산의 거듭된 선거패배는 민주노동당 내부의 문제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그 문제에 대한 당의 대응과정은 민주노동당의 정치적 발전이 어떻게 왜곡되는지를 알 수 있는 과정이기도 하다.

    ‘정치적 책임을 진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울산의 재선거가 패배로 끝난 뒤 당의 최고지도부는 전원사퇴를 ‘결행’했다. 그리고 울산시당 지도부 역시 전원 사퇴를 하게 된다. 소위 ‘정치적 책임’을 행한 첫 번째 사례로 꼽히는 사건이었다.

    소위 ‘정치적 책임’이란 ‘권력을 내놓는 것’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상식이다. 내놓을 것이 없는 일반 당원은 지도부 사퇴를 통해서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했는가를 또한 ‘반성’하지 않았겠는가. ‘책임’에도 여러 가지 색깔과 절차와 단계가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가장 커다란 ‘정치적 행위’는 지도부를 ‘사퇴’하는 일이다. 그것은 이미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책임지는 정치인이 존경받는 풍토가 되어야 한다.

    정치적 책임이란 이유로 ‘전원 사퇴’를 결행한 지도부가 있어 ‘위기감’은 증폭되었으나 충격에 빠진 당의 현실에 경각심을 일깨우고 당을 지지해온 지지자들에게 울산의 패배에 대한 ‘사죄’의 뜻을 밝혔다는 점에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지도부 총사퇴’를 ‘억울한’ 일로 생각하는 ‘당원’들이 있다. 정치적 책임을 진다는 것이 무엇인지, 정치가 무엇인지를 모르는 무지한 당원들을 앞세워 지도부의 사퇴가 ‘부당하다’고 항변하고 있다. 그리고 다시 지도부에 출마하기도 했다. ‘정치조직’의 기본적인 작동원리를 모르고 하는 행동인 것이다.

    ‘정치조직’에서 ‘정치적 책임’을 묻는 일은 다반사로 일어날 것이다. 크든 작든 끊임없는 논란의 불씨는 그 ‘책임’을 어디까지 질 것인가를 판단하는 일이다. 최소한 정치조직의 지도부는 자신의 ‘정책적 소임’과 ‘책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당을 멍들게 하는 ‘묻지마 당원’

    울산의 거듭된 실패의 핵심도 결국 다수의 정파조직에 의한 과도한 권력지향성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해명이 되지 않는다. 왜? 어차피 당이란 다수가 되기 위한 정치투쟁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당에 들어온 정치조직은 당연히 다수가 되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한다. 다수파에게만 문제를 돌리는 것은 또한 문제의 핵심은 아닌듯하다.

       
    ▲ 지난해 10월31일 김혜경 민주노동당 대표가 사퇴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매일노동뉴스

    그러나 내용없는 ‘다수의 힘’은 문제를 야기할 수밖에 없다. ‘무엇을 어떻게 올바르게 할 것인가’에 몰두하기 보다 ‘어떻게 다수가 되어 권력을 장악할 것인가’만을 고민하고 ‘다수가 되기 위해 빠른 길’를 찾기 위해 온갖 편법이 동원되기도 한다.

    또한 당이 처한 현실에 대해서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를 논의하기보다는 ‘어떻게 다수를 무너뜨릴 것인가’, 또는 ‘다수의 힘을 이용해서 입신양명에 활용할 것인가’에 몰두하는 경향도 생겨나게 된다. 원칙은 사라지고 온갖 정파간 또는 활동가 사이엔 서로 내용없는 비난과 물고뜯는 풍토만이 난무하게 된다.

    따라서 정파의 존재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다수의 결정에 대해 ‘권위’와 ‘신뢰’를 보내지 못하게 된다. 이같은 풍토는 당이 행하는 모든 결정에 대해 당이 총력을 기울이지 못하는 결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권위 없는 지도부와 내용 없는 정파, ‘표’에 동원되는 ‘묻지마 당원’이 존재하는 한 민주노동당은 발전할 수 없다. 지금 민주노동당은 ‘정파의 힘’에 ‘당원의 힘’이 짓눌려있다. 이것이 불행의 씨앗이 되고 있다. 진성당원제의 ‘유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특히나 ‘공직자 선출’에 대한 지역주민들과 국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울산의 재선거 등에서 보여지듯이 ‘지지철회’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다수라는 이유로 어떠한 논쟁도 정치적 대안도 제시하지 못한 채 ‘동원되는 표’에 의한 ‘다수득표’는 계급정당, 이념정당을 지향하는 민주노동당에게는 사형선고와 마찬가지이며 당의 내용적 강화를 통한 상호발전이 아닌 하향 평균화를 통한 ‘발전의 질곡’이 되고 있다. ‘다수에 의한 정치적 결정’이란 형식적 민주주의만 작동되는 시스템은 당을 시민과 국민의 지지를 얻는 대중정당으로 발돋음하는 것을 가로막을 뿐이다.

    그렇다면 어떤 해결책이 있을 것인가. 다수파에게 ‘도덕적 잣대’만으로 강제할 수는 없는 일이다. 문제는 당원 한사람 한사람에게 있다. ‘진성당원’이란 자신이 어떤 정파에 속해있든지 간에 ‘옳고 그름’을 판단할줄 하는 판단력과 분별력을 갖춰야 한다는 점에서, 정파에 속한 당원이기 이전에 스스로 정치적 권리를 행사하는 한 사람으로서의 ‘정치적 행위’를 한다는 측면에서 전적으로 당원 개개인에게 책임이 있다고 할 것이다.

    당원의 잘못된 정치적 행위에 대해 당은 어떠한 정치적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거대해진 당’은 당내 ‘정치’에 대한 이해정도가 천차만별이지만 이것을 걸러낼 ‘장치’는 전무하다. 당원의 수준이 당의 수준을 결정하다. 특히 민주노동당의 진성당원은 사실상 당의 내용과 정치적 결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홍세화 선생이 매번 강조했듯이 ‘공부하지 않는 민주노동당’은 ‘진보정당이 될 수 없다’고 했다. 당원의 ‘교육시스템’이 체계화되고 ‘정치토론’이 일상화되지 않는 민주노동당은 ‘질적인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본래 의미의 사회주의적 지향성을 확고히 하는 당을 만들려면 ‘정치적 교육’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공직자 선출’의 혁신이 필요

    핵심적인 문제중의 하나는 ‘공직자의 자격과 선출과정’의 문제로 압축해서 볼 수 있다.

    민주노동당이 대외적으로 정치적 ‘권위’와 대중적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당원구조의 혁신이 뒤따라야 한다. 그 방안 중의 하나는 최소한 ‘공직자 선출’ 방식에 있어서의 혁신이 필요하다. 지역주민과 국민들, 당을 지지하는 지지자들에게 ‘인정받는’ 인물을 선출하기 위해서는 ‘공직선출’ 권한을 당밖에 존재하는 ‘당 지지층’으로 확대해야 한다. ‘당심’과 ‘민심’의 일치를 위한 시스템 개편이 뒤따라야 한다. 또한 ‘공직’에 나서는 ‘인물’에 대한 당의 꾸준한 관리와 성장프로그램도 필요하다.

    민주노동당의 당직, 공직 선출시스템의 허술함이 ‘정치적 무능력’과 결합하면서 올바른 판단을 ‘차단’하는 기능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수술이 필요한 지점이다. 공직자의 자격기준을 강화하고 객관적인 판단과 감시, 관리기능이 보강되지 않는다면 정치적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고 있다.

    공직에 나서는 인물을 통해 국민들은 당의 정책과 정치적 노선, 이데올로기, 철학을 접한다는 점에서 체계적인 ‘공직자의 품질관리’ 프로그램이 세워져야 한다. 민주노동당의 첫 번째 덕목은 ‘도덕성’이며 ‘정책적 마인드’이다.

    공직자의 ‘도덕성’은 보수정당에서조차 ‘최소한의 덕목’으로 꼽힌다. 공직자의 ‘도덕성’ 검토는 당내에 공직자격기준을 보다 엄격히 하고 검증절차를 거치도록 해야 한다. 두 번째는 진보정당의 정책적 마인드와 정치적 식견을 갖춘 인물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공직자가 거쳐야 할 ‘필수 교육프로그램’이 체계화되어야 한다. 최소한의 교육프로그램 이수과정을 거쳐야만 공직에 나설 수 있도록 체계적인 교육프로그램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 외에 대중을 상대로 한 정치활동의 성과도 공직자의 덕목으로 설정하여 관리하고 평가될 수 있도록 체계화해야 한다.

    산별노조시대, 노조의 사회적 책임과 지역운동

    울산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 그 두 번째 영역은 노조운동과 정당운동의 관계 재정립 문제이다. 울산지역이 갖고 있는 상징적 의미와 관련된 사안이다. 노동자 밀집지역이라는 진보진영의 ‘텃밭’에서 정치활동의 새로운 모델이 창출되어야 한다.

    울산, 창원, 거제 등 노동자 밀집지역의 특성에 걸맞는 정치활동의 상이 새롭게 모색되어야 한다. 특히나 현대자동차 등 금속노조 등 다수의 노조가 산별전환을 이뤄낸 지금, 새로운 진보운동의 상과 실천활동의 구체화를 통해서 노동운동의 혁신과 당의 혁신을 동시에 이뤄낼 수 있는 방안이 제출되어야 한다.

    지난 6월 현대자동차노조가 산별전환에 성공한 뒤, 새로운 시대의 노동운동을 열어나가는데 대공장 노조가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자본가와 보수언론의 총공세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조직전환을 선택한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은 ‘87년 체제’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2007년 체제’를 탄생시키는  명실상부한 금속산별의 탄생은 노동운동의 질적 전환과 진보운동의 새로운 조건 마련 등으로 ‘계급운동’의 질적 전환에 앞장서는 데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시대임을 예고하고 있다.

    산별노조시대는 노조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새로운 과제를 요구하고 있다. 그 첫 번째 과제는 노조가 속한 지역사회에서 어떠한 정책적 마인드와 산업적 이해관계를 노조의 힘으로 ‘개선’하고 ‘개입’할 것인가를 묻고 있다. 기업별 노조가 기업내 노동자의 임금과 권익을 위해 싸웠다면 ‘산별노조시대’의 노조는 기업을 넘어 산업별 노동자들의 권리와 권익을 위해 싸울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비정규직과 미조직 노동자들을 산별노조에 포괄하여 노동자의 고용불안문제를 ‘동시’에 해소하고 기업과 노조가 지역사회, 지역경제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때이다. 특히 노조의 사회적 역할이 어떤 형태와 정책으로 결합할 것인가가 진보운동에서 중요한 이슈로 부각될 것이란 점에서 노동운동진영과 정치운동진영의 공통과제의식이 공유되어야 하며 공동의 목표설정과 정책적 과제도출이 필요한 시기이다.

    노동운동과 노조운동이 지역사회와 지역주민들의 안정적인 생활을 보장하고 보호하는 투쟁과 결부하기 위한 ‘당의 정치적 기획’이 필요한 시기를 맞고 있다.

    ‘정치적 실천’를 통한 대중성 제고해야

       
    ▲ 지난해 5월 울산 화봉공원에서 열린 ‘조승수 의원 지키기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조승수 전 의원.(사진=민주노동당 울산시당)
     

    당과 노조는 공히 ‘공적인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민주노동당이 정치적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는 보다 강화된 ‘공적인 존재’로서의 ‘정치적 결정’을 해야 하듯이, ‘노조’ 역시 조합원만이 아닌 ‘지역과 국가’에 어떻게 기여하고 사회문제에 개입해야 하는가에 답해야 한다.

    당과 노조는 지역주민과 국민들을 상대로 자신의 정책을 ‘홍보, 선전’하고 지역주민과의 접촉면을 넓혀 ‘지지층’의 확산을 꾀해야 할 것이다.

    당은 전국조직으로 광역시도당과 지역위의 위상과 역할에 걸맞는 지역정치활동을 일상적인 실천활동으로 정착시켜야 한다. 16개 시도당은 지역내 다양한 정치적 쟁점에 ‘개입’하고 지역내 정책결정에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이를 통해 지역내 ‘정치적 권위’를 획득해야 한다. 정치적 권위란 지역주민과의 밀착도에 따라서, 지역주민들이 겪고 있는 다종다양한 사안에 결합하는 능력과 노력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권위’일 것이다.

    전국적으로 또 지역적으로 모범사례가 되고 있는 학교급식조례운동 등이 하루 아침에 이뤄지지 않듯이, 지역내 정치적 활동의 결과와 영향력은 하루 아침에 자연스럽게 이뤄지지는 않을 것이다. 지역정치활동은 보다 서민들의 생활공간에 함께 호흡하면서 진보적인 정치가 생활이 될 수 있는 토대 마련에 나서야 할 것이다.

    대중과 호흡하고 소통하는 실천활동 속에서 당의 수많은 문제들을 하나 둘 해결해나가는 계기도 찾아질 것이라 낙관하고 있다.

    마무리

    대선은 아직도 1년 3개월의 기간이 남아있지만, 이미 올 하반기 국회는 대선주자들의 정치적 공방으로 날을 지새울 태세이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은 아직 대선주자의 윤곽조차 드러나지 않고 있다. 위기에 처한 민주노동당은 어떻게 활로를 찾아갈 것인가.

    지금 민주노동당은 표류하고 있다. 당의 역사가 깊어지면 당도 성장하고 성숙해져야 하는데, 민주노동당은 사실 뒷걸음질치며 후퇴를 거듭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진보정당의 면모를 잃어버린 민주노동당은 아마도 정치적 세력으로 존재하기 어려울 것이다.

    대선이란 거대한 정치적 장을 앞에 두고 한숨 소리도 깊어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길을 찾아갈 것이다. 열정과 원칙을 무기로 가던 길을 올곧게 가는 길 외엔 다른 길이 없을 것이다. 어려울 때일수록 원칙을 준수하고, 원칙을 지키기 위한 투쟁을 게을리 해서는 안될 것이다. 울산의 패배를 딛고 새로운 정치활동의 상을 찾아가기 위한 새로운 모색이 곳곳에서 추진되고 있다. 새로운 모색이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나가는 시초가 되리라 기대해 본다.

    힘겨운 싸움을 하는 노동의 현장에서, 정치투쟁의 장에서 각개전투하는 수많은 동지들을 떠올리며 우리 모두 힘찬 한걸음을 내딛어야 할 때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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